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자유
한은혜 2018-06-01 19:05:55

 

잘 만들어진 예술 작품이나 음악, 또는 음식들을 볼 때면 그 완성을 위해 노력한 사람에 대한 환상을 갖고 상상하게 된다. 막연하게 예술가를 동경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음악, 미술, 사진, 연극, 영화 할 것 없이 대개의 예술분야 종사자들은 고도의 수련을 요구하는 일종의 전문 기술자이다. 그럼 과연 창작자나 공연자 중 자기의 일을 즐기는 분들은 얼마나 있을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직업적 특성이 주는 순진무구에 가까운 순수함의 매력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삼지연 관현악단

 

최근 남북한의 예술단 교환공연을 보면서 필자는 많은 것을 느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 예술단이 평양에서, 북한 예술단이 우리나라에서 공연하였는데, 특히 북한의 삼지연 관현악단의 공연단 인원수는 140명이었으며(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의 북한 선수는 20명), 들고 있는 악기의 수준이 상당히 고가였다.


북한 예술단은 강릉과 서울(대통령 관람)에서 한 차례씩 공연하였으며, 곡의 레퍼토리는 북한 가요 9곡, 남한 가요 11곡, 나머지는 클래식 음악이었다. 연주 수준은 상당히 높았으며, 북한 노래의 가사에서 수령을 상징하거나 체제를 선전하는 부분은 남쪽 요청에 따라 많은 부분을 수정하였다고 한다.


필자는 공연을 보면서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바로 악기를 연주하는 공연단의 모습에서였다.


필자는 연주 중에 필을 받거나 음악에 집중하면 몸을 선율에 따라 움직이곤 하는데, 북한 공연단은 그 움직임조차도 군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로 같은 음악을 연주하고는 있지만, 자유롭지 않은 듯한 느낌으로 선율에 맞춰 율동 하듯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게 참으로 신기했다.


참고로 북한은 인민에게 많은 자유를 억압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 곡을 많이 알고 있었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연변 노래’로 알고 공공연히 부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한 노래들은 1980년대부터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복제된 카세트테이프로 유입되어 보급되었으며, 최근에는 CD로 구워진 상태로 들어온다고 한다.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에서 하얀 연미복을 입은 지휘자는 장룡식 공훈국가합창단 단장과 윤범주 삼지연 관현악단 지휘자이다. 이들은 국보급 예술가로 북한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장룡식 지휘자의 경우 북한 예술가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호인 인민예술가로 인정을 받았으며, 북한에서 처음으로 금관악기에 재즈 화성학을 도입한 혁신적 인물이다. 특히 북한은 개인 이름을 달고 리싸이틀을 할 수 없는데, 장룡식 지휘자의 경우는 예외로 개인 음악회를 열었으며, 이 음악회에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와서 보기도 했다고 한다.



주로 심지연 관현악단이 남한 노래를 연주하고 부를 때는 오케스트라를 윤범주 지휘자가 지휘했다. 이번 공연에서 사랑의 미로, 다함께 차차차, 당신을 모르실거야 등 다양한 남한 노래를 지휘했다. 윤범주 지휘자는 남한 노래를 듣고 연구해서 ‘남한 노래 전문가’라고 이야기를 듣고 있으며, 주로 남쪽 노래를 지휘·편곡했다고 한다.

 

북한의 음악과 정치

 

북한에서 음악은 인민들에게 북한의 주체사상을 가르치고,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로 중요하게 활용한다고 한다. 특히 음악 예술은 사상이 담기지 않은 음악은 있을 수 없다.


북한은 스스로 ‘노래로 고난을 극복하는 나라’라고 선전하기도 한다. 이는 북한에 다양한 예술가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삼지연 관현악단(2009년)은 김정일 전 국방 위원장이 직접 지시해 조직되었다. 이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거의 반년 만에 모란봉악단을 창단시켰다. 집권한 뒤 가장 처음으로 한 일이 악단을 창단할 정도로, 북한이 음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예술단이 연주하는 음악 가운데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그리는 노래, 사회주의 혁명을 찬양하는 노래 등 선전, 선동을 위한 음악뿐 아니라 통일 관련 노래, 서정적인 감성이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한 생활가요, 북한의 옛 민요나 가곡을 재구성한 노래 등이 있다.


예술가 역시 사회적 공익을 위한 존재라는 북한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소재로 노래를 많이 만들어 보급하는데, 주민들을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 예술단은 각종 당, 정부, 군의 관련행사와 국경일 등에 주로 공연하며, 대표적인 축하공연으로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을 기념하는 공연을 들 수 있다.


북한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 가사이다. 당이 선전하고자 하는 사상을 얼마나 명확하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음악의 예술성을 평가하며, 가사가 주는 효과가 체제, 선전, 선동의 시너지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북한의 예술은 비유적이며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것과는 거리가 멀게 현실적으로 만들어 다양한 해석과 상상을 배제하는 즉, 미지의 천국을 생각조차도 못하도록 하는 건 아닐까. 만일 미지의 천국을 생각하게 된다면 체제 보존 유지의 위협이 생기기 때문에 직설적인 가사 위주로 만드는 것은 아니겠느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예술일까 싶을 정도로 북한 음악의 경우 아름답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199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펴낸 ‘음악 예술론’에서 좋은 음악의 조건으로 “음악은 체제의 특성상 노동자들이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내용과 표현 및 형태가 쉽고, 음악이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우리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발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예술단에 소속된 단원들은 각각 당이나 정부, 군에 소속되어 있다. 삼지연 관현악단에서 보컬을 맡은 김옥주는 공연 가수이지만, 군대 계급으로는 육군 소좌에 해당된다고 한다. 북한의 선전, 선동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음악 예술이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예술가 또한 국가를 이끄는 주요인물이 된다.


북한의 문화 예술이 개인적인 창작 자유보다는 국가와 당의 주도에 훨씬 큰 비중이 있기 때문에 북한식의 토착화된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예술로 빗장을 걸어 잠가 버린 것 같다.


 

피바다 가극단

 

피바다 가극단은 북한 종합예술단들과 마찬가지로 독창 가수들과 무용단, 합창단, 관현악단, 무대 기술진 등 가극 공연에 필요한 모든 인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관현악단으로 칭하기도 한다. 다만, 서양악기가 중심인 국립교향악단과는 달리 피바다 가극단의 교향악단은 북한의 개량악기와 서양악기가 동등한 비율로 편성된 ‘전면 배합관련악’ 편성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후반에 김정일이 북한 문화 예술계의 실권자로 등장하면서 가극단의 성격도 변하기 시작하는데, 우선 1971년 초연된 혁명가극 ‘피바다’에서 이름을 따 피바다 가극단으로 개칭되었다. 피바다의 경우 연이어 발표된 ‘꽃 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당의 참된 딸’, ‘금강산의 노래’와 함께 5대 혁명가극으로 칭하고 있을 정도로 상징성이 강하며, 이후 계속되는 공연을 통해 2002년 당시 총 공연 횟수가 1,500회를 돌파하여 가극단의 기본이자 최우선 공연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하였다.


가극 공연이 주가 되는 만큼 북한에서는 수많은 오페라 등 창작 무대 작품이 초연되었다. 특히 2000년 중반까지 혁명가극의 계보를 이은 ‘사랑의 바다’는 북한 혁명 가극 창작과 상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가극 외에도 민속무용조곡 ‘계절의 노래’와 같은 무용극 계통의 레퍼토리도 보유하고 있다.


명칭의 변경과 동시에 국립 기무단, 조선국립교향악단, 영화 및 방송음악단 단원들의 편입으로 대규모화되었으며, 이듬해 피바다 창작과 상연에 대한 공로로 김일성 훈장을 받았으며, 중국을 비롯한 우방국에도 파견되어 해외 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게, 이 공연단의 끔찍한 일화 중 하나는 1979년 중국 공연을 마치고 조선민항(고려항공) 항공기를 이용해 오던 중 비행기가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져 피바다가 된 무시무시한 참사이다.

 

기본적으로 예술이라 하면 창조적이고 자유로우며, 학문·종교·도덕을 바탕으로 사람의 감정이나 사상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하여 전달시켜주는 가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북한의 예술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부분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래식의 기본도 가톨릭 교회음악의 정점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 알려 져 있는 곡들이 많다. 헨델의 매시아, 하이든의 천지창조, 베토벤이 썼던 20세 때의 미사곡, 모차르트의 ‘춤춰라 기뻐하라 행복한 영혼이여’ 등은 모두가 교회 음악이다.


음악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고 슬프게 해줄 수도 있으며, 또한 시대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 예술이다. 이런 예술에 정치적 요소를 가미한다면 예술의 진정성이 사라져 음악으로써의 가치가 하락할 것이다.


모든 음악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새로운 음악들이 창작될 수 있으며, 이런 창작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을 선택하여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본고를 집필하면서 창조와 자유가 허락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많은 분에게 새삼 감사해지는 6월이기도 하다.

 

<월간 피그 2018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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