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가 논쟁
한은혜 2018-06-01 19:09:48

신경호

 

“시청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가정의 행복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 우리 가정 시간입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은 손명훈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 가정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가족 구성원 간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진지하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애처가입니다. 과연 누가 진정한 애처가인지를 가려보는 시간입니다. 애처가라고 할 수 있는 유형은 다양하겠지만, 토론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세 가지 유형으로 압축해 보았습니다. 먼저 준비한 화면을 보시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곧이어서 낭랑한 성우의 음성과 더불어 동영상이 시작되었다.

“다음 남편들 중에 과연 누가 애처가일까요? 먼저 정직한 남편, 다음은 효자인 남편, 그리고 끝으로 건강한 남편입니다. 자 이 세 유형 중에 누가 정말 애처가인지 의견을 나눠 보실까요?”


 

짤막한 동영상이 끝나고 다시 진행자의 발언이 이어졌다.

 

“자,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인 토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은 토론자로 각 유형을 지지하는 세 분의 가정 문제 전문가를 모셨습니다. 세 분의 공통점은 모두 기혼 여성, 즉 남편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론적인 것뿐 아니라 개인적인 얘기를 같이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그럼 먼저, 정직한 남편을 제일의 애처가로 꼽고 계시는 한인숙 선생님의 의견부터 듣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는 정직한 남편이야말로 최고의 남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모든 관계가 그렇겠지만 특히 부부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신뢰가 없는 부부를 바람직한 부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신뢰가 부족한 부부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남편을 믿지 못하는 아내들이 참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남편이 아내에게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남편들은 왜 아내에게 정직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있겠지만,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아내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내에 대한 애정이 충만해 있다면, 즉 애처가라면, 아내에게 말 못 할 일을 애당초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정직하게 말하고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도 비밀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비밀은 없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비밀을 간직하면 할수록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정직은 남편이기 이전에 사람이 지켜야 할 덕목 중에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나 조지 워싱턴 등 수많은 훌륭한 분들의 좌우명이 정직이었다는 것만 봐도,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도 진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애처가인 것도 당연한 것이죠. 정직한 사람이 애처가가 아니라면 그 사실이 바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정직한 사람은 애처가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첫 번째 토론자의 발표가 끝나자, 진행자가 말을 이었다.

 

“많은 분이 공감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양심에 뭔가 찔리시는 분들은 이 시간이 반성의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부모에게 잘하는 효자가 아내에게도 잘한다고 주장하는 분입니다. 이효선 선생님 순서입니다.”

 

“예, 앞에서 하신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그러나 애처가의 조건이 정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직이 매우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정직은 어디까지나 마음이고 생각일 뿐입니다.

 

반면에 효도는 행동이고 실천입니다. 생각과 실천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의미가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동하는 양심의 출발이 바로 효도입니다. 출발이 제대로 되어야만 그다음 순서도 제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넣을 곳이 없는 것이지요. 즉, 효자가 애처가가 되고 이어서 좋은 아버지도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식들 역시 효자가 되고 애처가가 되도록 선도를 해서 자식의 효도까지 덤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효자인 남편입니다.

 

효자가 아니면서 다른 사람한테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어떻게 자기 부모한테 잘못하면서 다른 사람들한테 잘 할 수 있겠습니까? 효자가 아니면서 처자식한테 잘 한다는 것 역시 위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애처가 남편을 구하시려면 효자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효자인 남편은 부모한테만 잘하고 아내는 힘들게 한다는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만, 이것은 그야말로 편견일 뿐이고 단견입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효자가 애처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두 번째 토론자가 발표를 마치자, 다시 진행자가 말을 받았다.

 

“남편감을 고를 때 효자는 기피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만, 말씀을 들어보니 효자일수록 남편감 1순위에 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직한 남편과 효자인 남편, 한 치의 양보 없는 팽팽한 애처가 경쟁인데요. 그렇다면 또 다른 경쟁자, 건강한 남편은 과연 어떤 논리로 애처가라고 주장하실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미현 선생님 순서입니다.”

“예, 두 분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두 분 말씀을 들어보니 오늘 잘못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를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건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육체적인 건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건강도 포함이 됩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정신과 육체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건강이라 함은 심신 건강을 말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제 얘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건강이 애처가의 조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요? 조금 전 정직은 마음이고 효도는 행동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행동을 하는 주체가 바로 건강한 심신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젊을 때는 건강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수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건강의 중요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그리고 건강한 만큼 애정도 크고 오래 갈 것입니다. 건강하지 못한, 병석에만 누워 있는 애처가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건강한 남편은 아내의 건강도 챙기기 마련입니다. 부부 사이에 백년해로하는 것 이상 더 좋은 일이 있나요? 어느 한쪽이라도 건강이 좋지 않아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병원 신세만 진다면, 아무리 금실이 좋아도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젊은 시절에 저는 좋은 학교, 높은 성적, 소위 말하는 각종 스펙, 좋은 직장, 높은 연봉 같은 것에 목을 맸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에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자식까지 다 성장한 지금, 돌이켜 보면 남은 것은 없고, 잃은 것은 건강입니다. 이제 와서 건강을 유지하겠다고 기를 쓰고 있는데, 그래 봤자 젊은 시절에 노력하는 것과 비할 바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나름으로 열심히 살았고 잘못 살지는 않았다고 자부합니다만, 후회되는 것 한 가지는 젊을 때, 건강할 때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저한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심신의 건강은 행복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애처가의 기본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토론자를 끝으로 준비된 발표는 끝이 났다. 진행자의 진행에 따라 다음 순서가 이어졌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얼핏 생각할 때 건강이 애처가와 무슨 상관일까 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 애처가가 되기 위해서도 건강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상 세 분의 고견을 들어 봤습니다. 과연 정직한 남편, 효자인 남편, 심신이 건강한 남편 중에서 진정한 애처가는 누구일까요? 모두 애처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보다 바람직한 애처가는 누구일지 의견이 분분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지금까지 발표된 내용을 중심으로 토론자 상호 간에 질의응답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방청석에 계신 분들도 의견 있으시면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전화와 인터넷으로도 의견을 받습니다.”


 

열띤 토론은 밤샐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결국, 진행자가 종료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대부분의 토론이 그렇듯이 오늘도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애처가의 조건이 어느 한 가지로 정해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 얘기된 정직, 효도, 건강 모두 조건이 될 수 있겠고, 이 밖에도 많은 조건이 더 있을 것입니다. 결론과 관계없이 모든 남편들이 애처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간을 마치겠습니다.

 

아울러 이 시간 이후에도 여러분의 더 많은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의견 있으신 분들은 저희 방송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실명으로 올리신 분들에 한하여 집계에 반영하고 그 결과를 인터넷으로 발표하겠습니다. 그리고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선물도 드리겠습니다.

 

오늘 스튜디오까지 찾아주신 방청객 여러분, 이 방송을 시청해 주신 시청자 여러분께 두루 감사의 인사를 드리면서 이 시간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월간 피그 2018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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