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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 술 하는 역사가 있다?
신용경제 2018-08-06 13:23:18

황수정 작가
「물음표로 보는 세계사」, 「느낌표 세계사」 저자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已聞淸比聖 復道濁如賢
賢聖旣已飮 何必求神仙 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
俱得醉中趣 勿爲醒者傳


하늘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성은 하늘에 없을 것이고 땅이 만약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땅에는 응당 주천이 없을 것이네.
천지가 이미 술을 사랑했으니, 술을 사랑함이 하늘에 부끄럽지 않네.
이미 청주를 성인에 비유함을 들었고, 다시 탁주를 현인에 견줌을 말하네.
현인 성인이 이미 술을 마셨으니, 어찌 반드시 신선을 구할 것인가?
석 잔 술에 대도와 통하고, 한 말 술에 자연과 합치네.
함께 취중의 정취 얻었으니, 술 모르는 이에게 굳이 전하지 말게나.
월하독작 2수(月下獨酌 其二) 이백(李白)

 

고즈넉한 밤, 달과 그림자를 벗 삼아 술에 취해있는 그는 봄날 만개한 꽃들의 향에 취했을지 모른다. 당나라의 시성이자 평생을 술과 달을 벗 삼아 방랑하던 천재 시인, 생애 마지막 밤도 술에 취해 강에 비춘 달의 그림자를 잡겠노라며 물에 뛰어들었던 이백.
그는 “오직 술 마시는 사람만이 그 이름을 남겼으니 마신다” 하며 “모름지기 삼백 잔은 마셔야 한다”던 애주가이자 중국 역사 최고의 주당이었다. 오죽하면 李白斗酒诗百篇(이백두주시백편), ‘술이 한 말이면 이백의 시가 백 편’이라 했던가. 파란만장한 역사만큼 질곡 많았던 인생을 살다간 취선醉( 仙) 이백. 당대의 시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설령 오늘 밤, 달이뜨지 않더라 하더라도 지금 한 잔 술을 준비해보자. 또 누가 아는가, 지금부터 떠나야 할우리의 여정이 술술 넘어갈지…….

 

원숭이가 만든 술의 역사?
깊은 산 중에 사는 원숭이가 술을 만들었다는 ‘심산(深山) 원숭이 기원설’은 중국, 일본은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다. 명나라 문인 이일화(李日華)는 그의 저서 <자도헌우철>에서 원숭이가 많은 중국 황산(黄山)에서는  큰 바위나 깊은 구멍에 저장해 놓은 열매가 술이 되어 사방에 그 향기가 퍼진다고 기록했다. 또 청대 소설<월서우기>에는 광둥 서부 산에 사는 원숭이들이 다양한 꽃으로 만든 술을 만드는 재주를 지녔는데,사람들이 원숭이 굴을 발견하고 그 술을 마셔보니 맛이 일품이었다면서 이 술을 원주라고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에 등장하는 원숭이들이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그런 존재들이어서 술을 만들어 마셨던 건 아니었다. 그 원숭이들은 자연의 순환 원리를 일찍 깨우쳤거나 일찍 발견했던 것 뿐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자연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술을 즐겼던 것이다. 인류가 아니라 원숭이가 술을 더 일찍 즐겼다고 해서 충격받을 필요는 없다. 누가 먼저 발견하고 누가 먼저 즐겼느냐의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란 얘기다.
학자들은 인류가 채집, 수렵했던 시절부터 발효 술인 과실주를 즐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인류 역사의 발달 과정을 보면 정착한 이후부터는 가축의 젖으로 만든 젖술(乳酒)이, 농경이 발달하면서부터는 곡주가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류 문명이 발달한 그 순간부터 술의 다양한 변천사도 함께 시작했다고 할 수있다. 실제로 보리와 밀이 생산되었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 빵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효소로 만든 맥주가 탄생했다.
중국 술의 기록은 이보다 조금 더 오래전인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대의 시가집에는 주나라 희씨의 조상인 후직이 곡식을 탈골해 쪄서 익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술의 양조과정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대략 기원전 천 년 전에 양조가 가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섬서성 미현 양가촌에서 발견된 그릇이 술그릇인것으로 밝혀지면서 중국 술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로 껑충 뛰어올랐다. 은허의 갑골 문자에서도 술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4대 문명 중 중국이 가장 먼저 술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여주고 있다.

 

술이 아니다? 술이다? 맥주는 술이 아니다!
맥주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저 알코올성 주류다. 지난 해 국내 수입된 맥주는 33만1,211t으로 전년(22만508t)에 비해 50%가량 늘었다고 한다. 맥주 수입액만 사상 최대인 2억 6,309만 달러(약 2,807억 원)를 돌파했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맥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물론 맥주가 다른 술에 비해 도수가 낮고 간단히 즐기기에 좋은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알코올의 소비량이 증가하는 것이 꼭 반길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애주가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애주가들은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맥주의 역사를 살펴보면 맥주는 술이 아니긴 했다.
맥주는 기원전 35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에서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학자들에 따라 맥주의 역사를 기원전 7000여 년경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기원전 4200년경 제작된 푸른 기념비(Monument Bleu)에는 수메르인들이 에머(Emmer)라는 밀을 찧어 맥주를 빚고 이를 신에게 바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수메르인들이 빵을 만드는 방식은 간단했다. 밀로 빵을 만들어 속이 말랑하게 구우면 효소가 발생하는데 이 빵을 다시 물에 넣고 자연 발효시키면 맥주가 만들어졌다. 맥주를 흐르는 빵이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이집트에서도 맥주가 만들어졌다. 이집트에서 만들어진 맥주는 빵의 녹말을 당화 시킨 맥아로 만드는 일체의 제조법은 같았으나 주원료가 보리라는 점만 달랐다. 두 문화권 모두 빵을 이용한 효소로 맥주를 만들었기때문에 빵 공장이 곧 맥주 공장이었다.
고대 맥주 제조법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다. 수메르인들은 밀로 만든 여덟 가지 맥주와혼합 곡물을 이용한 세 가지 맥주를 매일같이 즐겼으며 임금을 맥주로 받기도 하고 맥주로 세금도 냈다. 이집트인들은 간단히 끼니는 빵과 맥주로 때우는 적도 많았고 수메르인들처럼 맥주를 임금 대신 받기도 했다.
보통 일꾼들의 경우 도수가 낮은 1L의 맥주를 받았고 고위 관리들은 도수가 높은 맥주3~5L 정도를 받았다고 한다. 수메르와 이집트에서 맥주는 생활필수품이었다.
고대인들이 맥주를 즐겼다는 것도 새롭지만 그들이 맥주를 즐기는 방법은 더 새롭다. 바로 빨대 이용법이다. 애주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겠지만 술을 빨대로 마신다는건 작정하고 필름 끊겨 보겠다는 굳은 의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들은 정말 애주가를 넘어선 원조 술고래였을까?

사실 이들이 빨대로 맥주를 마신 까닭은 빨리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하수 시설이 그리 좋지 않았던 과거에는 물을 끓여 만든 맥주가 생수보다 더 안전한 식수였다. 한 잔만 마셔도 배가 푸른 포만감 덕에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었던 맥주가 식용문제까지 해결해주니 일석이조였던 것이다. 그런데 맥주를 마시는데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맥주 거품과 곡물 껍질이 둥둥 떠다니는 바람에 술술 마시기 어려웠던 것이다. 빨대는 이 곡물 껍질을 피해 맥주만 마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맥주가 생수이자 임금이자 세금을 내는 용도로 다양하게 쓰이다 보니 국가적 차원에서 맥주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졌는데 그 내용이 기가 막힌다. 바빌론에서는 맥주 대금을 곡물이 아닌 은화로 받거나 질 나쁜 맥주를 비싸게 파는 술집 주인을 익사형으로 다스렸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맥주에 관련된 조항이 꽤 자세하게 적혀있다. 그중에는 죄인을 맥줏집에숨기고 관가에 알리지 않으면 그 주인을 사형에 처한다든가 수도원에 거주하지 않는 여승또는 사제가 맥줏집을 내거나 맥주를 마시러 주점에 들어가면 화형에 처한다는 내용뿐만아니라 심지어 맥주 60실라 약 0.5L를 외상으로 주면 추수 때 곡식 50실라를 받아야 한다는 외상에 관한 조항까지 있다. 불법 맥주 단속에 대한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문구도 있다. 이렇게만 보면 고대인들의 음주가 지금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맥주를 즐기면서 다방면으로 활용까지 했던 고대인들에 비하면 단지 취하기 위해 마시는우리의 음주문화가 단순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그럼 우리도 술이 아닌(?) 맥주 한잔을앞에 놓고 역사를 안주 삼아 다이내믹한 음주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곧이어 술술 넘어가는 술의 역사 2차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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