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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 자연이 전해준 선물
신용경제 2017-01-03 13:19:00

진안 풍경소리펜션 양희연 대표

 


친구들과 오디 따고, 고사리 꺾고, 우렁이 잡으러 다니며 딸은 자연과 하나가 됐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은 천연염색 재료가 되어 곱게 물들었다. 귀농 12년 차 양희연 대표가 전해주는 전원일기, 그 이야기는 참 따뜻하다.

 

안천면에 터를 잡고

 

전국 팔도를 다 돌아다녀 본 양희연 대표 부부가 연고도 없는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정착하게 된 이유는 단연 ‘환경’이었다.

 

“남편은 공군 장교로 재직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했고, 서울 토박이라 시골생활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저희가 살던 지역의 도시 공기가 어린 딸에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귀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죠.”

 

진안은 다녀 본 지역 중 유일하게 공장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었다. 그만큼 오지(奧地)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이상향에 정확히 부합했다.


안천면에 터를 잡은 부부는 벌목한 나무를 사서 깎으며 1년간 집을 지었다. 집 짓는 내내 동네 마을 회관에서 거주했고, 처음짓는 집이다 보니 신경 쓸 것도 많아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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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힘든 점이 많았죠. 하지만 남편이 집 짓는 동아리를 쫓아다니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친환경으로 짓기 위해 스터디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집을 오가며 도움을 주고받았고, 비닐하우스에서 쪽잠 자면서 고생을 참 많이 했죠.”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


2005년에 이곳에 왔으니 벌써 만으로 12년째. 초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온 딸은 이번에 수능을 봤다.


“보통 시골에는 아이들이 별로 없는데 다행히도 안천면에는 또래 친구가 둘이나 있었어요. 학교 다녀오면 하는 일이 주로 친구들과 주전자 하나 달랑 들고 오디 따러 가고, 고사리 꺾으러 다니고, 논두렁에서 우렁이 잡고, 호두와 밤을 줍는 일이었죠.”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를 보며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래 아이가 많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경쟁력 없이 이렇게 키워도 되나 조바심이 나기도 했단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유명하다는 학원에서 영어부터 피아노까지 다양한 것들을 배우며 바삐 사는데 딸은 매일 논두렁, 밭두렁 뛰어다니며 노는 걸 보니, 그걸 원해서 왔음에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없었다고. 그러나 점점 더 밝고 곧고 예쁘게 자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마음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저는 지금도 뱀이 무섭고 싫어요. 그런데 딸이 초등학교 3학년이던 어느 봄날인가, 숲에서 뱀이 스르르 나오는 걸 보더니 ‘어머, 너 오랜만이다. 겨울잠 잘 잤어?’ 이러는 거예요. 그때 생각했죠. ‘아, 자연 속에서 모든 게 친구가 되어가는구나.’”

 

말 그대로 딸은 자연 속에서 자랐고, 모든 게 저절로 자연 학습이 되었다. 그림을 그려도 자연 그대로의 장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그려내는 걸 보면서 참 신기하고 기특했다.


집이 완성된 후 양 대표는 “여기서 자연이라는 자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진안군농업기술센터에 교육을 다니면서 센터 과장님이 추천해준 천연염색을 접하게 됐다.


“기술센터의 보조 아래 자그마한 체험장에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정말 열심히 배웠고 재미도 있었죠. 쑥, 대나무 잎, 밤나무 껍질… 모든 게 천연염색 재료가 됐으니까요. 봄철 쑥 캐러 다닐 때면 무척 신났죠(웃음). 이런 게 바로 자연이 주는 선물 아닐까요.”

 

양 대표는 천연염색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배우기 위해 염색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고 천연염색연구회 회장직도 맡았다. 현재는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진안 풍경소리펜션에 오는 손님들 뿐 아니라 염색체험을 신청하는 학생과 단체를 대상으로 꾸준히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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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벌어서 원두막 하나 짓고, 그 이듬해에는 연못 하나 만들고, 여윳돈이 생기면 그네 하나 만들고… 그래서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올해는 뭐가 또 하나 지어졌을까’ 궁금해하시죠. 저희는 욕심부리지 않을 거예요. 예전처럼, 또 지금처럼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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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더불어 사는 삶

 

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귀농인의 모범답안’과 같은 안정된 삶을 사는 그녀가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무엇일까. 이같은 질문에 그녀는 오래지 않아 현실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젊은 사람들은 귀농하면 대체로 현지인과 어울리기보다는 뚝뚝 떨어진 곳으로 많이들 가요. 간섭받기 싫고, 함께 어울리기 싫다는 거죠. 이들은 실제로 애경사도 거의 참석하지 않아요. 사실 제가 처음 귀농했을 때 동네 어르신께서 ‘어머, 젊은 사람이 왔네? 송장 치우러 왔나?’ 이러시더라고요.


처음엔 저게 무슨 말인가, 굉장히 섬뜩하고 싫었어요. 그런데 살면서 실제로 남편이 상여를 많이 멨어요(웃음). 워낙 젊은 인력이 없다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저희가 도맡아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았죠.”
그뿐인가. 마을엔 연세 많은 노인이 대부분이다 보니 응급 상황도 적지 않게 발생했고, 그때마다 차 몰고 진안으로, 전주로 집안일 제쳐놓고 모시고 다니기도 했다. 뭘 바라고 했던 일은 아닌데, 다음날 뚤방에 호박 한 덩이, 된장 한 덩이가 말없이 놓여있는 것을 보면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


“귀농하는 사람들에게도 개인주의적인 사고는 도시에 버리고 오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여기는 더불어 사는 곳이기 때문에 ‘나만 살면 된다’는 마인드로는 서로가 힘들거든요.”

 

천천히 걷기

 

도시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이제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아파온다는 양희연 대표. 귀농 초기만 해도 밤의 네온사인, 맥줏집에서 즐기는 치맥 같은 도시 문명이 그리울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대형마트보다 그냥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는 시골장이 익숙하고 편안하단다.

 

“지금도 노을이나 별빛을 보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좋아요. 그런데 아파트 같은 곳은 내 안의 살림만 관리하면 되지만 여기는 텃밭 가꾸기, 닭장 수리, 풀 작업… 소소한 일이 끊임없이 생기죠. 그럴 때면 남편도 ‘도대체 일이 끝이 없다’며 투덜거리곤 하지만 ‘다시 도시로 갈까?’ 하고 물으면 그건 또 싫대요(웃음).”


처음부터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아 더 정착하기 수월했는지 모른다는 이들 부부는 앞으로도 지금껏 그래왔듯 천천히, 천천히 걸어갈 것이다.
“조금 벌어서 원두막 하나 짓고, 그 이듬해에는 연못 하나 만들고, 여윳돈이 생기면 그네 하나 만들고… 그래서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올해는 뭐가 또 하나 지어졌을까’ 궁금해하시죠. 저희는 욕심부리지 않을 거예요. 예전처럼, 또 지금처럼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권성희 기자 song@mcredit.co.kr

 

<월간 신용경제 2017년 1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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