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자연순환농업을 알게 되었나?
한은혜 2018-02-06 17:38:27

지구환경 복원을 위한 성스러운 일에 동참할 용의가 없으십니까?
 
1993년 3월 31일 오후에 워싱턴에서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며 등소평, 김일성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고(故) 문명자 여사와 함께 등소평에 의해 경제적 개방정책이 막 시작된 중국의 베이징과 하얼빈 방문을 마치고 오는 도중이었다. 잠시 기착 투숙한 일본 나고야시의 조그마한 호텔의 방문 앞에서 일본인 T씨가 웃고 있었다.

 

그는 나의 죽마고우이고,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을 보기 위해 방미했을 때 나와 나의 처를 안내해주었던 L군의 지인이며, 1950년대 일본에서 미일안보조약에 반대하는데 선봉에 섰던 동경대학 학생들의 핵심 버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 후에는 국제 테러조직인 적군파 멤버 중의 한사람이었다가 지금은 귀순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좌담 중 그가 나에게


“지구환경 복원을 위한 성스러운 일에 동참할 용의가 없으십니까?”하고 묻기에, 나는
“그러한 성스러운 일이 있다면 동참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라고 답하였더니,
“귀국 일정은 언제입니까?”
“내일 귀국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은 만우절이니, 속았다고 생각하시고 안내할 곳이 있으니, 내일 나에게 하루 동안만 시간을 내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하였다.
나는 처와 상의하여 귀국 일정을 하루 연기하고 안내를 받기로 하였다.

환갑이 되던 해의 이 대화가 80세가 된 오늘날까지 20년 간 나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였으며, 그간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보람된 삶을 살게 한 운명적인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유기축산을 만나다
 
다음날인 4월 1일 만우절에 일본인 T씨, 친구 L군, 나, 나의 처 네 사람은 한 시간가량 기차에 몸을 싣고, 처음 도착하여 방문한 곳이 조용한 시골풍경이 있는 야배 농장이었다.
앞뜰의 넓은 녹차 밭 깊숙이에 허름한 건물이 보였는데, 가까이 가보아도 별다른 특색이 없는 농가의 모습이었다. 들어가 보니 어미 돼지 1백두와 애기 돼지 포함 1천2백두를 사육하는 돈사이었다.

 

그런데, 양돈장에 가면 흔히 들리는 돼지의 울음소리도 없고, 분뇨취 등 냄새가 없어 신기했는데, 농장 사장의 말에 의하면 사료는 1일 1회 충분히 투여하여 돼지가 마음껏 먹게 하고, 음용수는 급수기를 통해 돼지가 임의로 언제든지 음용하게 하면서, 청소는 자체 분뇨처리장에서 생산되는 처리수로 1일 1회 충분히 물청소를 해주기 때문에, 사람이 하는 일은 오전에 사료 투여 1회, 오후에 물청소 1회 하는 것으로 일과가 끝나도 이처럼 조용하고 깨끗하다고 하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실 근무시간이 1일 4~5시간이면 충분하기 때문에 종업원이 필요 없고, 남는 시간은 컨테이너를 개조하여 사무실 겸 노래방으로 만들어 노래 부르며 즐기는 것으로 소일한다고 하였다.


돈사에 들어가니 마침 돈사의 물청소 시간이 되어 농장주가 손수 물청소를 시작하는데 청소수의 색깔이 흑갈색 액체였고, 청소를 하는 동안에 돼지들은 미친 듯이 이 청소수를 핥아먹는데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돈사 안은 악취라고는 전혀 없고 청소후의 물은 수로를 타고 분뇨처리장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분뇨 처리장에서는 공기 분출기를 통하여 폭기되고 있는 데도 아무런 악취가 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정화된 처리수는 FRP 탱크에 모아두었다가 청소수로 사용하고, 남는 것은 이웃농가에 무상으로 배분하고 있으며, 이 물은 작물의 성장이 촉진되고 병이 들지 않으며 해충이 붙지 않아 아주 좋은 액비 역할을 하고 있어 농가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었다.

 

또한 특이한 것은 사료에 항생제를 투여하고 있는 이웃 다른 농장에서는 돼지열병, 오제스키병 등 동물전염병이 생겨도, 이 야배 농장의 사장은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는 데도 전혀 영향이 없으며, 새끼 돼지의 사망률도 0%라고 하였으며 출하 일령도 5~7일 단축된다고 하였다. 동네 아이들이 놀러 와서 ‘아저씨 돼지가 이사를 갔습니까? 냄새도 없고 울음소리도 나지 않네요’라고 묻는다며 웃고 있었다.

 

나는 당시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돼지고기 대일본 수출을 개척하고 직접 수출을 했는데,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은 돼지고기의 항생제 잔류 검사에서 설파메타진이라는 항생제가 검출되어 수출하였던 돼지고기가 반송당해 많은 피해를 본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양돈이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고 사육할 방법이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원하고 있었는데 어둠에서 광명을 본 느낌을 받았다. 돼지가 스트레스가 없어 조용하고 항생제 투여가 없으니, 육질의 맛도 다를 것이므로 꿈의 사육 방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방문한 곳은 케이지 계사가 있는 양계장이었다. 그곳 역시 야배 농장과 비슷한 방법으로 닭을 사육하고 있기 때문에, 닭이 스트레스가 줄어 조용하고, 계사에 악취가 없고, 계사 밑바닥에는 계분과 닭의 깃털이 수북이 쌓여있는데도 계분의 발효취조차 없었다.
양계장 주인이 달걀을 가져와서 한번 깨어보라고 해서 깨어 보았더니 보통 달걀보다 훨씬 단단하였고, 달걀의 노른자는 일출시 태양의 모습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노른자를 나무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니까 흰자까지 따라 올라올 만큼 점성이 있었다. 그 맛 또한 보통 달걀보다 훨씬 고소하였으며, 옛날 어린 시절 아주 귀하게 여기며 먹었던 그 맛이 생각났다.


주인의 말에 의하면 껍질이 단단하여 파란률이 낮아서 납품 후 반품이 적으며, 산란기간이 길어져서 매우 경제적이라고 하였다.

 

위의 양돈, 양계 사례를 보면서 분뇨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축산의 미래는 달려있고, 축산 분뇨를 잘 처리하면 경종농업도 화학비료나 농약 투여가 없는 유기농산이 달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되었다. 경축순환농업의 미래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에 나의 여생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결심을 쉽게 한 배경에는, 젊은 시절 가업이던 제사업(명주실)을 20여 년간 경영하면서 누에의 먹이인 뽕밭 가꾸기에 힘썼던 오랜 경험을 통하여 경종농업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갖고 있었으며, 1980년대부터 약 10년간 뒤떨어져 있던 돼지고기 육가공 제품의 대일본 수출시장 개척을 위하여 필수불가결했던 양돈업의 규격돈 생산과 육가공 방법의 기술 지도를 통하여 얻었던 경험 등이 경축순환농업을 달성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논산축협의 홍준표 조합장을 만나다
 
1997년 5월 13일 논산시 광석면 논산축협 유기질 비료공장에서는 축산분뇨 전량재활용 시설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논산축협 홍준표 조합장이 육가공 수출을 위하여 야심적인 사업계획인 규격돈 생산을 위한 3만두 규모의 양돈단지를 유치하였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양돈 분뇨를 가공 재활용하여 토양 개량 및 비료의 기능을 동시에 하는 토양개량제를 생산하여 경종농업에 제공하는 시설의 준공식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축산 분뇨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한 기본 방향도 없었던 시절에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도전한 선각자로서 홍준표 조합장은 경축순환 농업의 창시자라는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순환사진1-논산시 광석면 논산축협 유기질 비료공장에서는 축산분뇨 전량재활용 시설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좌측부터 이박 회장, 이민자 사모님, 일본 아오끼 기술진 등

동 시설은 축산 폐수를 처리 가공하여 정부가 정한 규제치를 만족시켜 방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 특이한 점은 방류된 하류를 정화시켜 청정 환경으로 복원시키는 기능이 있는 것이 여타 축산분뇨 처리 시설과는 다른 점이다. 농민이 원하면 토양개량제로써 사용하여 고화, 산성화된 토양을 양질의 토양으로 개량시키는 기능도 있고, 비료로서도 완벽에 가까운 유기질 비료로 기능하게 되는 물질로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환경관계 학자나 농민단체, 관련 국가기관 담당책임자, 언론 등 수많은 하객이 참석하였고, 이들은 축산분뇨 처리장에서 악취가 전혀 나지 않으면서도 맑은 물이 나오고 있는 현장을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홍준표 조합장은 동 시설을 가동하면서 처리액의 액비화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려 노력하였으나, 축산 분뇨를 토양에 환원시키는 인허가 절차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정부를 설득하여 액비의 비료로서 등록절차를 갖추는 절차를 밟는 일방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농민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액비를 사용하여 농민이 손해를 입으면 전액 보상을 하겠다는 각서를 제출하였다고 한다.

 

그 각서 내용은 “액비 살포는 논산축협이 무상으로 살포한다. 단, 농민은 액비 살포한 농지에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살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럴 경우에는 수확량이 감소하거나 다른 이유로 손해를 볼 경우에는 전액 보상하겠다”라는 것이다. 금융기관인 축협의 생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한 조치였다. 이와 같은 용단을 그 누가 내릴 수가 있겠는가.

 

1998년도는 태풍이 심하였다. 따라서 벼농사는 태풍에 의해 벼가 도복되어 감수를 면치 못하였는데, 논산축협의 액비를 뿌린 논은 벼가 억새처럼 힘이 있어 도복 현상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증산되었다고 한다. 하늘은 용단에 대하여 행운으로 보상하였다고 하겠다.

 

위 사건이 입소문으로 전해지면서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서 2008년도에는 벼농사, 딸기, 수박, 상추, 고추 등 밭농사 및 과수 재배에 이르기까지 2천hr까지 액비사용 농지가 확대되었다. 가히 경축순환농업의 금자탑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성공적으로 경축순환농업의 기반을 마련한 것은 홍준표 조합장을 이어받은 후임 조합장과 비료공장 운영책임자, 기술담당자의 15년간에 걸친 오랜 노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고, 축분 자원화 기술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을 석권할 기술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찬사를 아껴마지 않는다.

 

1993년에 일본에서 유기축산을 만나서, 이제 20년 세월이 흐른 지금 자연순환농업은 본격적인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천신만고의 20년 세월 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였고, 50여건의 유기성 폐기물 처리 성공 사례를 갖기에 이르렀다.
2013년에는 유기성 폐기물 자원화 설비에서 생산된 GNCA 친환경 농자재를 사용하여 감자, 상추, 딸기 등의 재배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20년 세월의 경과에 대한 자세한 전말은 여건이 허락한다면 아마도 회고록 형태로 기술되어야 할 것이다.

 

2013. 12. 31
GNCA(주) 회장 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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