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지 않은 삶
한은혜 2017-08-05 18:22:20

신경호

나는 쓰레기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중 더러는 아예 내 앞에서 대 놓고 그렇게 얘기한다. 나 역시 그들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니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쓰레기다.

 

그렇지만 나는 억울하다. 나는 내 스스로 막살아보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정반대다. 나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다. 또한 내 양심을 걸고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 행동뿐 아니라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본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놓고 무던히 노력했다. 리듬이 깨질까 봐 주말에도 늦잠을 자지 않고 같은 시각에 일어났다. 그리고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다. 지각 결석은 당연히 꿈도 꾸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는 졸거나 다른 생각하는 일 없이 반듯하게 앉아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필기했다.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 잘 하는 과목, 잘 못하는 과목을 가리지 않고 한결같았다. 국어, 영어, 수학은 물론 음악, 미술, 체육 시간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수업 태도만 보면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단연 모범생이었다.


 

방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파하면 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숙제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과목에 대한 예습도 빼놓지 않았다. 예정한 공부가 끝나기 전까지는 잠시라도 텔레비전을 보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수업을 잘 듣기 위해서였다. 충분한 수면과 적당한 휴식은 학습 효과를 올리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일상만을 놓고 보면 모범생일 뿐 아니라 전교 일등의 면모 그 자체였다. 흔히 명문대 수석 입학 인터뷰에 나오는 학교 수업 열심히 듣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으며 잠은 충분히 잤다는 등의 단골 멘트가 그대로 나에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내 성적은 그리 신통치 못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중간 이상은 되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날이 가면 갈수록 한번이라도 올라간 적이 없이 바닥을 향해 떨어져만 갔다. 비상수단으로 하루 여덟 시간씩 자던 잠을 각고 끝에 한 시간 줄여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수업시간마다 뒤에서 잠이나 자는 한심해 보이는 친구들의 성적이 의외로 높은 것이었다. 그 친구들은 어쩌다가 잠을 자지 않을 때에도 수업을 듣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교과서는 접어둔 채 다른 책이나 보기 일쑤였고, 심지어 수업시간과는 다른 엉뚱한 과목의 책을 보곤 했다. 이를테면, 영어 시간에는 수학책을 보고 국어 시간에는 영어책을 보는 식이었다. 내 상식으로 보면, 그 친구들은 도저히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 친구들의 성적은 날이 갈수록 올라갔으며, 결국 그들 대부분이 원하는 명문대에 합격했다. 반면에 나는 천신만고 끝에 지방에 있는 이름 없는 대학에 합격은 하였으나, 거기까지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아 결국 재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재수를 하게 되면 성적이 훨씬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재수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인데, 그 점에서 나는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초지일관이야말로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미덕이 아니던가?

 

그러나 자신 있게 시작한 나의 재수 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고3 때와 마찬가지로 규칙적이고 절제된 생활을 이어갔지만 성적 역시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아니 아예 바닥을 파고 그 아래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온전히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당구도 치고 노래방에도 갔다.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중한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이었을 뿐이다. 단 한 번이라도 해야 할 공부를 뒷전으로 하고 놀아 본 적은 없다.

 

초심을 잃지 않고 내 나름대로의 심혈을 기울였던 나의 재수 생활도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정말 열심히 바르게 해보려 했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결과는 반대로 될 뿐이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재수를 하고도 대학 문턱조차 가보지 못한 건달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것이 자원입대였다. 언제고 가야 할 군대지만 기왕이면 심기일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원을 한 것이다. 남들 다 가는 군대지만,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보람 있는 군 생활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지금까지의 시행착오적으로 살아온 인생을 만회하고 국가의 부름에도 부응하는 멋진 군인이 되리라 다짐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들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 훈련소에서의 훈련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받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어려운 훈련일수록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훈련받으면서 웃는 모습이 교관이나 조교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가 보다. 지금 훈련받는 것이 우습나, 놀러 온 줄 아나 하면서 열심히 하려는 나를 가만두지 않고 괴롭혔다. 훈련소에서 첫 단추를 잘못 꿴 군대 생활은 자대에 가서도 계속되어 전역할 때까지 내내 고문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군대에서 뭔가 전기를 마련해보려 했던 나의 마지막 계획도 결국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렇게 재수를 포함한 학창시절과 군 생활까지 모두 망쳐버린 나는 거의 자포자기하기에 이르렀다. 전역 후 나의 생활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갈 것이다. 당연히 취업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실력도 경험도 돈도 없이 무작정 사업을 할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일당을 받는 일용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는데, 그마저도 가뭄에 콩 나듯 생기는 일이어서 노는 날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나는 내가 꿈꾸었던 인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결과는 항상 내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인생은 마음먹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고민 끝에 이번 생에는 더 이상의 희망도 미련도 없으니 차라리 한 많은 생을 이쯤에서 마감하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이르자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도 여자 한번 사귀어 보지 못한 것은 천추의 한이었다.

 

그래서 죽기 전에 꼭 한번 남에게 폐를 끼치더라도 여자를 사귀어 보겠노라는 무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범행 장소는 가끔 밤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던 집 근처 골목 가로등 근처로 정했다. 밤이 깊어 나는 그곳으로 나가서 으슥한 골목을 기웃거리며 혼자 오는 여자를 기다렸다. 누구든 상관없다, 여자만 나타나라 그 생각뿐이었다.

 

기회는 예상외로 빨리 왔다. 그런데 상황 역시 예상 밖이었다. 저만치서 한 여자가 황급히 뛰어오는데, 바로 그 뒤로 어떤 남자가 그 여자를 덮칠 듯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그 남자는 치한이 틀림없어 보였고 여자는 쫓기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그 남자에게 달려들어 선방을 날렸다. 인생을 포기한 마당에 나는 겁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 서슬에 놀란 그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으며, 나는 졸지에 그 여자의 은인이자 영웅이 되었다. 아,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토록 잘해보려고 할 때는 안되더니, 치한이 되려고 마음먹자마자 치한을 물리치는 의인이 되다니.

 

아무튼 나는 이 일을 계기로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진정으로 인정해 주는 유일한 사람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 여자를 치한으로부터 구해주었지만 그 여자는 나를 인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결혼하여 지금까지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참,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그래서 참 다행이다.

 

<월간 피그 2017년 8월 호>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