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뉴스
등록된 기사가 없습니다.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도무지 먹히지 않는 파라오 저주의 약발!
신용경제 2018-04-09 10:31:29

전설적인 파라오 투탕카멘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유명한 이집트 왕이다. 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해 10년 동안의 짧은 통치 기간으로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지만 그는 온갖 진귀한 보물과 금관, 30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훼손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해 고고학계를 들썩이게 했다. 그야말로 투탕카멘은 죽은 뒤 고고학계의 핫한 스타가 된 것이다. 어린 파라오가 유명해지게 된 데에는 ‘세기의 발견’이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수정 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파라오의 저주는 손님 접대 문구?
발굴이 끝나고 얼마 후 발굴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의 줄초상이 이어졌다. 맨 처음 비명횡사한 사람은 발굴 후원자였던 카나번 경이었다. 모기에 물려 패혈증으로 사망한 카나번을시작으로 처남 허버트는 정신착란으로, 그의 숙모 엘리자베스 카나번은 벌레에 물려 사망했다. 발굴에 참여했던 교수 중 한 명은 관을 열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어버리기도 했다. 심지어 파라오의 저주로 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고고학자까지 있었다. 사람들은이 사건들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파라오의 저주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파라오들의 무덤엔 왕들의 안식을 방해하려는 자들을 위협하기 위한 경고문이 있었다. 투탕카멘의 무덤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탕카멘의 관에 쓰인 “파라오의 잠을깨우는 자에게는 죽음의 날개가 스치리라”라는 저주는 난이도가 낮은 편에 속했다.

“내가 그들을 왕의 용광로에 넣을 것이다. 왕께서 그들의 머리위에 화염을 토해 육신을 파괴할 것이다. 그들의 육체는 문드러지고 뼈는 썩을 것이다”라며 디테일하게 저주를 나열한 문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런 저주들이 도통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라오의 저주가 아무리 무시무시해도 발굴과 도굴이 무산(?)되는 일은 없었다.
사실 피라미드는 물론 ‘왕가의 계곡’은 발견이 문제가 아니라 그 안으로 침투하는 것이 문제였다. 내부가 워낙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주가 다발로 묶인 이런 경고문들은 죽을 고생을 하고 들어가야 만나는 내실에서 발견됐다. 결국, 이 문구는 온갖 위험과 고생을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는 지극정성 방문객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

 

발굴 당시 투탕카멘 무덤 입구
3245년 만에 세상에 등장한 투탕카멘 묘의 봉인된 모습. 왕의 휴식을 위한 듯 오랜 세월동안 썩지 않고 단단히 묶인 동아줄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게다가 아무리 눈이 나쁜 사람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도록 사막 한가운데 ‘나 여기 있다’라는 식으로 세워 놓았으니 도굴이 끊이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이집트 왕들은 피라미드 건설비용이 버거웠던 참에 아예 깊숙한 계곡에 무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이집트 왕들의 공동묘지, ‘왕가의 계곡’이다.
파라오들의 신중한 선택은 적중한 듯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도굴꾼들은 투철한 직업 정신을 발휘해 왕들의 무덤을 찾아냈고 장인정신을 가지고 도둑질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정보력과 인내심으로 똘똘 뭉친 도둑들은 모든 역경을 딛고 끝내 과업을 이루어 냈다. 이런 도둑들이 몇 명만 날고뛰어도 제대로 된 무덤 하나 지키기 어렵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닌 가문과 마을이 동원돼 파라오의 무덤을 노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중 꽤 유명했던 도굴꾼을 한번 만나보자.
‘압둘 라술’이라는 도굴꾼은 그 옛날 미라를 만들던 기술자와 묘지기들이 살고 있던 ‘쿠르나’ 마을의 지역 유지였다. 동시에 유서 깊은 도굴꾼 집안의 후손이기도 했다. 13세기부터도굴을 가업으로 물려받았던 그의 집안 내력도 충격적이었지만 더더욱 놀라운 건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도굴꾼이었다는 점이었다. 전설의 도굴꾼 후손이며 나름 장인 정신에 입각하여 도굴을 행했던 압둘 라술은 곧바로 자수하고 마을의 비밀을 폭로한 대가로 500파운드의 포상금을 받았다. 그의 뒤이은 행보는 더더욱 충격적이다. 도둑에서 인생 대역전을계획한 그는 고대 우물 보존국에 근무하며 문화재의 불법 유통 근절에 앞장서 타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제 발로 자신들의 일족이 발견한 비밀스러운 장소로 안내했다. 전설적인 이집트의 고대 유적지 ‘왕가의 계곡’은 이렇게 빛을 보게 되었다.

 

수집품에서 대체연료, 비료, 의약품 등 다양한 미라 활용법
15세기 나일강 유역을 조사하던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된 미라는 고가의 수집품으로 불티나게 팔렸다. 그런데 정작 본국에서는 건어물 취급을 받았다. 카이로 근처 박물관으로 운송되던 왕가의 계곡은 건어물로 분류돼 관세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라의 건어물 분류는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였을까? 과거 건어물 취급을했던 일이 미안했던지 1976년 보존 처리 작업을 위해 프랑스로 의료관광을 떠난 람세스 2세 미라에는 최초로 여권을 발행하는 웃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프랑스 역시 나이 3200살의 직업 국왕인 람세스 2세 미라를 프랑스는 국빈으로 영접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다음부터 일어났다.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과 옷가지가 인터넷 경매 광고에 뜬 것이다. 머리카락 한 묶음당 2000~2500유로 (사건 당시 환율로) 약 300여만 원 정도의 경매 건이었다. 세상에 파라오의 머리카락을 파는 전자상거래라니! 이 어처구니없는사건을 접한 법원 관계자들은 당연히 사기라고 생각했다가 감정 결과를 받고 깜짝 놀랐다. 진짜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이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소중한 머리카락은 다음 해고국 이집트 품으로 돌아갔지만 다른 미라들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
1976년 곰팡이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화학처리를 위해 프랑스로 보내졌던 람세스 2세의 머리카락. 도난당한 뒤 30년 만에 람세스 2세와 함께 전시될 수 있었다.

사자의 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와 사후세계의 안내서인 사자의 서를 함께 묻었다. 교훈이나 주문을 상형문자로 기록한 사자의 서에는 심판에 의해 심장을 잃은 사람은 사후 세계에 가지 못하고 영원히 이승을 떠돌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내세를 믿었던 이집트인들은 왕이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미라를 만들 수 있었다. 가축과애완동물들도 미라로 만들었다. 이렇다 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이집트에는 미라가 넘쳐났다. 이집트에는 모래와 돌만큼 미라가 많았다. 그래서 미라의 관을 떼어다가 재활용하고땔감으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심지어 기관사들은 인간 미라를 땔감으로 자주 애용했다고 한다.

19세기 영국은 미라를 땔감이 아닌 비료로 썼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식량 문제가 불거지자 비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고기, 조개껍데기, 동물의 뼈 등 인산의 재료가 될 수있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수입했다. 그도 모자라자 북아프리카, 워털루, 크림반도에 버려진 전사자들의 뼈까지 들여오기도 했다.
그 중엔 이집트의 미라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미라를 분해해 비료로 쓰는 건 영국만이 아니었다. 이집트 본국에서도 미라 가루를 비료로 쓰기도 했다.
미라 가루는 다양한 용도로 쓰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밝은색을 내기 위해 혹은 물감이굳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썼고 1100년경부터는 의약품으로 사용했다. 미라 가루는 염증을치료하는 송진 가루 대신 쓰이다가 17세기에는 온갖 외과, 내과질병에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지혈에 쓰이는 크림으로 환자들이 마시는 차로 타박상, 골절, 기침 심지어 독극물 중독 치료제로 쓰이기도 했다. 미라 가루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자 사람들은 죽은 거지나 죄수들의 시신을 말려 빻아 미라가루로 팔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사품에 주의하라는 문구가등장하지 않은 게 의심스러울 정도다.
유럽 약국에서는 미라를 처리할 때 사용되는 자연 방부제 격인 역청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흔히 미라 가루라고 알고 있는 무미야(mumia)는 아랍어 미야(mmiya)에서 유래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미야의 원래 뜻은 미라를 처리할 때 사용되던 약청이다.
이집트인들은 죽음에 이르는 길에 <사자의 서>를 동봉했다. <사자의 서>에 의하면 죽은자들은 심판대에 서서 42개에 해당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새의 깃털과 비교해 깃털보다 가벼워야 영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들이 심장을 저울에 올리기 전에 실토해야 할 고백을 보고 있자니 죽은 자의 평온한 휴식을 망친 이기적인 인간들의 심판이 궁금해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내 가족들을 괴롭히지도 않았고, 정의와진실을 도외시하지도 사악함을 저지르지도 않았습니다. (중략) 나는 신을 경멸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을 속여 그의 재산을 가로채지지도 않았습니다. (중략) 나는 남을 아프게 하지도 않았고 남을 배고프게 하지도 않았으며 눈물이 나게 하지도않았습니다 .”
프랑수아즈 뒤낭 - 미라(영원으로의 여행) 중에서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