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뉴스
등록된 기사가 없습니다.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버킷리스트가 뭐예요?”
신용경제 2018-01-05 11:01:27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버킷리스트가 뭐예요?”
얼마 전 은퇴를 하여 꿈에 그리던 ’자기 집’을 직접 지은 분의 질문이었다. 젊은 시절 마음 한편에 늘 지니고 있던 꿈, 버킷리스트 1번을 이루어 낸 인생의 선배님이신 그분이 너무 빛나 보였다. 갑작스럽게 듣게 된 질문에 순간 메이저리그에 처음 진출한 박찬호 선수가 “음~ 아~”하고 영어로 인터뷰할 때 뜸을 들이던 것처럼, “네~ 그러니까… (저에게도 꿈이 있긴 한데, 갑자기 이 순간에 어떤 꿈을 이야기해야 할까요?)”라고 혼잣말만하고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직업인으로 성취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누구라도 그러하겠지만, 한의사인 나에게는 졸업생일 때부터 ‘명의’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명의의 정의에 대해서는 한 분야의 뛰어난 의사일수도 있겠고, 개업의에게는 많은 환자를 보는 소위 잘나가는 동네 한의사일 수도 있으며, 쉽지 않은 질병을 지닌 환자의 마음까지 배려하는 진료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그러한 꿈을 지닌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어 귀한 질문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내가 지녔던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문득 떠올랐다. 스포츠의학이나 운동과 관련된 진료에 관심이 있어서 ‘스포츠한의학회’ 활동을 하던 중, 청소년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주치의로 국제대회에 참석하게 된 일이다. 올림픽이 개최되기도 전이며, 그리 인기종목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종목의 대표팀에 일원이 되어 루마니아 대회에 참석했던일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뻤고, 의미 있는 기억이었다. 관중석이 아닌 선수들 옆에 대기하고 있다가, 선수교체 할 때 들어오는 선수 중 불편을 호소하는 선수에게 도움을 주거나, 격렬한 경기를 마치고는 또 내일 뛰어야 하는 선수들의 충분한 회복을 돕는 일이었다.

팀 닥터의 시선은 감독이나 코치의 눈과는 차이가 있다. 팀의 감독이나 코치는 선수들의 경기력, 골을 넣고, 실점을 막는 것에 주된 관심이 있겠지만, 팀 닥터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선수의 다음 움직임의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다. 바디체크를 당한 선수의 다음 움직임에 문제는 없는지, 펜스에 부딪힌 다음 선수가 불편해하는 모습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말이다.
그러던 와중에 바디체크를 당한 후 어깨 움직임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선수의 어깨를 바로 치료해주고, 다음 투입 차례에 (아이스하키는 선수교체가 라인에 따라 자유롭다)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경기를 잘 마칠 수 있게 도와준 일은 지금도 아련하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문득, ‘계속 이 일을 하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면 주치의로 참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학위과정을 진행하고, 강의도 하면서, 일 년에 2주가량을 한두 차례씩 비우는 일이 쉽지 않아 더는 팀 닥터를 이어서 하지는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한 번이라도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이룬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지속적으로 그 꿈을 이뤄가지는 못했기 때문에 진정한 버킷리스트를 이루지는 못 한것이다. 하지만 그 아쉬워했던 마음은 현실의 환자에 좀 더 집중하고 또 삶을 살아내면서, 이루지 못한 아쉬움보다는 좀 더 멋진 삶을 살아야 한다는 꿈을 향해 달려오지 않았나 자평해보면서 스스로를 격려하려고 한다.

 

서두에 언급했던 인생 선배님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면, 꿈을 이룬 선배의 삶의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는데, 봉사의 자리에 조금 더 섬김의 손길이 필요한 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정말 멋지다.
‘내 집을 멋지게 스스로 지어보고 싶다’는 꿈을 이룬 이가, 더 폼나게, 더 우아하게가 아니라, 좀 더 낮은 모습으로 섬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분의 그다음 꿈, 더 멋진 버킷리스트는 아마도 남을 배려하며, 더 의미 있는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꿈을 묵묵히 삶으로 성취해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단편적인 하나의 꿈을 이루기도 어렵지만, 꿈과 같은 인품과 삶을 살아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분들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미소는 피곤하고 지친 일상에 청량감을 주며, 나 또한 그분들처럼 멋진 인생을 꿈꾸게 한다. 새로운 한 해는 빛나는 인생의 한 해가 되길 꿈꾸어 본다. 내가 인정받고 드러남으로 기뻐하기보다는, 환자의 웃음으로
기뻐하며, 가족과 사회의 평안함에 안도하고, 흘리는 땀방울의 보람에 즐거워하는 그런 한해를 살아냈다는 만족감을 버킷리스트로 적어본다.
내가 개회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선수들 옆에 서 있지 못해도, 늘 삶의 땀방울을 흘리며, 대한민국을 멋지게 만들고 있는 어르신들, 주부들, 어린 학생들의 주치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그때의 꿈이 좌절된 건, 포기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모양이 약간 달려져 있을 뿐이지, 누군가의 인생에 주치의로 활동하고 있는 내 삶은 여전하다.

 

꿈의 올림픽에 참석하는 대한민국의 선수들도~ 화이팅!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표사람 선수인 우리 모두도~ 화이팅!!!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