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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의 하이라이트 로마 달력?
신용경제 2018-03-05 09:39:59

그저 숫자가 적힌 종이에 불과한 달력이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된 건 BC 4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집정관에 취임하면서부터다. 정적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정확한(?) 이집트 달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실 이집트 달력도 아주 정확한 건 아니었지만 제멋대로인 로마력에 비하면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는 로마로 돌아오자마자 이집트 달력을 바탕으로 로마력을 수정했다.

 

황수정 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카이사르는 해마다 달라지는 날짜 수를 고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1년을 365일과 4분의 1로 고정했다. 그럼 뒤에 애매하게 남는 4분의 1 그러니까 0.25일은 4년마다 하루가 더해지는 윤일을 두어 해결했다. 윤일은 2월의 마지막 날 끝에 붙었고 이렇게 윤일이 붙은 해를 윤해라고 불렀다. 4년마다 2월이 29일인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달력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이라고 부른다. 율리우스력의 가장 큰 장점은 더는 윤달이 오락가락하며 날짜 수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율리우스력만큼 오락가락한 달력도 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집트에서 돌아온 다음 해, 로마 공화정 최고 수장인 집정관에 취임하기로 되어 있던 카이사르는 도저히 두 달을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는 달력을 개편한 김에 아예 새해 시작을 바꿔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11월을 새해 첫 달로 선포하고 집정관의 자리에 올랐다. 이렇게 해서 11월이었던 야누아리(January)가 1월이 되고 그 뒤를 이었던 페브루아리(February)가 2월 그리고 원래 1월이었던 마르티우스(Martius)는 3월이 되었다.
자신의 취임시기에 맞춰 달까지 싹 미루고 난 카이사르는 내친김에 생일이 들어있는 달 퀸틸리스(Quintilis)를 자신의 이름을 딴 율리우스(Julius)로 바꿔버렸다. 뒤로 밀리는 바람에 다섯 번째 달을 의미하는 퀸틸리스(Quintilis)는 의미가 맞지도 않았다. 율리우스로 계명한 달은 홀수에 맞추기 위해 1일을 더해 31일이 되었다.
카이사르는 1월부터 12월을 재배치하고 그사이에 언제 윤달을 넣을지 규칙을 정하고 순서와 맞지 않은 달의 명칭도 계명하면서 새로운 달력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나 그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달을 바로 반포할 수 없었다. 그동안 달력들이 너무 왔다 갔다 한 바람에 계절과 날짜가 심하게 맞지 않았던 것이다. 카이사르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만든 규칙을 깨야 했다. 4년에 한 번 단 하루의 윤일을 넣어야 한다던 카이사르는 90일이나 되는 윤달을 삽입했다. 그리하여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던 율리우스력은 반포 첫해에 455일이나 되는 긴 해를 지내야 한다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율리우스력 (Julian calendar)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BC 45년 이집트력을 바탕으로 개정한 달력. 16세기 말까지 전 유럽에서 사용됐다.

 

다시 부활하나요?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율리우스력은 반포 이후 16세기까지 여러 국가에서 사용할 만큼 정확성(?)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부활절 연대표를 작성하려고 달력을 펼쳐 든 이들은 그 순간 멘붕 상태가 됐다.
일단 연호대로 부활절 연대표를 작성하다 보니 부활절 날짜 옆에 붙은 황제 연호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목욕장을 만드는데 만여 명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을 강제노역시킨 후 묻어버리는 일을 저질렀던 위인이었다. 기념비적인 날을 거론하면서 박해자의 연호를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교회는 이참에 새로운 연호를 제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운 연호의 기준은 예수님의 탄생 년과 사망 년으로 압축됐다. 새로운 연호를 시작하는 마당에 사망 년보다는 탄생 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이들은 그 날을 기점으로 새롭게 년도를 기록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기독교에선 3월 25일 춘분날을 부활절로 지정하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럼 이날이 예수가 부활한 날인가? 성경 어디에 봐도 춘분날에 예수가 부활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냥 따듯한 봄에 만물이 회생하듯 그날 부활했을 것이라는 단순한 추측에 의해 춘분날을 부활절로 지정했던 것이다.
그래도 믿을 건 성경뿐. 독실한 신자들은 머리띠를 동여메고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보니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보고 예수가 태어난 날 찾아왔다는 기록이 있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따라온 별만 찾으면 일이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데 동방박사가 본 별은 무슨 별이었을까? 그 별이 무슨 별이었는지 동방박사 세 사람만 알고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이번엔 출산을 앞둔 마리아가 이동한 경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때마침 그때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 조사를 했던 기록이 남아있었다. 이 인구 조사에 응하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는 본적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럼 이 인구 조사 시기를 알면예수 탄생 시기도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당시 부활절 연대표를 작성하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Exiguus) 주교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한 것이 약 500년전쯤이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 조사를 명하고 나서 1년 뒤에 인구 조사표가 등록되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식으로 계산해 예수 탄생 연도를 발표했다. 기원후식 표기(A.D. Anno Domini)는 이렇게 결정됐다.
그런데 디오니시우스의 계산법에는 오류가 있었다. 디오니시우는 예수의 사망 연도를 헤롯왕의 사망 연도에 맞춰 계산했다. 그런데 예수는 헤롯 왕이 사망한 연도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가 생존해 있을 때 출생했다. 헤롯 왕이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고 베들레헴 지역의 두 살 미만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인 유아 학살시기까지 포함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년 남짓 차이가 난다. 게다가 최근엔 예수 탄생 시기가 디오니우스의 정한시기보다 4년 정도 빠르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그럼 최소 6년이란 시간이 벌어지게 된다.
사실 디오니시우스가 손가락 발가락 동원해 대충 따진 연도가 애초부터 맞을 리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다. 유대인들은 아담 이후 3761년을 연호로 지정하고 있는데 그렇게 따지면 2014년은 유대력으로 5775년이다. 성경만 놓고 보면 구약시대 4000년에 신약 2014년을 더하면 6014년이다. 우리 중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도 자신의 아들이 이 땅에 언제 태어났는지 콕 집어 말해주지 않는데 우리가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개정하기 이전의 로마력
거대한 벽면 달력의 조각들을 복원한 것으로 4월 후반에 비너스와 세레스 여신을 기념하는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레고리력
율리우스력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그레고리우스는 1583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정하는 규칙을 정해 달력을 수정했다.

 

 

달력의 오류? 문제 될 거 없어요!

어쨌거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상황도 해결책을 내놓을 상황도 아니기에 디오니우스의기원후 표시법은 로마력의 표준으로 지정됐다. 그럼 이제 그 길고 긴 달력 제작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일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달력은 연도는 그럭저럭 넘어가겠는데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율리우스력에서 1년은 365.25일이다. 원칙대로 따지면 1년은 365.24219879일이다. 카이사르는 소수점 세 자리에서 올림을 사용해 365.25로 정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카이사르가 버린 시간 11분 14초가 128년이 되자 하루가 됐다.

다른 건 어찌어찌 넘어가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활절 날짜가 맞지 않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부활절이 어떤날인가. 예수님이 태어난 날 다음으로 중요한 기념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 부활절 날짜가 어느 순간 원래 날짜보다 10일이나 늦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이 대형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을 10월 15일로 바꾼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레고리우스 13세는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달력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우선 그해 연도가 4의 배수가 아니면 2월은 28일이다. 연도가 4의 배수이면서 100의 배수가 아니면 윤일이 더해 2월이 29일로 지낸다. 그런데 연도가 100의 배수이지만 400의 배수가 아니면 그 해는 그냥 평년으로 2월을 28일만 센다.
마지막으로 연도가 400의 배수일 때 2월에 윤일을 더해 29일을 만든다. 이렇게 400년이 지나면 97일의 윤일이 생기는데 그럼 1년이 365.2525일로 원래 값에 근접하게 된다. 우리가 100년을 넘게 살기 힘들기 망정이지 몇백 년을 산다고 치면 해마다 이 셈을 다하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다. 새삼 오래 살지 않는 게 다행스럽지 않은가?
이렇게 만들어진 그레고리력은 율리우스력을 대신해 표준 달력의 자리를 꿰찬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이 달력을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계산법이 너무 복잡해서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에 저항했던 일부 나라들이 사용을 거부했던 것이다. 그리스 정교를 믿는 러시아는 그레고리력을 거부하다가 1908년 런던 올림픽에 12일이나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895년 9월 9일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명에 따라 음력 11월 17일을 양력 1월 1일로 정해 그레고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험난한 시간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달력이 완성됐다. 비록 그레고리우스력은 400여 년 정도 공백이 있지만 이젠 이를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기준도 모호한 상황에서 400년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2014년이 아니라 1700년 어디쯤 살고 있을 수도 있고 6000년 어디쯤에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가 사는 연도와 날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니 혹시 기념일을 잊어버려서 추궁당하고 있다면 당장 달력의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그 날이 그날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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