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호의 에피소드(16) - 학교 가기 싫어요
한은혜 2018-04-02 15:50:55

“창선아, 일어나야지. 학교 늦겠다.”

 

아침마다 듣는 어머니의 기상나팔 소리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이기도 하다. 아, 나는 왜 이렇게 학교가 가기 싫을까?

 

 

“학교 가기 싫어요. 깨우지 마세요.”

 

이렇게 반항을 해 보지만, 어머니는 기어이 이불을 걷어 내고, 다 큰 아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려치신다. 나는 마지못해 일어나지만, 학교는 정말 가고 싶지 않다.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러지 하면 할수록 더욱 가기가 싫어진다. 학교를 하루 이틀 다닌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다닐 날이 창창한데, 이렇게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

 

어릴 적에도 학교가 그리 즐거운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가 있었다. 선생님들도 간혹 무서운 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상냥하고 친절하셨다.

 

나는 최소한 겉으로는 모범생이었고 말 잘 듣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다른 어느 애들보다도 선생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아니 다른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부담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내가 잘 하니까 그에 대한 당연한 보상을 받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갔고 시키지도 않은 청소도 하고 칠판도 닦고 비뚤어진 책상 줄을 반듯하게 맞춰 놓기도 했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자습을 했다.

 

이러한 행동들이 자발적이긴 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이 알아주고 칭찬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아침잠이 부족했던 내가 아침마다 거의 새벽같이 일어난다는 것은 고행에 가까웠다. 일찍 일어남으로 인한 부작용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고,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첫 시간에 절정을 이루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이십 분을 버티지 못하고 눈꺼풀이 내려오기 일쑤였다. 졸릴 때 눈꺼풀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눈에 힘을 주고 허벅지를 볼펜으로 찌르고 손톱으로 이곳저곳을 꼬집어도 소용이 없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간신히 눈은 뜨고 있어도 동공이 풀리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어린 마음에도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점차, 아무리 선생님들이 예뻐해 준다 해도 썩 즐겁지가 않게 되었다. 그에 대한 대가가 너무 크다는 것이 차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담은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었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예뻐하면 친구들도 따라서 좋아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반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 바람에 반장까지 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그 인기는 서서히 단순한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부러움은 다시 질투와 시기로 변했다.

 

그러자 그 높던 인기는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얄미움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언제부턴가 선생님한테만 잘 보이려고 그 앞에서 알랑거리고 비위나 맞추고 심부름이나 해 주는 그런 애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친구들은 점차로 나에게서 멀어져 갔고, 나는 외톨이가 되어 갔다. 그리고 놀림감이 되었다. 처음에는 내 뒤에서 수근수근거리고 손가락질을 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틈엔가 앞에서 대놓고 놀리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떼를 지어 따라 다니면서까지 놀렸다. 무엇보다도 하굣길에 우르르 몰려나오면서 한마디씩 하거나 툭툭 치면서 지나갈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이렇게 되니 학교 가고 싶은 생각이 나겠는가? 어느 누구라도 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 나름 모자라는 잠을 이겨가며 봉사라면 봉사를 한 것밖에 없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왕따를 시키다니. 억울하기 그지없고 울화가 치밀어서 견디기 어려웠다. 정말로 학교를 가지 말까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를 놀리는 애들이 잘못하는 것이고 걔들이 가해자인데, 나는 피해자이고 잘못이 없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사회 정의 차원은 아니더라도 나부터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죽기 살기로 다녀야지 하는 결심도 하였다. 가능하다면 어느 누구보다도 오래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 후로 학교 다니는 재미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에게 학교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적군이 많은.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에게는 적군이었다. 그들은 틈만 나면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공격했다. 그들은 때를 가리지 않았다.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기회만 되면 나를 건드렸고 나는 수비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나의 방어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항상 당하기만 했다.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어였는데, 그 많은 아이들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적당히 당해주는 정도로 참고 넘기기로 했다.

 

반격도 생각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섣불리 공격을 했다간 여지없이 역공을 당했다. 어쩌다 내 공격이 먹혔다 해도 그 뒤에 돌아오는 보복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선생님한테 하소연을 해도 역효과였다. 선생님이 비호를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겁쟁이, 못난이, 비굴한 놈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여전히 선생님들은 내 편이었지만,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계속 나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내 스스로 벽을 쌓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형식적인 인사만 할 뿐, 더 이상의 깊은 대화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들도 이런 나를 이해하는 듯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일하게 나에게 끈덕진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 학교에서 가장 나이 많은 교감 선생님이다. 노처녀인 교감 선생님은 어쩌다 마주칠 때마다 필요 이상의 관심과 친절을 보이는데, 나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잔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일부러 직접 나를 찾아오기도 하는데, 정말이지 스토커가 따로 없지 싶을 정도다. 이러니 무슨 재미로 학교에 가고 싶겠는가?

 

“학교가 그렇게 싫어?”

 

심각한 어조로 어머니가 물으신다.

 

“생각해봐요, 엄마. 학교에 나 좋아하는 애들이 아무도 없어요. 나만 보면 하나 같이 슬슬 피하거나 뒤돌아서 흉이나 볼 뿐이에요. 선생님들도 그저 아는 척은 하지만 겉으로만 웃을 뿐 속으로는 아무 관심도 없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감 선생님은 정말 모른 척했으면 좋겠는데, 왜 그렇게 친한 척을 하는지 그게 제일 싫어요.”

 

“그래도 지금까지 다녔는데, 참고 다녀야지 어떡하니.”

 

달래듯 배웅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나는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간다. 나는 교감 선생님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살피며 조심조심 들어간다. 다행히 오늘은 잘 피했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깜박 졸았나 보다. 눈앞에서 여지없이 교감 선생님이 나를 내려 보고 있다. 그것도 빙긋이 웃으며.

 

“아니, 교장 선생님. 이러고 계시면 건강에 해로와요. 점심 드신 후엔 산책이라도 하셔야죠.”

 

<월간 피그 2018년 4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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