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K-Pop) - 시대별 특징을 살펴보자! -
한은혜 2017-10-12 18:32:33

 

요즘 들리는 노래를 케이팝(K-pop)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과연 케이팝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대중음악, 즉 Korean pop을 줄여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중에게 인기를 얻는 유행음악, 가요 또는 유행가라고 부르는데, 영미권 대중음악을 팝(pop)이라고 부르고 영미권 이외 국가의 대중가요도 국가 이니셜을 붙여 쓰이기 때문에 케이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의 경우 J-pop이라고 한다.


팝 음악은 대체로 국가별 전통음악이나 민속 음악은 포함되지 않는다. 케이팝이란 장르는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외국에서 부르는 말인 것이다. 우리나라 가수들(아이돌)이 외국에서 공연을 하면서 생겨났고 대중화가 되었다. 그리하여 한류열풍이 시작된 것이다.


케이팝이라는 장르를 세계에 알리게 된 계기가 바로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팝이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하게 쓰이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요즘엔 케이팝의 매력에 빠져 외국에서 우리나라까지와 모 방송에서 진행하는 오디션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오디션을 보기도 한다. 즉, 케이팝은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장르이다.
대중음악은 음악적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음악이다. 대중음악은 그 시대의 유행적인 요소, 오락성, 상업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 시대별 대중음악의 특징을 알아보도록 하자.

 

① 1960년대


전쟁의 상처를 딛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며 급격한 산업화가 나타나게 된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되고 모든 자원이 서울로 집중화된다. 그 당시 서울은 이상과 욕망의 상징이었다.


이런 변화는 대중음악에서 많이 나타나게 된다.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서울의 모정 등 서울은 꿈이 이루어지는 희망의 도시로 노래된다. 그래서인지 상경이란 표현이 낯설지만은 않은 것 같다. 대학도 서울의 S대가 제일 좋은 대학인 것처럼….


패티킴의 패티는 미국가수 패티 페이지와 같은 명가수가 되고 싶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패티김의 등장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지켜보게 된다. 해방 이후 최초로 일본에 진출하고 이어서 미국무대에도 선 패티김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함께 다니는 가수이자 대중음악계의 이정표와 같은 존재로 활동하였다.


한편, 지방을 소재로 한 노래도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울이 이상향이었다면 지방은 소외된 현실이 남겨진 사람들이 떠난 임을 그리워하고 애태우는 슬픔을 노래로 표현한 곡들이 많았다.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 아가씨, 춘천댁 사공, 서울이여 안녕, 소양강 처녀 등 안타깝고 절절한 이별 이야기와 처연한 슬픔이 묻어있다.


특히 엘레지(비가)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가진 이미자 씨는 구성진 목소리를 통해 1964년 동백아가씨라는 노래를 발표하면서 국내 가요사상 최초로 가요프로그램에서 35주 동안 1위를 기록하며 25만장이란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세웠다.


동백 아가씨는 트로트 곡으로써 인기와 더불어 금지곡으로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사연을 가지고 있다. 이때는 소위 뽕짝이라는 트로트 음악에서 상당히 변화된 리듬이 많이 도입되었던 시기였으며 폴카, 맘보, 트위스트 등 다양한 장르가 국내 소개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트로트의 황금기라고 할 만큼 트로트가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패티킴: 초우, 이별,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사랑은 생명의 꽃, 서울의 찬가 등 수 없는 히트곡을 남기고 2012년 은퇴 선언, 1년간의 이별 콘서트 투어를 통해 전국의 팬들과 이별을 고한 후, 2013년 10월 26일 55년 가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이미자: 울어라 열풍아,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여자의 일생, 흑산도 아가씨, 모정, 해운대, 엘레지, 지평선은 말이 없다, 눈물이 진주라면, 못 잊을 당신, 기러기 아빠, 여로, 마포종점 등 국민가수, 엘레지의 여왕, 한국 트로트의 끝판왕 등의 수식어를 가진다. 최초로 음반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한 여가수이다. 한국형 트로트가 완성되기 전, 동백아가씨는 일본의 엔카 스타일의 분위기와 창법으로 왜색 논란이 있어 금지곡이 되었다.

 

 

② 1970년대


포크송이라는 새로운 음악 장르가 나왔던 시기이다. 포크송이란 포크라는 약칭으로 불리며 미국의 모던 포크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대중가요이다.


뜻은 민요이며, 한국의 민요전통 속에 놓인 것이 아니라 미국의 모던 포크와 음악적 연관성이 깊다. 대중음악에는 남진, 나훈아 등이 인기를 차지하고 일부 팝 마니아가 생각나기 시작한다. 역시 음악에도 차별성을 가지고 있던 분들이 많았다. 


이때 타협점으로 나타난 장르가 포크송이다. 이 시기는 사전심의와 대마초 사건으로 인하여 문화적 혼란기를 가져오게 된다. 그 혼란기에 방황하던 대중음악은 신선한 음악으로 무장한 그룹사운드 중심의 대학가요제라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게 된다.


1977년도에는 제1회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젊은이의 가요제, 해변 가요제, 강변 가요제 등 대학생들의 가수 활동무대가 시작되면서 그룹사운드가 대다수였다. 그 외에 일부 음악은 민중가요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갔다.


대중음악의 양면성이 극대화된 시기로써 시대적 흐름에 상처를 받은 속박의 시대였다. 이때 나타난 트렌드가 다운타운 문화로 일컬어지는 음악전문 다방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곡은 샌드페블즈의 ‘나 어떻게’이다. 샌드페블즈는 sand(모래)+pebbles(조약돌, 자갈)=모래와 자갈 혹은 모래와 조약돌이라는 뜻이다.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동아리 학생밴드이며, 지금까지도 유지를 하고 있는 동아리이고 200명이 넘는 멤버를 배출하였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씨는 2기 보컬이며, 산울림의 멤버 김창훈 씨가 ‘나 어떻게’를 작사·작곡하였다.
 

 

③ 1980년대


이 시기의 대중음악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억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80년대 활동한 가수를 살펴보면 조용필을 비롯하여 발라드에는 변진섭, 이문세, 트로트에는 주현미, 록에는 이승철, 시나위, 들국화, 가요제 출신에는 이선희 등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며 가요계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80년대 후반부터 댄스 가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소방차, 김완선, 박남정, 전영록, 정수라 등이 대표적인 가수이다.


반면 이 시대에는 민중가요가 많이 나타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상록수, 아침이슬, 친구, 작은 연못 등이 있으며 특히 아침이슬은 아름다운 노래로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 금지곡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억압된 정치적 상황을 은유하는 듯한 가사와 민주화를 염원하는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노래로 널리 불렸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아침이슬은 1971년 정부가 건전가요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④ 1990년대


우리나라 대중문화가 큰 변화와 다양한 발전을 이루며, 우리 문화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시기였다. 대중의 관심으로 많은 뮤지션들의 좋은 음악과 다양한 방향으로 큰 발전을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댄스음악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H.O.T, 룰라, 핑클, SES, 발라드에는 신승훈, 이소라, 이승환, 록에는 NEXT(신해철), 김경호, 김종서 등이 있으며, 지금도 너무나 익숙하고 유명한 가수들이다.


포크음악으로 유명한 김광석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 당시 필자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으로 친구가 야간자율학습을 빠지고 공연을 보러 가는 일이 있었다. 필자는 그 시절 뉴키즈 온더 블럭을 좋아했다.


그 시절에는 가요가 강세를 보여 영화나 예능보다도 가요프로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기였다. 주말저녁 가요프로를 시청하지 않고는 월요일에 아이들과 대화소재가 없었던 경험이 있었다. 특히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판매량 280만장를 기록하며 한국기네스에 등재되기도 했다.
 

 

⑤ 2000년대 이후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 음반시장이 급격하게 작아지면서 음반판매량이 20만장을 넘기기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음반시장 불황이 계속되면서 온라인 중심의 시장체제로 바뀌게 된다.
쉽고 빠르게 들을 수 있으며, 특히나 아이돌 가수들의 출현으로 주로 청소년과 청년에게 많은 인기를 얻는 가수가 나타난다. 제1세대 아이돌 슈퍼쥬니어를 시작으로 케이팝이 자리매김하기 시작하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 이후에는 너무 많은 케이팝 뮤지션들이 존재한다. 케이팝은 듣는 노래보다는 눈으로 즐기는 노래로 익숙해져 있다.


특히 소녀시대의 군무 시작은 많은 걸그룹의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쉽게 들리고 익숙한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하여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너무 쉽고 원초적인 단어 사용과 빠른 박자로 인해 가사가 잘 들리지 않아 소음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럴 때 세대 차이를 많이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세대별 대중음악과 케이팝에 대해 알아보았다. 필자는 편식이 심하다. 음악도 편식을 하듯이 좋아하는 장르만 듣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트로트부터 아이돌 음악까지 들어보니 사회적 색깔과 음악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음식만 먹다 보면 영양의 불균형이 오듯이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음악 역시 편식을 하기보다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어보면서 우리가 모르고 지나간 나만의 음악적 영양소를 골고루 찾아보기 바란다.
 

<월간 피그 2017년 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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