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때가 편해요. 지금이 훨씬 힘들어요” 작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후배 키우고 있는 강수연 프로
골프가이드 2019-04-08 13:42:18

강수연(43). 그는 한때 잘 나가는 여자골프 선수였다. 작년 10월 은퇴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여자골프 선수 중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고참이었다.

174㎝나 되는 큰 키에 늘씬한 몸매, 잘 생긴 얼굴로 일찍부터 필드 위의 패션 모델로 불렸다.
1997년 프로에 입문해 KLPGA 투어에서 8승을 거뒀고 미국 LPGA 투어 1승, 일본 JLPGA 투어에서 3승 등 통산 12승을 거뒀다.
그런 그가 지금은 경기도 화성시 동탄2신도시 리베라CC 내 골프트레이닝센터(체리동) ‘강수연 골프아카데미’에서 후배지도에 여념이 없다.
“선수 때가 편해요. 지금이 훨씬 힘들어요. 선수를 그만 두면 편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선수 땐 혼자 잘 하면 됐지만 지금은 가르치는 얘들도 많고 딸린 게 많잖아요.”
그에겐 2000년대 초반이 전성기였다. 2000년 ‘제14회 한국 여자프로골프 선수권대회’와2001년 ‘제15회 한국여자프로골프 선수권대회’를 잇따라 제패했다. 또 2000~2002년
‘하이트배 여자프로골프대회’ 1~3회를 석권했다. 같은 대회에서 3년 내리 우승한 것이다.
이와 별도로 2000년 KLAGC(아시아여자골프서키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여자오픈에서 각각 우승했다.

 


이같은 활약으로 그는 2001년 KLPGA 투어 상금왕, 최저타 수상, 국내 부문 대상 등을 휩쓸었다.
2001년 미국으 로 건너가 LPGA 투어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05년 8월 LPGA 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미국에 진출한 지 10년이 지난 2011년 그는 일본으로 무대를 옮겼다. 2013년 ‘스탠리 레이디스 골프토너먼트’에서 우승했고, 2016년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과 2017년 ‘리조트 트러
스트 레이디스’에서 각각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레슨 시작하기 전까지 푹 쉬었어요. 30년 가까이 집에 없었으니까요. 미국에서 10년, 일본에서 8년을 지냈어요. 올 3월초 이 일을 시작하기 전까진 집에 있었죠.”
‘강수연 아카데미’를 개설한 것은 2년 전이다. 골프연습장과 파3홀을 갖춘 새 골프트레이닝센터가 문을 열면서다. 은퇴를 대비해서 미리 개설해 놓은 것이다.
당시엔 그가 현역 선수로 뛸 때여서 6살 아래 남동생(강진구)이 맡아서 했다. 동생도 아마추어 때까지는 골프선수로 뛰다 대학 때 그만 뒀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레슨을 하는 아카데미였다.
강 프로는 지금 여자 선수 6명만 지도한다. 작년 KLPGA 투어 대상을 받은 최혜진도 가끔 원 포인트 레슨을 받으러 온단다.
“선수가 많이 와도 더 이상 지도할 수가 없어요. 전 6명이 맥스(한계, 최대치)라고 봐요. 그 이상이 되면 선수 개개인에게 집중할 수가 없죠. 학생들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해요. 자리를 빨리 잡아줘야 되니까요.”
그는 하루 거의 대부분을 연습장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데 보낸다. 오전 10시께 나와 오후 5시께 집에 들어간다.

요즘은 얘들이 쇼트게임을 너무 몰라요.
전 사실 원래 국가대표팀을 지도해 보고 싶었어요. 과거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독보적이었죠. 그러나 지금은 동남아나 일본 등에서 아마추어가 엄청 강해졌어요. 코치진이 너무 좋아졌기 때문이죠. 우리도 전문 코치진으로 바뀌어서 지도해야 한다. 우리는 국가대표 출신이 해외에서 뛰고 있으니 국가대표가 더 탄탄해져야 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 생활로 더 빨리 오게 된 이유도 있죠. 선수로서 시드도 있고 더 뛸 수도 있었지만 아름다울 때 떠나라는 말을 떠올렸어요. 물론 체력적으로 힘든 점도 있었죠.”
지도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강점은 무엇일까.
“아직 파악을 다 하지는 못했어요. 그러나 선수 생활을 오래 해서 선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많이 알고 있죠. 한국과 미국, 일본 3국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니까요. 예컨대 코스 매니지먼트나 시합에 대한 것, 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마음 가짐과 대회 중 위기 극복 능력이나 방법 등은 누구보다 제가 강하다고 봐요. 일반적인 스윙 같은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얘기고...”

그는 선수 생활 중 일본에서 우승할 때가 가장 기뻤고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한국에서 우승할 때는 제 전성기였죠. ‘우승’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죠. 우승은 내가 해야 되는 것, 못하면 화가 나고...제 자신을 내려놓지 못했어요. 알고보니 다른 선수들도 전성기가 있는데 저만 그렇다고 생각했으니.”
그는 미국에서 10년간 선수로 뛰다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때 그는 은퇴를 할까도 고민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내려놓았다. ‘내가 누구다’라는 생각 대신에 ‘나는 초년생’이라고 마음을 내려 놓았다.

 


“그때 처음 골프장 풍경이 제 눈 안에 들어왔어요. 골프장의 수목이 아름답게 느껴졌죠. 공기도 좋고 그런 기운을 느꼈어요.”
비로소 그는 즐길 수 있는 골프를 하게 됐다. 온천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녔다. 정말 즐거웠다.
당초엔 1, 2년 뛰다 그만 두려고 했는데 재미가 있어서 계속 뛰었다.
그러던 중 우승이 찾아왔다. 2013년 10월 13일 JLPGA투어 ‘스탠리 레이디스 토너먼트’. 일본에서 첫 우승이었다. 2005년 미국 LPGA 투어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우승한 지 8년만이었다.
“이러다가 또 미끄러지는 것 아닌가 염려하다 우승을 했어요. 일본에서 첫 우승은 그런 기쁨이 있었어요.”
그는 일본 시즈오카현 도메이 골프장(파72. 6540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8개와 보기 2개를 묶어 6언더파 66타를 쳤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3위에서 3라운드를 시작한 그는 합계 12언더파 204타를 쳐 요코미네 사쿠라 등을 3타차로 제치고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일본에서 세 차례 우승한 뒤 느낀 기쁨 모두 특별해, 세 번째 우승 때는 뜻하지 않게 연장전까지 가 우승하자 ‘우승’은 만들어 지는 것 같다란 느낌 들어

 

두 번째 우승은 2년 8개월 뒤인 2016년 6월 12일이었다.

‘산토리 레이디스 오픈 골프대회’에서다. “대회 마지막 날 잘 버텨 우승하고 나니 또 그 나름의 기쁨이 있었죠.”
일본 효고현 고베에 위치한 롯코 골프클럽(파72?6천 511야드)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그는 특급 신예 선수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스타일을 밀어붙였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집념으로 우승을 일궈냈다.
강수연은 이 대회 첫날 4타를 줄이며 공동 5위로 출발해 2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8개의 버디로 일본 데뷔 최저타를 기록, 단독 선두로 나섰다. 그러나 3라운드에선 버디와 보기 2개씩 맞바꾸며 점수를 줄이지 못했다. 4라운드에서 15번홀까지 파 행진을 거듭하다 가장 어려운 16번홀(파3)에서 보기를 해 한 타를 잃었지만 우승을 했다.

 

 

그는 2017년 5월 28일 ‘리조트 트러스트 레이디스’에서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때는 사실 우승을 전혀 생각지 못했어요. 마지막 날 잘 쳐 연장전에 갔는데 3명의 선수가 겨뤘어요. 당시 1위를 달리던 선수가 2타 차로 앞서 있었는데 마지막 18번 홀에서 그 선수가 보기를 하고 제가 버디를 해 결국 연장전까지 가게 됐어요. 그런데 신기한 게 연장전을 18번 홀에서 치렀는데 바로 직전 그 홀에서 칠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어요. 드라이버 거리도 그렇고 퍼팅 거리도 똑같이 남았어요. 흡사 복사판을 보는 것 같았죠. 그때 ‘우승’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만들어지는 것 같다란 느낌을 받았어요.”
이때 그와 연장전을 펼친 선수가 바로 일본의 후지타 사이키와 전미정이다. 일본 나라현 오크몬트골프장(파 72. 6538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후지타는 18번 홀(파4. 388야드)에서 1.5m 거리의 파 퍼팅에 실패했고 강수연은 버디 퍼트를 성공시켰다.
세 선수가 18번홀에서 겨룬 연장전 첫 경기에서 그는 버디를 했고 나머지 두 선수는 파에 그쳐 결국 그가 우승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문화나 음식이 비슷해 편하게 지내, 남을 배려하는 일본 국민들로부터 많은 것 배워, 국내 여자대회 계속 활성화되도록 선수 스스로 인식도 바꾸고 더 노력해야

 

강수연은 미국에서 지낼 때보다 일본에서 지낼 때가 좋았다고 했다.
“문화나 음식이 비슷하니까 편했어요. 미국 사람들은 지극히 개방적인데 반해 일본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는 식이죠. 일본 목욕탕에 가보면 정리정돈이 아주 잘 돼 있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거죠. 사실 저는 일본에 가기 전 엔 일본을 아주 싫어했어요. 그러나 가보니 배울 게 많더라구요. 일본에서 수년 전 쓰나미가 났을 때 일본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는 국민성을 봤어요. 식당에 영업을 하면서도 간판은 꼭 꺼더라구요. 또 남을 배려해서 꼭 필요한 것만 사는 모습을 봤어요. 정말 많이 배웠죠.” 그는 일본에선 프로암 대회를 우리와는 전혀 다르게 인식한다고 했다.

 

 

“일본에선 프로암 대회에 나온 스폰서나 일반인들을 고맙다고 대접하는 날로 생각하죠. 선수들이 함께 라운드 하는 파트너들에게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대회 전 하루 연습하는 날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프로암 때 참가자들이 컴플레인을 걸면 선수들한테 바로 연락이 옵니다. 일본에선 스폰서가 있고 그 밑에 협회, 다시 그 밑에 선수가 있다는 인식이 확고하죠. 스폰서에 대한 예의도 지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면이 없어 안타까워요. 선수들이 더 노력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가 걱정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현재 여자 투어(KLPGA 정규투어)가 남자 투어(KPGA 코리안투어)처럼 되지 않아야 한다는 우려 때문이다.
올 시즌 여자 투어는 대회 수 29개에 총상금 226억원 규모다. 반면 남자 투어는 17개 대회에 총상금 146억원이다.
“(여자)대회가 계속 활성화돼야 하는 데 선수만 내세워선 이런 투어가 언제까지 보장되진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나도 사실 예전엔 잘 몰랐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래요.. 미국에서 여자투어가 무너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미국도 40개 안팎이던 대회수가 10여개로 뚝 떨어진 적이 있죠.”

 

지금까지 골프를 할 수 있어 행복, 후배들도 부상이 있을 땐 쉬면서 관리를 철저히 해줘야 좀 더 오래 현역으로 뛸 수 있어. 주말 골퍼들도 골프를 즐기면서 치면 더 좋은 결과 있을 것

 

강수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1993년 상비군을 거쳐 1994년부터 3년간 국가대표를 지냈다.
골프 경력 31년에 프로 생활만 21년차다.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게 행복했어요. 선수 생활을 하면서 허리디스크가 있어 스윙도 제대로 안될 때나 아플때도 시합에 나갔죠. 그러다보니 회복에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는 후배 선수들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부상이 있을 때는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쉬는 게 중요합니다. 관리를 철저히 해주고 쉬면서 재활도 해줘야죠. 연습만 하지 말고...지금은 서른 조금 넘으면 현역에서 은퇴를 하니 안타깝죠. 앞으로 자기 관리를 잘 해서 오래 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선수는 골프에 지쳐서 도피하는 측면이 있어요. 즐거움을 빨리 찾았으면 해요.”
주말 골퍼들이 골프를 잘 칠 수 있는 팁을 물었다.
“너무 잘 치려고 하지 말고 즐기면서 쳐야죠. 스코어만 좇다보면 안될 때가 있어요.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골프장의 나무나 잔디를 보며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겐 이길 수 없어요. 스윙은 모든 사람이 다 다르죠. 스코어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즐기는 골프를 해야겠죠.”
강수연은 선수 시절 한때 후배들에게 ‘무서운 사람’으로 통했다고 한다.

 

 

“‘무섭다’ ‘그냥 무섭다’고 했어요. 특히 눈이 무섭다는 얘기를 많이 했죠. 시합에 나가면 ‘눈이 무서워’란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특히 일본 선수들이 그랬어요. 사실 저는 화를 잘 안 내는데 한번 내면 무섭게 내요. 그러나 지금은 많이 누그러졌죠.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 많아지고. 그래서인지 그동안 곁에서 봐왔던 후배 선수들은 ‘많이 유해졌다’고 해요.”
강수연은 8년전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불교나 기독교가 서로 의지하는 게 다른 것 같다. 개종 후에 참 은혜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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