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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관과 황금빛 화살
신용경제 2017-12-01 15:00:27

평창올림픽이 코앞에 다가왔다. 각 종목의 모든 선수들이 평창에서의 경기가 인생경기가 되기를 꿈꾸며 땀 방울을 흘리고 있다. 부상 없이 멋진 경기를 펼치길 기대해본다.

 

 

올림픽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88올림픽의 호돌이, 굴렁쇠도 떠오르고, 선수들의 환한 미소와 넘어져 울먹이는 모습도 생각난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은 사진 중 하나는 손기정 선생의 머리에 쓴 월계관이다. 조국을 가슴에 담고 뛰었고 승리하였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달지 못한 마라토너의 심장은 어땠을까? 완주와 우승의 기쁨, 나라 잃은 우리 국민이 기뻐할 모습을 떠올렸다면 가슴 벅찼으리라! 하지만 우승을 하고도 기쁨을 드러내지 못하고, 일장기가 가슴 한가운데를 뻥 뚫어 버린 듯 고개 숙인 사진을 바라보자면, 승리와 슬픔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있는 한 청년의 월계관이 참 안쓰러워 보인다.

월계관은 월계수 나무의 잎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관련이 있다.
사랑의 신으로 알려진 큐피드는 두 종류의 화살을 지녔다. 하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라도 애정을 품게 하는 황금 화살이며, 다른 하나는 맞으면 증오나 미움의 감정을 생기게 하는 납 화살이다. 알다가도 모를 마음, 논리적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사랑과 미움이란 감정을 신화에서는 큐피드의 화살로 풀어내는 듯하다. 하지만, 큐피드의 장난 같은활은 의도치 않는 비극을 연출하게 되는데,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론은 신탁으로 유명한 델포이에서 예언하던 피토라는 뱀을 활로 쏴서 죽이는 사건에서 시작한다. 신화속 제우스 2세인 아폴론도 겸손은 배우지 못했는지, 큐피드가 작은 활과 화살을 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무시하고 조롱한다. 이에 화가 난 큐피드는 황금빛 화살은 아폴론에게, 납 화살은 다프네라는 여인에게 쏘게 된다. 사랑에 불을 지르는 황금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를 향한 애정의 불길이 타올라 소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반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폴론을 바라본 다프네는 혐오감에 사로잡혀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당대의 제임스 딘인 아폴론을 알아보지 못하고, 큐피드의 납 화살에 식은 여인의 가슴은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계속 뛰었다. 하지만, 아폴론의 추격에 두려움을 느낀 소녀가 월계수로 변화되면서 이들의 달리기는 끝나버린다.

수많은 예술가가 이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그림이나 조각으로 남길 정도로 충격적인 이 이야기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변신이 일어난다. 열정적으로 구애한 여인이 월계수로 변한 것을 보고, 아폴론은 왕관을 벗고 스스로 월계수로 만든 관을 머리에 쓰게 되며, 이후 고대 그리스의 제전이나 전쟁의 승리자에게 영광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씌우고, 영국에서는 왕실이 대시인을 칭송하면서 월계관을 씌워 계관시인이란 영예를 주었다고 한다.
올림픽 우승, 영광의 상징인 월계관에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제우스의 아들인 아폴론이 뛰어난 실력을 지닌만큼 겸손했었다면, 사랑의 신이라는 큐피드가 스스로 따뜻한 마음과 너그러운 마음을 지녀서 아폴론의 도발을 웃으면서 넘길 수 있었다면, 다프네가 나무로 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주어진 재능을 복수 또는 화풀이의 도구로 쓴 큐피드의 화살은, 자기 손에 주어진 권력과 능력을 그 뜻에 맞게 잘 쓰지 않으면 비극을 연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시대에도 유효하다. 사회에서 힘을 지닌 자들이 잘못 쏜 화살이 국민을 비극으로 몰 수 있으며, 훌륭한 경기를 하고서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오만한 세레모니는 상대국가와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평창올림픽에서는 메달만 수여할지 월계관을 함께 씌워줄지 궁금하다. 월계관을 쓰고도 구멍 뚫린 가슴에 환한 미소를 보이지 못한 그 청년 손기정의 안타까움이 이 땅에 다시는 없으면 좋겠고, 우리가 잘못 쏜 화살 탓에 상처받는 이들 또한 앞으로는 없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면서 내 손에 쥔 화살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내 손에 쥐어진 침은 황금 화살처럼 환자의 기운과 기분, 정신과 기혈을 하트 뿅뿅하게 변화시켜 사랑이 충만한 생명력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한의사에겐 환자의 건강해진 밝은 얼굴이 월계관일 텐데 말이다.
이 참에, 침 색깔을 황금빛으로 바꿔야 될까 보다.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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