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서
한은혜 2017-07-11 17:53:20

신경호

“싸바이디. 안녕하십니까? 저희들은 한국에서 왔습니다. 저희는 각자의 전문 분야가 조금씩 다르지만 주로 농축산을 전문으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이곳에 온 목적은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팀장인 정명철 교수님이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밝혔다. 이와 함께 우리 모두는 두 손을 합장한 채 눈 위로 올려 최대한의 예를 표했다. 마을 이장이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마을은 라오스에서도 매우 외딴 곳입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부디 계시는 동안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까지 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까지 와서 하룻밤을 묶고 국내선 비행기로 루앙프라방에 도착하여 메콩강에서 다시 배를 타고 한 시간을 넘게 내려간 다음 배에서 내려 가파른 언덕을 올라 한참 만에야 다다른 곳이 바로 이곳 팍릉이라는 마을이었다. 여기에 도착하는 데에만 꼬박 이틀이 걸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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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원이라는 이름으로 오기는 했지만 봉사는커녕 내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총 여섯 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모두 이런 일에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들이었다. 막내이자 홍일점인 나만 유일하게 초짜였다.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제일 젊은 나만 비실거려 팀원들의 걱정과 격려를 한 몸에 받았다. 그 덕분인지 다음 날부터 나도 힘을 회복하여 씩씩하게 내 일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마을은 사뭇 잔칫집 분위기였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이긴 했지만 정작 큰 도움이 된 것 같지 않아 미안한 마음뿐이었는데도, 너도나도 앞다투어 먹을 것을 끊임없이 가져왔다. 그중에서도 망고, 파파야, 패션프룻, 파인애플 같은 과일의 맛은 일품이었다. 특히 여기서 처음 먹어본 두리안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처음에는 특유의 냄새로 이런 것을 어떻게 먹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일행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먹을수록 그 맛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저녁에는 돌아가며 집으로 초대를 해 진수성찬을 차려냈다. 어디서 이런 것을 다 구했을까 할 정도로 다양하고 신기한 것들이었다.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촌지를 꺼냈지만 한사코 사양하였다. 와준 것만도 고마운데 어떻게 돈을 받느냐는 것이었다.

 

나중에 포넵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손님에 대한 융숭한 접대는 이들의 문화이자 자부심이었다. 손님에게 잘해야 집안이 번성하고 자손이 잘된다는 믿음도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정성 들여 접대를 하고도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아마도 접대할 기회를 갖게 해줘 고맙다는 뜻인 것 같았다.

 

포넵은 특이한 존재였다. 그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젊은 청년으로, 우리가 있는 동안 통역을 도맡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와 줄곧 어울리게 되었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는 비록 오지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지만, 전 세계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의 몸은 한 곳에 머물고 있었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동서고금을 수시로 넘나들고 있었던 것이다.

 

포넵은 특히 유기농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꿈은 유기농을 바탕으로 자기 마을을 발전시켜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사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농장을 갖고 있었다. 갖가지 채소와 과일, 약초 등을 종류별로 심어 시험 재배를 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닭과 오리, 칠면조, 토끼, 염소 그리고 돼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가축을 기르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 준 다음 다른 사람들도 보고 따라오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자 목표였다.

 

그는 우리의 방문을 환영하고 우리로부터 궁금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였지만, 무조건적은 아니었다. 매번 본인의 의견을 말하고 그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는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얘기하여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인지 헷갈리기 일쑤였다. 급기야 나는 그에게서 영감 같은 것을 받았다고 느꼈는데, 그런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여기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느꼈던 색다르고 생소한 느낌부터가 좋았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집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까지의 짧지 않은 거리를 걷는 동안 인간 세계를 벗어나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었다. 그 느낌은 포넵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강해졌다.

 

일과를 마치고 나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메콩강가로 나갔다.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한다는 메콩강은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라오스를 비롯한 인도차이나의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어머니 같이 포근한 강이다. 강 양옆으로 깎아지른 듯이 솟은 산들과 어울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특히 저녁놀이 드리워진 메콩강은 신선 세계에나 있을 법한 비경으로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그 풍광을 잠시라도 놓칠세라 미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하늘에는 달과 함께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신화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별들이 여기에 다 모여있었다. 밤이 점점 깊어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메우면 그 별들이 무더기로 나에게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황홀함을 느끼곤 했다. 가끔씩 유성이 불꽃처럼 나타나곤 했는데, 너무 아름다워 그때마다 탄성을 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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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날이 다가오면서 나는 이번 여행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봉사 활동을 하겠다고 이 먼 곳까지 왔는데, 과연 봉사란 무엇이고 나는 어떤 봉사를 했는가? 내가 이들에게 해 준 것은 무엇인가? 포넵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번에 우리가 와서 도움 된 것이 있나요?”

 

포넵이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짧은 시간에 마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뿐 아니라 새로운 기술도 많이 배우고 농지와 축사도 정리가 되고. 모두들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여기까지 찾아와 준 것 자체예요. 여러분이 이렇게 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만날 수 있었겠어요. 만남 자체가 기쁘고 그러니 고마운 거지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오히려 고맙네요. 저는 도움을 준 것보다 배우고 받은 것이 너무 많아 폐만 끼치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돕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로 돕는 것이지요. 그게 사람 사는 세상 아닌가요? 이번엔 우리가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언젠가는 저도 도움을 드릴 날이 오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은씨를 만나게 된 것이 저에게는 큰 행운이고 행복이었습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듯했다. 우리는 어느 틈엔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머지않아 내가 다시 이곳으로 올 것이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미 라오스에 반해 있었고, 더불어 라오스의 누군가에게 빠져있었으니까.

 

<월간 피그 2017년 7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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