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세상
한은혜 2017-06-06 17:40:25

신경호

 

날씨가 참 좋다. 하늘은 쾌청하고 햇살은 따사롭다. 이렇게 날씨가 좋으면 마음도 덩달아 상쾌하다. 더구나 오늘은 아들, 손자, 며느리가 다 모였다. 종종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모일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고 뿌듯하다.

 

나는 지금 내 모습이 참 좋다. 늙고 병들어 겉보기엔 그저 불쌍한 할머니지만, 그래도 남부러울 것이 없다. 아들딸 육 남매 모두 반듯하게 장성하여 좋은 배우자 만나 잘 살고 있으니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게다가 다들 부부 금슬 좋고, 좋은 직장 잡아 돈도 잘 벌고, 손주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지금은 큰아들 집에 머물고 있지만, 애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해서 가끔씩 다른 애들 집에도 가곤 한다. 실은 애들 가자는 대로 여기저기 가다 보니 누구네 집인지 어느 동네인지 잘 모를 때도 있다. 아무튼 요즘 자식들은 부모 모시기 싫어 서로 눈치 보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라는데, 나는 얼마나 복 많은 늙은이인가 새삼 생각하곤 한다.

 

주변에서도 나를 복덩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나는 별말 하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씩 자식 얘기를 하면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효자 효녀일 수 있느냐며 부러워한다. 그럴 때면 괜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저절로 올라가 우쭐해진다.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도 느낀다.

 

아무리 복이 많아도 늙은이 생활은 뻔하다. 밥 먹을 때 빼고는 누워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는 것이 전부다. 다른 것은 힘들고 귀찮다. 책을 읽어도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운동은 너무 힘들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걷는 것도 힘드니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운동을 할 수도 없다.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나마 가장 쉬운 것이 텔레비전 보는 것이라 보긴 보는데 그것도 예전 같은 재미는 없다. 그때는 비록 흑백일 망정 드라마며 코미디며 그렇게 재미있었는데….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맛있는 것도 참 많았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엿이며 강정이며 유과며 식혜며 잡채며 빈대떡이며 동태전에 불고기까지 맛있는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식욕이 당기지 않는다. 그리고 어쩌다 입맛에 맞아 조금만 많이 먹으면 탈이 나고 만다. 늙으면 서럽다는 말이 그래서 있나 보다.

 

그렇지만 지나온 세월을 떠올리면 서러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쁨만이 충만해진다. 어릴 때 철모르고 뛰놀던 시절부터 수줍은 소녀가 되고 신랑을 만나 시집을 가고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고 했던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생각하면 할수록 꿈처럼 행복해진다.

 

나는 어린 시절 참으로 귀하게 자랐다. 아들 많은 집에 고명딸로 태어나 온갖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아버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오빠들도 나를 위한 것이라면 아무리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뿐 아니라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밖에 나가면 어른들은 한결같이 예쁘다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돌아가면서 안아주고 업어주고 하였으며, 또래 아이들은 모든 것을 내 위주로 놀아주었다. 한 마디로 나는 공주처럼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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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대대로 지역 유지의 집안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을의 큰 어른이셨고, 마을 대소사는 항상 할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나를 끔찍이도 귀여워해 주셨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할아버지를 최고로 높고 무서운 분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무엇도 겁나는 것이 없었고 든든했다. 온 세상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꿈 많던 소녀시절을 뒤로 하고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혼인을 했다. 신랑 얼굴도 보지 못하고 부모님이 정해준 대로 생판 모르는 곳으로 시집와서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쉽게 적응이 되었다. 시댁 어른들도 나를 마음에 들어 하셔서 시집살이가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남편은 인물도 좋고 능력도 좋아 나무랄 곳이 없었다. 밖에서도 인기가 좋아 유혹이 많았을 텐데도 여자 문제로 말썽 한번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남편은 내 심기를 거스를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유별나게 금슬이 좋아서 주위에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나는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것이다.

 

자식들도 하나같이 착하고 성실했다.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한 마디로 모범생들이었다. 말썽 한번 피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애들 키우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젖먹이는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는 것 같다. 참 편하게 애들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되돌아보면 한 마디로 행복했다. 어린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을 해서 자식들이 장성할 때까지 모든 것이 과분할 정도로 순조로웠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부모님은 물론이고 할아버지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자랐고 좋은 남편 만나 갖은 호강 다했고 자식들까지 잘 자라 효성이 극진하니 더 바랄 게 없다. 세상에 나만큼 편안하고 걱정근심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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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세상은 한평생 살기에 조금도 아쉬움이 없을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감사한다. 부모, 형제, 자식부터 이웃집 아저씨까지 누구 하나 고맙지 않은 이가 없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도 감사한다. 해도 고맙고 달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땅도 고맙고 꽃도 고맙고 강아지도 고맙고.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예, 거의 같으세요. 항상 웃으시고 말씀도 잘하시고.”

 

“늘 하시는 같은 얘기겠네요?”

 

“예, 그렇죠. 어린 시절부터 결혼해서 자녀분들 키우신 얘기까지. 말씀을 들어보면 참 행복하게 사신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러시지만. 여기 요양원 사람들도 어머님 같이만 살면 좋겠다고 모두 부러워해요.”

 

“글쎄요. 저희 형제들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고생도 많이 하셨고 속도 많이 썩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런 것은 전혀 기억을 못하시는지. 아버지는 소문난 한량으로 집안일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으셨죠. 결국 주색잡기로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역할까지 어머니가 대신 하시느라 정말 갖은 고생 다 하셨고요. 저희들도 사고깨나 쳤어요. 그럴 때마다 뒷감당은 당연히 어머니 몫이었죠.”

 

“그럼 전혀 사실이 아닌 것을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씀인가요?”

 

“예, 어디서 그런 상상력이 나오는지 저희들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그 얘기가 계속 진화를 하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괴롭고 슬픈 기억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는 생각합니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계속 상상력을 발휘하시는 것 같아요. 여기 요양원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가족으로 생각하시고요. 진짜 가족은 몰라보시면서도 모두 다 아들이고 딸이고 며느리고 손주예요. 어머님의 치매는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월간 피그 2017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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