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존심과 자긍심이 필요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
한은혜 2018-05-01 19:24:25

 

한국은 OECD 국가 중 수년째 자살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자신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부처님께서 인류에게 가장 먼저 주신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길 바란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소중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살며, 나 자신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도 소중함으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여 모든 사회가 향기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1. 자살률 1위, 부끄러운 한국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기사를 접하면서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왜, 무엇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삶을 포기하게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온다.
한국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 수년째 부동의 1위다. OECD 기준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1990년만 해도 8.8명으로 일본(17.5명), 미국(13.1명)보다 적었고 OECD 평균(16.2명)에도 한참 못 미쳤다. 그러나 2003년 28.1명으로 증가해 OECD 회원국 중 1위로 올라선 뒤 선두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국내 자살률 급증의 변곡점은 경제 위기와 맥을 같이 했다. 1997년 15.6명이었던 자살자 수는 외환위기(IMF사태)가 본격화한 1998년 21.7명으로 껑충 뛰었다. 신용카드 대란이 발생한 2003년에는 28.1명으로 전년(22.7명)보다 5.4명이나 늘었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33.8명으로 전년(29명)보다 4.8명이 증가했다. 

 

 

고령화 시대를 대비해야 하는 한국의 노인 자살률도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의 70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116.2명으로 다른 나라의 최대 10배에 이른다. 특히 2020년부터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노인인구에 본격 편입되기 때문에 지금보다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 자살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취약한 사회 안전망, 양극화 심화, 가정의 붕괴 등을 꼽고 있다. 일시적 예방대책뿐 아니라 복지, 의료가 같이 연계돼 삶의 위기를 줄여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던 첫 번째 의미를 나에게 두고, 나를 위해 선물하고, 나를 위해 웃고, 나를 위해 울고, 나를 위해 노력하고, 나 자신의 능력을 믿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라.


가장 먼저 내가 행복해야 주변도 돌보게 되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나눌 수 있다.

 

2.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

 

부처님 탄생계인 천상천하유아독존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필자가 존경하고 공감하는 혜민스님과 법륜스님의 글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혜민스님의 글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시고 나서 일곱 걸음을 걸으신 후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셨다. 자기 스스로를 높이려고 ‘나만 존귀하다’라고 한 뜻이 아니다. ‘유아독존’이라는 말 안에 너와 나의 구분이 생기기 이전 마음자리, 즉 절대적 진리와 사랑의 모습을 비밀처럼 감추어 놓고 하신 말이다.


- [출처: 중앙일보] [마음산책] 혜민스님, 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하셨을까?

 

2) 법륜스님의 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고통스러우니 내가 마땅히 이를 평안케 하리라’라는 뜻이다.


이 말을 ‘세상에 나 홀로 뛰어나고 잘났다’라는 자만과 아집의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서 ‘나’는 싯다르타가 아닌 인간 개개인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유일무이한 존엄함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존엄함을 찾아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라는 것이 이 말의 참뜻이다.

 

부처님은 저 인도대륙 북쪽 카필라바스투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반왕, 어머니는 마야 부인이었다. 산월이 가까워오자 마야 부인은 정반왕에게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고 돌아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아침 일찍 동쪽 문으로 출발했다.


정오 정도에 이르러서 카필라성과 데바다하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그때 아주 아름다운 숲을 만났는데, 그 숲에는 아쇼카나무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마야 부인은 가마에서 내려서 꽃구경을 즐겼다. 그때 많은 꽃나무 가운데 가장 탐스럽게 핀 왕자다운 꽃나무를 보고 가까이 가서 오른손을 들어 그 꽃 가지를 잡는데 마침 산기를 느꼈다. 그래서 아기 낳을 준비를 해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경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 범천왕은 황금그물로 아기를 받았고 인드라천은 일산으로 그늘을 만들어줬다. 그때 용왕이 나타나서 더운물과 찬물로 아기를 씻기자 아기의 몸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아기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러자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 아기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이것이 부처님이 태어난 모습을 묘사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진짜 그랬을까? 믿는 사람은 그대로 믿으면 되고, ‘뭘 그랬겠냐’고 의심이 드는 사람은 ‘그럼 이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라고 이렇게 보면 될 것 같다. 신들이 부처님 오심을 찬미하고 받들었다 하는 것은 붓다는 신들의 세계보다 위에 있었다, 신들의 세계도 초월했다는 의미이다.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인도 문화에서 유래했다. 인간은 그 지은 바에 따라서 가장 열악한 지옥부터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게 되는데 인도 당시의 문화는 인간은 복을 지어서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은 윤회의 세계 안에 있는 좀 더 나은 세계가 아니라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탈과 열반을 지향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천상의 세계가 아니라 천상의 세계도 벗어나 버린, 윤회를 벗어나 버린 해탈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천상천하 아당안지’에서 ‘천상’이라는 것은 신들의 세계를 말한다. ‘천하’라는 것은 인간의 세계를 말한다.


인간의 세계는 첫째, 물질이 세상을 지배한다. 둘째, 권력이 세상을 지배한다. 셋째, 인기와 명예가 세상을 지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과 권력과 인기와 명예를 구한다. 그래서 인간들은 그 세계에 묶여 있다.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고 권력의 노예가 되고 명예의 노예가 되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은 신들의 노예이다. 여기서 신들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믿음도 들어갈 것이고 사상과 이념도 포함된다. 우리는 이념과 사상, 믿음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서 자신의 존재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가 만약 이 무지에서 벗어난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이 우주의 주인이고 자기 운명의 주인입니다. 부처님은 신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 존엄의 절대성을 선언한 것입니다. 천상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천하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불교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첫 번째 한 구절일 뿐이다. 뒤에 나오는 ‘삼계개고 아당안지’가 있다. 나는 자유롭고 행복해졌는데, 내 주위를 둘러보니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 속에 헤매고 있다. 그러니 그들도 내가 얻은 이 행복의 세계로 그들을 인도하리라고 다짐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들 또한 자유와 행복을 마음껏 누리도록 도와주리라. 이것이 ‘삼계개고 아당안지’이다.


먼저 자기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하고, 또한 나만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 이웃들, 주변 세상도 함께 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을, 태어나실 때의 모습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법륜스님, <즉문즉설>_2013년 부처님 오신 날

 

3. 자존감과 자비로 세상을 향기롭게 하자

부처님이 태어나시면서 설하셨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는 구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인 것 같다. 


‘모든 존재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모두 존귀한 존재이며, 내 자신의 불성을 깨우쳐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석가모니께서 깨달은 다음에 외치신 말씀으로 글자 뜻과는 달리 본래 의미는, 부처님이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알고 난 후 홀로 그것을 깨우쳤다는 두려움과 고독함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깨달음이란 어쩌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맑고 향기로운 삶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행복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가 사는 모든 것의 근본 이치는 내 안에 있다는 뜻이다.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것은 내 자신 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간단한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한다.


석가모니 부처의 말씀대로 가장 중요한 본질의 내 안의 자아(自我)를 일깨워서 스스로 내 자신이 깨치는 것이다. 이제는 종교와 이념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하얀 도화지 위에 나를 중심에 두고 새로운 깨달음을 스스로가 찾아가야 할 시점이다.

 

 

내 자신은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이다. 우주가 있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서 우주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지난 시절의 지식과 상식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내 안에 있는 진정한 자아가 깨어날 수 있도록 진정한 나를 찾아가야 한다.

 

이 세상의 중심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내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보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길 때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을 귀하게 만들어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데 진력하고, 자신이 귀한 만큼 남도 소중함을 알아 남을 귀하게 대해야 한다. 백마디 말보다 한가지 실천이 더 중요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세상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나눔의 의미라 생각한다.


나와 내 이웃에게 자비심이 넘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세상은 향기롭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다.

 

<월간 피그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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