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은 1899년 11월 9일(음력 10월 7일, 광무/光武 3년) 기해년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 당주동 (당시 지명 야주개/夜珠峴)에서 어물과 쌀 등 일반 식용 생활품을 주로 판매하는 가게 집안의 방한용/方漢龍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방경수/方慶洙였고 소파는 1909년 서울 종로의 매동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집에서 가까운 서대문 쪽의 미동/渼洞보통학교(현 미동초등학교)로 전학하여 1913년 14살에 4학년으로 졸업한다. 바로 그 해 부친의 권유로 서울의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졸업을 1년 앞두고 가정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담임 선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914년에 상업학교를 자퇴하고 만다이 무렵부터 소파는 독서에 열중하면서 육당/六堂 최남선 창간의 <소년>, <청춘/靑春>, <새별>, <붉은져고리>, <아이들보이> 등의 잡지들을 열독하게 된다.
글 | 전영표(SMRCI연구소 대표이사장)
1917년 천도교의 제3세 교주이며, 독립운동가인 손병희/孫秉熙 선생의 셋째딸 손용화/孫溶嬅(동덕여학교 출신) 양과 결혼하게 된다. 결혼 후 일본 도쿄 유학시까지 그는 서울 종로구 재동의 처가에서 신혼 살림살이를 하게 된다. 1918년에 소파는 장인 손병희 선생이 인수, 경영하던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에 입학, 공부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배부하다가 왜경에게 붙잡혀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도요대학/東洋大學 문화학과의 특별청강생으로 입학하여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전공, 공부하게 된다.
‘어린이날’ 제정과 잡지 <어란이> 창간에 앞장
일찍이 소파는 도쿄 유학 때 세계 명작 동화를 추려 엮은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1922년 6월 서울의 천도교 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했다, 이 동화집은 조국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 <어린이>를 발행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개벽사에서 발행한 이 동화집은 당시 조국의 어린이 독자들에게 대인기였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소파는 <어린이> 잡지 창간을 위한 준비로 일본에서 첫 모‘어린이날’ 제정과 잡지 <어란이> 창간에 앞장일찍이 소파는 도쿄 유학 때 세계 명작 동화를 추려 엮은 동화집 <사랑의 선물>을 1922년 6월 서울의 천도교 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했다, 이 동화집은 조국 어린이들을 위한 잡지 <어린이>를 발행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개벽사에서 발행한 이 동화집은 당시 조국의 어린이 독자들에게 대인기였다. 여기에서 힘을 얻은 소파는 <어린이> 잡지 창간을 위한 준비로 일본에서 첫 모임을 가진 색동회의 동들과 미리 정성레 편집하여 서울가져온 원를 1923년 3월 개벽사에서 창간하도록 했다. 그는 이미 이전에 1923년 3월 16일 일본 도쿄 유학 중에 아동문제연구 단체인 ‘색동회’를 발기, 조직하고 그들 동인들과 함께 정성스레 편집하여 보낸 원고가 곧 <어린이> 잡지였다. 이렇게 창간된 그의 잡지 <어린이>를 가지고 소파는 그 해 3월 30일 서울에서 제2차 발기 모임을 갖고, 단체 모임의 이름을 ‘색동회’로 확정하고 이 날 모임에서 색동회 외침(캐치프레이즈/Catchpraise)을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로 정했다
1923년 4월 17일에는 천도교소년회 주관으로 ‘불교소년회’와 ‘조선소년군을 통합하여 ‘소년운동협회’를 창립하고, 사무실을 서울 천도교당 내에 두기로 한다. 한편, 이 모임에서는 다가오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기로 결의하고 이 날에 기념행사를 열기로 하고, 4월 18일 천도교당에서 소년운동협회가 주최하는 <소년문제강연회>와 <소년연예회>를 개최하도록 했다. 또한 그 열흘 뒤, 4월 28일에는 도쿄에서 <소년문제강연회>를 개최하도록 했다.
그 해 4월 30일에는 소파의 ‘색동회’를 정식으로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조직하고, 5월 1일의 어린이날 제정을 결의하고, 반드시 어린이날 기념식을 갖도록 추진했다. 이렇게 하여 ‘색동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화운동 단체로 정식 발족하게 된다. 또 한편, 서울에서는 제1회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5월 1일 기념식을 갖고, 전국적인 제1회 ‘어린이날’ 선포식을 열도록 했으며, 지난 5월, 이미 3월 16일에 가진 도쿄의 제1차 모임의 소파의 ‘색동회’는 이렇게 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아동문화운동단체로 정식 발족하게 된 것이다. 한편, 1923년 5월 1일에는 ‘어린이날’을 기해 ’조선소년운동협회가 주최, 천도교와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의 후원으로 서울의 천도교당에서 1천여 명의 어린이들을 모아 기념식을 갖고 대대적인 행사를 거행했다. 이 날 <어른에게 드리는 글>과 <어린 동무들에게 주는 말> 및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전단 12만 장을 전국에 뿌리기도 했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는 ‘소년 운동의 기초 조항’이 조선소년운동협의회 명의로 선포케 된 것이다(민희식,<소파 방정환평전>, 스타북스, pp.530- 533, 2014).
아동문화운동으로 ‘어린이운동’ 일으켜 민족정신 일깨워
1919년 1월에 소파는 이중각, 이원복, 유광렬/柳光烈 등과 함께 문예지 <신청년/新靑年>을 창간했다. 창간호의 권두사는 만해 한용운의 기고문을 받아 싣기도 했다. 그 때 자주 만난 만해 스님을 통해 오늘의 청년들이 무슨 일을 해야만 하는지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1919년 3월 1일 기미/己未 독립운동 무렵에는 서울 재동의 처가에서 몰래 오일철(오세창 선생의 아드님) 등과 함께 <독립신문>을 등사판으로 편집, 인쇄하여 비밀리에 <독립선언서>와 함께 배부하다가 왜경에게 검거되어 갖은 고문을 받았지만, 다행히 증거 불충분으로 1주일 만에 석방되었다. 소파는 자신의 <어린이>지 밖에도 <신여자/新女子>지의 고문으로서 편집은 물론, <처녀가 가는 길> 등의 산문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 여성지는 당시 이화학당 출신의 김활란(후에 이화여대 총장), 신줄리아, 박인덕(인덕여자전문대 설립), 김원주(일명 일엽/一葉 스님) 등 쟁쟁한 여류 인사들이었다.특히 신줄리아는 3·1독립운동 때 옥고를 치른 신여성이다. 또한 1919년 12월에는 한국 최초의 영화 잡지라 일컫는 <녹성/錄星>(1919.11.15.창간, 발행인/이일해)의 편집을 적극 도와 발행한 적도 있다.
이 밖에도 천도교 발행의 <개벽>지를 비롯 여러 잡지에 자신의 호인 소파 외에 잔물, 몽견초/夢見草, 물망초, 몽중인/夢中人,북극성, 은파리, 깔깔박사 등 여러 이름의 필명으로 동화, 동요, 동극 등의 수많은 작품과 산문을 집필, 싣기도 했다.
소파, 그는 이 땅에서 아무도 하지 못한 아동인권운동이자, 아동문화운동인 ‘어린이운동’을 일으켜 주도하면서 나라 없는 소년 소녀들에게 민족정신을 심어 주면서 “일제/日帝를 왜 미워해야 하고, 왜 물리쳐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소파와 늘 뜻을 같이 했던 작가들을 열거해 보기로 한다.
동화에는 마해송/馬海松, 윤석중/尹石重, 고한승/高漢承,진장섭/秦長燮, 연성흠/延星欽, 최병화/崔秉和, 이종호 등이고, 동요에는 한정동/韓晶東, 이원수/李元壽, 유도순/劉道順, 윤복진/尹福鎭, 박목월/朴木月, 동화 작곡에는 홍난파/洪蘭坡 , 정순철/鄭淳哲, 윤극영/尹克榮, 박태준/朴泰俊, 또한 동극에는 신고송/申孤松, 정인섭/鄭寅燮(영문학자), 일반교양 산문에는 차상찬/車相瓚, 손진태/孫晉泰, 박달성/朴達成,이헌구/李軒求, 조재호/曺在浩, 서덕출/徐悳出 등의 작가들이 각 장르별로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지는 물론, 그의 기획 발행 잡지의 필진으로 함께 참여하여 언제나 호흡을 같이한 것으로 보아진다. 그러나 소파 방정환은 이 같은 많은 아동문학 작가들을 모두 뒤로 하고 1931년 7월, 신장염, 고혈압 등의 병세 악화로 경성제대 부속병원(현 서울대 의대 부속병원)에 입원, 치료하다가 보름 만인 7월 22일 33세의 젊은 나이에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주치의에 의하면 급성 요독증의 악화로 온몸이 부어서 치료 불능의 병세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떠나고 말았다.
한때 1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했던 <어린이> 잡지의 주필은 이제 떠나고 말았다. 1932년 7월 25일 하오 1시 개벽사와 색동회 주관으로 천도교 대교당 앞마당에서 ‘고 소파 방정환 선생’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영결식장은 어린이들의 울음바다로 변하였다.
이후 소파 창간의 <어린이>지는 색동회의 이정호 동인이 주간을 맡아 발행했으나, 소파 타계 1주년인 1932년 통권 122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고 말았다.1933년 5월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어린이날’ 기념식이 전면 금지되고 소년운동 단체도 해산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소파 방정환이 이룩한 어린이 운동ㅋ의 정신은 일제가 물러간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5월 5일의 기념일로 살아남아 이어져가고 있다.
1978년 7월에는 독립기념관에 그가 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새긴 어록비가 건립되었고, 정부는 그해 ‘금관문화훈장을 선생에게 추서했다.
참고문헌
민윤식, <소파방정환평전>, 스타북스, 2014.
최덕교 편, <한국잡지백년>, 제2권, 현암사, 2004.
한국잡지협회, <한국잡지100년>, 한국잡지협회,1995.
<월간 PT 2017년 5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