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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속 섬마을, 파로호 행복 메신저
신용경제 2017-03-02 17:04:32

섬마을 집배원 김동훈씨. 강원도 오지에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으로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만 ,그의 일상은 오늘도 변함이 없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 이른 아침부터 우편물을 정리해 오토바이를 타고, 차를 몰고, 배 운전을 하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마을 곳곳에 새 소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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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달린다

 

양구우체국 김동훈 집배원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빠짐없이 집배를 나가는 지역 중 하나인 파로호는 1944년 화천군 간동면(看東面) 구만리(九萬里)에 북한강 협곡을 막아 축조한 호수다. 호반이 일산, 월명봉 등의 높은산에 둘려 있어 호수의 경관을 한층 아름답게 해 깊은 물에는 잉어와 붕어,메기, 쏘가리 등 민물고기가 풍부히 서식하는 낚시터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은 위에서 내려다본 호수의 모습이 큰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고 하여 대붕호(大鵬湖)로 알려져 있었지만, 6·25전쟁의 화천전투 때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 명을 수장(水葬)한 곳이라 하여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깨뜨릴 破 오랑캐 虜 호수 湖)라 명명하였다.

 

오늘 김동훈 집배원이 배달에 나서는 첫 번째 목적지는 양구군 양구읍 상무룡리다. 파로호 상류에 자리 잡고 있는 육지 속의 섬으로 현재 이곳에 52가구 9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상무룡리로 가는 데는 3개의 교통수단이 필요하다. 월명리 선착장까지는 승용차, 호수건너 상무룡리까지는 배, 그리고 도착해서는 이륜차다.

 

“이곳은 도시처럼 배달해야 할 집이 많다기 보다는 이쪽에서 저쪽까지의 거리가 멀어 이동시간이 길어요. 이 마을 배달하고 나면 강 건너 반대쪽까지 가야 하는데, 한쪽은 뱃길이 있지만, 한쪽은 뱃길이 끊겨서 돌아갈 수 있는 데까지는 차로 가야하죠.”

 

캡처2.JPG

 

“날씨에 민감한 배달환경과 배부터 차까지 매일같이 관리하고 보수할 때면 사람인지라 조금 벅차다는 마음이 들 때도있 지만, 남들은 못 보고 안 다니는 길을 걸으며 좋은 분들 만나는 게 좋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집배 일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4년째. 조그마한 사업을 하다가 우체국에서 일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시작한 게 우체국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대형면허에 배 면허, 오토바이 면허와 몇 가지 안전 관련 자격증까지 다 갖춘 사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임 집배원이었던 친구가 다른 지역으로 가기 전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해왔던 것.


“사실 시작할 때만 해도 하다가 안 맞으면 그만둘 수도 있다는 다소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당시엔 제가 하던 사업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도 있고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저에게 꽤 잘 맞았어요. 일을 처음 시작했던 때가 여름이여서 날씨로 인해 힘든 것도 잘 몰랐죠. 제가 개인적으로 레포츠도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 여름엔 그렇게 움직이니까 좋더라고요. 날씨에 민감한 배달환경과 배부터 차까지 매일같이 관리하고 보수할 때면 사람인지라 조금 벅차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남들은 못보고 안 다니는 길을 걸으며 좋은 분들 만나는 게 좋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배를 타고 파로호에 들어가면 그곳에서는 약 50여 집을 오토바이와 차로 움직인다. 뼛속까지 시린 한겨울 날씨에 배달에 나서 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

 

“겨울엔 무척 추워요. 눈이 많이 오거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오토바이나 배 타면 어휴… 그래도 올해는 괜찮았어요. 배가 못다닐 정도로 얼음이 얼게 춥진 않았으니까요. 얼음이 얼면요? 걸어서라도 가야죠. 생명수당은 안 나오지만 그래도 무조건 갑니다(웃음).”

 

내가 집배원을 하는 이유

 

처음 집배 일을 시작했을 때 동네 어르신들과 친해지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의 고향이 양구이고 40년 넘게 이곳에서만 살았음에도 자주 보던 얼굴이 아니니 어르신들은 꽤 거리감을 두셨다고.


“이곳은 워낙 시골이라 60대 이상의 노인이 대부분인데, 의외로 어르신들의 담이 높았어요.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굉장히 컸죠. 저도 사실 집배일이 처음이고 잘 몰랐을 때라 한 1년간은 조금 힘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제가 고향이 여기라 해도, 생전 못 보던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니 쉽게 마음을 잘 안 여셨던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매일 배달 오는 집배원이 차츰 눈에 익자 어르신들의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한두 마디씩 대화를 나누고, 내가 아는 사람이 누군데 그쪽이랑 아는집이라더라, 하는 소소한 대화의 문이 열리면서 마음을 나누게 된 것. 아마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하고 묵묵히 일을 수행하는 그의 믿음직한 모습 역시 가까워지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이제는 뭐, 일 있으면 어르신들이 먼저 전화하시죠. 겨울에 눈이 많이 온 날은 ‘일반 우편물 같은 건 굳이 오늘 안 와도 된다, 안 급하다’ 며 들어오지 말라 하시고, 등기도 먼저 뜯어서 중요한 건지 봐 달라 하시고요. 그럼 제가 먼저 읽어보고 ‘어디서 온 건데 기한이 얼마만큼 있다’ 말씀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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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아유, 그럼 급하지 않으니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눈 그치고 날 좀 좋아지면 들어오라’며 염려해 주시죠.”

 

여름이 되면 대추도 말렸다 주시고, 잠깐 앉았다가 가라며 주전부리도 내놓는 어르신들이 이제는 부모님 같다. 덕분에 그는 하루에도 커피를 몇 잔씩 마신다. 어르신들이 끓여주시는 그 정성과 성의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저쪽 집에서 막 마시고 나왔는데 이쪽 집어르신께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며 물을 끓이시면 안 마실 수가 없어요. 그 집에서 내려가면 또 다른 집에서 ‘커피 마시고가라’며 붙잡으시고, 그럼 또 못 일어나고 앉아서 얻어 마시죠. (웃음)”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린 날 아침이면 길은 모두 통제된다. 눈이 무릎까지 쌓여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길에 사륜자동차를 끌고 가노라면 차가 중간에 서면 어쩌나, 과연 여길 넘어갈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단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또 언제 이런 풍경을 봤을까 싶을 만큼 근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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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치는 누군가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요. 아무도 밟지 않은 길, 가끔 있어 봐야 동물들 발자국 몇 개가 전부인 그곳에 서 있으면 자연의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하게 되거든요. 이러한 경치도 집배 일을 하니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상이라면 멋지다. 보고 싶고 궁금하다. 그러나 차량이 통제되는 그 험한날씨가 구불구불한 산길과 차갑게 얼어붙은 뱃길을 이동해야 하는 그에게 결코 좋지만은 않을 터.
“차량관리도, 유지·보수도 오로지 저의 책임이니 그 부담감이 적지 않진 않죠. 아직까지는 큰 사건·사고 없이 무사배달을 하고 있지만, 행여 생길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 배, 오토바이 등 이동수단 관리를 철저히 해야만 해요. 그것이 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가 운전하는 작은 배는 두세 명까지는 탈 수 있어 섬에서 나올 때 급한 일이 있는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나오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엊그제엔 서호 마을이라고 8가구 주민이 사는 곳에 들어갔는데, 대부분의 동네 분들이 명절이라 나가셨다가 안 들어오신 거예요. 사람이 없으니 배도 없는 상황에서 한 어르신이 급히 배 타고 나가셔야 하는데 나갈 길이 없었죠. 마침 제가 전해드릴 우편물이 있어 들어가는 날이라 모시고 나오는데,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물이 파도치듯이 들어오거든요. 저는 운전을 해야 하니 옷을 뒤집어쓰고, 어르신은 덮을 게 없으니 비닐을 꽁꽁 뒤집어쓰고… 나중에 도착했을 때 저는 옷이 다 젖고, 그분도 비닐에 물을 옴팍 뒤집어쓰셨어요. 그래도 자주 나오시는 분이니라 비닐까지 제대로 준비해서 내려오셔서 다행이었죠(웃음).”

 

밖으로 자주 못 나오시는 어르신들의 잔심 부름도 그의 몫이다. 나오는 길에 택배 부칠 것을 부탁하시면 받아서 대신 해 드리기도 하고, 들어갈 때 식료품 좀 사다 달라 전화가 오면 장에 들러 사다 드리기도 한다.

 

“사다 드리는 것들이라야 소소한 식료품이나 자잘한 생필품이에요. 그거 사러 밖에 나오긴 힘드니까 부탁하시면 들어가는 길에 한 번씩 전해 드리죠.”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봄에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에도, 산새가 타오를 듯 붉게 물드는 가을에도,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이는 겨울에도 자연과 함께 흐르는 시간속에서, 그는 오늘도 새 소식을 전하려 배에 시동을 건다.

 

 

권성희 기자 song@mcred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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