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에서 보낸 휴가
한은혜 2018-02-05 18:14:34

 

 

빅토리아 호수 옆에 자리한 엔테베 공항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아 시골의 간이역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 점이 호수와 더욱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쾌청했고 날씨는 따뜻했다. 일단 첫인상은 좋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이 왠지 기대 이상의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으로밖에 본 적이 없지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인상이다. 그쪽에서 먼저 손짓을 했다.

 

“강주호 씨? 임선영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나는 친한 친구처럼 반갑게 웃으며 가벼운 악수를 나눴다. 캄팔라로 가는 차 안에서 선영은 간단하게 우간다 전반에 대한 소개와 우리의 여행에 대한 계획을 얘기했다.

 

“우간다는 계절이 없는 곳입니다. 일 년 내내 기온이 거의 같아요. 아침 최저 15도, 낮 최고 28도. 습도가 높지 않아 한낮에도 뛰지 않는 한 땀이 나지는 않아요. 연중 밤낮의 길이도 거의 같지요. 건기와 우기는 있어요. 그렇지만 그 차이도 그리 크진 않지요. 우기에도 장마처럼 비가 하루 종일 오는 것이 아니라 소나기처럼 한두 차례 오고 마는 식이니까요. 아마도 지구상에 이 이상 기후 좋은 곳은 찾기 힘들 거예요.”

 

선영은 자랑하듯 우간다 기후에 대해 일사천리로 설명했다. 주호는 우간다 날씨가 좋다는 얘기를 듣고 오기는 했지만, 선영의 간단명료한 얘기에 새삼 정말 이런 날씨가 있구나 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감탄을 자아낸 것은 선영의 설명 자체였다. 어쩌면 이리도 깔끔하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할까 긴장이 될 지경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영은 말을 이어갔다.

 

“아시겠지만 우간다는 교통, 통신, 전기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이 미약해요. 그래서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한국보다는 두 배 정도는 걸린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매사에 느긋합니다. 좋게 보면 여유가 있고, 나쁘게 보면 게으른 거죠. 요점은 계획이 지연되더라도 그러려니 하시라는 겁니다. 일단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다녀 보도록 하죠.”

 

그런 얘기를 하는 사이에 이윽고 캄팔라에 도착했다. 캄팔라는 한 나라의 수도답게 사람도 많고 차도 많고 복잡했다. 어디든 사람들은 모여 살게 마련인가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아침 약속한 시간에 주호는 호텔 로비에서 선영을 만났다. 모든 일정은 선영에게 달려 있었다. 애당초 그렇게 약속이 되어있었다. 말하자면 선영은 가이드인 셈이었다. 당연히 여행비용은 주호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주호는 매년 휴가 때마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변변한 국내여행도 해보지 못하고 지내왔다. 그래서 금년만큼은 여행다운 여행을 꼭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르고 고른 곳이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아프리카였다.

 

그러다가 친구로부터 우간다에 있는 선영을 소개받기에 이른 것이다. 선영은 우간다에 온지 벌써 5년이 넘었고 우간다 실정을 거의 다 꿰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 여행을 할 만한 시간을 내지 못하다가 금년에는 혼자라도 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이렇게 하여 둘은 우간다에서의 여행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우간다에는 가볼 곳이 많았다. 캄팔라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과 터미널은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규모가 장관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다.

 

복잡한 시내를 뒤로하고 외곽으로 나오니 비로소 아프리카의 진면목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시아로찌에서 바라보는 빅토리아 호수의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평화로웠다. 빅토리아 호수는 워낙 커서 가는 곳마다 한 자락씩을 드러냈다. 진자라는 곳에도 어김없이 빅토리아 호수가 있었는데, 이곳은 바로 나일강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주호와 선영은 호수에서 배도 타고 나일강에서는 래프팅도 하며 젊음을 만끽했다.

 

래프팅은 젊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래프팅을 하면 누구나 젊은이가 되었다. 즉,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레포츠였다. 다소 격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한번 해보면 다시 하고 싶은 것이 래프팅이었다. 주호도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해보고 난 후에는 더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월간 피그 2018년 2월 호>

 

반면에 선영은 처음부터 씩씩했다. 망설이는 주호에게 강력하게 권한 것도 선영이었다. 주호는 선영의 이런 시원시원한 성격에 점차 빠져들기 시작했다. 신중하다 못해 다소 우유부단한 그의 성격에 비추어 선영은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나일강을 다녀온 후 그들은 머치슨 폭포를 향했다. 이곳은 세렝게티와 견줄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난 사파리였다.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동물들이 자연 상태로 서식하고 있었다. 동물원에서만 보던 야생동물들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이제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게다가 머치슨 폭포의 장관은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자연의 위대함, 숭고함, 경이로움 이런 것들을 느끼는 동시에 겸손함을 일깨워주는 장엄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주호의 눈에 꽂힌 것은 선영이었다. 그 어떤 대단하고 신기한 것일지라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선영의 모습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어쩌면 이런 위대한 자연에 어울리는 유일한 사람 같았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이제 그들의 일정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캄팔라로 돌아온 그들은 우간다에서는 유일한 한식당을 찾았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은 그 식당은 우간다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큰 규모일 뿐 아니라, 세련된 인테리어에 가든 식으로 꾸며져 운치가 있었다. 모처럼 먹는 제대로 된 한식은 한껏 입맛을 돋우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의 맛은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도 훨씬 맛이 있었다.

그러나 주호는 음식 맛을 즐길 게재가 아니었다. 내일이면 선영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한 마음뿐이었다. 이대로 헤어질 순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호는 선영에게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선영 씨, 선물을 하나 준비했습니다. 의미를 부여하진 않겠습니다. 그것은 선영 씨 몫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의미든지 선영 씨가 정해주셨으면 합니다.”

“어머, 반지로군요. 제가 의미를 정하면 그대로 따르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선영은 쾌활하게 웃으며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럼요. 선영 씨는 제 가이드니 저는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주호도 용기를 내어 웃으며 맞받았다. 선영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반지의 의미는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 이번 여행의 동행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인연을 계속 이어가자는 제안 등으로 요약이 되겠군요?”

주호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하며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선영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제안은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원하는 것은 프러포즈니까요.”

주호는 크게 한방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픈 한방이 아니라 환희의 한방이었다. 주호는 용기없고 눈치 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외쳤다.

“선영 씨, 사랑합니다. 제 사랑을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디지털여기에 news@yeogie.com <저작권자 @ 여기에. 무단전재 - 재배포금지>
가장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