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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범행 묻지 마 범죄
신용경제 2018-06-04 18:14:43

김경옥 범죄심리학 박사
前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요원

 

그냥 누군가 죽이고 싶었어요
즐거운 금요일. ‘불금’을 즐기기 위해 서둘러 퇴근을 한 영숙씨는 시내로 향했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어느덧 새벽 2시.아직도 시내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대낮같이 환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간신히 택시를 잡은 영숙 씨는 기사님에게 양해를 부탁하고 집 인근 골목까지운행을 부탁했다. 저녁부터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비로 인적 없는 골목길은 다른 때보다 더 음산했다. 영숙 씨의 집은 도로에서 다소 떨어져 있어 5분 정도 걸어야 했다. ‘좀 일찍 들어갈걸’ 무서운 생각에 뒤늦은 후회가 들었지만 다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가족을 깨우기도 마땅치 않아 영숙 씨는 뛰듯이 걷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걷던 순간 ‘타닥타닥 타닥’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발걸음 소리 같았다. ‘분명히 아무도 없었는데…’ 심장은 쿵쾅거리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했다. 불안한 마음을진정시키며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등 뒤에 무엇인가 닿는 느낌이었다. 영숙 씨는얼어붙었다. 휴대전화를 꺼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달릴 수도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영숙 씨는 숨을 멈춘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무엇인가 날카로운 고통이 배에서 느껴졌다. 손으로 만져보니 빨간 선혈이 묻어났다. 영숙씨는 그대로 쓰러지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의 입이 씨익 웃었다. 영숙 씨가 꺼져가는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자 남자는 후다닥 뛰어갔다. 인적 드문 야심한 밤. 영숙 씨를 도와줄 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명을 듣고 골목에 나온 인근 주민의 신고로 영숙 씨는 병원에 옮겨졌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려 사망한 후였다. 한 생명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 범인은 다음 날 바로 검거되었다. 30대 남성이었던 범인은 술을 마시고 배회하다가 혼자 걸어가는여성이 있어 칼로 찔렀다고 범행을 시인하였다. 남성은 며칠 전 동네 마트에서 식칼을 구매해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왜! 왜 남자는 길 가던 여성을 칼로 찔렀을까. 두 사람은 만난적도 없었다. 영숙 씨가 범행대상이 된 것은 단지 그 시간에 골목을 걸어가다가 남자의 눈에 띈 이유밖에 없었다. 범행이 유를 묻는 형사의 질문에 그는 “화가 나서 아무나 죽여야겠다는 생각에 찔렀다”, “말 죽을 줄은 몰랐다”는 말만 반복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이유로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이런 사건을 묻지 마 범죄라고 한다. 일견 범행 동기가 불분명하고 피해자와 범인이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 행해지는 범죄를 ‘묻지 마범죄’라고 일컫는다. 묻지 마 범죄자들에게 왜 범행을 하였는지 물으면 이들은 “그냥 누군가 죽이고 싶었어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러나 이유 없는 행동은 없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일을 이유 없다는 말로 넘길 수는 없다.
범죄심리학자들은 범죄자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연구한다. 이수정 교수 연구팀(경기대)은 전국의 교도소에 수감된 18명의 묻지 마 범죄자들을 심층 면담하여 그 유형을 정신장애유형, 반사회성 유형, 외톨이 유형으로 분류하고 심리를 분석하였다.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에서 소외, 고독, 타인과의 관계 단절과 같은 용어들이 등장하는 요즈음보다 눈여겨 봐야 할 묻지 마 범죄자의 유형은 외톨이 유형일 것이다. 외톨이 유형은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참아내야 하는 욕구불만의 상태에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을 비롯한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히 형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적절히 해소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갖는다. 이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 노력은 하나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사회적 기술이 부족하여 결국은 무시당하거나 왕따의 대상이 된다. 취업하는 경우도 있으나결국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직장을 자주 옮기게 된다. 성장기부터 경험한 실패, 좌절, 감정의 억압이 계속해서 쌓이다가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억울하다”. “이왕 죽을 거라면 누군가 죽이고 나도 죽겠다”라는 비뚤어지고 뒤틀린 생각을 하게된다.
좌절, 스스로에 대한 연민, 분노 등 수년 동안 겹겹이 쌓인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묻지마 범죄자를 만들어낸다. 필자가 만났던 한 범죄자는 “내 말을 들어주고 관심을 기울이는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좌절, 분노를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오늘을 살아갈 힘을 낸다. 이러한 힘을 내기 위해서는 따뜻한 대화가 필요하다. 진심으로 나를 염려해주고 나의말에 공감해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한다. 서로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며 감정을 나누는 일이다.

때때로 스스로는 대화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말’만을 하고 있을수도 있다. 이런 말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내 생각을 먼저 말하기보다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참다운 대화를 나눈다면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며받게 되는 마음의 상처를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본문의 사례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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