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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를 덮은 눈
신용경제 2018-04-09 11:27:33

이진신
한의학박사, 경희푸른한의원 원장 hanisa.co.kr

 

겨울의 올림픽이 봄의 제전으로 바톤을 넘길 즈음엔 홍매화의 사진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산수유나무의 노랑, 벚꽃의 하양과 더불어 이 계절의 홍매화는 붉은 듯 연분홍빛으로 행인들의 시선을 잡을 뿐 아니라, 하늘을 캔버스 삼아 바람에 흩날리기라도 하면 봄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겨우내 시린 마음도 남쪽에서 시작한 꽃소식에 설레며, 봄 맞으러 남도로 향하는 이들의 성질 급함이 부럽다.
봄의 매력은 제각기 다른 색의 유니폼을 입은 꽃들이 펼치는 퍼포먼스에 예술점수 몇 점,기술점수 몇 점 매기지 않으며, 그들에게 굳이 메달 색을 구분하여 줄 세우지 않고서도, 봄을 그자체로 즐김에 있다. 입장권도 없이 공원이나 강가를 지날 때 겨우내 갈고 닦았을한 방이 바로 이러한 열정이었음을 느끼게 해준다.

 

엘리트 수목원에서 조경사의 손길을 받지 않고도 멋지게 삶을 경주하는 아마추어 같은 이 꽃잎은 더 아름다워지려, 옆 나무의 꽃보다 좀 더 빨리 붉어지려, 좀 더 진하게 피려고 경쟁하는 것 같지 않다. 늘 사랑을 베풀어주는 태양과 한결같은 물의 공급에 감사하며 자신의 기량을 최선을 다해 드러낼 뿐이다.

 

또한 이들의 포용력은 남다르다. 봄의 출발을 알리는 총성을듣고 개화하고 화려하게 출발을 하였는데, 뒤늦게 남은 겨울의 시샘(꼬장)에 내린 눈송이에 민망해하지 않고, 포근히 그 눈의 생명력을 지지해주니 이런 멋진 선수가 다 있나 싶다. 경기의 룰을 지키지 않고 뒤늦게 나타난 눈,망울이 눈물로 흘러내릴까 염려하듯, 그들의 홍색 얼굴빛을 연분홍으로살짝 누그러뜨린 인성을 생각하면, 조금 빵빵거리는 뒤 차의 경적소리에 붉으락푸르락 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홍!진신이 된다.

 

아무리 붉고 아름다운 꽃도 10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속삭임은, 지금 아름답게 불태울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내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다음 주인공이 되어야 자라나는 꽃과 나무들이 여름 속 오아시스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용히 물러남의 지혜까지 가르쳐 주는 듯하다. 괜히 유한한 생명력에 물감으로 덧칠하여 진한 황금색(똥색)이 될 때까지 노욕을 부리지 않은 매화를 선비들의 기개를 닮았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필 때와 질 때를 아는 것,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것이 순리임을 깨닫게 한다. 긴 시간 봄의 주연으로 자리매김하고, 롱런하는 꽃이 주는 품격있는 메시지이다.

 

그런데 이들은 약간의 부러짐이 있고, 줄기에 상처가 있어도 함께 꽃을 피우고 차별하지않는 듯하다. 장애를 딛고 일어나 열심히 꽃피운 패럴림픽의 꽃처럼 어려운 겨울을 뚫고지나온 이들의 감동적인 인간 승리에 함께 환호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선수들과 가족들, 특히 몸의 불편함을 이겨내며 흘려왔던 땀방울은 연분홍빛을 더욱 빛내는 아침이슬처럼 우리의 마음에까지 맺히게 된다.

 

 

휠체어에 의지해 오는 환자들이 자신의 느림 때문에 더욱 분주히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되게, 조금은 편안하게 자신의 속도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다려주며 진료받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불편한 듯 보이는 분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문을 살짝 잡아줄 수 있을까?

 

일상에서 만나는 그분들이 마음 꽃을 자유롭게 펼치고, 멋진하루를 보낼 수 있게 조금 더배려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마음이, 그들의 경기를 보며 뜨거워진 마음이 4년만 지속될수 있다면, 작심 4년만 할 수 있다면, 다음 패럴림픽 때에는 조금은 성숙해진 나와 우리로인해 주변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차가웠던 겨울 같은 내 마음이
그들의 홍매화 같은 열정을 만났을 때,
그것이 일시적 일 거라 우려하는 관중의 시선도,
언젠가 녹아서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배려하자는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질까 걱정하지 않고,
의연히 우리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격려했던 설원에서의 그들의 질주를 떠올려보니,
겨울을 지나온 봄의 힘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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