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태, GMI골프그룹 대표이사 겸 대한골프전문인협회(KGSA) 이사장
골프가이드 2019-12-09 16:14:16

- 20년전부터 시작해온 골프포럼이 최근 1,200회를 달성하다
- 그의 인생은 ‘한국 골프산업의 발달사’와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마산상고(지금의 용마고)를 나와 제일모직 경리과에 입사해 일하던 안 이사장은 어느 날 갑자기 안양CC로 발령이 났다. 그가 37세 때였다. 삼성경리사관학교로 불리던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골프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그는 사표를 썼다. 당시 안양CC는 9개월에 한 명씩 직원이 이직했다. 그만큼 힘든 일자리였다. 이 회장이 이틀에 한번 꼴로 골프장에 나와 직원들을 하드 트레이닝 시키던 때였다. 그걸 아는 그도 겁이 나서 사표를 쓴 것이다. 마침 다른
그룹에서도 오라고 한 터였다. 그는 비서실장에게 1년만 근무한다는 조건으로 안양CC로 갔다. 그렇게 간 곳에서 그는 10년을 근무했다. 안양CC 총지배인까지 지냈다. 그가 골프장 경영인, 골프코스 설계가 등으로 평생을 보내게 된 인연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취재 김대진 편집국장 | 사진 조도현 기자, 일부 안용태 대표 제공

 

 

“안 군, 돈 좀 빌려줘. 50만원만 줘.”
회장님이 내기에서 돈을 잃고 난 뒤 한 얘기였다.
즉시 돈을 갖다 드렸다.
“회장님, 사인해 주십시오”
회장님은 사인을 해줬다.
이틀 뒤 회장님은 빌려간 돈을 갚아줬다.
돈봉투를 받자 “니는 왜 안주나?”
“예?...”
“영수증 안주나?”
안 군은 영수증을 갖다드렸다.
안 군은 안용태(73) 이사장. 회장님은 지금은 고인이 되신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1910~1987) 회장이다. 1980년대안 이사장이 안양CC 총지배인으로 있을 때였다.
두 사람은 모두 경남이 고향이다. 이 회장은 경남 의령, 안이사장은 경남 함안이다.
그는 이병철 회장에게서 혹독한 수업을 받았다. 그는 “안양CC 출신에겐 이병철 회장님이 선생님이었고 내가 조교였다. 이젠 회장님이 안계시니 내가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는 이 회장의 배려로 골프의 발상지로 꼽히는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루스 등 세계 85곳의 유명 골프장을 직접 걸어서 답사하며 공부하는 행운도 가졌다. 그 후 그는 골프코스 설계가로 거듭 났다. 전 세계에서 골프장 사장 출신이 설계를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경희대에서 골프코스 설계 관련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코스 설계 관련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국내에서 그가 유일하다. 그는 일동레이크CC 대표, 제1대 잔디연구소 소장 등을 거쳐 지금은 GMI그룹 대표이사와 대한골프전문인협회(KGSA) 이사장을 맡고 있다.
KGSA가 주관하는 골프포럼이 최근 1,200회를 맞았다. 그가 20년 전부터 시작해온 포럼이다. 초기엔 월 1회 하던 것을 주 1, 2회로 바꿨다. 수요골프포럼과 골프&옥타 CEO(약
칭 G 옥타) 강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인생은 ‘한국 골프산업의 발달사’와 궤적을 같이 하고 있다.

안양CC를 ‘골프장 CEO 사관학교’로 일컫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실제 안양CC 출신 인사들은 국내 여러 곳의 골프장 CEO로 나가 전문경영인으로서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해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회장님은 창사 이래 결재한 적이 없어요. 사인을 받은 분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지요. 대개 보고를 받고 구두로 ‘하라’고 지시를 하셨지요. 그런데 제가 돈을 갖다 드리고 ‘사인’을 해달라고 했으니 아마 회장님께서 별나게 생각하셨겠지요.”
안 이사장의 얘기다.
이 회장은 젊은 지배인이 당돌하기도 하고 또 꼼꼼하게 일처리를 하는 것을 보고 내심 쾌재를 불렀을 수도 있었을 터다. 그러나 이 회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느꼈는지는 본인만 알뿐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어떻든 그런 지배인에게 ‘영수증’을 요구하며 조크한 이 회장의 대응도 가히 수준급이다. 흡사 도(道)를 깨친 스님들이 나누는 선문답을 연상케 한다.
안 이사장은 “안양CC 출신은 골프장 CEO로 실패한 적이 없다. 반면 동래CC 출신으로 성공한 CEO도 없다.”고 했다.
안양CC나 동래CC 모두 삼성그룹 골프장이긴 하지만 그 분위기는 확연히 달랐다고 한다. 안양CC엔 이 회장이 이틀이 멀다하고 나왔고 부산 동래CC엔 이 회장이 자주 오지 못하니 딴판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철저한 분이었다.
골프장 한켠에 기른 상추 등 무공해 채소도 갖고 가면 꼭 돈을 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골프장에 나와 “16번 홀 우측 페어웨이 옆 은행나무가 요즘 왜 비실한가?”란 식으로 물어보곤 했다.
골프장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도저히 답변을 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안 이사장은 “‘맹장(猛將) 아래 용졸((庸卒)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면서 “안양CC가 인재 배출을 통해 골프계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했다.
안양CC를 ‘골프장 CEO 사관학교’로 일컫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실제 안양CC 출신 인사들은 국내 여러 곳의 골프장 CEO로 나가 전문경영인으로서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해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골프업계에선 안양CC 출신이라면 골프장 경영에 관한한 믿고 맡길 수 있는 공인된(?) 인재로 여길만큼 신뢰도가 높다.
이 회장님 부자(아들 이건희 회장)로부터 누구를 부킹해달라고 지시를 받은 적이 10년간 단 한번도 없다. 두 분 회장님은 의식이 글로벌 스타일이었다.
“회장님은 10년간 그 누구도 부킹(예약)을 해준 적이 없다. 당신도 예외가 없었다. 정말 지독한 ‘자기학대’였다.”
안 이사장의 회고다.
누군가 이 회장에게 부킹을 부탁하면 이 회장은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지배인이 하는 겁니다.”하고 부탁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때문에 당시 안기부장실에는 전화 15대를 돌려가며 안양CC에 부킹을 하려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안 이사장은 “이 회장님 부자(이병철 회장과 아들 이건희 회장)로부터 누구를 부킹해달라고 지시를 받은 적이 10년간 단 한번도 없다.”면서 “두 분 회장님은 의식이 글로벌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이병철)회장님은 70대도 치시고...‘수요회’ 멤버 등 여러 팀과 쳤다. 주로 경제인 중심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님이나 박태준 포스코 회장님, 김종필 전 총재 등과도 가끔 치셨다.”고 했다.
1980년대 캐디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 그는 캐디에게 가장 먼저 공을 치게 했다. 골프장 경영자가 골프를 못치면 조금 문제가 있지만 캐디가 못치면 큰 문제가 된다는 소신 에서였다.
안 이사장은 안양CC 총지배인 때 고정관념을 깨는 몇 가지 혁신적인(?) 일을 했다.
캐디에게 가장 먼저 공을 치게 한 것도 그였다.
“골프장 경영자가 골프를 못치면 조금 문제가 있지만 캐디가 못치면 큰 문제가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골프도 못치는 사람이 경기 보조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그에겐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골프채도 잡아보지도 못했을 때 캐디에게 공을 치게 했다. 미니 6홀을 24타 이내로 못치면 신입캐디 수료를 안시켰다.
그는 매년 ‘전국캐디골프대회’도 열어 16회까지 계속했다.
“캐디들에게 전문성을 제고하고 자존심을 살려 주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캐디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반면 전국의 골프장으로부터는 욕을 먹어야만 했다.
당시에 캐디가 골프를 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때였다. ‘캐디’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는 언감생심이었다. 한마디로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누구도 자신이 ‘캐디’란 사실을 밝히기 꺼렸다.
그는 캐디 수료식 때 가족을 데려오라고 해 밥도 사주고 선물도 줬다. 그는 수료식에 참석한 가족들에게 “내가 책임질테니 가정에서도 잘 살펴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자매 캐디가 20쌍이나 생겼다. “언니야, 정말 괜찮으니 같이 한번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지망생이 몰려들었다.
안양CC는 여느 골프장과 달랐다.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캐디의 인격을 무시하면 절대 용서를 안했다. 누구라도 캐디의 손목을 잡으면 그 사람 집에 (내가) 손수 편지를 썼다. 그러니 안양CC 회원들은 그 누구도 어깨에 힘주는 사람이 절대 없었다. 단 한 사람도...”
각종 경영혁신을 통해 안양CC를 국내 최고의 골프장으로 거듭나게 했다. 캐디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를 통해 캐디가 전문성과 자존심을 갖도록 했고 고정관념을 깨는 인사를 실시했다. 잔디 관리 요령을 담은 달력도 만들어 전국 골프장에 돌리는 등 감춰왔던 노하우와 정보, 기술도 과감하게 공개했다.
한번은 안양CC 기관실 전기기사를 그린키퍼(Green Keeper)로 발령을 냈다. 당시 코스담당자는 건드리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당사자는 반발했다. “왜 저를 그 자리에 발령냈습니까?”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지 않느냐”는 게 안 이사장의 대답이었다.
그는 비료나 농약을 뭘 주든 잔디가 죽으면 그 자신이 책임진다고 했다.
이에 안심한 그 담당자는 순순히 그 직을 받아들였고 조경기사 자격증까지 따 70대 중반인 지금도 조경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특수직’이란 얘기를 하지 마라”며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것이다.
간부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당시 그린키퍼들은 잔디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담은 잔디관리 요령, 일종의 ‘레시피’를 숨겨놓고 절대 내놓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게 밥줄이자 비밀병기였던 셈이다.
그러니 골프장 관리동에 들어가 이 레시피를 훔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 이사장은 그걸 비밀로 해선 안된다고 판단했다.
그는 비료나 농약을 시기별로 언제 어떻게 주고 잔디를 관리해야 하는지 이를 작은 달력으로 만들어 공개, 전국 골프장에 돌렸다. 안양CC의 노하우가 담긴 레시피였다.
그러자 전국 그린키퍼들이 들고 일어났다. 자신들의 밥줄이 깨진 것이라고 여긴 탓이다.

 

 

그가 그 후 잔디연구소를 만들고 초대 소장을 맡아 봉사하며 그린 키퍼들을 배출해 온 것도 이런 신념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코스 관리는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러나 잔디연구소가 생겨 전문적으로 그린 키퍼들을 양성하면서 과학적인 관리가 시작됐다.
그는 “그린 키퍼에 관한한 지금도 서울대 농대보다 잔디연구소에서 안양식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더 알아준다.”고 했다.
그가 고안해낸 ‘쏘리 미팅(Sorry Meeting)’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회의 방식이었다. ‘쏘리 리스트’를 작성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회의로 인원이 절반 가까이 줄어도 효율은 두 배로 늘어났다. 그 스스로 ‘세계적 인문학적 발명품’이라고 자부할만큼 애착을 갖고 있다.
그가 골프장 경영을 하며 고안해낸 것 중 하나가 바로 ‘쏘리 미팅(Sorry Meeting)’이다.
그 결과 “남 탓을 하던 사람들이 모두 자신 탓을 하고, 직원이 40% 줄었는데도 일은 두 배로 하더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회의라고 하면 무언가를 요구하는 회의다. 이건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는 ‘쏘리 리스트’를 작성해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회의를 했다. 예컨대 매트를 구매해 달라고 요구받은 부서에서 ‘매트 구매 요구를 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못했고 언제 해드리겠다.’는 식으로 적어서 나와 회의 때 얘기한다.”
그의 얘기다.
경남 사천에 있는 사천CC가 개장할 때 캐디교육을 하러 갔을 때다. 안양CC 출신 장 모씨(여)를 그 자리에서 만났다. 출산 후 캐디를 하러 왔다고 했다.
장 모씨는 안양CC에 근무할 당시 17, 18번홀에서 비가 왔는데 클럽백을 우비로 덮지 않은 일로 사표를 제출한 일이 있었다. 17번 홀이 파3로 짧고 18번 홀도 파4 홀이니까 금방 끝날 줄 알고 우비를 덮지 않아 고객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여겨 진심으로 사죄를 하며 사표를 제출한 것이다.
“그걸 내가 찢어버렸다. 실수를 한 뒤 잘못을 깨달으면 용서할 수 있다. 아니 내가 용서한 것도 아니고 정말 고맙다고 했다. 우리의 의식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이 쏘리 미팅은 당시 경제 신문에서 대서특필되기도 했다.
“삼성그룹에서 그룹 방침으로 매일 아침 8시 쏘리 미팅을 하라고 했다. 지금도 필름이 있다. 그러나 결국 흉내도 못냈다.”
그는 “이 쏘리 미팅이야말로 ‘세계적 인문학적 발명품’”이라고 했다.
안 이사장이 쏘리 미팅을 고안해 낸 데는 6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365일 캐디와 독대를 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가 가능한 시간을 택하도록 하고 “식사 동반자도 (네가) 정해라”고 했다. 그렇게 소통한 결과 나온 결과물이 바로 쏘리 미팅이었다.
그는 “지금도 경쟁국을 초월해 나가려면 우리나라가 이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세계 85곳의 골프장을 현지 답사하며 공부했다. 그후 골프장 경영자 출신의 코스 설계 전문가로 거듭났다. 그는 경영적 코스 설계와 감리를 통해 공사비를 절감하고 매출을 증대시켰다. 그의 독특한 코스 설계 스타일은 종전의 양식과는 아주 달랐다.

 

 

그는 이 회장의 지시로 세계 85곳의 골프장을 현지 답사하며 공부했다. 물론 공은 한 번도 안쳤다. 클럽하우스 주방부터 해저드, 벙커까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는 “용인에 골프장 건설을 위해 설계를 받아보니 직접 공부를 시켜야 되겠다고 회장님께서 생각하신 것”이라며 “당시 회삿돈 7천만 원이 들었다. 세인트 앤드루스 등 세계 유명한 골프장은 거의 다 가봤다. 그 중 3분의 1 정도는 코스 설계가인 고 임상하 씨와 동행했다. 내가 기회를 줬다. 그 후 나와 공동 설계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중국 북경의 백작원골프장과 위해 스톤베이(Stone Bay)골프장 등 7, 8개를 설계했다.
그는 “사장 출신이라 코스 설계를 바꿀 수 있는 역량이 있다. 모든 고객의 불편함을 알기 때문”이라면서 “일반 코스 설계가는 설계를 위한 설계를 하는 반면 나는 경영적 코스 설계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블루원 경주는 종전의 9홀+9홀=18홀이 아니라 6홀+6홀+6홀=18홀로 설계해 연간 15억 원의 매출 증가를 가져왔다. 그늘집이 필요 없다. 이건 세계 최초다. 현재 세계 발명특허 심사중”이라고 했다.
그는 코스 설계감리(Value Engineering)도 여러 건 수행했다. 레이크우드CC는 과다 설계 등 30개 항목을 수정해 착공 전 30억 원을 절감시켰다. 그게 다 골프장 사장을 했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최근 블루원천북CC 24홀 설계를 마쳤다. 6개홀씩 4개 코스다. 이런 스타일의 코스 설계로는 세계 최초다.
롯데가 부산 금정산에 건설 예정이었던 골프장은 3개홀씩 6개 코스 18홀을 설계해줬는데 안타깝게도 허가가 나지 않았다. 중국 두만강 유역 훈춘에는 3개홀×6개 코스=18홀, 3개홀×6개 코스=18홀 총 36개 홀을 설계해줬지만 돈이 없어서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형이 그렇게 생기면 바로 그렇게 해야 한다. 앞으로 코스 설계는 이런 스타일로 갈 것”이라며 “의사가 환자를 위해 존재하듯 코스 설계자도 돈을 벌 수 있도록 설계하고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KGSA는 한국골프계의 싱크탱크로서 독보적인 실적을 보이고 있다. KGSA는 자발적인 지식 기부 차원의 봉사자 4인방이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자기단체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다른 협회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한국의 NGF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KGSA가 주관하는 ‘수·목 골프교실’에선 수요골프포럼과 골프&옥타CEO 강의를 시행한 이후 1,200회를 기록하게 됐다. 이는 KGSA가 골프계의 싱크탱크로서 국내 골프산업계를 통틀어 독보적인 실적이다.

KGSA는 자발적인 지식 기부 차원의 봉사자 4인방이 이끌어가고 있다.
김맹녕 회장을 필두로 수요포럼 운영은 최상진 회장이 주관하고, G옥타CEO과정은 안부치 회장이 주관한다. 인재개발원은 안용태 KGSA이사장이 맡아 이끌어가고 있다.
KGSA 멤버는 골프산업계 전체의 전문인재가 집결돼 있어 어느 한 단체의 이익을 대변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골프 100년사를 거듭나게 써 내려갈 수 있는 유일한 구성원의 집합체로 자부하고 있다.
KGSA는 미국의 NGF(미국골프재단)와 역할이 유사하다. 그동안 1,200회를 이어온 모든 강의와 워크숍 그리고 계도형 세미나 등에는 우리나라 골프산업 발전에 대한 염원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다른 이익단체화는 완전히 차별화된다고 볼 수 있다.
KGSA는 ‘골프전문경영사’ 등 지금까지 1천여명에게 전문자격증을 수여해왔다. 또한 골프장 CEO 등 경영자의 배출전담 창구가 되고 있고 골프장 임직원의 연수교육 실적은 연 인원이 3만 명을 넘어섰다. 골프계에 학술적인 기여와 해외진출 부문도 전담하고 있다.
KGSA는 ‘자격기본법’에 따라 ‘골프전문경영사’를 비롯한 6가지 전문자격증 과정을 두고 지금까지 1천명에게 전문자격증을 수여해왔다. 이들이 우리나라 골프장의 품질과 서비스의 질을 더 높혀 서비스산업의 위상을 올리는 데 숨은 공로자의 역할을 하게 했다.
최근엔 ‘코스리뉴얼설계사’ 제도 추가 시행과 골프자격증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골프장경영평가사’를 업계 최초로 배출하게 돼 골프산업 전문성을 더욱 다지고 있다.
안용태 이사장은 안양CC 총지배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국 골프장의 최고경영자(CEO), 특히 혁신적인 경영자는 거의 독점적으로 배출해 온 주역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북경 백작원골프장을 위탁경영해 중국 현지 골프전문가를 양성, 백작원 출신의 인재가 중국골프장CEO로 배출된 인원이 20명이 넘어서면서 백작원이 ‘중국의 안양CEO사관학교’란 별칭도 얻었다.
또 골프장 일반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혁신리더 양성과정’ 등의 연수생 배출만 해도 지금까지 연 인원 3만 명을 헤아린다.
안 이사장은 국내에선 유일한 골프경영전문지를 20년간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있으며 골프전문서적도 10권을 저술했다. 베트남 태국의 해외골프장 6곳을 정밀 경영진단해 전문지식의 전수 측면에서도 국내 어떤 골프관련 단체들에게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앞서가고 있다.
안 이사장은 “이같은 모든 업적은 원로 4인방의 순수한 봉사정신에서 비롯됐으며 이들의 바람은 오직 ‘한국 골프계 경쟁력의 세계적 우위’”라며 “그것이 끊임없는 진전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배경이 되고 있어 여간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고 밝혔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9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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