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러 국제 수의학 관련 학회 및 행사가 준비되고 마무리된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진행되다 보니 매 행사마다 좋을 때도 있고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행사도 있다.
올해 양돈업계에서는 5월에 중국에서 개최되었던 APVS 2017이 있었고, 얼마 전 8월 28일부터 31일까지 인천 송도에서 개최된 인천세계수의사대회(WVC 2017)도 있었다.
행사에 참가하여 전시를 준비하는 업체의 입장에서는 행사가 끝나는 그 순간까지 무사히 행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야 차분히 앉아서 행사가 어땠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WVC 2017이 마무리된 지금, WVC 2017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정리하며 또 어떤 부분들은 APVS 2017과도 함께 비교하며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었던 두 국제학회에 수의사이자 동물약품 업체 관계자로 참석하며 느꼈던 부분을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 APVS 2017과 WVC 2017은 참석 대상(양돈수의사 vs. 모든 축종 수의사)이나 총 참석인원(APVS 2017 1,600여명 vs. WVC 2017 5,100여명)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같은 해에 아시아에서 개최된 국제학회이며, 주요 참석자가 아시아권 수의사들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석한 수의사들 중 개최국 수의사의 비중이 높았던 점도 비슷하다.
아쉬운 점은 WVC 2017은 전 세계 모든 축종의 수의사들이 참가 대상이지만 지리적인 조건에 따라 아시아권 수의사들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축종별 전문 학회가 별도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축종이 한자리에 모이는, 어찌 보면 전문성이 떨어진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학회에 5천명이 넘게 참석했다는 것은 기대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학회의 성공 여부와도 직결되는 참석자 확보를 위해 고생한 조직위원회의 노력이 가장 빛난 부분인 것 같다.
부스 전시회도 성황리에 이루어졌던 것 같다. 총 188개의 업체가 참석한 부스 전시는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 학회인 만큼 한국 동물약품업체들이 많이 참석하였는데, 특히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동물약품 여러 축종에 관련되어 있는 만큼, 세계 각국 수의사들에게 자사의 비전과 다양한 영역에 걸쳐 가지고 있는 제품 및 사업을 홍보함으로써 해외 진출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부스 운영과 관련하여 부스별로 나눠준 바코드 리더기를 통해 참석자들의 명찰에 달린 바코드를 인식하여 방명록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디지털 장비를 이용하여 작성하는 사람이나 작성을 요청하는 사람 모두에게 편리함을 제공한 훌륭한 시스템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중에 조직위원회를 통해 참석자 명단을 전달받았는데, 참석자들의 방문 시간은 따로 기록되지 않았었다. 하루 동안 진행한 것이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서 진행한 행사인 만큼 방문자 기록 시 방문 일자와 시간을 함께 기록해준다면 날짜별 방문 통계 및 부스 내 이벤트 진행 시간 등과 비교하여 향후 행사를 준비할 때 더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번에 참석자들에게 부스를 방문하여 도장을 받은 후 완성된 용지를 추첨함에 넣으면 매일 추첨을 통해 선물을 전달하는 방식은 참가한 수의사들의 부스 방문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유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방식은 국내 반려동물 학회에서 사용하던 방식인데 이번에 조직위원회에서 차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포스터 전시는 E-포스터 시스템을 통해 307개의 포스터를 전시하였는데, 이 또한 바코드
스캐너 시스템처럼 디지털 장비의 발달이 부스 전시에 가져온 큰 변화 중 하나였다. 저자들이 직접 포스터를 인쇄하여 위치를 찾아 붙여놓고 회수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하고 관람자들도 더 편리하게 포스터를 볼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코드 리더기와 함께 향후 APVS 2019에서도 꼭 적용되었으면 하는 운영방법이다.
지난 APVS 2017에서는 기존의 방식대로 저자가 직접 포스터를 인쇄하여 정해진 자리에 게시하는 방식이었는데, 주최측의 운영 실수로 포스터를 게재할 곳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강의 면에서는 축종별로 의견이 달랐던 것 같다. 양돈 관련 강의의 경우 참석한 수의사들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았다고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지난 5월에 있었던 양돈수의사들을 위한 학회인 APVS 2017보다 좋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APVS 2017에서는 국제 학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강의가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진행된 경우도 드물지만 있었는데, 이번 강의들은 그보다 좀 더 국제 학회의 면모를 잘 보여주었던 것 같다. 그 외 반려동물 관련 강의는 강의 숫자는 많았지만 전반적인 강의의 수준이 최신 기술보다는 좀 더 기본적인 부분에 충실했다는 평이 있었다.
지금까지 WVC 2017에 참가한 동물약품 업체 관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WVC 2017에 대하여 몇 가지 정리해보았다. 참석인원 확보, 효율적인 부스와 E-포스터 운영, 수준 높은 강의 등 조직위원회에서 WVC 2017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노력하고 아이디어를 모아서, 한국에서 개최하는 수의학 관련 국제학회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준비한 사람들과 참석한 사람들, 특히 관련 업체들은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던 다른 축종에서 사용되는 아이디어를 접하였고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경험을 쌓았다. 이는 비단 국제 학회만이 아니라 향후 진행될 축종별 국내 학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수의사 개인의 입장에서 세계수의사대회가 가진 한계는 사실 명확하다. 학술대회의 성격으로는 각 축종별 전문 학회를 따라가기 어렵다. 외과 의사에게 정신과 질환 관련 최신 발표는 듣는 사람도 관심 없고 발표한 사람도 흥이 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라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인간의 건강을 추구한다”는 본질적인 가치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외과적인 수술이냐 정신과 상담이냐 하는 형태만 다를 뿐이다.
수의사도 마찬가지다. 돌보는 축종이 다르더라도, 업계에 종사하는 행위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인천 세계수의사대회의 가장 큰 결실은 폐막식에서 선언된 ‘VET VISION 2050’이다.
“2050년 수의사는 원헬스와 에코헬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숙련된 기술과 전문 지식을 갖춘다”는 방향을 제시하였으니, 앞으로는 수의학적 기술의 발전이 이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계속 지켜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향후 WVAC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수공통전염병 관리, 동물 복지 등 수의학과 관련된 중요하면서도 기술적인 부분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가치적인 부분에 대한 중심을 잡아주어 기술의 발전이 목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와 관련하여 끊임없는 토론의 장이 마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세계수의사협회”의 이름을 걸고 있는 곳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이번 선언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수의사가 공통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근본적인 가치를 정립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철학이 없는 과학은 위험할 수 있다.
<월간 피그 2017년 10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