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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남는 존재의 기록이다? ②
신용경제 2017-12-01 14:15:16

오랜 시간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이 나타나고 멸종을 거듭하는 과정을 ‘자연 선택을 통한 공동 후손의 점진적 진화’라는 짧은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진화론은 지동설만큼이나 인간 중심적인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제한된 자원에서 환경에 적응을 더 잘하는 형질을 가진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는 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의 조건 아래, 만물의 영장인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같은 수준에서 경쟁한다는 것자 체를 받아들이기까지 크고 작은 진통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 진통이 진화론 논쟁이 아니라 “원숭이 재판”이라는 타이틀이 매우 이상하지만 말이다.

 

제2의 원숭이 재판 시작이요!
진화론의 등장과 함께 나름 유구한(?) 역사가 있는 원숭이 재판은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인가?”라는 키워드로 시작해 치열한 공방으로 치닫다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이 공방 중에 ‘다윈의 불독’이라 불렸던 헉슬리처럼 유전적으로 서로 다른 개체들이 환경에 적응하며 생존한다는 이 심플한 이론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와 사촌이라는 것도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원숭이 재판은 팩트의 대립이자 물러설 수 없는 신념의 대립이기도 했다. 그런데 1925년 미국의 인구 1700~1800여 명의 작은 도시 데이턴에서 벌어진 제2의 원숭이 재판은 그 시작이 이전과 사뭇 달랐다. 1925년 3월 세계 기독교 근본주의 협회의 존 W. 버틀러가 의회에 공들인 대가로 통과된 법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흔히 ‘버틀러 법(Butler Act)’이라고 불리는 이 법에 의하면 주의 모든 대학교와 고등학교, 주의 공립학교 기금을 지원받는 거의 모든 공립학교에서는 교사가 인간이 신성한 창조물임을 부인하는 이론을 가르치고, 인간이 하등동물의 후손이라고 가르치는 일은 불법이었다. 한마디로 진화론을 가르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버틀러 법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테네시주의 데이턴이란 작은 마을의 몇 명이 작정하고 범법자가 되기로 나섰다. 이들을 지원하겠다는 거대한 지원 세력도 등장했다. 미국 시민자유연합은 이 법에 도전한 지원자를 공모했고 여기에 안성맞춤 자격자로 센트럴 고등학교의 생물학 교사였던 젊은 존 스콥스(John T. Scopes)가 선발된 것이다. 그런데 지원자인 스콥스가 진화론을 가르쳤는지 확신하지 못하자 연합은 친절하게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론에 대한 부분을 가르쳤는지 증명해주었다.

 

존 스콥스 (John T. Scopes)
미국 테네시주의 교사로 1925년 5월 교과서에 있는 진화 이론을 가르치다 고발되었다. 스콥스의 재판은 원숭이 재판으로도 불리며 논란이 되었고 스콥스는 재판결과로 1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스콥스가 어긴 버틀러 법은 1968년이 돼서야 폐지되었다.

 

스콥스의 재판(원숭이 재판)을 보도하는 언론

재판을 미국 전역에 방송한 시카고 트리뷴의 라디오 방송국인 WGN는 이 재판이 단순한 형사 재판이 아니며 스콥스는 재판에서 무시해도 좋을 만큼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며 이 재판은 스콥스의 재판이 아니라 관념의 싸움이라고 정의 내렸다.

 

1925년 스콥스 재판이 성사(?)되자마자 대통령 후보로 세차례나 지목되었고 국무장관까지 역임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이 검찰 측 변호인에 자원했다. 이에 질세라 미국 시민자유연합의 난다 긴다 하는 거물급 변호사들도 피고인의 변호를 맡겠다고 나섰다. 거물급 변호사들의 한판승부는 곧 미국 전역의 화제가 됐다.
사람들은 세기의 대결을 보기 위해 작은 마을로 몰려들었다. 재판이 열리는 날을 맞이해 서던 철도는 데이턴까지의 열차 운행을 증편했고 승차권만 있으면 마을에서 무상체류도 가능하다는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스콥스의 재판에 대규모 구경꾼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자 판사는 법정을 법원의 뒤뜰로 옮겼고 시간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수천 명의 관람객과 200여 명의 기자, 핫도그, 음료, 기념품을 팔겠다고 들어선 장사치까지 몰린 뒷들은 재판장이 아니라 행사장 같았다. 작은 마을이었던 데이턴은 곧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이 되었고 수천 명이 찾는 유명 도시가 되었다. 스콥스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그의 범법행위는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를 활성화의 계기가 되었다.

 

10일의 혈전… 결과는 누구의 승리?
1925년 무더운 7월, 10일이나 지속된 재판은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됐고 스위스, 독일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일본의 언론들까지 기사를 쏟아냈다. <아메리칸 머큐리>의 편집장은 이 재판을 ‘세기의 원숭이 재판’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관심과 비난, 응원이 난무하는 가운데 드디어 재판이 시작됐다.
피고인의 변호인 클래런스 대로우(Clarence Darrow)는 이 재판이 불신앙과 기독교 신앙의 수호자 사이에 벌어지는 사투라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검사 측 변호사, 브라이언을 증인석에 세웠다. 대로우는 브라이언에게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는지 뱀이 이브를 유혹했는지 등을 질문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브라이언은 합리적인 답변을 유도하는 대로우의 질문에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을 주장하며 답을 이어갔다.
브라이언의 신념에 가득 찬 답변에 대로우는 다시 질문했다. “지구의 나이가 얼마라고 보나?”라는 질문에 브라이언은 천지창조에 의하면 약 6천여 년 정도 됐다고 대답했다.
대로우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지창조가 6일 만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브라이언은 성경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니라 수백만 년을 의미할 수 있다는 대답을 하고 말았다. 브라이언은 본인의 과도한 신념 때문에 자가당착의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근본주의자의 대표로 나선 브라이언은 스스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지만, 재판은 근본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스콥스는 재판에 패했고 100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정작 제일 중요한 피고인이었던 스콥스는 증인석엔 설 필요도 없었다. 스콥스는 만약을 위해 학생들에게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했고 답변까지 지도했지만, 재판은 스콥스가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가르쳤는지는 이미 잊은 지 오래된 듯했다.

재판은 스콥스와 미국 시민자유연합과 진화론자들의 패배인 듯 보였지만 이 재판으로 근본주의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됐고 브라이언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브라이언은 이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바람을 물려받다>라는 연극과 <신의 법정>이라는 패배자로 오래도록 묘사됐다.
진화론으로 불거진 과학과 종교의 분쟁은 2005년에도 한번 더 재연되었다. 펜실베이니아도버에서 열린 재판에서는 진화론과 함께 지적설계론도 수업 내용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부시는 자신의 신앙심을 친히 판사를 임명하는 것으로 만천하에 보여주면서 지적 설계론에 힘을 실어주었다. 재판의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충격적인 결과가 발표되었다. 존슨 판사는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며 종교적으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수업 시간에 지적 설계론을 가르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발겼다. 지적 설계론은 창조론의 재탕이지 과학적인 가설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친절한 부연 설명도 잊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진화한다!
다윈은 자신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한 매우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정하는 바다”라며 진화론의 한계를 쿨하게 인정했다. 단순한 형태의 생명체가 고도로 발전한 생명체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있어야 할 중간 과정의 생명체들이 없다는 진화론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윈의 고백처럼 진화론은 완성된 학문이 아니라 발전의 가능성을 열어둔 학문이다.
미완의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진화론에 주목하는 이유는 진화론이 인류 역사를 가장 급진적으로 변화시키고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1980년 노벨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체슬라브 밀로즈(Czeslaw Milosz)는 진화론을 만물에 공통된 이치의 공적이라고 기린 바 있으며 미국의 철학자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은 진화론이야말로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고의 개념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20세기의 다윈’이라고 불리는 에른스트 마이어의 말처럼 인류는 <종의 기원>으로 정적인 세계에서 진화하는 세계로 들어서고 세계의 목적이 인간의 등장에 있다는 절대적인간 중심주의가 무너졌다. 다윈 이후 변종과 돌연변이는 기형이 아닌 변화로 인식되었다. 달리 말하면 변화는 생존을 위한 생명체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비단 생명체의 신비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이치를 설명하는 학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툭하면 세계경제를 들었다 놨다 하는 금융위기도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경제는 스스로 조절하며 마찰 없이 돌아가는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외부의 충격에 의해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균형 상태로 돌아간다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은 수정되어야 한다.
진화론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설명하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면 문학에서도 진화론을 찾을 수 있다. 진화론으로 바라본 문학에서는 무조건적인 선과 악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 선과 악의 캐릭터들은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치열하게 생존의 의미를 부여잡고 싸우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고 생존만을 위해 싸우는 이기적인 유전자가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핵심은 ‘나’의 생존이 아니라 ‘종족’의 생존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룹을 형성하고 협동을 한다. 그렇다면 이로써 윤리의 범위에도 진화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론은 아직 보완해야 할 문제점이 있지만 스스로 진화하고 있기에 발전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기적인 유전자에서 이타적인 유전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생명의 다양한 출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를 둘러싼 모든 복잡한 현상이 설명 불가능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모른다.

 

 

 

황수정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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