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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처럼 꽂힌 말 한마디의 비극
신용경제 2018-02-06 16:17:32

김경옥 범죄심리학 박사
前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요원

 

민족 대명절, 설날이나 추석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귀성길차표를 예매하고 가족과 평소 감사했던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며 마음이 설렌다. 몇 시간씩 꼼짝없이 차 안에 갇히는 신세를 피할 수 없지만, 누구도 그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는다.
오히려 즐거운 미소가 가득하다. 만남의 설렘과 기쁨, 헤어짐의 아쉬움. 명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 선물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명절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남보다 못한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불편한 연중행사일 뿐이다. 필자는 프로파일러로 근무하는 동안 명절 때 거의 매번 살인사건현장에 출동했다. 자식이 부모를, 남편이 아내를,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척 간에 칼부림이 난다.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으며 덕담을 주고받아야 할 자리에 고성이 오가고 증오가 쌓인다. 가족이라는 이름에 대한 기대 때문일까. 흘려들을 수 있는 사소한 말 한마디가 더 서운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낸다.
A씨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처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부부가 맞벌이하는 동안은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아내가 몸이 아파 직장을 그만두면서 혼자 벌어 두 자식 교육비며 생활비까지 충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A씨는 하던 일도 잘되지 않아 그만두면서 어쩔 수 없이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처가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따뜻하게 대해주던 처가 식구들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냉담해졌다. 밥을 먹다가 아이들이 철없는 반찬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장모님은 들으라는 듯이 ‘돈 벌어 오는 사람이 있어야지, 원’,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돈을 벌어 오든가’하며 못마땅한 한숨을 쉬셨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A씨는 늘어가는 눈칫밥에 소화제를 달고 살아야 했다.
A씨는 막노동하며 받은 일당을 생활비로 보탰지만, 가족들은 그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몸이 아픈 아내는 짜증이 늘어 어른들 앞에서도 A씨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A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아내와 마주앉은 A씨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명절 상을 차리는데 얼마라도 보태야 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말에 A씨는 달리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없는 돈을 만들어 올 수도 없고 한숨만 쉬고 있던 A씨를 보던 아내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책 없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자기 신세가 한탄스럽고 부모님 볼 면목이 없었다. 아내는 그 화풀이를 A씨에게 퍼부어댔다.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아내의 말에 A씨는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놨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능력 없는 새끼야, 네가 해 준 게 뭐가 있는데!” 아내가 울부짖었다.
A씨는 검거된 후 그다음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내의 목을 졸랐고 방안에 뛰어 들어와 자신을 말리던 장모를 밀치고 부엌으로 가 칼을찾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걷잡을 수 없는 화를 참아낼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두 사람의 눈빛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듯 보였다고 한다. 아내를 찌르고, 말리던 장모를 찌르고… A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을 때 장모와 아내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한참을 앉아있던 A씨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아내와 처가와의 갈등, 불만이 오랫동안 지속되던 중 살인까지 하게 된 A씨는 수년 동안 아내와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화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A씨에 대한 아내의 불만은 점점 더 커졌고 사이도 더 안 좋아졌다. 처가살이를 하면서는 처가 식구들까지 전부 자신을 무시한다는 열등감이 더 심해진 것으로 보였다. 평소 가지고 있던 불만과 화가 계속 쌓이다가 아내의 말에 폭발한 것이다.
부부나 애인 관계 등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살인사건의 경우 말 한마디가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죽여봐, 죽여봐’, ‘네가 그렇지 뭐’,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이런 말들은 마음에 송곳 같이 박혀 상처를 내고 그 틈새를 비집고 억눌려있던 증오와 분노가 폭발한다. 지하 깊은 곳에 있던 마그마가 지각의 약한 곳을 뚫고 분출되어 나오듯 마음이 더 이상 담고 있던 분노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도 한계가 있다. 아무리 꾹꾹 눌러 담아도 적절히 덜어내지 않으면 언젠가 폭발한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분노는 다시 눌러 담기 어렵다.

분노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에 이를 적절히 덜어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마음의 짐은 혼자 덜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혼자 덜어내려 하다가 오히려 자기 연민과 억울한 마음이 더해져 짐만 더 무거워진다. 필자가 즐겨 읽곤 하는 법정 스님의 저서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오늘날 가정의 비극은 가족끼리 한자리에 모여 서로 속 뜰을 열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생각하고 이해하는 대화가 끊긴 데 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진정한 대화란 서로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람의 일을 진지하게 살피고 생각한 바를 나눔으로써 영혼을 울려주고 삶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일이다’. 1990년 발간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의 한 구절로,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정의 비극은 점점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진 것 같다.
사람을 죽이는 건 칼이지만, 그 칼을 들게 하는 건 마음에 비수 같이 꽂히는 한 마디 말이다. 분노에 휩싸여 가족을 살해한 범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끝나 있었어요, 하나도 생각이 안 나요’와 같은 말들이다. 증오가 마음에 가득 차 사람을 보질 못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상태에 놓일 수 있다. 아마도 다섯 살, 여섯 살 정도의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중에 동시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를 ‘집단적 독백’이라고 하는데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특성을 이른다. 다 큰 어른이 된 내가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고 혼자만의 독백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볼 일이다. 각자의 사연이 있겠지만, 불만, 증오, 분노의 마음을 줄여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로의 속뜰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대화뿐이지 않을까.
이번 명절에는 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을 헤아려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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