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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버몬트
신용경제 2017-05-08 18:59:04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을 나는 알지 못한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 시인이 읊은 자작나무 싯구이다. 그가 노래한 세상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가 태어나고 열 살까지 자란 곳, 샌프란시스코? 아니다. 윌리엄 버로우즈의 ‘발가벗은 점심’과 같이 기존의 틀을 벗어난 파격적, 반체제적 비트(Beat) 문학의 온상에서 피어난 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소년 시절의 매사추세츠도, 30대 후반 잠시 살다 온 영국 런던도 아니다. 울퉁불퉁 산지가 아닌 평평한 숲에서 밋밋하게 자란 나무와 버몬트 주 변화무쌍한 산악 숲에서 자란 자작나무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버몬트 주에는 대자연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찬란한 금빛은 없다. 봄에 새싹이 돋을때 설탕단풍나무 잎이 녹색으로 변하기 전 잠시 금빛을 띨 뿐이다.
버몬트(Vermont) 주에는 이렇게 햇살을 받아 잠시 금빛을 띄는 단풍나무 외에 찬란한 것이 없다. 로버트프로스트는 “찬란한 금빛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 어떤 찬란한 것도 영원하지 못하다”라고 했다. 자연과 일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저절로 자연과 합일 된 로버트 프로스트에게 버몬트는 로버트 프로스트였고 그는 곧 버몬트였다. 평화로운 관계였다. 사랑을 노래할 수 있었다. 진정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주옥 같은 작품들의 소재와 공간이 버몬트로부터 왔다.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던 것이다. 마땅한 놀이 동산이 없는 소년에게 자작나무는 하나의 놀이공간이고 삶이고 세계다. 단순한 것 같지만 탄력을 받아 하늘로 올라갔다가 다시 밑으로 휘어져 내려오기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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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지 않은 단풍, 영원한 순수 대자연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버몬트 주는 북으로는 캐나다 퀘벡 주 구릉지대, 동으로는 뉴햄프셔 주 화이트마운틴, 남쪽 매사추세츠주 접경지역에는 그린마운틴, 서쪽으로는 뉴욕 주와 경계를 따라 남북으로 길이가 200m에 이르는 챔플래인 호로 둘러싸여 있다. 프랑스 탐험가 사무엘 드 샹플랭이 처음으로 발견해서 샹플랭 호수로도 불리는 이 거대한 호수가 자작나무와 설탕단풍나무들의 산들과 어울려 빛나지 않지만 순수한 대자연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캐나다 국경으로부터 2번 도로를 타고 내려오면 누구나 노스히어로(North Hero), 나잇(Knight), 그리고 가장 밑에있는 사우스 히어로(SouthHero) 섬을 차례로 만난다.
북쪽으로는 캐나다 속살까지 비집고 들어가 있는 이 긴 호수가 신비감을 자아내는것은 영웅들과 중세의 기사가 호수 가운데에 서서 호수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괴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인들 때문이다.
말과 용이 합친 모양으로 생긴 그 괴물을 실제 목격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직접 보고 사진도 찍어 놓은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여부를 따질 필요는 없다. 괴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한히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으니까. 또한 호수 주변 십여 곳의 주립공원의 경관이 다른 공원들에 비해 품격 차이가 크게 날 정도로 고결한 선비 같으니까.
그곳에 들어선 인간에게서 풍겨 나오는 인격의 향기마저 달라지니까. 누구나 이 찬란히 빛나지 않는 대자연의 일부가 되면 바람이 불어오지 않아도 상대에게 나의 향기를 전달할 수 있다. 마음이 담긴 따뜻한 말, 사랑이 가득담긴 언어, 내면 향기가 오래오래 풍기며 날아다니니까. 나무들이 저마다의 향을 뿜어내듯이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만의 진한 향을 내뿜게 된다. 멀리서 누가 가까이 다가오거나 지켜보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오래오래 남과 다른 나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으니까.
이곳은 특히 가을에 많은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세인트로렌스 강에 점점이 놓인 몬트리올에서 15번 프리웨이를 타고 미국 땅 버몬트로 들어온다. 국경을 넘어오자마자 마주치는 버몬트의 단풍은 더는 아름답지 않다. 슬픔마저 느끼게 된다. 세인트로렌스강변 퀘벡의 붉은 단풍이나 샹플랭 호수변 버몬트의 단풍이나 별 차이가 없어서라기보다 단풍 너머로 용틀임하는 낙조의 시간이 다가오면 마지막 절정을 내뿜고 있음을 눈치채기 때문이다. 이어 찬 서리가 내리면 단풍은 시들고 바닥에 떨어질 것이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오래 남는 것은 찬란해 보이는 단풍이 아니라 변함없는 순수 대자연과 거기서 나와 구전으로, 창작물로 이어질 사람들의 이야기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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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몬트 주의 최고봉, 마운트 맨스필드
높은 지대, 정상에 올라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수많은 사라져간 사람들이 보인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정상에 올라 이 세상과 사랑싸움을 했다. 자연과 운명과 신의 섭리를 존중했기 때문이다. 숲이 사랑스럽고 어둡고 또 깊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싸우면서 깊고 넓어진다. 젊은 존F. 케네디도 그 사랑에 취해 대통령 취임식 때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찬미했다. 사람들은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서 그의 시에 빠졌다. 이유를 모른채 가슴은 뛰었다. 잠들기 전에 몇 마일만 더 가야 한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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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몬트 주 사람들은 한때, 자작나무를 타던 소년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로 돌아가길 꿈꿀 때가 있다. 세상 근심에 지쳤을 때, 인생이 길 없는 숲과 같을 때, 거미줄에 걸려 간지러울 때, 작은 나뭇가지가 한쪽 눈을 스쳐 눈물이 흐를 때 버몬트의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잠시 세상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새로 시작하고 싶어진다. 운명이 잘못 이해하고 소원을 반만 들어주어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거나 아주 데려가 버리지 않을까 라는 염려를 안고. 결국 이 세상은 사랑하기에 좋은 곳임을 알게 된다. 버몬트가 아니라도 자신이 현재 서 있는 곳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버몬트 최고봉에 올라 세상과 사랑싸움을 한 로버트 프로스트처럼.
버몬트의 내륙 통관항, 벌링턴(Burlington)에서 남동쪽 맨체스터로 이어진 89번 도로를 타고 가다 스토(Stowe)방향으로 틀면 맨스필드 산이 있는 주립산림공원(Mount Mansfield State Forest)이 나온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한순간 혼란에 빠진다. 맨스필드라는 이름이 맨스필드 타운에서 유래했는데 그 타운은 이 넓은 주립산림공원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사라졌다. 버몬트가 사랑하기 좋은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오간 데 없다. 여기보다 더 나은 곳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타운 전체가 사라지고 없다. 버몬트에서가장 높은 이 산은 이마, 코, 입술, 턱, 목젖이 드러나는 길쭉한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대자연에 거대한 자연인 혼자 남았다.
고산지역 빙하시대 툰드라가 감싸고 있는 사람 얼굴의 대자연이 또 다른 이야기 소재가 된다. 창조자들을 무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여기보다 나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마주치게 될 두 갈래길, 어느 길을 선택하든 지금까지 누군가를 사랑해 온 만큼 앞으로도 사랑할 사람들을 만나게 되리란 기대가 우리에게 삶의 동력이된다. 노란 숲속 두 갈래 길,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정상에 서면 떠나간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에 풀이 나서인걸의 자취가 사라졌다 해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잠못 들 우리는 잠들기 전에 더 걸어야 될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깊어진다. 생각이 가져다 준 길, 가지 않은 길과 걸어온길이 거의 같아질 것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해도. 길은 길을 낳고 끝이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어차피 훗날에는 한숨쉬며 이야기할지 몰라도. 숲속에는 두 갈래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찬란한 금빛은 없어도 각자가 서 있는 곳의 최고봉으로 가는 길을 꿋꿋이 걷는다. 사랑하기에 좋은 곳이 하늘에 오르다 땅에 내려오기를 반복하며 오래 머무를 이곳보다 알맞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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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감정평가사무소장,
30대부터시작하는부동산노테크 저자
(coreits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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