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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술
신용경제 2018-04-09 11:18:35

 

김경옥 범죄심리학 박사 前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요원

 

두 남자가 있었다. 각자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연히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한 남자가 시비를 걸었다. ‘뭘 쳐다봐, 새끼야’ 기분이 상한 상대방도 지지 않고 욕을 해댔다.
욱하는 화를 참지 못한 남자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술에 취해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하던 상대는 결국 쓰러지고 피범벅이 된 채 정신을 잃었지만, 남자의 주먹은 멈출 줄을 몰랐다. 지나가던 사람이 경찰에 신고하고 구급차가 도착해 쓰러진 남자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그는 뇌출혈로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결국 며칠 후 사망하고 말았다. 두 사람이 만나지 말았더라면, 시비를 걸더라도 그냥 지나쳤더라면, 그날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원통함은 남아있는 가족의 몫이었다.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같지만, 비명횡사한 그 남자도 범죄 한 번 저질러본 적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이웃이었다.
범죄와 술. 술 때문에 한 사람은 범죄자가, 한 사람은 피해자가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음주는 누구에게나 허용되는 행위이기 때문에 술로 인한 범죄 또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굳이 사건 사고를 들춰보지 않더라도 당장 명절 때마다 여지없이 뉴스에 등장하는 가족 간 다툼, 살인 사건들도 상당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감정이상하여 일어나는 일들이다.


직장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관한 글들을 읽다 보면 술이나 담배에 의존한다는 대답이 상당히 많다. 다른 무엇인가를 할 에너지는 없고 일과 후 동료와 술 한잔하는 것이 잠깐이나마골치 아픈 문제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코올은 뇌의 여러 신경계통에 영향을 미쳐 긴장을 풀어주며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수준을 증가시켜기분을 즐겁게 하는 효과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실수록 생각은 느려지고 기억력이 상실된다. 술에 취한 사람이 했던 말을 무한 반복하여 짜증스러웠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때로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술만 마시면 집에 가서 아들에게 잔소리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몇 시간씩 아들을 앉혀놓고 잔소리를 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잔소리가 끝날 때까지 잠을 잘 수도, 말대답할 수도 없었다. 술만 마시면 돌변하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계속 쌓이던 중 끝내 화를 참지 못한 어느 날, 아들은 아버지를 살해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에 이르기까지 다른 이유도 많았겠지만, 술이 그 원인 중 하나였음은 자명하다. 술로 인한 즐거움은 잠깐일 뿐, 합리적이기보다는 충동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몸이 느려져 위급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없게 된다. 한 마디로 무방비 상태로 거리를 활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문제를 일으키면 범죄자가 되고, 범죄의 표적이 되면 피해자가 된다. 어느 쪽이든 아찔하다. 술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취약하게 만든다.
만성적으로 술에 의존하게 되면 스트레스 해소는커녕 불안하고, 우울하며 초조하고 불면증이 생긴다. ‘잠이 안 와서’, ‘기분이 울적해서’ 술을 마시면 또다시 잠이 안 오고 기분이우울해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게에서 막걸리를 사가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에 취해 잠들지 않는 시간에는 항상 막걸리를 드셨다. 술안주를 챙겨 먹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더는 가게로 막걸리를 사러 오지않으셨고, 이상하게 생각한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문을 따고 들어간 경찰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 안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한겨울 술을 마시고 엉뚱한 건물 지하에 들어가 집인 줄 알고 옷을 벗어놓고 잠을 자다가저체온증으로 사망한 사건, 대학교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만취하여 버스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사망한 사건, 술 마시고 부부싸움 하다가 홧김에 집에 불을 질러 배우자가사망한 사건 등 술을 마시고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은 다양하지만, 그 끝은 모두 비극적이다.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한 명도 예외 없이 후회한다. ‘술이 원수지요’라고. 하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술 탓이 아니다.
술을 절제하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다. 나의 안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술을 조절하려는 절실한 노력이 필요하다.

 

봄꽃이 만개하고 상춘객들이 많아지는 요즈음, 술집뿐만 아니라 야외에서도 술 한 잔을 즐기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있다. 필자도 이른 봄을 만끽하고 싶은 마음에 지난 3월 북악산을 찾았다가 여전히 쌀쌀한 날씨에도 벌써 야외 음주를 즐기고 계시는 분들을 꽤 많이 보았다. 좋은 풍경을 감상하며 좀 쉬어볼까 싶은 명당자리는 이미 삼삼오오 모여앉아 막걸릿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상쾌한 공기 속에 막걸리 냄새가 스며 있어 내심 기분이 안 좋기도 했다. 등산보다 풍류 삼아 즐기는 술이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 술이 고단한 우리의 삶에 활력소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때때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위험의 원인이 될 수 있음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나의 안전, 가족의 행복을 위해 금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절주를 실천하며 향기로운 봄꽃에 취보
는 건 어떨까 싶다.

 

※ 본문의 사례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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