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뉴스
등록된 기사가 없습니다.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부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들다
신용경제 2017-04-03 16:57:41

 

극한의 중량을 가진 바벨을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려 힘을 겨루는 스포츠, 역도. 역도로 장애를 극복하고 긍정의 힘으로 내일의 희망을 들어 올리는 커플이 있다. 봄날의 햇살보다 더 따스하고 편안한 미소마저 꼭 닮은 역도 부부 이동섭·최숙자 씨가 바로 그 화제의 주인공이다.

 

cats1.jpg

 

역도계의 살아있는 전설
여기, 성치 않은 몸으로도 무거운 역도를 번쩍 들어 대한민국 장애인 역도계를 제패한 부부가 있다. 지난 해 10월 제 36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3관왕을 달성하면서 통산 5번째 동반 우승을 거머쥔 이동섭(46)·최숙자(49) 부부가 그 영광의 주역이다.
남편 이동섭 씨는 -72kg급, 부인 최숙자 씨는 -45kg급에 각각 출전해 파워리프팅과 웨이트리프팅, 벤치프레스 종합 종목까지 3부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현재 남편 이동섭 씨는 충북 곰두리체육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장애인들의 재활훈련과 상담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근무한 지도 올해로 벌써 10년 차 베테랑이다.
매일 평균 3~4시간씩 운동을 하지만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는 5~6개월 전부터 체중관리와 함께 본격적인 대회 준비에 들어간다. 준비 기간에는 크고 작은 부상도 많다. 실제 이동섭 씨는 지난해 전국체전을 열흘 앞두고 큰 부상을 입어 힘든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부상으로 성치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역시 금메달이다.
“체중조절을 심하게 할 때는 3개월 만에 15kg 이상도 빼고 시합에 나가거든요. 체중관리도 힘들지만 부상이 왔을 때의 스트레스는 훨씬 심해요. 모든 걸 시합에 맞춰 준비했는데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리니까요.”
부인 최숙자 씨는 현재 음성체육회 실업팀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그곳엔 별도의 감독과 코치진이 있어 프로그램에 맞추어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실업팀이다 보니 체계가 잡혀있어요. 매일 하루 7~8시간씩 훈련을 하죠. 힘들지 않냐고요? 괜찮아요. 그게 제 직업인걸요(웃음).”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들어 올리다
남모를 노력과 끈기로 수많은 우승을 했고, 내일의 더 좋은 기록을 위해 오늘도 땀 흘리는 이동섭·최숙자 부부는 신체 장애의 아픔을 가지고 있다.
아내 최숙자 씨는 지난 2002년 당했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뇌병변장애2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편마비로 왼쪽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 특히 왼쪽 발에는 아예 힘이 없어 땅을 긁고 다닐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때 역도가 팔과 다리에 힘을 길러주는 운동이니 한번 배워 보라는 지인의 권유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벨을 들었다.
“복지관의 도움으로 역도를 시작하게 됐어요. 사실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는데, 역도가 신경을 자극함과 동시에 전신운동이 되기 때문에 확실히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죠. 특히 걸음걸이부터 달라졌어요. 그걸 스스로 많이 느끼면서 운동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죠. 우연한 기회에 첫 시합 나갔고 좋은 성적을 거두자 역도연맹에서 전화가 왔어요. 국가대표선발 합숙에 들어올 수 있겠냐고. 그길로 고민 없이 태릉 행을 택했습니다.”
이동섭 씨는 지체장애 2급이다. 태어난 지백일 만에 소아마비를 앓고 다리를 절었다.
걷는 게 조금 불편하긴 했어도 일상생활에큰 불편은 없었다. 운동을 좋아하고 성격이 활발해 회사 축구 동호회에서 공도 차고 등산도 즐길 정도로 건강했다. 그러던 그에게 큰 고비가 찾아온 건 아이러니하게도교정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였다.
“병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양쪽 고관절무혈성 괴사라고 했어요. 수술받으면 훨씬 좋아질 거라는 말만 믿고 수술대에 올랐죠.”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술은 잘못됐고, 하반신 마비가 왔다. 의료사고였다. 이제 다시 걷기 힘들 수도 있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이야기까지 들었다.
“아파서 수술했던 게 아니라 수술하면 걷는 게 나아진다고 하니 희망을 걸고 맡겼던 건데 그게 잘못될 줄은 상상도 못 했죠. 병원에 들어갈 땐 걸어 들어갔는데, 나올 땐 거의 기어 나오다시피 했으니 그야말로 악몽 같았습니다.”
절망 속에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몸 상태는 더욱 악화되어만 갔다. 어릴 때부터 몸은 아팠어도 마음으로는 늘 ‘더 이상은 아프지 말자’는 의지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끝없이 반복된 수술의 결과가 하반신 마비라니, 삶에 대한 자신감마저 상실했다.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상처 입어스스로 고립의 길을 택했다.
“집에만 있으니 자꾸 극단적인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것도 할 수도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죠. 그렇게 시간이 흘렀어요. 그런 저를 걱정하신 어머니께서 어느 날 ‘복지관에 가면 너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더라. 그곳에서 함께 생활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어오셨어요. 저 역시 더는 스스로를 방치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지막 용기를 내어 충북장애종합복지관의 문을 두드리게 됐습니다.”
그 곳에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장애인들을 만났다. 절망 속에 빠져있던 그에게, 여러 모양의 아픔을 가진 수많은 장애인들이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꽁꽁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도 조금씩 다시 열렸다.
재활을 위해 시작한 역도는 그의 인생마저 바꿔놓았다. 당시 그가 운동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복지관 관장님이 “장애인 역도시합에 한 번 나가보는 것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그렇게 나가게 된 2001년 광주 전국 순회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면서 본격적인 그의 역도 인생이 시작됐다.

 

당신과 나의 인연, 동행
역도를 통해 재활을 했고,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또 한 가지, 바로 평생의 인연을 만난 일이다.
2006년 부산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남녀 국가 대표로 출전했던 이들 부부는 그 후 훈련을 통해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운동으로 소통하며, 지칠 때면 의지하고 위로하면서 사랑을 키워가다 2007년, 부부의 연을 맺기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면 부부는 남다른 운동신경까지 닮았나 보다. 두 사람 모두 재활을 위해 시작한 역도로 첫 대회부터 우승을 거머쥐며 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꾸준히 운동에 매진하는 성실함과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밝은 미소로 긍정적인 내일을 이야기하는 모습마저 신기할만큼 똑같다.
부부는 이 땅에 장애를 가진 많은 분들이 가슴 속에 꿈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꿈을 갖는 데는 돈이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실현 가능한 꿈을 꾸고 그꿈을 향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매년 확대되고 있고, 사회복지가 계속 발전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장애인들이 스스로 뭔가 해야겠다는 노력을 더했으면 좋겠어요. 똑같은 생활 속에만 묶여있는 것을 볼 때면 무척 안타깝거든요.”
절망의 끝에서 몸과 마음의 재활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역도를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동섭 씨.
그들에게 삶의 돌파구였던 역도는 이제 미래를 준비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기회가 된다면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장애인 전용 체육관에서 역도선수들을 지도해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고 싶거든요. 힘든 상황에 좌절하고, 원망하고, 비관하는 이들에게, 이미 그 아득했던 시간을 지내온 인생 선배로서 조금이나마 힘과 용기를 주고 싶어요. 할 수 있다고, 하면 된다고, 용기를 내라고요.”
고된 훈련과 체중관리로 지치고, 무리한 운동으로 근육통에 시달릴 때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서로가 있기에 큰 힘이 된다는 이동섭·최숙자 부부. 이 멋진 부부가 가진 긍정의 힘이 수많은 장애인에게 새로운 희망과 도전의 힘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권성희 기자 song@mcredit.co.kr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