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 장터
장을 찾기 시작한 건 1986년부터다. 사람들이 가장많은 곳,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 그곳이 바로 장터였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 시절, 글을 쓰다 안 풀릴 때면 어김없이 장을 찾았다. 사람연구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라남도 함평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정영신 작가에게 5일에 한 번 열리는 장은,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의 잔칫날 같았다.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고 장터 어르신들과 한담을 나누다 보면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당시엔 카메라 없이 장엘 다녔어요. 그런데 80년대 후반, 급격한 변화의 물결이 일던 그 시기엔 장터도 예외가 아니었죠. 변화가 눈에 보였고, 온몸으로 느껴졌어요. 이게 바로 움직이는 박물관이지 싶어 그 순간들을 렌즈에 담아내기로 했죠.”
그녀가 전국의 재래시장을 찾아다닌 세월도 30년여 년. 짧지않은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장을 눈으로,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아 왔기에 이제는 옛 장과 현대 장을 어떻게 일치시켜 중간지점을 찾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근래 장터의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장의 현대화다. 전국적으로 장옥(長屋·거리 양쪽에 세운 상점)을 모두 허물고 아케이드(arcade)형태의 천편일률적인 장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
“장은 동네마다 지역적인 설화나 전설이 깃들어서 그 고장의 정서를 담고 있어요. 그런데 서울 장에도, 강원도 장에도 아치형 구조의 똑같은 통로를 만들다 보니 그 지역 특유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죠.
장터 사람들은 난장을 그리워해요. 장옥을 다 허물고 아무런 특색 없이 현대식으로 바뀌는 걸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죠.”
옛 장에서는 장꾼들이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다녔다면 요즘은 캐리어에 물건을 실어 끌고 다니는 풍경 역시 세월의 흐름을 반영한다. 이러한 장터의 소소한 변화를 자연스레 담아내는 작업은 곧 장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다.
2010 성남모란장
“저는 장에 갈 때마다 온몸에 물음표를 달고 다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네 정서를 잘 보존해서 젊은 사람들이 합류하게 할지 고민하며 혼자 애를 태우고 있죠(웃음). 결국, 우리 모두가 앞으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고요.”
장터 사람들
겨울 장 풍경은 참으로 예쁘다. 물을 끓이면 올라오는 새하얀수증기와, 농번기가 끝난 후 한가해진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날의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의 장터, 그대로다.
연세든 노부모가 장에 나섰다가 감기라도 걸릴까, 눈길에 미끄러져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자식들이 만류도 해 보지만, 어르신들은 어김없이 다시 또 장으로 간다. 장은 이미 그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문화 공간인 것이다.
“전부 농사지은 거잖아요. 직접 밭 매고 수확한 것들이니까 맘에 들고 기분 좋으면 얼마든지 덤도 얹어주고 깎아줄 수 있는거지, 어디서 돈 주고 사왔으면 그렇게 못 해요. 당신이 재미로 가서 나물 뜯어와 내다파니 얼마나 정겨워요.”
시골사람들에게 오일장은 당신 삶의 모습이요, 일상의 재미일 터.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할머니들은 못 본 새 쌓인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그렇게 장은 생명처럼 살아 숨 쉰다. 한국인만이 가지는 따뜻한 정(情)도 마음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게 바로 장터만의 매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추운 겨울이 지나면 어느 마을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낯설지 않게 들려온다. 그렇게 하나둘 장에 나오는 사람이 줄어들면, 장의 규모도 자연스레 축소된다. 요즘 그녀가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은 면장(面場)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면장이야말로 우리 장터다운 맛이 나는데, 점점 군장(郡場)으로 통합되어 가는 추세란다. 현재 전통 장을 지키는 나이 든 어르신들마저 돌아가시면 장 자체가 없어질 거라고, 장터 사람들은 입 모아 이야기한다.
“난장(亂場)이 없으면 장 같지가 않아요. 장옥에 자리가 있어도 따뜻한 양지에 앉아 장을 펴는 할머니도 있죠. 간혹 난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면이나 군에서 배려를 하는 곳이 있는데, 어르신들께 차비와 밥값을 지원해 드려요. 어르신들은 돈 천 원도 귀하니 그 돈 아끼려고 한겨울에도 도시락을 싸오시죠. 화롯불에 물을 데워 누룽지 끓여 잡수시거든. 그러니 당신네 농사지은 거 부담 없이 가지고 나와 친구들과 놀면서 팔아도 그만, 안 팔아도 그만이죠. 안 팔리면 나중에 아는 사람한테 도매로 넘겨도 되니까. 이처럼 국가적인 차원에서 장터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 우리 고유의 장터를 유지하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친구들을 상대로 강의할 기회가 생길 때면 “도서관에 앉아 두꺼운 책 한 권 보는 것보다 장에 한번 나가보라”고 권한다는 정영신 작가. 책에도 그만의 철학과 지식이 담겨 있지만, 우리 삶의 지혜를 생생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는 데는 장만한 데가 없기 때문이란다.
2010 경북영천장
“‘장터’라고하면 민초의 삶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고 관심도 가지려 하지 않죠.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치열하게 살아요. 우리 지역경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죠. 그들에게는 시간관념이 없어요. 때가 되면 화롯불에서 같이 밥해 먹으면 되고, 집에 가기 위해 막차만 타면 되거든요. 그 안에서 정이 흐르죠. 장은 정을 떠나서는 얘기가 안되거든요. 그런 걸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게 ‘시골 장터’예요. 모든 걸 가장 총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삶의 터전이죠.”
이야기가 있는 공간
올봄 합천 초계장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였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돌보기 위해 그를 손수레에 태워 함께 장에 나선 것이다. 온종일 남편 곁에 꼭 붙어 아이 돌보듯 그의 얼굴을 닦아주고 미음을 먹이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삶의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장에 가시는 80대 후반 노모를 손수레에 싣고 장에 나온 50대 아들은 지적장애인이었다. ‘우리 어머니 편히 모시는 방법은 이 리어카밖에 없다’며 솜이불을 두툼하게 덮어 드린 어머니 곁엔, 오늘 장에서 팔아야 할 시금치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겨울철 흔하디흔한 시금치 몇 단 팔아봐야 손에 쥐는 돈은 몇푼 남짓. 그렇게 돈을 벌어 어머니와 가장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이냐 물으니 어머니께 따뜻한 국밥 한 그릇 원 없이 사드리고 싶단다. 멋쩍게 대답하며 떠오르는 그의 선한 미소는 장에서도 값을 매길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변한 장의 모습을 찾아 길을 떠난다는 정영신 작가는 요즈음 장터의 사계절을 담기 위해 분주하다.
“장터 사람의 총체적인 삶을 그리고 싶어요. 한 사람의 일상을 담는 거죠. 농사지으면서 오일장에 나오기 위해 나머지 4일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부터 장에 나가고, 파장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 지어먹고 사는 아주 평범한 하루를요. 장은 계절마다 달라요. 의복이 달라지듯 사람의 모습도 변하죠.”
전라도 강진의 시골 마을은 그 시작이 될 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 앞으로 1년은 아마도 그곳과 서울 집을 오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단다. 그 작업을 통해 인문학적으로 노인 문제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욕심도 갖고 있다고.
“저에게도 연로하신 어머니가 있고, 반평생을 장터에서 어르신들을 만나 소통해왔잖아요. 저 역시 나이를 먹는 보통 사람이다 보니 노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결국은 우리 모두의 문제니까요. 그렇지만 이 모든 작업은 결국 ‘장’과 연결돼요. 그게 중심이 될 거고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장에서 살았으니 장에서 죽을것’이라 말할 수 있다는 정영신 작가. 장을 지키는 노인의 굽은 등과 어깨에서 세월의 무게와 변화를 실감한다는 그녀가 2018년에 그려낼 한국의 장터, 아직은 정이 살아 숨 쉬는 장터 사람들의 풍경이 무척 기대된다.
권성희 기자 song@mcred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