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본 뉴스
등록된 기사가 없습니다.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광고모집중
꽃보다 황혼 치매 파트너 박흥임·박오임 자매
신용경제 2017-07-10 14:53:47

 

cats.jpg

 

두 자매 이야기
“오늘은 신나는 ‘밀양아리랑’에 맞춰 춤을 추면서 온몸 운동을 할게요! 자, 모두 힘차게 음악에 맞춰 하나, 둘, 셋, 넷!”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6월의 목요일 오후.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는 건 강운동 프로그램이 한창이다. 치매 파트너 박흥임 씨의 신명 나는 진행 하에 10여 명 남짓한 어르신들의 표정은 환해지고 몸짓에도 리듬이 실린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서 계시던 어르신도 재미있는 입담으로 리드하는 흥임씨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분위기에 동화된다. 그렇게 수업이 무르익는가 싶더니, 40여 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흥임 씨가 얼굴에 흥건하게 맺힌 땀을 닦고 목을 축이는 사이, 이번엔 동생 오임 씨가 커다란 짐볼을 들고 나섰다.
오늘 오임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공 던지기. 교실을 커다란 원 모양으로 둘러선 어르신들이 두 손을 이용해 맞은편에 있는 사람에게 짐볼을 밀어주는 운동이다. 주거니, 받거니 단순해 보이는 활동에도 어르신들의 얼굴 한가득 함박웃음이 번진다.
“이게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많은 어르신들이 처음엔 공에 손을 못 맞추셨어요. 이미 공은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제야 손이 나가죠. 아까 제가 ‘정말 잘하신다’고 칭찬했던 어르신 같은 경우는 처음 오셨을 땐 오는 공을 잡지도, 맞추지도 못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지셨잖아요. 꾸준히 하는 분들은 신기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향상되는 게 보여요. 저희가 흘리는 땀방울이 그분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로 나타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죠.”
치매 환자뿐만 아니라 이러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좋단다. 춤추기는 손과 발을 움직이면서 춤동작을 기억하니 우뇌·좌뇌를 함께 활용할 수 있고, 양손을 이용해 짐볼을 미는 운동은 유연성과 근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공놀이만 해도 그래요. 시선이 공을 따라다니면서 집중할 수 있죠. 커다란 공을 이용하는 건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사용토록 하기 위함이고요. 단순해 보여도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실제로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벌써 10년째 치매 노인과 치매 가족을 위한 봉사를 이어가고 있는 흥임·오임 씨 자매. 이들의 봉사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이웃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노인대학에서 봉사를 시작했는데, 그곳이 폐교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각종 자격증을 따고 지도자 교육을 수료했죠. 언제든 좋은 기회에 다시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실제 두 자매가 가진 자격증은 노인체육사 자격증부터 실버 레크레이션과 재활 레크레이션, 요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탄탄한 준비과정과 10년 이상의 경력까지, 이들을 노인자원봉사계의 베테랑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처음엔 무조건 짜인 구성대로만 진행했다면 이제는 각각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뒷받침됐음은 물론이다.

 

24시간이 모자라
치매 노인을 위한 박 씨 자매의 봉사는 일주일 내내, 거의 쉴 틈이 없다. 근무 환경도 제각각, 할 일도 천차만별이다.
“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건강교실은 일주일에 서너 번, 인지건강센터는 한 번정도 가요. 인지센터에서는 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사의 보조 역할을 하고 있죠.”
인지센터는 치매 확정 판정을 받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학습지나 다양한 도구를 이용한 활동을 한다. 미술치료부터 원예치료, 음악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일정에 따라 진행되는데, 어르신들은 바느질된 원단 안에 솜을 집어넣고 꿰매거나, 알록달록 펠트지를 잘라 양말을 만들고 원하는 색깔을 골라 칠하며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
박 씨 자매의 또 다른 일정은 치매 어르신 댁 방문. 거동이 불가능하거나 편찮은 몸으로 혼자 사는 어르신을 찾아뵙고 전반적인 안전을 돌보는 활동이다.
“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외롭게 사는 홀몸노인들이 우리 주변에는 정말 많아요. 이런 분들은 각종 질병에도 취약할 뿐만 아니라 치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죠. 그래서 어르신들을 주기적으로 찾아뵈어 약도 챙겨드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눠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의 활동을 돕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가벼운 운동을 가르쳐드리기도 하고요.”
다양한 활동을 하다 보면 일주일이 모자랄 지경이라는 박 씨 자매. 도움을 주는 것도 좋고 보람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칠 때는 없을까.
“힘듦보다 유익함이 더 커요. 우리도 부지런히 활동을 해야 몸도 마음도 활력이 생기잖아요. 이 모든 활동 자체가 우리에게는 활력이에요. 어르신들이 즐거워하시는 모습,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은 저희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주죠.”

 

행복한 노년을 부탁해
한편, 노인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이러한 활동을 도울 선생님과 자원봉사 인원 부족이 무척 안타깝다고 자매는 입을 모은다. 인지건강센터의 경우, 원래 1부와 2부로 나뉘었던 반을 최근 통합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두 개였던 반을 하나로 합치다 보니 참여 인원이 너무 많아졌어요. 치매 어르신들은 방금 한 얘기도 잘 기억을 못 하세요. 머릿속에 쉽게 입력이 안 되거든요. 소수의 선생님과 봉사자가 많은 분들을 세심하게 보살펴드릴 여건이 안 되다 보니 그저 어르신들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죠.”
더 많은 봉사자가 절실하지만 자기 시간 할애하며 꾸준히 봉사할 사람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하다 그만두는 사람은 물론이고, 봉사하겠다고 왔다가 교육만 받고 안 나오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치매 환자도 점점 늘고 있잖아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여건상 모든 곳에 저희가 다 찾아뵐 수 없으니 너무 안타깝죠.”

오임씨는 또 “사람들이 치매라는 질병에 대해 예상외로 무지하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우리 모두 노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잖아요. 치매는 내 가족의 일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의 미래가 될 수도 있어요. 감기라고 하면 누구나 그 증상에 대해 알고 예방주사를 맞듯이 치매에 대해서도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고, 모두가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역마다 치매 어르신과 그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지원이 있음에도 이를 몰라서 받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며 얼마 전 작고하신 친구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시어머님은 시각장애인인데 치매까지 앓으셨어요. 앞이 안 보이니 사람을 잘못 믿으셨죠. 며느리가 병원이라도 모시고 가려 하면 ‘나 데려다 어디 버리려는 거 아니냐’며안 따라나설 정도였으니까요.
하루는 친구가 제게 와서 하소연하기에 제가 어머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어요. 며칠 후 댁에 방문해 ‘보건소에서 나왔다’고 소개한 후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오임씨는 오랜 대화 끝에 어르신께 보건소 진료를 조심스레 여쭈었고, 어렵게 승낙을 얻어 성동구 치매지원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어르신은 이곳에서 진행된 각종 검사 후 치매 진단을 받았다.
“진단 후부터는 치매 노인에 대한 각종 지원을 받으셨어요. 제 친구 역시 치매 가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가족 분들과 소통할 수 있었죠.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후 친구가 그러더군요. ‘네 덕분에 내가 잘 견딜 수 있었다’고. 어머니를 모시면서 힘든 일 이 많아도 활동을 통해 그걸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거예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오임씨는 치매 프로그램이 비단 치매 노인 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단다.
실제로 치매 가족 중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거나 치매를 앓던 가족이 돌아가신 후에도 함께 공감하며 위로했던 치매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종종 방문한다고.
“서로 소통이 되는 분들이잖아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어루만지죠. 가족만큼 끈끈한 관계가 되는 거예요.”
치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질병이지만 아직도 “우리 어머니(아버지)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정확한 검사를 피하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그러나 정확한 진단과 치매 진단 후 관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박 씨 자매는 거듭 강조했다.
“현실부정은 치매 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중증치매환자가 아닌 다음에는 평소에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거든요. 그래서 가족들이 곁에서 부대끼고 살면서 관찰할 필요가 있어요. 치매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증상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죠.”
가족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치매 예방은 본인의 의지가 우선이다. 특히 스스로 기억력 등에 이상을 느꼈다면 망설이지 말고 검사를 받아보길 권한다.
“당장 특별한 문제가 없어도 치매 예방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 각 지역에 있는 치매지원센터에 가서 주기적으로 혈압과 당뇨, 기억력 검사 등을 받아 보셨으면 좋겠어요. 센터 건강교실에서 적극적으로 율동도 하고 운동도 하며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도 좋고요.”
자매는 치매에 대해 머나먼 이야기, 남의이야기로 치부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뇌 건강은 젊어서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직장 스트레스, 우울증, 또 여러 가지 음식과 환경의 요인 등에 의해 수많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거든요. 그럴수록 몸을 잘 관리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매 어르신과 치매 가족을 위한 활동부터 치매 예방 홍보까지, 박흥임·오임 자매의 바람대로 다가오는 초고령화 사회에 노인이 살만한 세상, 노인이 건강한 사회가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권성희 기자 song@mcredit.co.kr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