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으로 끈을 묶는 신발, 자동으로 건조되는 자켓과 하늘을 나는 자동차, 공중에 뜨는 호버보드 등 1989년 블록버스터 영화 <백투더 퓨처 II>에서 묘사한 2015년 전망은 대부분 맞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맞은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아직 신문을 읽고 있으며, 이를 통해 drupa가 65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신을 상상력으로 최적화 한 들로리안(영화 <백투더퓨터> 시리즈 속 자동차 이름)에 태우고 시속 140km로 아우토반을 지나 뒤셀도르프로 안내할 것이다. 그리고 인쇄의 미래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글 | 에드 부가드 제공 | drupa
에드 부가드
네덜란드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겸 전문기고가로 그래픽 아트와 커뮤니케이션 산업에 초점을 맞춘 글을 전문적으로 쓰고 있다. 2008년~2012년 드루파의 공식 신문인 ‘드루파 리포트 데일리’(drupa daily report)의 국제편집팀원이었고, 금년에도 같은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2년 전, 베르너 마티아스 돈샤이트 메세 뒤셀도프르 대표 & CEO는 “드루파는 시도와 시험을 거쳤다. 그리고 감동을 주는데 실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덧붙여 새로운 슬로건 ‘Touch the Future’에 대해서는 “drupa 2016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풍부한 역사를 바탕으로 한 그의 예측은 거의 들어맞았다.
1949년 drupa 창시자들이 새로운 콘셉트로 인쇄 및 제지산업 자본재에 대한 국제 무역 전시회를 기획해서 실제 전시회가 열린 1951년 까지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단지 10개국 527개 참가사와 30만 명의 방문객들은 거대한 도전의 시발점 위에 섰다고 생각했다.
드루파 시
drupa 창시자는 1914년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전통적인 전시회 BUGRA(Buchgewerbe und Graphik의 단축형-인쇄제본업과 그래픽)를 기반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49년에 동독으로 라이프치히가 분할된 뒤 국가적인 전시회 전망을 재구성하는 것은 필요해졌다. 1950년 5월, 그들은 공식적으로 ‘Internationale Messe Druck und Papier’를 발표했다. 이 타이틀은 곧이어 ‘Druck und Papier’(인쇄와 종이)로 바뀌었고, 다시 DRUPA로 정착했다.
이 이름은 1950년 공식적으로 채택됐다. 물론 INDRUPA와 같은 몇 자 차이나지 않는 약어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름들은 폐기됐다. 이어 디자인 콘테스트를 통해 인쇄를 상징하는 drupa의 상징적인 로고가 선보였다. 이 디자인은 50년 동안 드루파의 상징이 됐고, 지난 2000년에 선보인 새로운 픽셀로고로 교체 됐다.
타이프의 시대
1951년은 활판 인쇄가 산업의 주력이었다. 지난 세기 동안 식자와 인쇄는 빠르게 산업화 했고, drupa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방문객들은 M.A.N., 프랭켄탈 알베르스 & Cie와 하이델베르크와 제조업체들이 전시한 5종류의 식자 모델과 더불어 역시 5종류의 주조식자기를 볼 수 있었다. 이 인쇄기들은 전시회를 통해 자동 평판인쇄기와 윤전기들의 시연이 이어졌다. 속도와 자동화는 65년 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튀셀도르프의 유행어가 됐다. 독일 신문 ‘디 자이트’는 “한눈에 보기에는 한 지붕 아래서 인쇄와 종이의 다소 혼란스러운 조합”이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데뷔 이벤트를 ‘특별한 성취’라고 리뷰했다.
스테레오 타입의 시대
변화가 곧 감지됐다. 오프셋은 컬러 수요의 증가와 힘입어 이미 미국에서 인쇄량이 크게 늘어났고, 1951년 각 부스에서 제품품들이 선을 보였다. 파버 & 슐라이셔는 즉시 최신 오프셋 모델인 ‘롤랜드 Parva’ 단도 모델과 ‘롤랜드 Ultra’ 2도 모델을 홀11에서 선보였다.(M.A.N은 본고장인 아우스크부르그에서 첫 번째 매엽 오프셋 모델인 ‘Ultra M.A.N’의 조립을 시작하고 있었다.) 다른 발명품들, 예를 들어 미국의 제록스는 종이복사기 914 모델을 설치했다. 지멘스는 첫 번째 연속적 스트림 잉크젯 프린터의 특허를 냈다. 1925년 버전 팩스 머신을 발명했던 발명가인 헬슈라이버가 세운 루돌프 헬 연구소는 한 번에 스캔한 필름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쇄하는 과정을 전자공학적으로 통제돼 인장되는 클리쇼그라프(Klischograph)를 테스트했다.
속도를 높인 프리프레스
헬 연구소의 클리쇼그래피 151은 성공적으로 공개됐다. 클리쇼그래프는 인쇄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던 화학 에칭 현상방법을 대체했고, 이로 인해 프리프레스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라이노타입 퀵셋 시스템은 최초로 천공된 테이프로 컨트롤 돼 시간당 18,000자를 식자할 수 있었다. 특정 산업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시회에 방문한 독일의 테어도어 휴이스 연방 대통령은 자신의 사진을 30분 뒤에 인쇄된 형태로 볼 수 있었다.
주조를 대신한 이미징
우리의 타임머신 들로리안이 1958년에 도착 하면, 우리는 오프셋 인쇄기가 시장을 견인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펜바흐 소재의 ‘프랑켄 & 슐라이셔’가 ‘롤랜드 오프셋마키넨파브릭 프랑켄 & 슐라이셔’(Roland Offsetma?chinenfabrik Franken & Schleicher)로 이름이 바뀌었음에도 롤랜드 인쇄기는 성공적으로 성장했다. 한편, 하이델베르그의 오프셋 기술은 당시까지 포기에 가까울 정도로 회의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
사진 식자는 주조활자를 대체했다. 자동주조식자기는 기계적인 방식인 금속주조 활자를 대신에 활자를 만들었다. 베어톨드는 1958년 다이어타입의 시작품을 선보였는데, 다이어타입은 헤드라인을 빠른 속도로 타이프하기 위한 데스크탑 시스템으로, 글래스 마스터 디스크의 글자를 이용했다. 더불어 헬연구소는 색을 분리해 원래 사진을 스캔하고 보정할 수 있는 플랫베드 시스템 컬러그래프를 발표했다.
라이노타이프는 좀 더 빨라졌다. 지난 drupa 이후로 라이노타이프는 라이노필름 포토타이프세팅 머신에서 전자 플래시 튜브와 작동했다. 1956년 뉴욕의 데일리 뉴스에서 필드 테스트를 거친 이후, 키보드와 자동 콤포지션 유닛, 어셈블리 디바이스로 조합된 라이노타이프는 시간당 43,000자 식자가 가능한 성능을 가지고 뒤셀도르프에 선보였다.
활판 인쇄는 오프셋으로 변환
하이델베르그는 1962년 4번째 드루파에서 활판인쇄에서 오프셋으로 변형된 KOR 제품으로 오프셋 시장에 도전하게 된다. 48,000㎡ 메쎄홀은 Wifag을 비롯한 다양한 제조사들이 만든 새로운 오프셋 인쇄기로 들어찼다. 또한 일본의 사쿠라이가 평판 인새기로 drupa에 처음 출품했고, 스크린이 첫 번째로 만든 전자 컬러 스캐너로 마케팅을 시작했다.
1967년 최초로 5년 주기의 drupa를 맞아 전시 센터로부터 북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2개의 임시홀이 전시회에 추가됐다. 그러나 60,000㎡로 전시장이 확대됐음에도 전시장은 모두 예약됐다. 150주년을 맞이하게 된 쾨닉 & 바우어 평판 오프셋 인쇄기인 최초의 ‘Rapida’시리즈를 선보였다. 헬 연구소가 몇 개의 스캔을 조합해 이미지와 텍스트를 필름에 출력하는 콤비-크로마그래프 CT288을 선보였다.
새로운 전시관
제5회 drupa가 개최되고 1년 후, 뒤셀도르프는 바로 1967년도 drupa의 임시홀이 있던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전시 센터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 크기는 주요 무역 박람회가 더 커져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로 결정됐다. 1972년 drupa는 100,000㎡ 크기의 전시장을 개설했고 전시장은 참가회사들에 모두 매진됐다.
인쇄 산업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1970년 미국에서는 라이노타이프 주조기계 생산이 중단됐다. 동시에 하이델베르그는 자사의 새로운 인쇄기인 GTO(‘Grosser Tiegel Offset’)를 선보였다. 한편 롤랜드 800은 잉크 콘트롤 시스템이 통합된 첫 번째 오프셋 인쇄기가 됐다.
1977년 drupa 역사 최초로 참가사들은 1,000곳이 넘어섰다. 프리프레스는 크로스필드의 소형컴퓨터로 콘트롤 되는 마그나스캐너를 이용하게 되면서 완전히 전자 방식으로 이동했다. 하이델베르그는 자사의 첫 번째 Speedmaster 인쇄기를 출품했다. UV잉크가 소개됐으며, 첫 번째 무습수 오프셋 판재가 전시회에 소개됐다.
또한 컴퓨그래픽 에디트라이터 7500이 소개됐다. 한편 이스라엘에서는 베니 란다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습식 토너 기술의 완성을 위해 ‘인디고’라는 회사를 세운다. 1982년 drupa 에디션은 박람회 참가사 중 절반이 독일 이외의 나라에서 온 것으로 소개됐다. 스캔그래픽이 Scantext1000 시스템을 발표하면서 포토타이프세팅 방식이 조금 더 발전하게 된다.
디지털 전시회
“Drupa, drupa, 국제 인쇄 및 종이 박람회, 우리는 새로운 그래픽 산업을 보기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에 방문한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1986년 첫 번째 drupa 주제곡은, 비록 1982년 개최되는 drupa를 위해 1980년 시카고의 ‘프린트 80’에 사용된 곡이었다.
정말 새로운 것들은 추가적으로 변화하면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1984년 애플은 첫 번째 데스크톱 컴퓨터를 발표했고, 어도비는 포스트 스크립트를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라이노타이프는 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10번째 개최와 40주년을 맞은 1990년 drupa는 ‘디지털 쇼’로 명명하고, drupa 홀에서 시연을 하는 25개 오프셋 윤전기와 함께 시작됐다. 126,000㎡이 넘는 공간에서 펼쳐진 당시 박람회는 AM의 습식 토너 기반의 전자인쇄기가 소개되기도 했다. 더불어 당시는 1989년 철의장막이라 불리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직후 개최된 박람회였다. 오프셋 인쇄기는 계속해서 자신의 지위를 쌓았고, 고모리는 당시로서는 과도할 정도로 사치품이라 불리던 자동 판교환 시스템을 세계최초로 내놓았다.
1995년에 개최된 drupa의 생산성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컴퓨터에서 즉시 판을 만들 수 있는 Computer-to-plate (CtP), DI 프레스와 디지털 컬러 인쇄가 전 세계에 퍼졌다. 인디고가 E-Print 1000 디지털 오프셋 컬러 인쇄를 선보이는 동안 자이콘은 드라이토너 방식의 DCP-1 인쇄기를 선보였다.
당시 애플은 프리프레스 솔루션 파워맥 플랫폼을 선보였다. 하이델베르그는 Quickmaster-DI를 선보였고, 만로랜드는 DICO-press의 원형을 소개했다. KBA는 잉크젯을 이용한 하이브리드 오프셋 윤전 시스템을 선보였고, 신문의 각 첫 페이지에 다양한 만화를 넣어 인쇄할 수 있음을 발표했다.
구텐베르그에서 인터넷까지
구텐베르그의 600번째 생일과 함께 50번째 생일을 맞게된 2000년 drupa는 풀컬러 디지털 프린팅이 오프셋 시장을 장악한 가운데 제록스가 도큐컬러 시스템을 전시했다. 하이델베르그와 코닥은 합작으로 넥스프레스를 선보였고, Karat은 Karat 74 DI 프레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인쇄가 모두 디지털로 이동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생산 워크플로가 프리프레스에서 포스트프레스까지 산업표준이 CIP3에 의해 연결됐고, 그 모든 것은 홀6 프린트 시티 컨소시엄에서 소개됐다. 애플이 CeBIT 참가를 거르기로 하고 drupa에 참가하면서 전문가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애플은 OS-X를 선보였고, 모두들 인터넷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04년 drupa는 JDF(Job Definition Format) 포맷이 그래픽 프로덕션의 통합 디지털 워크플로의 심볼이 됐다. 라이노 타이프의 발명가인 오트마 메르겐탈러의 150번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업계는 디지털화 됐다. 2008년에는 Ko?dak, Screen and HP 등 잉크젯 기술을 가진 회사뿐만 아니라 Oci, Canon, Agfa, Ricoh와 Konica Minolta 등 토너 기술을 가진 회사와 같이 디지털 제품 참가사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박람회가 끝나갈 무렵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뒤셀도르프에 애플이 iPhone 3G를 발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Touching the future
2012년 베니 란다는 잉크젯 기술을 drupa 2016에 나노그래픽 인쇄기술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KBA, 하이델베르그와 같은 전통적인 인쇄제조업체들은 디지털 인쇄기 업체들이 했던 것 처럼 자사의 잉크젯 장비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우리가 인더스트리 4.0 시대를 향하여 가속한 것처럼, 속도와 자동화는 다시 한 번 뒤셀도르프에서 열릴 2016 drupa의 유행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drupa 송을 콧노래로 부른 것처럼, 소문은 백 투 더 퓨쳐의 속편이 런던 웨스트 엔드 극장의 뮤지컬처럼 불릴 것이다.
<월간 PT 2016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