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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
신용경제 2018-08-06 14:09:56

김경옥 범죄심리학 박사
前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범죄분석요원

 

조현병 환자들이 경험하는 망상과 환각
지난 7월 한 경찰관의 안타까운 죽음이 보도되었다. ‘아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2명의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했다. 도착한 경찰관들은 난동을 부리는 A씨의 흥분을 가라 앉히려 대화로 설득하였지만, A씨는 갑자기 흉기를 휘둘렀다.
목 부위를 심하게 다친 경찰관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숨졌고, 다른 한 경찰관도 중상을 입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마을 일대에서 여러 차례 난동을 부리고 폭언과 폭행을 일삼았으며 이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A씨는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최근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기초생활 수급비로 생활하는 80대 노모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퇴원했으며 약도 잘 먹지 않았다고 했다.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증으로 불리던 정신질환으로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인 어감과 의미로 인하여 2011년 3월 대한의사협회에서 명칭을 변경하였다. ‘조현’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의미로 현악기가 제대로 조율되지 않은 것처럼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는 의미이다. 조현병은 중증 정신질환에 해당하며 기괴하고 현실성 없는 믿음인 망상이나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감각을 경험하는 환각, 즐거운 일에의 흥미 상실, 정서적인무반응 등을 주된 증상으로 한다. 조현병 환자들은 머릿속에 컴퓨터 칩이 이식되어 있다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알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한다. 우리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근거 없는 비현실적인 주장일 뿐이지만 그들은 제 생각이 진짜라고 믿는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는 온순하며 공격성은 일부 환자들에게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범죄를 저지르는 조현병 환자의 수는 소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들은폭력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려면 이들이 경험하는 망상과 환각의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조현병 환자들은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죽이려고 한다’, ‘딸이 악귀에 씌웠다’, ‘누군가 가족을 몰살시키려고 한다’라는 말을 한다.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 이러한 망상에 시달리는 것이다. 망상과 환청이 폭력적인 경우 그에 반응하는 행동 또한 폭력적 일 수밖에 없다. 망상이나 환청으로 인해 스스로가죽음에 대한 두려움, 분노, 혹은 불안 등을 강하게 느끼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공격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필자가 접했던 조현병에 의한 사건들은 ‘누군가 불을 지르라고 시켰다’, ‘사람들이 나를 폭행했다’라고 하는 폭력적인 내용의 환청이나 망상을 보고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망상과 환청을 누군가에게 투사하여 살해하고 폭행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귀에 들리는 소리나 머릿속의 생각이 망상이나 환청이 아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개인의 문제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
실제로는 조현병에 의한 강력사건의 비중이 낮은데도 조현병과 폭력성을 연관 짓는 인식이 만연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들도 조현병이 폭력적 성향과 직접 관련된다는 일관된 결론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되며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조현병에 의한 범죄가 묻지마 범죄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는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범죄 발생 직후 동기를 추정하기 어렵고 피해자와 범인이 아무런 관계가 없을 때 묻지마 범죄로 분류하는데, 내적인 망상과 환청이 행동의 원인이 되는 조현병의 경우 범인이 검거되어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로 분류되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폭력성이 더 부각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렇다면 조현병으로 인한 폭력적인 행동을 사전에 탐지해낼 수는 없을까. 필자의 경험에의하면, 조현병으로 갑자기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폭행하기보다는 이전부터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즉, 평소 같이 생활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폭력을행사하는 것이다. 경찰이 출동하는 예도 있지만, 가족이 신고를 포기하여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조현병을 앓았던 한 남자가 지나가던 사람을 살해하여 검거되었다. 그는 20대 초반 증상이 시작되었다. 집안에서 침을 뱉고 칼로 이불을 갈기갈기 찢어버렸으며 급기야그가 휘두른 칼에 가족이 다쳐 상처를 꿰매는 일까지 일어났다. 부모는 아들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몇 개월의 치료에 차도가 있었고 아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조현병은 지속적으로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라 맞벌이하는 부부가 아들 옆에 항상머물며 보살피기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이 없는 틈에 칼을 들고 집을 나간 아들은 사람을 찔러 죽였다.
조현병은 평생 적절한 보살핌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다. 개인의 질병이라는 관점에서 그책임을 가족에게만 떠넘긴다면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더는 개인 혹은 가족의 문제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될 이유이다. 예방은 가능하다. 평소 나타나는 폭력적인 행동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최선의 예방이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의문턱을 쉽게 넘을 수 있도록 제도적·경제적 지원이 제공되어야 한다. 누구나 감기에 걸릴수 있는 것처럼 정신건강의 문제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보살핌을받고 치료하면 완치는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정신질환에대한 보다 많은 이해를 사회가 공유한다면 적어도 이로 인한 범죄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기대해본다.

 

※ 본문의 사례는 실제 사건을 토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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