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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는 생각지 못한 순간에 우리 삶을 파고든다
신용경제 2018-01-05 10:09:32

김경옥 범죄심리학 박사
前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요원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노부부의 집에 불이 켜졌다. 할머니는 이른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할아버지는 마당 한편에 쌓아둔 쓰레기를 치웠다. 부지런한 노부부의 새벽은 바쁘게 시작되고 있었다. 골목 안쪽의 오래된 단독주택은 부부가 살기에 허전해 보이기도 했지만 서로 의지하고 살았기에 외롭지만은 않았다. 마당을 치우느라 피곤해진 할아버지는 아침 식사를 기다리며 방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무언가 싸늘한 인기척에 번쩍 눈을 뜬 순간, 할아버지 앞에 한 남자가 버티고 서있었다.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남자는 할아버지 입을 막으며 옆구리에 칼을 겨눴다. 부엌에선 찌개 끓는 소리만 자글자글 들렸고, 집안은 조용했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남자가 들어온 줄 모르는 듯했다. 온몸이 얼어붙은 할아버지는 남자의 손짓을 따라 방을 나섰다. 남자는 할아버지를 앞세우고 부엌으로 향했다. 등에서 칼끝이 느껴졌다. 남자와 할아버지가 부엌에 들어선 순간 두 사람을 본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순간 남자는 할머니에게 달려들었고 부엌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남자는 사정없이 칼을 휘둘렀고 세 사람은 뒤엉켜 고꾸라졌다. 할아버지는 있는 힘껏 할머니를 보호했지만, 노부부의 힘은 젊은 남자를 이겨낼 수 없었다. 힘겹게 일어선 남자의 발밑으로 피가 흥건했다. 남자는 집안을 뒤 지고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여기저기 서랍을 뒤져보았지만 단출한 두 식구 살림에 돈이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핏자국이었다. 남자는 욕실로 들어가 몸에 묻은 피를 대강 닦아내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갔다. 평화로웠던 노부부의 아침은 그렇게 끝이 났다.
노부부의 죽음은 매일 아침 안부 전화를 하던 아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출근길에 부모님의 집에 들렀던 아들이 신고한 것이다. 아들은 부모님이 평소 문단속만큼은 철저했던 분들이라며 사건이 일어난 것을 믿지 못했다.
도둑 한 번 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 범인이 검거되었다. 범인은 열린 대문으로 침입했다고 한다. 범인은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강도범이었다.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돈이 필요해진 그는, 골목 안쪽이라 외부에서 잘보이지 않는 집을 발견하고 대문이 열려있어 들어갔다고 한다.
새벽부터 마당을 치우던 할아버지가 깜빡하고 대문을 열어둔것이 아니었나 싶다.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그곳을 지나가던 강도범의 눈에 할아버지가 열어둔 대문이 보인 것이다. 범죄는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우리 삶을 파고든다.
‘괜찮겠지 뭐’, ‘설마 잠깐인데 무슨 일 있겠어’라며 무심히 지나치는 작은 틈새들이 범죄자들에게 기회가 되곤 한다. 금전, 성(性), 복수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그들의 눈은 사소한 것도 놓치는 법이 없다. 아마도 아들의 말처럼 노부부는 평소 문단속을 꼼꼼히 하였을 것이다. 다만, 그날 아침에만 소홀했을 뿐이다. 실수는 누구든지 할 수 있다. ‘설마’하는 마음도 누구든지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라도 범죄 피해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야심한 밤. 주택가를 맴도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지치지도 않는 듯 몇 시간 동안 동네를 돌아다녔다. 무심히 걷는 듯 보였지만 남자의 눈은 날카롭게 주변을 훑고 있었다. 한참을 헤매던 그가 2층으로 된 다세대 주택으로 쑥 들어갔다. 대문은 열려있었다. 남자는 1층을 지나쳐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그는 현관문이 아닌 거실 창문으로 들어갔다. 십여 분 뒤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소리도 없이 시꺼먼 그림자처럼 남자는 거실 창문으로 빠져나왔다. 잠시 후 집안에서는 불이 났고 온 가족이 놀라 뛰쳐나왔지만, 딸만은 집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숨진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범인은 문이 열린 집을 골라 침입하여 범행한 강도살인범이었다. 그는 주로 대문이 열린 다세대 주택 중 거실 창문이 열린 집을 선택했다. 굳이 도구를 사용하여 문을 열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손쉬운 범행 대상을 선택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목격이 용이하지 않은 집을 선택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보통 1층이나 지하층에 비해서 층수가 높은 집들은 문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름에는 당장 무더운 날씨 때문에 ‘설마’의 유혹에 빠지기가 더 쉬워진다. 마음은 불안하지만, 열대야에 시달리다 보면 잠깐이라도 잠을 청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두게 된다.
필자는 이 사건을 분석한 후 다세대 주택들이 문을 얼마나 열어놓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세대 주택가를 관찰해보고 깜짝 놀랐다. 대문을 열어놓은 집은 물론, 거실이나 방 창문을 열어놓은 집도 생각보다 많았다. 밖에서 집안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기도 했다. 다세대 주택의 경우 여러 사람이 드나들다 보니 늦은 밤에도 대문을 열어놓은 집들이 꽤 많았다. 누군가 범행을 하기 위한 나쁜 마음으로 우리 집을, 나를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불안감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필자가 범죄나 범죄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이 범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기를 바라는 이유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적어도 범죄에 대해 잘 알면 범죄를 피할 방법을 찾는 것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범죄를 줄이고 예방하는 것은 국가의일이 맞다. 하지만 내가 범죄 피해를 당할 때 경찰이 내 옆에 있지는 않다. 항상 나를 지켜주지도 않는다. 생활 속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작은 습관들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여름 너무 더워서 창문을 열어야 한다면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창문 방범 장치나 방충망 잠금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 늦은 밤귀가를 할 때는 가족에게 행선지를 알리고 지인이나 가족과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범죄자들에게는 검거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범행이 드러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실제로 택시를 이용해 손님에게 강도 행각을 벌이던 한 범인은 손님이 탑승한 뒤 계속 전화통화를 하는 경우에는 범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소한 행동일 수 있지만 이러한 습관들이 우리를 안전하게 만든다. 범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범죄가 나날이 지능화되고 잔인해지고 있다지만 새로 맞이할 2018년에는 사건 사고 소식이 줄어들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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