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일자리 형태의 변화가 관건
한은혜 2018-06-04 15:45:44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 김난도 교수는 2018년 트렌드 중 하나로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을 꼽았다. 한국은 OECD 34개 회원국 중 장시간 노동시간으로는 2위, 국 민행복지수 33위로 불명예를 거머쥐었다. 유엔에서 발표하는 ‘삶의 질 지수’는 조사대상 135개국 중 75위 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에서 워라밸은 차라리 희망사항으로 들리는 것은 저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척박한 노동환경이라서 워라밸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제공 |월간 인재경영     글 | 김기령 풀무원 인사기획실장

 

 

천연자원은 별로 없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국토는 잿더미로 변한 상태에 서 국민소득 3만불이 넘는 국가대열에 진입한 저력은 우리의 장시간 근로/ 농업적 근면성이 바탕이 되었던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차라 리 이러한 이율배반적으로 들리는 워라밸은 우리의 생존과 더 밀접하게 연 관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직장인 중 ‘업무 스트레스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96%로, 미국 40%, 우리와 근로환경이 비슷한 일본 61%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96%라면 한국의 모든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 니 장시간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행복하지도 않으니 자살이라는 극단 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워라밸을 좀 더 심각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생존을위한워라밸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와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에게는 개인적 희생을 통한 장시간 근로로 인한 승진·보상 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다. 이들은 높은 연봉을 받고,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 과 같은 소위 ‘출세’라는 것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는 즐길만한 취미가 있고 건강한 인간관계가 동반 되는 의미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편이기에 주말근무나 반복되 는 야근에 대한 수용도가 낮다. 그러기에 이러한 장시간 근로를 중시하는 직 장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우리 사회가 반복적으로 위기 를 맞이하면서 앞선 세대들의 불안정한 직장생활을 직접 목격하였기에 평 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절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월급이 적더라도 안 정적이고, 정시 출퇴근이 가능한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을 더 선호한다. 이러 한 현상은 노량진 고시촌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자신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아니면 무엇이 부족한지를 자주 듣고 그런 내용에 대한 코칭을 받고 싶어 한다. 일반적인 지시보다는 수평 적이고 자 유로운 소통을 선호한다. 이러한 성향은 디지털 네이티브 (Digital Native) 로 자신의 생각을 SNS와 앱서비스를 통해 바로바로 표현하였던 것에서 저 절로 터득된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방식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과거 장시간 근로와의 결별이 요구되어진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에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빅데이터, 3D프린터 같은 기술도 중 요하지만 이러한 기술도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더불어 4차 산업 혁명으로 인해 공급자가 이끌던 소비는 사라질 것이고, 개인화된 맞춤식 소 비가 창출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조성하고 상상 력을 가진 혁신적인 인재를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이 직장을 구할 때 꼭 체크하는 영역이 워라밸이다. 과거에는 직 장을 다니는 선배들에게 직장에 대한 평판을 물었지만, 현재는 블라인드와 잡플래닛에서 기업에 대한 평판을 조회하고 있다. 이런 사이트나 SNS에서 악명이 드높은 기업에서는 점점 더 인재를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결국 고용브랜드 약화로 좋은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정 부는 국정철학에 맞추어 일하는 시간을 연간 1,800시간 이내로 줄이기 위 해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워라밸 확산을 위하 여 ‘오래 일하지 않기,’ ‘똑똑하게 일하기,’ ‘제대로 쉬기’를 삶에서 실천하도 록 ‘일과 삶의 균형 국민참여 캠페인’을 진행 하고 있다. 결국 워라밸은 기업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어떻게정착시킬것인가?

 

워라밸의 중요성은 이미 주지하고 있을 것이고, 현장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 하는 것은 주 52시간 근무시간 단축일 것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금년 7월부터 이를 준수하여야 한다. 일부 직원들은 이로 인해 ‘칼퇴근’이 가능해 질 것이니, 워라밸이 드디어 실현될 것이라고 반기고 있다. 다른 일부에서는 오히려 줄어든 시간에 동일한 업무를 진행하여야 하기에 업무가 더 빡빡해 질 것이고, 강제퇴근 후 노트북을 들고 카페나 집에서 나머지 업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벌써부터 걱정을 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이번 계기로 우리 직 장인에게 변화가 생길 것이다. 모든 직장인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지 금과 동일한 형태로 일을 하게 된다면 워라밸은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이라는 점이다. 이미, 국내 기업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도 많이 진행되었다. 2016년 대한상공회의소와 맥킨지가 공동으로 발간한 조직건강도 보고서 에 따르면, 비효율적 회의(39점), 과도한 보고(41점), 소통 없는 일방적 업무 지시(55점) 등이 개선해야 할 항목으로 꼽고 있다. 그러면 워라밸이 정착되 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① 보고와 회의개선

 

가장 중요한 것은 회의와 보고를 줄이는 작업이다. 먼저 보고를 줄이려면 조 직구조 개편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실행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우리 기업의 과다한 보고는 위계적·수직적 구조에서 발생된다. 어떤 현안에 대해 그 내용을 고민한 실무자와 관리자가 사전에 서로 상의 하고 논의하 였으면 보고가 그리 많아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관리자는 임원에게, 그 임원은 경영진에게 보고하다 보니 관련된 사람들 모두 이해시켜야 하고 그 들에게 맞는 보고서 형식과 문장 등 부차적인 부분을 수정하느라 불필요한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다. 현안에 대한 해결책 및 예상 시나리오에 시 간을 보내기보다는 줄 맞추기, 문장 수정하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 다. 갑작스럽게 조직을 수평 화하기 어렵겠지만 점점 그렇게 방향을 이끄 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회의도 줄여야 한다. 회의를 줄이는데 가장 중요한 작업은 회의 의 목적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회의 목적이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 이라면 관련된 관계자만 참석하고, 자료는 미리 배부되어 참석자들이 논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결정을 내릴 수 있고, 한정된 시간 내에서 의미 있는 토의가 가능하다. 혹시 상황 이해를 위해서 또는 정 보 공유를 위해서라면 굳이 면대면 회의보다는 게시판과 포털을 활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마지막으로 회의를 줄이는 다른 방법 중 하나는 집중근무시간을 만들어 그 시간에는 회의를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시간 부족 현상에 대한 대비책이지만, 즉흥적인 회의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② 정시출퇴근제 또는자율출퇴근제

 

변화를 도모하려면 의지에 대한 ‘상징(Symbol)’이 필요하다. 워라밸의 가장 대표적 상징은 결국 정시출퇴근제이다. 정시출퇴근제를 위해 사무실 소등 과 PC-Off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9시 출근/6시 퇴근 스케줄이 라면 6시 이후에는 업무를 더 진행할 수 없도록 사무실 소등, 사내 시스템 접속 차단 등 강제조항을 가동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라질 제 도이지만, 초기 정착에는 매우 유용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시출퇴근제에 서 자율출퇴근제로 전환이 될 것이다. 다만 함께 모여서 논의가 필요한 조 직에게는 100% 자율출퇴근 제가 아닌 코어타임을 준수하는 자율출퇴근제 가 선호된다. 결국 이러한 출퇴근제는 유연근무제와 연계될 것이다. 다만 유 연근무제가 시행 되려면 각 개인에 대한 업무가 명확하게 인식되어야 한다.

 

③ 연차휴가/휴직 사용활성화

 

일을 잘 하려면 잘 쉬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쉼표가 있어야 더 큰 발전 을 한다. 더 나은 창의적 성과를 기대하려면 쉼표를 허용하는 구조를 만들어 야 한다. 야근과 주말근무를 계속 강행하는 직원들은 업무를 심층적으로 분 석하기보다는 피상적이고 타성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제3자적 관점과 시각 을 갖고 자신이 그동안 했던 일을 관망하려면 쉼표가 필요하다. 일할 때는 몰 입하지만, 쉴 때는 푹 쉬어야 워라밸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모 신문기자를 통해 들었던 실제 사례인데,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아픈 이야 기다. A과장은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는 중이었다. 2박 3일밖에 허용 되지 않아 동해안으로 차를 몰고 가고 중이었다. 운전 중이라 카톡이 몇 번 왔으나 아이들까지 태우고 안전운전 상태라 바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조금 후 갑질로 유명한 상사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블루투스로 연결된 핸즈프리 전화에서 바로 욕이 시작되었다. “이 XX야, 상사가 졸로 보이냐. 대가리가 모자라 일도 제대로 못하면 행동이라도 빨라야지, XX야. 너 내 인내력 테스 트하는 거야. 왜 자료 보내라 했는데 감감 무소식이야.” 옆에서 조용히 우는 집사람과 뒤에서 통곡하는 아이들. A과장은 그 길로 회사로 가서 사표를 던 졌다. 휴가 중에 업무지시 카톡은 금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휴가를 내면 사 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말아야 한다. 특히 가족친화기업으로 남성의 육아휴 직도 허용되고 뒷말이 없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④ 집중근무와시간관리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 워라밸은 회사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하루에 회사 업무로 보낸 시간과 개인 시간이 어느 비율인가? 회사 일을 하 면서 시급하게 요청된 일을 먼저 하는가, 아니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가? 하루 시작 전 오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이를 실천해 나가고 있는 가? 이러한 내용을 자문자답하다 보면 현재 어떤 식으로 시간관리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시간관리에 대한 다양한 기법이 존재한다. 그러한 기 법들의 공통점은 재무예산을 다루듯이 시간예산(Time Budget)을 작성하 여 실행하라는 점이다. 시간도 관리 하지 않으면 낭비되는 것은 당연하다. 몇 가지 팁을 소개하면, 1시간 또는 30분 단위로 업무목표를 세우고, 그 시 간 동안 최대로 집중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시급한 잡무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잡무처리도 시간을 잡아서 그 시간 내에 처리하여야만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중요한 일만 한다고 시급한 잡무를 내팽길 수도, 시급한 일을 처리하 느라고 중요한 일을 자꾸만 뒤로 미룰 수도 없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업 무를 부과 받으면 업무를 분해하여 관리가 가능한 단위로 만드는 것이 중요 하다. 그래야만 1시간 단위로 끝낼 수 있고, 업무 추진일정을 수립하고 이에 맞추어 일을 진행할 수 있다.

 

⑤ 유연하고활기찬조직문화

 

저녁 술자리 회식도 사라져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회식문화는 한 사람도 예 외 없이 참여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집단주의적이고 소모적인 회식 문화는 더 이상 존재하면 안 된다. 그리고 수직적·위계적 조직문화로 변화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토론할 수있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새 로운 창조를 만들 수 있다. 직원들의 정신적 웰빙과 직업 만족도가 높으면 회사의 실적이 개선된다.

 

구글에서는 2012년부터 팀 성과와 여러 변수 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아리 스토 텔레스 프로젝트(Project Aristotle)를 진행하였다. 구글 내 180개 팀 의 특성과 팀 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1년여 연구 끝에 두 가지 바 람직한 집단규범을 찾아냈다. ① 좋은 팀에서는 팀의 모든 멤버가 거의 같 은 비중의 발언권이 있었다. ② 좋은 팀의 팀원들은 사회적 민감도(Socialsensitivity)가 높았다. 결국, 좋은 팀은 모든 팀원들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발언하고, 다른 팀원의 목소리, 톤, 몸짓, 표정 등에서 서로의 감정을 파악하 는 능력이 뛰어났다.

 

마치며

 

명확한 업무지시도 중요하다. 일을 시키는 상사가 업무에 대한 명확한 이해 가 없으면 적절하게 업무를 지시할 수 없다. 지시가 명확하지 않아 억지로 만들어 오면, 다시 고민해 보라고 되돌린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 지는 격이다. 이로 인한 생산성 하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 현 조직의 주소이다. 경영자의 리더십도 중요하다. 경영자가 기존의 틀에서 바뀌지 않 으면 ‘워라밸’은 이루어질 수 없다. 평소 소중하게 생각했던 기득권, 권위, 관 행, 제도 등을 조금 다른 차원으로 보아야만 직원들에게 자유와 권한을 부여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창조가 가능한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의 애플, 구글, 아마존과 같은 선도업체에서 서울대, KAIST, 포항공대 등 국내 우수대학 석·박사 이공계인력을 선점하고 있다 한 다. 과거에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부한 인력만을 대상으로 하다가, 지금은 국내논문을 제출한 인재에게도 손을 뻗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4차 산 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하니 더더욱 걱정이 된다.

 

오바마 정부 당시 경제자문위원장을 역임하였던 앨런 크루거 미국 프린스 턴대학 교수는 “계약직이나 임시직, 우버와 같은 플랫폼 근로 형태의 취업률 이 2005년 2월 10.1%에서 2015년 말 15.8%로 급증 했으며 머지않은 미 래에 가장 비중이 높은 근로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선진국을 보면, 무기계약직, 단기계약직, 파트타임, 프리랜서, 촉탁, 엑스퍼트, 컨설턴트, 프 리랜서, 자문 등 다양한 근로형태가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해진 시간 에, 정해진 장소에서 근무를 하는 근로형태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우리나라 에서도 필요한 인력을 연결하는 '기그경제(Gig Economy)'가 자리 잡을 것 이다. 결국 네트워크를 통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하는 근로형태가 조 성될 것이다. 이러한 근로환경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게 될 것이고, 시 대요청으로 인한 정부정책의 변화도 수반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일하는 방 식으로는 워라밸은 가능하지 않으며, 그런 상황 아래서는 우리 기업이 설 자 리가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변화의 시점에 이른 것이다.

 

 

<월간 PT 2018년 6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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