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미영 대표

한국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안국역엔 이색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로 4, 50대 고객의 발걸음을 멈추게하는 그루(g: ru)가 자리 잡고 있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듯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모 여 빈곤 국가 여성들의 삶을 도와주길 소망하는 공정무역의 그루터기에서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이미영 대표를 만났다.

공정이라는 씨앗
2007년 세계공정무역의 날(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에 설립된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한국 공정무역을 선도하는 기업으로서 빈곤 국가 여성들의 수공예 제품을 공정한 가격에 거래하여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고 지속가능한 지구촌을 건설하는 데 기여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전 세계에 공정무역을 확산해나가고 알리기 위한 날에 시작되었습니다. 공익적인 가치를 추구하니 다수의 시민이 회사의 주인이었으면 하는 생각에 당시 47명의 사람과 시민주식회사 개념의 사회적 기업을 꾸렸죠.”
소액주주들을 모아 자본금 1억5천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어느새 10주년을 맞이했다. 그 시작은 시민단체 활동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993년부터 2007년까지 시민단체에서 활동한 그녀는 특히,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여성단체와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실사구시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어요. 그중 제가 관심을 가진 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통한 빈곤 퇴출이었죠. 그래서 공정무역 중에서도 여성에게 가장 도움이 되고 많은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보통 공정무역 대표 제품으로 커피나 초콜릿 등 식품을 떠올리지만, 그는 여성들이 자기 기술을 갖고 적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수공예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세계공정무역에 참여하는 생산자들의 성비분포를 보면 여성이 70%를 차지하고 그들 중 대부분이 수공예 생산자다.
“수공예 제품을 생산하되, 단지 토착적인 전통공예에서 탈피해 현대화하고 실용성 있도록 만들어 소비자들이 지속해서 소비할 수 있는 공정무역 패션 사업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 3년간 준비과정을 거쳤어요. 사업 준비팀을 꾸리고 자료 및 필드조사도 하면서 공정무역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정리를 했죠.”
그는 필드 조사를 위해 공정무역 핸드메이드 부문에서 강세를 보이는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수공예로 자리 잡은 공정무역기업 두 곳을 방문했고 그중 한 곳의 대표가 그녀를 많이 격려해줬다고.
“그때만 해도 공정무역이 활발하지 않아 한국이 소비적 국가로 참여한다는 게 정말 기쁘다며 굉장히 응원해줬어요. 그 후 한국에 돌아온 어느 날 그분에게 메일이 한 통 왔죠. 이번 네팔 출장에 동행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렇게 열흘간 대표님을 쫓아다니면서 생산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생산관리, 개별 생산자의 장점과 단점 등에 대해 직접 보고 공부할 수 있었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고 느끼며 배울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준 일본 기업의 대표 덕에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기회를 얻은 이 대표는 이를 통해 네팔하고 가장 먼저 거래를 성사시켰고, 현재는 6개 국가와 거래하게 되었다.
“네팔을 시작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에 맞춰 소재의 다양성을 위해 방글라데시,인도, 캄보디아, 베트남, 모로코로 국가를 확대하게 됐어요. 여러 국가와 함께하면서 패션뿐만 아니라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등도 판매 중이죠. 특히, 모로코의 특정 지역에서만 나는 아르간 열매를 채취해 만든 화장품이 인기가 좋아요.”

공정무역을 통해 패션 브랜드로만 한정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재포지셔닝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공정무역의 기본원칙 중 하나인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점에 기인한다.

“공정무역은 사회를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므로 공정한 대가를 치르는 점 외 다른 주제에서도 원칙이 존재해요. 그래서 수공예 제품뿐만 아니라 식품의 경우에도 농약 등은 지양하고 자연농법이 기본이죠.”
천연재료와 친환경적 생산법이라니 소비자가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기업이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장점에도 회사를 일궈나가는 데엔 크고 작은 어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처음엔 어려움이 정말 많았죠. 단순히 영리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를 제대로 실현해야 되고 또 회비나 후원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해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했어요.”
공정무역은 기부하거나 자선을 베푸는 방식이 아닌 동등한 경제 파트너십으로서 경제 동반자 관계를 통해 빈곤 문제를 탈피하자는 취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회사의 유지뿐만 아니라 생산자의 혜택을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사업을 번창시킬 수밖에 없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사업 경험이 전무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거 같아요. 해외 생산자와의 커뮤니케이션부터 생산관리까지 모든 과정이 막막했죠.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비즈니스를 알고 시장에 대해 잘 알았으면 과연 상상하고 실현했겠는가 싶어요. 오히려 알지 몰랐기 때문에 용감하게 시작할 수 있었죠.”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소신대로 밀고 나가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어려움이 있지만, 경험을 통해 학습하면서, 또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면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고 있다.

뿌리 내린 희망
“저는 정기적으로 일 년에 한 번, 담당 디자이너와 무역생산관리 담당자는 일 년에 2번 정도 약 2주간 네팔, 캄보디아 등 생산 국가를 방문해요. 그리고 그 기간에 샘플단계 확인부터 품질관리까지 쉴 새 없이 일하죠. 가끔은 시간이 부족해 숙소에서 밤샘작업을 하기도 해요.”

보름 동안 잠도 못 자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그녀는 거래국가를 한번 방문하면 진이다 빠진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면 그동안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가 그를 반기고 있다. 하지만 생산자들과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녀의 행복 중 하나이다.
“생산자 한명 한명의 이야기엔 그들의 인생이 담겨있어 모두가 기억에 남지만, 그중 어린 나이에 결혼 후 임신한 상황에서 남편과 헤어진 분이 있었어요. 홀로 출산까진 마쳤지만, 그 후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생계곤란에 처하자 동네 사람들이 복지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죠. 그 덕분에 산모 케어와 아이 돌봄서비스, 무상학교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고 지금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엄마는 생산자로 일하고 있어요.”
생산자와 생산조합 중 단지 제품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커뮤니티를 통해 학교 운영비를 기부하거나 청소년 직업학교를 운영하는 등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를 통해 앞선 사례와 같이 빈곤 지역의 아이는 공부할 수 있게 되고 엄마는 생산자로 연결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청년일자리가 심각하지만, 청년들의 눈높이와 직업이 매칭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런데 네팔이나 방글라데시의 경우 절대적인 일자리가 부족하고 그나마도 일시적인 일이 많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여성에게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공정무역은 이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거예요.”
일자리가 없을뿐더러 여성의 경우 특히 가사와 농사일 등으로 인해 규칙적인 출퇴근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정무역을 통한 수공예 제품 생산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투리 시간에 일해 소득을 낼 수 있으니 그들에겐 최고의 조건이다.
“우리에겐 정말 적은 소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소일거리라도 굉장히 소중한 일자리에요. 생산자들에게 여기서 일하게 돼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돼서, 아이들에게 좀 더 영양가 있는 식사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죠. 그 말을 할때 표정이 정말 밝고 행복해보여요.”

공정무역을 통해 이전엔 생각도 못 했던 저금까지 할 수있게 되었다는 이들에게 저축은 단지 여분의 돈을 모으는 행위가 아니다. 미래에 대한 꿈이 생긴 것이다. 몇 달, 몇 년 후의 계획은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많은 이의 삶을 변화시키고 희망을 선물한 이미영 대표는 ‘2017 사회적기업 10주년 기념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상을 수상했다.
“상을 받을 때 10년 동안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하지만 제 개인한테 주는 상이 아니라 전 직원과 타 사회적 기업, 공정무역기업 동지들이 함께한 덕을 대신해서 받는다고 정말 진심으로 느꼈습니다.”
결코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뤄낸 일이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지만, 그녀가 작은 씨앗을 뿌렸음엔 틀림이 없다. 나무가자라 뻗어 나간 가지마다 꽃이 피며 열매가 맺듯 공정무역이라는 나무에 빈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라는 사회적 가치가 결실을 보았다. 나무 한 그루, 한그루에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맺도록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물과 햇볕이 되어 정성껏 일궈나갈 것이다. 하나의 숲을 이룰 때까지.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www.fairtradegru.com / 02)739-7943~4

진유정 기자 jin_yj@mcred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