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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하지 않고 느껴야 하는 역사도 있다?
신용경제 2017-05-08 18:48:48

 

“당신이 이곳에 처음 왔다면 입이 아니라 두 눈을 열어라”
아프리카의 속담은 지난 시간 그들의 지워진 과거를 읽는 단서가 된다. 한없이 암울했던 과거와 힘든 현실 속에서도내 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도 조금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몰랐던 어떤 역사?
자, 이제 눈을 활짝 뜨고 아프리카를 보자. 당신이 본 아프리카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아니 그 전에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아프리카의 모습이 어떠한지 생각해 보자. 드넓은 초원과 야생동물의 세계 아니면 굶주린 아이들이 있는 헐벗은 땅 그도 아니면 유혈사태가 빈번히 일어나는 불안한 지역 이 어느 것 중 하나가 아닐까? 어린 시절 타잔을 보고 자란 세대라면 ‘아프리카 = 밀림 = 타잔의 고향’ 순으로 아프리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타잔의 고향이 밀림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아프리카는 아니다.
백인 남자가 가죽 팬티만 입고 식스팩을 거리낌 없이 매회 보여주기에 적절한 장소가 밀림이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곳을 찾다 보니 아프리카까지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역시 ‘동물의 왕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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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니 우리가 정말 아프리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 그나마 알고 있는 북아프리카 이집트에 대한 역사도 세계사는 아프리카 역사라고 말하기보다는 오리엔트 문명이라며 아시아 역사에 구겨 넣기 바빴다. 분명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데 왜 구분은 오리엔트 역사인가?
왜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우리는 이토록 알고 있는 것이 없을까? 다른 나라는 사정이 좀 다를까?
불행히도 다른 어느 나라를 보아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세계 어느 나라도, 심지어 아프리카를 생일 케이크 나눠 먹듯이 점령했던 열강들조차 아프리카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만나기 위해선 우리의 고정관념이 무참히 깨지는 과정과 우리의 인식을 분해 해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치 유목민의 역사를 알기 위해 정착민인 우리의 인식을 버려야 하는 것처럼.
그래야만 아프리카에 사는 다양한 민족을 부족이라 낮춰 부르지 않고 그들이 변변한 글자가 없고 역사가 없고 그래서 거창한 중앙집권 국가 하나 없이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낙후된 곳이라 여기는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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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역사는 멈춰있다?
아프리카에 처음 도착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들은 글자도 없었고 문화도 없었다. 적당한 그룹으로 모여 살긴 했지만, 국가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유일신인 기독교의 하나님도 몰랐다. 아프리카인들이 유럽인들보다 열등한 건 당연했다. 최소한 유럽인들의 입장에선 그랬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개화(?)시키기로 결심했다.
아프리카의 많은 역사는 그곳에 도착한 정복자들에 의해 무참히 삭제되고 왜곡됐다. 그리고 철저히 짜 맞춰놓은 유럽 사관의 세계사에서 텅 빈곳으로 남았다. 많은 역사 교과서는 코에 커다란 링 하나 걸고 머리는 산발로 한 채 퀭한 눈으로 카메라를 보고 있는 피그미 민족이나 커다란 눈에 두려움이 가득한 어린아이의 사진을 놓고 아프리카를 설명하려고 했다. 우리가 글로 아프리카를 설명하려고 하기에는 그 땅은 너무 난해했기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대부분 민족은 역사를 문헌으로 남겨놓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객관적인 사료만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말하려는 사람들에게 아프리카는 미지의 대륙이며 연구할 가치가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남겨진 사료가 언제나 믿을만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사료만 의지해 역사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아프리카는 문자가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이집트엔 상형문자가 없었고 대부분 지역에선 입으로 구술 전승된 과거의 이야기가 전부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문처럼 전해 들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리카의 시작이 곧 인류 역사의 시작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인류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이브’는 아프리카 대륙에
서 최초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시작했던 한 여성이었으며 그 혈통은 오늘까지 우리의 피 속에 남아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하는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도 아프리카 땅에서 시작됐다. 태양신 ‘라’를 섬기며 나일 강의 범람으로 비옥한 토지를 소유했던 이집트 문명은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달력인 태양력으로 일 년을 365일로 기록해 사용했고 의학, 농업, 건축 분야에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다. 그들이 건설한 피라미드는 현재 과학으로도 풀 수 없는 미스터리로 이집트 피라미드는 세계 불가사의에 속한다.
기원전 3,000여 년 전 통일왕조를 성립한 이래 수많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던 어느날, 메네스 왕이 나일 골짜기에 자리 잡고있던 북 왕조와 남 왕조를 통합해 이집트를 건설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신격화됐고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국가 기구를 통솔하고 많은 지배 계급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집트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주변 국가를 점령하며 세력을 넓혀나갔다.

 

‘발전과 진화’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
아프리카엔 이집트를 제외하고 오랜 세월 국가라는 개념이 모호했지만 대신 그들에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사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국가보다 가족 단위의 결속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중앙아프리카에 사는 피그미 민족은 중앙집권 국가가 없지만 가족 단위의 공동체가 이를 대신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언어에는 전쟁과 투쟁 같은 단어가
없다. 그들은 사사로이 개인의 재산을 축적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모두 공동 양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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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인들의 끈끈한 가족 공동체 개념은 국가에도 적용된다. 탄자니아 연합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줄리어스 니에레레는 탄자니아 국가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가족 공동체이며 민족과 성별, 사회적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우야마(Ujamaa)’에서 개인과 종족, 국경과 대륙을 뛰어넘는 공동체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는 우리가 봤던 그 어떤 문화와도 다르며, 따라서 역사도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역사에 문명과 발전, 진화의 잣대를 댈 수 없다. 문명이 발생하고 문자로 역사를 기록하고 계급과 권력이 생겨나고 이를 토대로 다른 이를 착취하고 더 넓은 땅을 점령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기계 문명의 정점에 다다르는 것이 역사라면 아프리카에는 역사가 없다. 그리고 그런 기준으로 아프리카를 본다면 아프리카 역사에선 단 한 줄도 배울 것이 없다.
아프리카 인권 운동의 정신적인 지주이자 남아공의 양심이라 불리는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인종차별 철폐 운동가로서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의 끊임없는 평화와 자유의지는 1984년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어느 날 투투 주교가 인터뷰하던 중 기자로부터 한 질문을 받았다. 아프리카 대륙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프리카 대륙에 갈등이 난무하는 것이 실망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투투 주교의 답변은 두고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유럽 대륙이 이곳에서 시작된 두 번의 세계 전쟁에서 거의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이 이따금 몹시 슬퍼집니다. 유럽은 대체 어떻게 될까요? 아일랜드나 스페인의 바스크 지역 문제 등을 보십시오. 옛날 유고슬라비아 지역 국가들은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유럽은 대체 언제쯤 역사에서 배우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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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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