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 행복한 날
한은혜 2017-05-11 18:48:20

“우리 드디어 결혼하는 거야? 결혼식은 어디서 할까?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복인은 한껏 들떠 있었다. 조금 전 양가 상견례 자리에서의 긴장감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꿈으로 부풀어 올랐다.

지난 2년 동안의 우여곡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짜릿했다. 우연히 모처럼 맘에 쏙 드는 남자를 만나 가슴 설레었던 시간, 어떻게 고백을 할지 망설이고 애태우던 시간, 어느 날 정말 영화처럼 마음을 알기나 하는 듯이 다가와 준 그 남자 우식, 그리고 교제를 하면서 있었던 그 많은 고비들이 순식간에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그 순간순간 아차 했으면 오늘 이 행운은 결코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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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과정은 모두 끝나고 이제 결혼이 기정사실로 되었으니 어찌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겠는가? 이제 고생은 끝나고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복인의 마음은 또다시 흥분과 기대로 벅차올랐다.

“나야 복인이가 좋다고 하면 다 좋지.”

우식은 언제나처럼 말했다. 그는 복인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었다. 동의라기보다는 존중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툴 일도 없었다. 복인은 그런 그가 항상 믿음직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래? 난 결혼식만큼은 좀 신경 써서 멋지게 하고 싶어. 돈 많이 들여서 크고 화려하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아담하고 조용하면서도 우아하고 세련된 그런 곳이면 좋을 것 같아. 호텔이고 어디고 간에 너무 시끄럽고 복잡한 건 피하고 싶어. 우식씨도 그렇지? 여긴 어때? 내가 몇 군데 검색해 봤는데 그중 여기가 마음에 드는데. 동화 속에 나오는 작은 궁전 같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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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말 환상적인 분위기네. 그런데 너무 멀지 않을까? 손님들이 많이 불편해할 것 같은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당연히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운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렇지만 개의치 않고 복인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나도 그건 염려가 되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 결혼식인데 우리가 마음에 드는 장소에서 해야 하는 것 아냐? 한 번뿐인 우리 결혼식이잖아. 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그런 멋진 결혼식을 하고 싶단 말이야.”


“나도 물론 그러고 싶지. 그런데 결혼식뿐 아니라 모든 순간들이 우리의 인생에서 한 번뿐 아닌가? 그리고 현실을 너무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한번 해 본 말이지. 복인이가 꼭 거기서 하겠다면 거기서 해야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그냥 하자는 얘기야? 그건 난 싫어. 우식씨도 마음에 드는 장소라야 나도 좋은 거지.”

“아니 싫은 건 아니고, 불편하고 힘들 것 같아서 그러지. 누구보다도 복인이가 고생할걸. 괜찮겠어? 좋은 날 고생한 기억만 남으면 어쩌려고?”

“난 괜찮아. 편하려면 결혼식을 어떻게 해. 그런 고생은 사서라도 할 수 있어. 어지간한 고생은 감수하더라도 우리만의 영원히 잊지 못할 그런 결혼식을 올리고 싶어. 너무나 행복해서 힘들고 어려울 때도 그날만 생각하면 희망이 샘솟을 수 있는 그런 결혼식 말이야.”

오늘따라 복인에게 우식의 태도는 매우 낯설어 보였다. 웬만하면 우식은 복인의 뜻에 따라 주는데, 평소 같지 않게 은근히 계속 자기주장을 펴고 있었다.

“좋은 얘기지. 그럼 결혼식은 어떻게 했으면 하는데?”

“남들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안 했으면 해. 뻔한 식순에 천편일률적인 진행, 그리고 사진 찍고 밥 먹고 자동화 라인에서 찍어나오 듯 서둘러서 끝나는 그런 건 정말 의미가 없는 것 같아.”

“그건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야. 그럼 우린 뭘 하지? 댄스파티라도 할까?”

“그거 좋겠다. 피로연을 근사하게 하는 거야. 바비큐 파티식으로. 캠프화이어도 하고. 춤은 당연히 들어가야지. 거기에다가 시상도 하고 행운권 추첨도 하면 아주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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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렇게 하자고? 난 그냥 해 본 소리였는데. 내 솔직한 의견은 결혼식 잘한다고 잘사는 건 아니라는 거야. 이제까지 소문나게 멋진 결혼식 한 사람치고 잘사는 사람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 의외네. 우식씨 이벤트 같은 것 좋아하는 것 아니었어?”

그랬다. 우식은 모든 일에 성실하고 책임감도 강한 반면, 흥도 많아 노는 자리에서는 누구 못지않게 잘 놀고 분위기도 주도를 하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정작 본인 결혼식을 신나게 하자는데 싫다고 하다니. 복인도 이 대목에서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우식씨, 오늘 조금 이상한 것 알아. 평소에도 충분히 동의해 줄 만한 일인 것 같은데, 오늘 같은 날 굳이 그렇게 반대하는 이유가 뭐야?”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복인이 정색하며 물었다. 그 말에 우식도 당황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 내 말 좀 들어 봐. 나는 자기한테 행복한 결혼식보다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 결혼식 날 행복하면 평생 행복이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해? 결혼식 날보다는 그 이후가 더 행복해져야 좋은 것 아냐? 결혼식 날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결말은 불행한 결혼생활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설마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겠지?”

복인도 우식의 논리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동의하기에는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우식의 이렇게 강한 의사 표현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어, 사람이 바뀌었나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아니면 이제까지 숨기고 있다가 결혼이 결정되니 본색을 드러내는 것인가 하는 엉뚱한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복인의 이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식은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기왕 얘기를 꺼냈으니 한마디만 더 할게. 난 결혼식이 혼신을 다해 준비를 해야 할 만큼 중요하다고는 생각지 않아. 결혼식보다는 우리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해. 어떻게 하면 더욱더 다정하게 오래오래 해로할 수 있을까 하는. 나는 자기와 결혼하고 함께 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어.”

복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어떤 면에서는 참 바람직한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교과서처럼 판에 박힌 듯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 삶일까 하는 의구심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이거 내가 남편감을 제대로 고른 건 맞는 거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어차피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막상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복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결혼은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며, 고생 끝 행복 시작이 아니라 새로운 고생의 시작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했을 뿐이다.

“좋다고. 어디 한번 해 보지 뭐. 결혼식이고 신혼여행이고 그게 뭐 중요해? 결혼생활 자체가 중요하지.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한 날이면 무엇을 더 바라겠어?”

이미 세뇌가 된 것인지 서운함과 아쉬움을 애써 떨쳐버리려는 듯 복인은 계속 이렇게 중얼거렸다.

 

<월간 피그 2017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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