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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불공평한 MSG의 역사?
신용경제 2017-06-05 15:39:01

 

요리의 감칠맛을 더하는 MSG(L-글루탐산일나트륨, monosodium L-glutamate)는 넣기 전과 넣고 난 후의 맛이 천지 차이라 ‘마법의 가루’라고 불리기도 한다. 요즘에는 건강을 생각해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MSG가 첨가되지 않으면요 리가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쩐지 유난히 맛이 있더라~’하면 어김없이 MSG가 들어있지 않던가? 이렇다 보니 MSG 없는세 상이 잘 상상이 안 된다.
아니 상상하기 싫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마법의 가루라고 항상 좋은 시절, 귀한 대접을 받았던 건 아니다.

 

좋거나 vs 싫거나 극과 극을 달리는 ‘마늘’
마늘은 까면 깔수록 새로운 속내를 드러내는 양파보다 더 흥미로운 향신료다. 마늘이 백합 과에 들어간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작고 매운 알들이 눈물겨운 굴곡의 역사를 걸어왔다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마늘은 인류 역사에 오래전부터 등장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 건설 작업에 꼭 필요한 식품(?) 중 하나였다. 상식적으로 마늘로 배를 채운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집트의 쿠푸왕은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인부들에게 마늘을 식품으로 지급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염에 고된 노역을 마친 인부들에게 세상 매운 마늘을 끼니로 지급하는 쿠푸왕의 행태는 ‘갑질’, ‘횡포’의 하이라이트 였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할 수 있다.
마늘은 몸속 영양소를 에너지로 바꾸는 기능과 함께 비타민 B가 풍부해서 쉽게 피로를 느끼지 않게 해 준다. 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일군들은 마늘을 끼니로 받기도 했지만, 임금으로도 받았다. 이집트인들은 마늘을 식품이나 향신료 이상으로 여겼기 때문에 마늘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좋은 날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고대 로마 시대 사람들은 마늘 냄새가 나는 사람을 신전에 들이지 않았고 중세 사람들은 부적절한 욕망과 연결해 금기시했다. 심지어 마늘 냄새가 악마와 관계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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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우세스터에 사는 소녀는 햇빛에 몇 분만 노출돼도 화상을 입는 포르피린증을 앓고 있어서 외출할 때마다
긴 상의와 긴 바지 모자, 선글라스, 장갑을 껴야 한다. <사진출처 나우뉴스>>

 

마늘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점점 마늘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중세 사람들은 고귀하고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거친 음식, 향이 강한 음식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고급스럽고 가벼운 음식을 먹어야 하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힘든 육체노동에 맞는 거칠고 영양 많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수수, 보리, 귀리로 만든 빵과 마늘, 부추, 양파, 파 같은 것들을 먹어야 하고 귀족들은 고기와 밀가루에 향이 좋은 포도주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마늘을 먹는 귀족은 극히 드물었다.
마늘에 대한 이런 취급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악마들도 싫어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늘을 악귀를 쫓는 물건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아직도 공포영화에서는 흡혈귀를 쫓는 물건으로 마늘을 사용할 정도니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과학적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중부유럽 특히 루마니아 외딴 지역에서는 강한 햇빛을 쬐면 피부가 발적 되는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있었다. 희귀 유전 질환인 포르피린(porphyrin)증에 걸린 사람들은 철분을 혈액의 헤모글로빈 형태로 흡수하기 위해 피를 마셨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이 흡혈귀라고 믿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포르피린증 환자들이 흡혈귀가 꺼린다는 마늘에 극심한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흡혈귀의 후예라도 된다는 것일까? 떠돌아다니던 민담이 사실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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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3세(George III, 1738년~1820년) _ 하노버 왕가 중 처음 영국 태생인 왕으로 엘리자베스 2세,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 통치했으나 말년에 정신병이 심해져 미치광이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학자들은 그의
심한 조울증이 하노버 왕조에 유전적으로 내려오던 포르피린증이 뇌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극적인 이 사례는 흡혈귀가 마늘을 싫어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가 아니라 포르피린증 환자들이 마늘을 싫어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야 할 듯싶다. 포르프린증 환자들이 마늘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이 마늘에 들어있는 알리신 성분이 이들의 발적 증세를 격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마늘이 흡혈귀의 미신에 리얼리티를 살려준 MSG가 되고 만 것이다.

 

상황 반전! 마늘의 대역전 드라마
어이없는 루머지만 흡혈귀를 물리치는 주술적인 물건 취급이나 받던 마늘이 대반전의 드라마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 프랑스 식탁 위에서 펼쳐졌다.
마늘이 자유자재로 쓰인 프랑스 시골 음식이야말로 먹음직스러운 음식 요리법으로 인식되면서 드디어 향신료의 반열에 재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엔 천대받던 시절이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인들은 매년 2억 5천 파운드 이상의 마늘을 먹고 있으며 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마늘을 구분하고 맛의 차이를 아는 것이 진정한 미식가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는 히포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감염된 허파에 마늘을 치료제로 쓰거나 왕과 권력자의 무덤에 마늘을 넣는 일은 하지 않는다. 또 영부인이었던 로즈벨트 여사처럼 기억력을 향상하기 위해 생마늘 약처럼 복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 마늘에 대한 효과는 맹신에 가까울 정도에 이르렀다.
하늘과 땅으로 수차례 수직 하강을 반복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다가 천대받는 마늘은 이제 대표적인 건강식품, 향신료의 자리에 우뚝 섰지만, 그 역사는 톡 쏘는 향과 맛처럼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대서사시에 가깝다. 그래서 마늘은 깔수록 매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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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두구 _ 사향 냄새가 나는 호두라는 뜻으로 기억력을 좋게 하고 위를 튼튼하게 보호해 소화를 돕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신비의 향신료로 알려져 있으며 16세기 유럽에 전해지면서 유명해졌다. 유럽의 육두구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재배할 수 있는 기후 조건이 까다로워 육두구 재배지를 차지하기 위한 열강의 경쟁이
치열했다.>

 

 

세젤귀(세상 제일 귀한) 대접을 받던 MSG?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지금과 달리 제한돼 있었고 냉장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엔 향신료가 맛을 내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 가치는 지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럽이 아시아로 팽창하려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더 큰 땅과 값비싼 향신료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유럽을 광란에 빠트렸던 대표적인 향신료는 바로 후추였다. 후추는 고대부터 귀한 향신료로 여겨져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후추에 많은 세금을 부과했고 중세에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 서구 열강이 후추의 독점권을 놓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유럽은 오랜 세월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향신료를 놓고 숱한 전쟁을 벌여왔던 것이다.
심지어 십자군 전쟁조차 이슬람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성지를 회복하겠다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사실 아시아로 들어가는 길목을 이슬람 세력을 가로막고 있었다는 이유가 컸다. 십자군 800년 동안 남부 스페인을 정복하며 동양을 가로막고 있던 무어족을 스페인에서 제거하려고 했다.
16~ 17세기엔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이 인도네시아 ‘런섬’이라는 작은 섬에서 재배되는 향신료 때문에 한 세기 넘도록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섬은 후추의 재배지로도 유명했으며 당시동량의 금만큼 값어치가 높았던 ‘육두구’라는 향신료가 재배되는 곳이기도 했다. 원주민과 포로들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고문은 네덜란드가 이 섬을 차지하게 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영국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뉴 암스테르담, 지금의 맨해튼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뉴 암스테르담을 포기하고 후추와 육두구 재배지인 런섬을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향신료의 값이 폭락하면서 최악의 선택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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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제도(Banda) _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 동쪽에 위치한
반도 제도에는 16~17 유럽의 향신료 전쟁의 핵심지였던
런섬을 포함 반다베사르, 구농아피 등 비교적 작은 규모의
화산섬들이 모여 있다. 정향과 육두구의 재배지로 유명했던
인도네시아의 말루쿠 제도와 함께 향료제도로 불리기도 했다.>

 

섬을 차지하게 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영국은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뉴 암스테르담, 지금의 맨해튼을 요구했다.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뉴 암스테르담을 포기하고 후추와 육두구 재배지인 런섬을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향신료의 값이 폭락하면서 최악의 선택을 한 꼴이 되고 말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늘 때문에 전쟁까지 난 적은 없으니 그 맛은 비록 매우나 그것이야말로 평화의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하기 때문에 누구나 접할 수 있었던 마늘은 구하기 힘들었던 향신료에 밀려 항상 푸대접을 받았지만, 지금은 후추나 마늘이나 어디에서나 구하기 쉬운 음식 재료로 향신료라 이름 붙이기도 어색할 정도가 됐다. 자, 이 정도면 향신료의 역사는 편파적이고 불공평한 짠한 맛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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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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