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소비시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동물복지
월간피그 2019-01-16 09:56:53

지난달 5일, 동물권행동 카라는 살아있는 돼지들을 트럭에 몰아넣고 망치로 도태한 경남 사천 A농장을 동물학대, 폐기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동물자유연대와 카라는 “인간이 불가피하게 동물을 이용한다 할지라도 고통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인도적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행위와 같은 종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이는 행위 등을 동물학대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 발생에 대해 국립축산과학원 축산환경과 전중환 농업연구사는 “동물복지 인증기준 및 법률규정에 양돈농장 내에서 실시되는 긴급도축 대한 항목을 두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정 농장을 비난하기에 앞서 관련 제도와 가축관리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도태와 관련한 기준과 적정방법에 대해 고민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윤리적 소비시대
알쓸신잡에서 유시민은 “한우목장에 있는 소들을 보는데 소들이 불쌍해 보이더라. 그걸 보면서 내 자신이 소들을 보면서 불편해 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다”며 인간의 식육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육해야 할 수밖에 없는 씁쓸함을 표했다. 그 말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필자는 동물복지 계몽 가능성의 태동을 느꼈다. 이제 소비자들은 어떤 고기냐가 아니라, 어떤 돼지냐에 따라 소비의 척도가 결정된다. 이런 소비 행위는 동물 학대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 고통스럽게 죽어간 돼지를 먹는 야만적인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투영된 것이다.
카라는 이번 사천 돼지 농장 사건을 발단으로 배터리 케이지와 스톨 폐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2018년 12월 기준, 32.935명이 서명에 참여했을 만큼 시민사회는 동물학대 문제에 예민하며 앞으로 시민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예견된다.
사람들은 불행하게 살고, 고통스럽게 죽는 돼지를 먹지 않으려 한다. 현대는 어차피 죽는 돼지라도 덜 고통스럽게 죽은 고기를 먹고 싶은 윤리적 소비시대인 것이다.

 

사진 동물복지농장의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A사 홈페이지 화면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2017년) 결과, 가격이 비싸더라도 동물복지 식품을 구매하겠다는 응답 비율은 70.1%에 달했다. 2012년 조사 결과인 36.4%와 비교해 두 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사진 광주의 한 돼지고기 전문점의 간판은 자연 방목과 건강한 돼지라는 점을 강조하며 홍보하고 있다.

 

광주의 한 돼지고기 전문 식당은 친환경 돼지고기만을 취급한다는 슬로건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장식으로 사육한 돼지가 아닌, 목초지에서 자란 이베리코산 돼지라는 점을 강조해 홍보한다. 친환경으로 키운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한 마케팅 방법이다. ‘친환경 돼지’라는 홍보 문구는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며 동물 복지를 앞세운 육류시장의 움직임은 가속화되고 있다.


현실적인 동물복지 실현에 앞서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동물복지 농장주와 예비동물복지 농장주 250여명(응답자 133인)을 대상으로 동물복지농장 운영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농장주들이 복지축산을 유지하기에 가장 큰 어려움으로 △'복지축산에 대한 시설지원이 없다'(51.6%)를 꼽았으며, 이어 △복지축산물 판로개척이 어려움(46.9%) △복지축산에 대한 운영지원이 없음(40.6%) 순으로 답했다.
설문조사 결과에 동물복지농장주들은 동물복지축산의 전망을 좋게 바라보며(37%), 관행 축산은 경쟁력이 없다고 답한 비율로 26%에 달했다. 특히, 현재 관행축산을 하는 농장주들 8.3%가 관행 축산이 동물학대라고 답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농장시설지원과 판로개척
이 된다면, 농장주들도 동물복지축산을 고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카라는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시설 전환 자금 지원, 노하우와 교육 지원, 차별성 부각과 홍보 지원, 동물복지농장 네트워크 형성 지원 등의 방안이 치밀한 조사연구를 통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방안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동물복지 농장은 충분한 확대 정착의 가능성과 여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물들의 숭고한 죽음
국립경남과학기술대학교 김두환 교수는 “동물복지에 대한 개념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며 “반려동물의 복지와 농장동물의 복지는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특히, 식육으로 이용되는 농장동물이라도 생명을 빼앗는 과정에 주어지는 고통을 최소화하고 살아 있는 동안 최적의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농장동물의 복지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한 종축은 약 6660여 평에 달하는 축사에선 2만여 마리의 돼지가 살고 있다. 이곳 관리자에 따르면 돼지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 사육 공간을 넓게 설계했다. 진풍경은 오후 3시가 되면 볼 수 있다. 축사 안 돼지들은 편한 자세로 누워 낮잠을 자는데, 이곳 농장은 돼지들의 충분한 수면시간 보장을 위해 하루 평균 8시간 이상 축사 내부를 어둡게 조정한다.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을 받은 이곳의 돼지들은 ‘행복한 돼지’로 유명하다. 돼지의 모습도 여느 양돈장의 돼지들과 모습이 달랐다. 뾰족한 송곳니와, 꼬리도 자르지 않고, 먹이도 자유로이 먹는다. 귀 부분에 삽입된 RFID(전자태그) 칩을 이용해 하루치 사료를 자동으로 배식해 주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행복하게 자란 돼지의 맛과 품질이 더 뛰어나다는 게 우리의 믿음”이라며 동물 복지를 고려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돼지고기를 생산 계획을 내비췄다.

 

사진 마당을 나온 암탉의 주인공 ‘잎새’는 새끼 족제비를 위해 먹이가 된다.

 

동물복지를 말하는 지금,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 평소에는 비건, 상황에 따라 육식)도 비건(Vegan, 완전채식) 앞에선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비건에겐 행복하게 자란 돼지이든, 어떤 돼지이든 고통을 느끼는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는 일은 혐오스러운 행위일 수 있다. 필자도 인간이 돼지보다 무엇이 낫길래 그들을 사육하고 먹을 수 있냐는 비건의 비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마당을 나온 암탉’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매일 알만 낳던 ‘암탉’은 농장을 나와 험난한 세상에 부딪힌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청둥오리를 키우게 되는데 자기 새끼처럼 보살피게 된다. 시간이 흘러 암탉은 성인이 될 청둥오리에게 꿈을 위해 날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을 먹으려던 족제비가 새끼들의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게 된 암탉은 족제비에게 자신을 먹을 것을 허락한다. 누군가의 주린 배를 채우는 먹이가 된다면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암탉의 숭고한 희생 정신과 죽음, 필자는 무언가 답을 얻은 것만 같았다. 먹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죽어야만 한다면, 돼지 또한 고통 받지 않고 살다 보면 그들에게도 숭고한 죽음이 되지 않을까.

 

사진 동물복지 사육유형 모델 (출처 국립축산과학원)

 

국립축산과학원은 지난 2017년부터 동물복지를 고려한 사육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축산과학원은 개별실외운동장 결합형, 견사실외운동장 결합형 2종, 실내외사육형 모델 2종을 제시했다. 실내외 사육형 모델은 운동장 활용이 어려운 농장을 위한 모델로, 잠자리 공간
을 최소 10% 이상 제공해 복지 수준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동물복지 수준 향상에 대한 중요성이 회자되며 사육 시설 개선을 위한 기관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높은 이베리코 산(山)? 더 높은 한돈을 위해

사진 이베리코의 베요타 등급은 야생 도토리를 주 사료로 먹으며 자연 방목형으로 키워진다.

 

지난 추석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전국 도매시장의 평균가격이 지육kg당 4천 원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돼지 지육 평균 경락가격(제주 제외)은 kg당 3천 615원이다. 지난 해 평균 4천 317원보다 19%낮고, 지난 달 3천 911원에 비교해도 8.2% 가량 떨어졌다. 또 축산물품질평가원에 의하면 11월 돼지 도매가격도 전년도 동월보다 하락해 kg당 3,633원이었다(제
주제외). 재고부담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며 돼지 도매가격은 지난해 최저치를 형성했다.
그에 반해 스페인산, 이베리코산 돼지고기의 수입량은 늘었다. 한국육류유통수출협회에 따르면 스페인산 돼지고기는 냉장과 냉동을 합쳐 검역기준으로 11월 6267톤이 수입됐고, 지난 1~11월 수입누계물량은 4만 9968톤에 달해, 전체 수입물량의 12% 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육류업계 관계자는 “스페인산 이베리코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최근 수입이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실, 이베리코 돼지고기 광풍이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스페인산 돼지고기 시장도 그리 녹록치 않은 형편이다. 이베리코산 돼지고기 인기 상승으로 국내외 스페인산 돼지고기 수요는 늘었지만 무리한 돼지고기 공급으로 부작용이 빚어지고 있다. 과도한 양돈으로 품질저하, 농장 분뇨로 인한 환경오염, 친환경 공장식 사육돼지를 이베리코산 친환경 돼지로 둔갑 유통과 같은 부정행위 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스페인산 고기의 빈틈을 노려 정직한 동물복지를 실현해야 할때다. ‘두툼한 살코기’보다 ‘잘 자란 돼지’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대한한돈협회 조사단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동물복지 연구를 통해 전국 농가에 전파했으며, 소비자들도 동물복지 돼지고기에 대한 가격을 인정하고 있다. 소비자들도 동물복지에 따른 돼지고기 가격대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동물복지 돼지고기
가 가격면에서 외면당할지언정 양돈 산업을 장기적으로 할 요량이 있다면 동물복지 시설비용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추후에 동물복지 기준이 엄격해 졌을 때는 모든 사람이 동물복지 경영을 해 경쟁력도 잃고 만 뒤일 터. 그때 편승하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목초지대에서 도토리만 먹이며 이베리코산 돼지고기를 따라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실정에 맞는 동물복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관행되고 있는 무분별한 도태와 과도한 밀사에 대해 성찰이 우선돼야 한다.

 

사진 2016년 우리나라 최초로 동물복지인증 돼지고기를 출시한 김해 부경양돈농협은 지난해 ‘2018 소비자가 뽑은 베스트 도축장’ 부문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에 선정됐다.

 

최근 동물복지농장 개설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국회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물보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발의되면서 동물복지 농장의 윤곽이 선명해지고 있다. 개정안을 발의한 황주홍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은 “동물복지연구원의 설립을 통해 정부·시민단체·산업계·전문가 사이의 유기적 협조체제를 구축한다면 동물복지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협회의 지원을 통해 시설전환금과 판로개척, 홍보가 이뤄진다면 한돈 농장의 이미지 개선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력
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위기일 수 있는 지금이 건전한 동물복지 의식을 재건으로 한돈의 명예와 입지를 되찾을 수 있는 최고의 적기이다.

 

 

 

<월간 피그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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