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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구 가능한 인생 - 떨지 마라 캔버스야 -
신용경제 2019-11-08 18:47:56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교과서나 책에서 만나던 그림의 실제 모습을 미술관에서 직접 보았을 때의 첫인상은 ‘그림 크기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책 한 켠에 축소된 크기에 익숙해져 있던 나의 눈앞에 펼쳐진 큰 크기의 그림은 내 놀라움이 시작일 뿐이라는 듯 좀 더 가까이 와 보라고 한다. 한 걸음 다가가니 그림은 평평하지 않고 입체감이 느껴졌다.
붓의 터치라는 것이 만들어 낸 물감의 질감은 ‘캔버스’라는 토양에서 자라난 풀과 같다. 특히, 빛을 표현해내려 했던 시대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바람의 결을 따라 춤추는 초록의 향연과 양산을 쓴 여인의 흩날리는 머릿결을 표현하여 바람 부는 언덕의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지금은 너무도 친숙한 3D나 현장감 있는 영화 표현을 위한 기법의 원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붓이 그려낸 입체감은 하늘을 뚫고 나온 태양의 그림자와 새벽 뱃사공의 배를 떠받치고 있는 바다에 이르러서는 잔잔치 않은 멀미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상파의 탄생을 알리는 작가의 그림들을 보면서, 같은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그들의 독창성과 그 ‘빛’을 구현해내기 위해 안료(물감)들을 실험적으로 사용한 끈기 있는 노력에 경탄을 보내게 된다.
사실 한의사도 사람의 얼굴을 바라볼 때 얼굴의 ‘빛’과 ‘색’을 본다. 보이는 얼굴 이면에 감추어진 생명력의 숨결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강인한 힘(면역력), 쉼을 통한 회복력들의 빛깔을 진단해내고, 그들의 부족한 부분에 ‘침’의 터치로 생명력이 뛰놀게 하는 과정은 예술가의 작품 활동과 비슷한 데가 있다.
조금 다른 점은 그림은 완성될 때까지 잘 기다려 주지만, 환자분들은 조금 급하다. 어제는 좋았지만, 오늘 조금 불편해지면 물결치듯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다른 화가를 찾으러 쉽게 떠나기도 하며, 치료의 완성을 위한 큰 그림보다는 오늘의 완성이라는 결론을 빨리 얻고 싶어한다.
하루라도 힘든 고통을 쉽게 벗어나려는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어 열심히 이리저리 터치하지만, ‘인상’이 쉽게 나아지지 않는 미완성 작품들이 있다. 그 작품들을 잘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캔버스에 잘 전달되어 그들이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때론 완성되지 못할 때도 있다. ‘예술은 긴데 인생은 짧다!’ 는 경구를 억지로 끌어당겨 보면, “짧은 인생의 시간 동안 만족스러운 예술 같은 치료 효과를 매번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좀 느긋하게 계획했던 치료과정을 잘 이행해 보자”라며 자신을 위로해 본다. 이 마음이 붓, 아니 침을 통해 캔버스 같은 환자의 건강에 빛을 더하게 될 때 한의원 문을 행복하게 나서는 작품들이 하나둘 늘면 좋겠다.
그런데 <수련> <인상, 해돋이> <라 그르누이예르> <아르장퇴유의 다리>등과 같은 수많은 그림에서 햇살 머금은 강변, 일렁이는 바다, 형언할 수 없는 수련과 물의 조화를 이뤄낸 작품 들을 보면 대부분이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그림이다.
물의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재료가 안료에 기름을 섞어 쓴 유화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빛에 반사되는 물이라는 모델이, 자신의 투명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표현함에 있어 재료를 선택할 때 ‘물과 기름’으로 표현되는 좋지 않은 관계에 있는 기름을 선택한다.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지 않고, 자신을 잘 표현해줄 존재로 상대를 인정하고 재료로 발탁하기에 이르는 예술혼이 담겨있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깨지기 쉬운 연약한 우리 인생의 한 면이 물, 수채화와 같다면, 그럼에도 복구할 수 있는 면은 덧칠을 통해 새롭게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는 유화와 같다. 둘 다 장단점이 있을 텐데, 인생의 연약함(수채와)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회복력(유화)이라는 지혜를 깨닫게 된다.
조급해하는 캔버스와 붓, 아니 침 터치에 떨고 있는 이젤의 마음을 잘 배려하여, 건강이 완성된 모습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찔러 드리겠습니다.
인상파! 환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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