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Only Live Once(인생은 한번뿐이다)’에서 이름을 따온 청소년 속옷 브랜드 온리원스는 누구나 경험하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오직 한번의 시간, 사춘기와 초경의 소중함을 축하하고 응원한다.
처음 시작하는 이들을 위하여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둔 엄마이자 10대 소녀들의 속옷을 판매하는 예비 사회적 기업 온리원스를 운영하는 기혜진 대표. 속옷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지난해 첫 딸아이의 초경을 계기로 청소년 속옷 브랜드를 론칭하였다.
“첫아이의 초경 축하 선물을 찾아봤는데 케이크나 꽃다발 정도가 전부여서 아쉬움을 느꼈어요. 또 제가 속옷 디자이너다 보니 직업적인 관점에서 사춘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제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10대 속옷은 살 수 있는 데가 한정적이어서 엄마들이 마트나 백화점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마저도 유아에서 청소년까지 통틀어 다루기 때문에 진정한 청소년 속옷 브랜드는 없다는 게 기 대표의 생각이다.
“특히 마트에서는 보통 대량생산으로 들여와 흰 바탕에 조금 유아스러운 캐릭터가 찍힌 속옷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어요. 그런데 10대 친구들은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그들의 눈높이에서 유치하지 않게, 그리고 좋은 소재로 속옷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성장기인 사춘기 소녀들의 속옷은 일반패션 속옷이 아닌 특수 카테고리인 기능성 속옷에 속해 경험과 기술이 필요한데, 10년 차 속옷 디자이너의 경력과 임산부 속옷 전문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쌓은 그녀의 노하우가 바탕이 되었다.
“신발도 플랫슈즈, 하이힐 등 종류가 많듯 속옷도 대상과 기능에 따라 다양하죠. 저는 기능성 속옷에 관심도 있었고 일을 해봐서 조금 더 접근하기 수월했어요. 패턴을 직접 뜨기 때문에 착용했을 때의 피팅감을 살리는 기술 등이 제 핵심역량인 거죠.”
속옷을 처음 착용하는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그는 속옷 사이즈를 재는 방법, 단계별로 올바르게 입는 점 등에 대한 어드바이스가 학생들은 물론 그들의 보호자에게도 꼭 필요함을 강조했다.
“아이들 속옷은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나누어져 있어 엄마들도 처음엔 뭘 입혀야 하는지 어려워해요. 또 정확한 치수를 재지 않고 눈대중으로 자녀의 속옷을 고르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성장이 멈춰 크기가 정해진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성장기이기 때문에 사이즈가 유동적이어서 보통 6개월마다 체크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그에 맞는 속옷을 착용하는 것이 중요해 성장단계에 따른 세분화된 단계별 속옷에 중점을 두고 있죠.”
처음부터 후크나 와이어가 있는 성인용 브래지어를 하게 되면 거부감이 들 수 있어 1단계 브라는 러닝 스타일이다. 특히, 특허라는 개념이 없는 디자인 부분에서 특허증에 준하는 실용신안을 받은 제품이기도 하다. 2단계는 노와이어에 가슴 부분의 형태를 잡아주는 몰드를 넣었다 꼈다 할 수 있으며, 3단계 속옷은 몰드가 형성되어 있고 노와이어지만, 라이닝을 통해 와이어 기능을 한다. 4단계는 와이어가 있는 일반 성인용 스타일의 브래지어이다.
“단계별로 디자인과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만약 1단계 때 3, 4단계의 속옷을 착용하면 오히려 성장발달에 저해되죠. 연구결과에 따르면 17세 이전에 속옷을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성인이 됐을 때 위생 건강이라든가 바디라인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그래서 단계에 맞는 속옷 착용이 중요한데 요즘 어린 학생들이 성숙함을 원해 가슴 뽕이나 와이어가 있는 성인용 속옷을 입으려는 경향이 있어 고민했죠.”
기 대표는 고심 끝에 속옷을 올바르게 입을 수 있도록 해주는 속옷 사용 설명서 ‘비 마이 란제리 키트(Be My Lingerie Kit)’를 제작했다. 여기에 의외로 집에 줄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설명서에 줄자를 묶어 세트로 구성해 이를 통해 건강한 속옷 입기를 제안한다.
축하해 그리고 응원해
“작년에 취약계층 친구들이 가격이 부담돼 운동화 깔창에 천을 덧대서 생리대 대용으로 사용한 ‘깔창 생리대’가 이슈화됐어요. 그래서 청소년의 위생과 건강을 위한 위생팬티를 만들어 취약계층 청소년들에게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진행하지만, 속옷이나 생리용품의 중요성과 정확한 사용법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초경을 시작한 아이들이 이를 부담스럽고 귀찮게 여기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매달 생리를 한다는 건 자신이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이며 자기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초경 축하 매직케이크’를 구상했다.
“초경 축하 매직 케이크는 생리대와 위생팬티, 파우치, 축하카드 그리고 나중에 인테리어에도 사용할 수 있는 플라워리스로 구성되어있어요. 처음엔 아빠나 조부모가 아이들에게 부끄럼 없이 선물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계획했는데 요즘엔 센스 있는 삼촌, 이모들에게 반응이 좋고 주문이 많죠.”
속옷 지원을 위해 청소년성문화단체와 협력해 담당 선생님과 함께 지역 아동센터나 취약계층 친구들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그룹홈에 방문하는 그녀는 단순히 속옷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교육과 속옷에 대한 설명 등의 활동까지 진행 중이다.
“청소년성문화단체 선생님 한 분과 진행하는데 제가 모든 교육에 참여할 수 없어 ‘소소맘 프로젝트’라고 미혼모 협회와도 조인해 청소년 성교육이수를 받은 미혼모분들이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그들이 학생들의 멘토가 되어 조금 더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죠. 여기에 더해 초경 축하 케이크와 속옷 파우치도 함께 만들어요.”
그가 준비한 프로그램은 자연스럽게 속옷과 생리용품을 접하면서 자유롭게 성적인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스스로에게 축하 용품을 선물할 수 있어 처음과 달리 지금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고.
“처음엔 제가 속옷에 대해 설명만 해도 거부감을 가지고 부끄러워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초경 축하 케이크를 만든다고 했을 때도 그런 걸 왜 만드는지 의문을 품는 아이들도 있었죠. 그런데 활동을 하다 보니 반응이 점점 좋아졌어요.”
활동이 끝나면 피드백 차원으로 설문조사를 하는데 청소년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100점 만점의 후한 점수부터 시간이 짧아 아쉽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리고 거의 모든 학생이 제일 좋았던 점에 초경 축하 매직 케이크 만들기를 꼽았다. 단순히 매번 듣는 성교육처럼 지나갈 수 있었던 시간이 축하 케이크 만들기 활동을 통해 특별하게 다가온 것이다.
“사실 업무와 지원 활동을 병행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잦고 컨디션 난조를 겪을 때도 있는데 이런 아이들의 반응이 제게 힘을 주죠(웃음).”
핑크빛 반란
일상생활의 여러 가지 행복 속 크고 겉으로 드러나는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나만 혼자 알 수 있는 것일지라도 속옷을 잘 챙겨 입는 것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속옷 철학에 대해 그녀는 깊이 공감한다.
“조금 철학적일 수도 있는데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게 아니잖아요. 정신적으로 힘들면 몸이 아프기도 하고 몸이 아프면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지는 것처럼 속옷을 단순히 중요 부위를 가리는 용도로만 생각하지 않고 얼마만큼 소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자기 몸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죠.”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해야 하고, 자신을 제대로 살펴보고 사랑하는 첫 단계가 속옷을 잘 갖춰 입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러한 인식을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지금은 브랜드가 아직 많은 분께 알려지지 않아 SNS 홍보 등을 통해 알릴 예정이고 현재 굿네이버스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이를 발판으로 온리원스를 더 단단하게 다질 생각이에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온라인에서 본인의 신체 치수를 입력하면 적합한 속옷 사이즈를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이를 통해 청소년이나 그들의 보호자가 온라인에서도 속옷 구매를 하는 데 있어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지금 온리원스는 국내 유일의 청소년 속옷 전문 브랜드예요. 큰 브랜드에서도 행거 하나를 기준으로 10대를 위한 속옷은 대여 섯 개 제품만 판매하죠. 그래서 저는 브랜드를 더 성장,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또 지금은 예비 사회적 기업이지만, 내후년엔 사회적 기업으로 확정이 돼 취약계층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사업도 넓혀나가는 게 목표예요.”
딸을 둔 엄마의 마음 한 스푼, 사춘기 소녀를 위한 감성 한 스푼, 속옷 전문 디자이너로서의 역량과 노하우 한 스푼, 취약계층 학생들을 위한 따뜻한 시선 한 스푼이 더해져 탄생한 청소년 속옷 전문 브랜드 온리원스. 인터뷰 내내 반짝였던 그녀의 눈처럼 기혜진 대표의 노력이 빛을 발해 사춘기 소녀들에게 두려움과 부끄럼으로 여겨지던 첫 시작이 두근두근 가슴 뛰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바뀌는 핑크빛 반란을 기대해본다.
진유정 기자 jin_yj@mcred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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