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기존 사업을 통해 성장하기도 하지만, 외부 기업을 인수하여 시장을 확대하거나, 인수기업을 통해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성장하기도 한다. 최근 전통 산업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됨에 따 라 인수합병의 기회를 노리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여 제대로 정착하지 못할 경우 ‘승자의 저주’에 빠져 기존 사업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제공 | 월간 인재경영 글 |천성현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
실제 인수 기회를 잘 포착하는 기업이 많지 않을 뿐더러 인수 후 제대로 통 합해 성공에 이르는 역량을 갖춘 기업은 더욱 드물다고 한다. 글로벌컨설팅 사 맥킨지에 따르면 인수를 잘하는 기업과 열위 기업을 비교한 결과 ‘통합 역량’의 격차(34%)가 가장 컸다고 한다. 'M&A 운영 조직역량(28%)’, '실사와 협상 역량(25%)‘, 'M&A전략 역량(23%)’에 비해 격차도 상당했다. 인수에 성 공하더라도 통합에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우리 기업들도 이 제 인수합병이 경영의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인수합병 역량을 갖춘 선진기업의 사례를 살펴보고 시사점을 배워본다.
양손잡이 인수합병의 귀재시스코(Cisco)
‘양손잡이(Ambidextrous) 기업’,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잘 쓸 수 있는 양손 잡이처럼, 내부의 혁신과 외부와의 협업을 모두 잘하여 성장을 지속하는 기 업을 일컫는 경영용어이다. 시스코만큼 이 말에 걸맞은 기업을 찾기 쉽지 않 다. 시스코는 스탠포드대학교 동문들이 모여 인터넷 통신 장비사업을 창업한 내부 혁신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인이 인터넷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데에는 시스코의 통신장비의 덕분이라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시스코의 혁신은 창업 동력이었던 내부 기술 혁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스코는 가장 어려운 시기에 과감하게 기술을 사들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소위 ‘사들이고(Buy), 개발하고(Build), 파트너와 협력(Partner)’하는 시스코 특유의 전략에서 개방적 혁신을 추구했던 이들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시 스코의 기업 역사를 살펴보면 자신의 기술 영역과 관련된 기업들을 인수하 면서 사업 혁신을 지속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전략이 맞아떨어져 시스코 는 다른 기업이 내부 기술역량이 뒤처지면서 쇠락하는 동안에도 사업성과 를 높여갈 수 있었다.
시스코의 기업 홈페이지를 보면 다른 기업과 달리 인수한 기업의 역사를 별 도로 소개한 페이지가 있다. 1993년 크레센도를 인수한 이후,2018년 1월 스카이포트시스템을 인수하는 데까지 무려 25년의 역사 동안 매년 십여 개 의 기업을 인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외부 혁신을 내재화하여 성장하는 시스 코의 혁신 DNA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시스코의 인수합병 전략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인수합병을 통 해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전략이다. 시스코는 초기 인터넷 장비 사업에 더 해 협업, 모바일, 데이터센터, 비디오 분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크레센도, 그랜드정션, 그래나이트, 웹엑스, 스타렌트, 머라키 등을 인수했다. 둘째, 인 수합병을 위해 엔지니어링, 영업, 서비스 등 모든 부서가 협력한다. 고객의 서비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캐리든, 브로드 홉, 인투셀 등을 인수했고, 차 세대 아키텍쳐 엔지니어링을 개발하기 위해 메라키, 클라우피아 등을 인수 했다. 새로운 비디오 영업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NDS 등을 인수하기도 했 다. 셋째, 사업부문의 매각을 통한 투자비 절감도 중요시한다. 링크시스, 벨 킨을 매각 등 분사를 통해 자사 제품영역 이외 투자를 절감하는 방안도 신 중하게 구사한다.
시스코가 힘들고 어려운 인수합병을 척척 해내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미 다스의 손이라 할 수 있는 인수합병 조직과 체계적인 인수합병 프로세스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시스코의 개방적 혁신을 주도할수 있는 원동력인 인 수합병 조직과 운영체계를 면밀히 살펴본다.
우선 인수합병을 주도한 조직과 인력이 체계적으로 구비되어 있다. 일명 ‘기 업개발팀’의 역할이 돋보인다. 글로벌하게 사업경험을 갖춘 인재와 IT분야 의 전문성을 갖춘 팀원들이 이스라엘, 인도, 중국, 체코등 전 세계에서 활동 하고 있다. 이들은 최소한 10년 이상 관련 분야에서 업무 경험과 인맥을 구 축한 정예 멤버들이다. 기업개발팀은 투자 초기 단계부터, 파트너십 제휴, 인 수단계까지 직접 권한을 갖고 추진 하는 주도적인 역할이 가능하다. 시스코 의 당해 연도 사업계획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대규모 합병뿐만 아니라 소규모 제휴까지도 직접 챙기는 인수합병의 전문가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둘째, 인수합병의 과정을 하나의 사업으로 인식하고 ‘비즈니스 웨이(a way of doing business)’로서 학습하고 체화하였다. 창업 초창기부터 매년 수 차례 혹은 십여 번의 인수합병 과정을 통해 기업을 사고파는 메커니즘을 확실히 내재화한 것이다.
셋째, 인수합병의 단계와 프로세스가 시스템화되어 있다. 인수합병의 단계 를 전략(Strategy), 준비(Readiness), 실행(Action)의 3단계로 구분하였다. 전략 단계에서 시스코의 사업전략과 사업 포트폴리오를 점검하여 인수 우 선순위를 명확하게 선정한다. 준비단계에서 합병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경영진을 선정한다. 리더십을 확보하지 않으면 인수 대오가 흐트러 진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습득한 것이다. 실행단계는 매물로 나온 인수 기 회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적정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매수시기를 저 울질하는 시기를 거친다. 매년 수십에서 수백 개의 인수 후보에 대해 최적 의 인수합병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을 준비하는 시스템이야말로 시스코의 자산이라 할 수 있다.
넷째, 기업문화와 시스템의 통합을 전격적으로 실행한다. 시스코는 통합과 정에서 ‘기업문화’를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시스코의 문화와 케미가 맞 는 기업을 선정하기도 하지만, 인수 초기에 기업문화 통합을 위해 인력과 시스템의 통합을 가장 우선시한다. 인수하는 과정을 표준화하여 피인수기 업의 구성원이 바로 시스코의 시스템을 사용 하면서 하나의 기업으로 소속 감을 가질 수 있도록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시스코 온 시스코(Cisco on Cisco)’ 방식에 따라 인수가 이루어지고 나면 시스템과 인적자원의 통합을 우선적으로 추진한다. 인수가 이루어지면 바로 시스코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고, 명함과 복지시스템 그리고 인센티브 제도의 적용을 받도록 한 다. 이렇게 되면 피인수기업의 직원도 그날부터 시스코 직원처럼 업무를 수 행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게 되고, ‘이제 시스코 직원이구나’하는 인식을 강하게 가질 수 있다.
다섯째, 인사통합을 위한 원칙과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시스코 인사통 합팀은 매번 인수합병 과정에서 겪은 노하우를 정리하여 다섯 가지 원칙을 즉각 실 행하여 통합의 효율을 높인다. 직원에 대한 100% 승계 원칙을 천명하는가하면, 직원 교육을 통해 시스코 직원으로서 알아야할 사항뿐만 아니라, 걱정 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투명하게 알려준다. 이 과정을 통해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어 부정적인 소문이 나거나, 좌절하여 우수한 직원이 이탈하지 않도 록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시스코인사 통합5원칙
① 시스코는 인수한 회사 직원을 100% 유지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② 시스코 인사부서는 인사제도와 급여시스템의 통합 과정을 피인수기업의 인사부서 직원과 함께 수행한다.
③ 시스코 인사부서는 피인수기업에 웹사이트를 만들어 통합과 전화 과정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시스코 교육에 대해 소개하는 등 커뮤 니케이션을 극대화한다.
④ 시스코 인사부서는 피인수기업 직원에 대한 DB를 구축하여 전화과정과 고욕계약서를 온라인으로 제공한다.
⑤ 시스코 인사부서는 인수계약 종료 시점에 즉시 직원교육(Orienta tion Course)을 개최한다. 새로운 직원들에게 시스코 직원으로서 정보를 제공하고 우려 사항을 해결해 준다.
SK하이닉스의성공과기업문화
SK와 하이닉스의 합병을 우연한 성공을 보는 이는 많지 않다. 하이닉스가 반도체라는 좋은 업종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1997년 IMF 구제 금융 위기와 맞물린 반도체 시장 불황으로 인해 수년간 채권단의 관리하에 어려운 시기 를 겪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에도 하이닉스는 시장 불황과 업계 치킨게임 와중에서 생존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고난의 담금질 탓일까? 최 근 반도체 호황 대주기에 접어들면서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실적을 매 분기 갱신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다.
단언하긴 어렵지만 SK하이닉스 합병의 시너지는 SK그룹의 인수합병 DNA 와 하이닉스의 생존 DNA의 결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두 기업의 인수 합병 성공 요인과 시사점을 살펴보고 우리 기업의 시사점을 찾아본다.
학계에서는 SK하이닉스 성공의 자산을 ① 신속한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 ②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는 기업문화, ③ 공격적 기술투자로 요 약한다. 신속한 추격자 전략은 최소한의 투자로 단기간에 제품 개발과 출시 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실적을 유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또한 공격적 기술투자 역시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산업 부문에서는 “마치 편집광과 같은 과감하고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인텔사 전 CEO 앤디 그루브의 어록을 곱씹게 한다.
인사담당자들은 오히려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는 기업문화’에 관심이 갈 것 이다. ‘생존’을 중시할 수밖에 없는 하이닉스의 발자취는 위기 시에 내부 단 결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때로는 수익성 높은 자산도 매각할 수 있는 결 단이 가능한 것도 다 생존 DNA가 있기 때문이다. 경쟁시스템을 통해 내부 긴장을 높이고 기업역량을 강화하는 경쟁사 삼성전자와 달리 하이닉스 는 생존을 위한 내부 협력과 공생추구를 통해 위기를 헤쳐 왔다고 평가된 다. 1997년 IMF 위기를 맞아 기업들이 도산하는 과정에서 하이닉스는 회 사보다 노조가 앞서 위기극복을 위해 임금협상에 대한 일체의 사항을 회사 에 일임하였다.
이에 화답하듯 임원들도 자발적으로 상여금 반납과 임금 삭감을 결의하는 등 생존의식에 초점을 맞췄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문화는 어려운 상 황이 닥칠 때마다 월급을 반납하거나 무급휴가를 사용하면서 회사의 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2001년과 2010년 반도체 가격 급락 으로 회사 매각의 상황을 겪으면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삭감과 자체 생산성 효율화 운동에 참여하는 실천으로 나타났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임직원의 인식이야말로 위기를 극복하고,SK와의 합병과정에서도 높은 성 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
유공, 한국이동통신 등 인수합병을 통해 성장한 SK그룹 역시 인수합병 DNA를 장착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이 수많은 인수 합병을 통해 성공과 실패를 거듭해 왔지만, 특히 SK는 특유의 ‘따로 또같이’라는 키 워드를 통해 인수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는 기업문화를 내재화해 왔다. 우선 SK그룹은 계열사에 동일한 기업문화를 강요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따로 또 같이’라는 문화 키워드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개별 기업의 문화를 존중하고 함께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인수합병 과정에서도 개별 기업 고 유의 특성과 문화를 인정하기 때문에 격렬한 저항이나 갈등 현상이 두드러 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둘째,SK그룹은 선대 최종현 회장이 남긴 소위 경영헌법과 같은 ‘SKMS(SK ManagementSystem)’를 ‘그룹경영헌장’으로 지켜오고 있다. 하바드비즈 니스쿨의 사례연구로도 활용되어 유명세를 탄 SKMS는 최종현 회장이 임 원들과 모든 문구를 독경하며 만들었고, 그 후에도 수차례 개정을 통해 그 룹의 경영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룹 계열사를 모두 버리더라도 SKMS는 버릴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룹 임직원의 공유가치로 인식되고 있어 강한 정신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인수합병의 과정에서도 SKMS는 새로운 식구에게 읽히고 공유되는 좋은 기업문화 콘텐츠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이닉스의 인수 과정에서도 기존의 생존 지향적 하이 닉스 문화와 고유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은 SKMS가 융화하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평판이 높다.
셋째,SK그룹의 ‘위원회 경영’체제는 지주회사 구조와 함께 인수합병 과정 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조직구조 중의 하나이다. 지주회사 체 제 구축이 지배구조를 공고히 하고, 주주 관점의 투명한 경영 방식을 정착시 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위원회 경영은 계열사 간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 는 조직 제도라 할 것이다. 위원회 경영은 2012년에 도입을 검토하여 2013 년부터 시작한 그룹 자율 경영 체제 이다. 전략위원회, 글로벌성장위원회, 동반성장위원회, 인재육성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등 6개 위원회를 중심으로 계열사 CEO가 참여하는 그룹 차원의 협의 기구이 다. 명실공히 그룹의 성장을 위해 계열사 간의 지원을 협의하는 체제가 가 동됨에 따라 계열사를 추가하더라도 안정적인 지원과 조정이 가능하다. 그 룹 계열사 중 하나에 난제가 발생하더라도 집단지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으므로 인수합병 같은 그룹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 능동 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넷째, 인수합병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조직과 인력을 늘 준비 하고 있다. SK(주) 산하에 PM(Portfolio Management)실을 설치하여 투자은행 과 법무법인의 M&A 전문가를 영입하여 인적 역량을 강화하였다. 경우에 따 라 투자 자문사의 도움이 없이도 인수 대상을 자체 발굴하여 검토할 정도로 인수합병 조직의 역량이 상당하다는 내외부 평가를 받고 있다. 외부 보안이 중요한 인수 대상 검토 업무의 특성상 내부 역량을 활용하는 이점이 상당하 다. 초창기만 해도 거래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노하우를 축적하며 상 당한 실력이 쌓였다는 점에서 업계도 주목하고 있다.
앞서 살펴본 인수합병의 선도사 시스코와 SK그룹의 공통점은 성공사례를 낳기도 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여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하루아 침에 인수합병의 선수가 되긴 어렵다. 기회를 포착하여 실행하더라도 제대 로 성공하여 실적으로 이어가기도 만만치 않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를 통 해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기업도 도전을 피하기보다 작은 실패를 디딤돌로 큰 성공에 이르는 역량을 쌓아 나가길 기대해 본다.
※ 참고문헌
- 유효정 ‘글로벌 이노베이션 DNA, 시스코의 성공하는 M&A’. 전자신문 2013.8
- 박준범, 정상욱, ‘SK 하이닉스의 성장역사와 생존전략’. 경영사학. 한국경영사학회. 2016.4
- 채준호, ‘M&A 시장 큰 손 된 SK그룹, IB는 쓴웃음’, 인베스트조선,2017.5
- Doherty, Rebecca, ‘How M&A practitionersenabletheirsuccess’. McKinseyQuarterly. 2015.10
<월간PT 2018년 4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