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시간과 52시간 사이에서 40시간이 아닌 35시간이 보인다 일하는 방식 혁신 필요
임진우 2018-09-03 15:46:42

 

주 52시간제 시행 1개월이 지났다. 300인 이상 기업에 우선 적용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중견/중소기업은 아직 시행 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제 주 52시간제가 추구 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 새로운 라이프스 타일로 자리 잡게 될 것이 다. 300인 이상 중견/중소기업은 연말까지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고 50인 이상 기업은 2020년 1월, 5인 이상 기업은 2021년 7월로 시행 시기가 정해져 있지만 세상은 이미 새로운 변화의 시대에 들어섰다. 주 52시간제 적용 기업에 다니지 않더라도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는 제도 시행보다 빠르게 사회문화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주 52시간제 직장인들의 달라진 삶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워라밸은 그저 바람뿐이었던 직원들이 시행 1개월 만에 생각이 바뀌고 생활이 바뀌고 있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서 업무준비를 시작하고 있을 아빠가 집에서 아이 밥을 챙겨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을 할 수 있다. 어떤 젊은 직원은 오전 9시에 피트니스센터에서 체력 단련을 하고 있다.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저녁 7시 퇴근하는 시차출근제가 적용되는 기업 직원들의 바뀐 아침 모습이다.
오전 7시에 출근한 엄마는 오후 4시에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리고 퇴근하여 저녁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저녁 7시에 야근을 하거나 회식을 하고 있을 우리 김 대리는 피아노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직장인들의 달라진 삶은 정말 저녁이 있는 인간다운 삶처럼 보인다.
주 52시간제를 적용받는 대기업은 비교적 주 52시간제가 무리 없이 시행되고 있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했기 때문이다. 삼박자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다. 사회적 흐름이 첫박자,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기업의 인식이 두번째 박자,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내부 준비를 갖춘 것이 세박자다. 시행을 연말까지 6개월 유예(계도기간)받은 중견/중소기업도 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지와 내부 준비를 갖추어 무리 없이 시행해야 하겠다.

 

주 52시간제의 목적과 현실
주 52시간제 도입 배경은 OECD 국가 평균보다 연간 300시간을 상회하는 긴 노동시간을 단축하여 “저녁이 있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근본 취지다. 여기에는 긴 노동시간에 비해 생산성이 현저히 낮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있었다.
직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저녁이 있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좋은 취지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가 있다. 급여조건을 줄이지 않으면서 노동시간을 줄이면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지게 된다. 기업의 선택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래서 주 52시간제에 대한 거의 모든 기업의 대응 핵심원칙은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다.

 

선도적인 10대 대기업의 주 52시간제 대응
삼성, 현대차 등 10대 대기업의 대응방법은 다른 기업의 바로미터 이다. 10대 기업 대응의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1)회사의 준수선언 2)주40시간 준수3)PC셧다운, 근태관리시스템등 시스템을 통한 대응 4)임원, 팀장 등 관리책임자에 의한 관리 5)일하는 방식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다.
안타깝게도 10대 대기업에 비해 여타 기업, 특히 300인 이상 중견/ 중소기업의 상황이 너무 다르다. 경영진의 준수의지는 약하고 주 52시간에 맞춰 법률 위반의 위험성만 피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시스템 준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리더들의 인식도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일하는 방식 혁신이라는 필요한 대응방안에 대한 전사적인 공감대가 부족하여 위반사항을 적발당하지 않는 관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식의 대응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생각해 봐야 한다. 주52시간제로 표현되는 노동시간 단축은 어떤 경우에도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다. 설령 제2의 IMF와 같은 어려운 상황이 와도 노동시간이 늘어날 일은 없다.

 

 

20, 30대 청년세대와 40, 50대 기성세대의 퇴근시간이 달랐다
주 52시간제 시행 전 경영계에서는 “법이 시행되지만 주 52시간제를 지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부분 기업이 주 40시간 정규 근무시간을 지키는 것으로 정착되고 있다.
야근이 일상적이었던 A기업의 경우, 시행 1주일째 야근 통계를 낸 결과 야근율이 4%에 불과했다. 미리 이 제도를 시행했던 신세계 그룹의 경우 올해 1월 본사 야근율이 0.3%였다. 회의 횟수와 회의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PC오프 시스템까지 운영하면서 야근을 할수 없는 상황을 만든 결과다.
대부분 기업의 주 52시간제 대응은 주 40시간이다. 연장근로에 대한 규정, 수당지급 등에 대한 방침은 있지만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 하고 연장근로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다. 연장근로는 팀장이나 임원의 사전 승인 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시행 첫 주 대부분 기업에서 직원들은 정규시간을 마치고 바로 퇴근했다.
인사 등 관리부서에서 정시퇴근을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세대에 따라 퇴근시간이 달랐다. 20, 30대 청년세대들은 대부분 정시퇴근 했다. 40, 50대 기성세대들은 정시 퇴근에 주저주저했다. 임원이나 팀장들이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남아 있었고 40, 50대 직원들은 눈치를 보는 모습이 있었다. 임원이나 팀장들은 정시 ‘칼퇴’가 익숙하지않을 뿐이다. 결국은 실무자 없는 사무실에 임원이나 팀장이 계속 남아있을 필요가 없다.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임원, 팀장의 정시퇴근도 정착될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PC오프, 소등, 냉방장치 정지, 저녁 식당운영 폐지, 정시 퇴근버스 운영 등 조치가 취해지면 더 빨라질 것이다.

 

 

직원들의 업무패턴이 달라지고 있다
출근시간에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가 밀린다. 업무시간을 관리하다 보니 미리 출근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비슷한 시간에 직원들이 몰린다. 여유 있게 회사 밖식당에서 식사하고 커피 한 잔 마시는 모습도 줄었다. 담배를 피우는 직원들도 많이 줄었다. 휴게실에서 직원들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하루 종일 만원이었던 회사 내 커피숍도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직원들 모습을 보기 어렵다. 가장 달라진 시간은오후 3시부터 6시다. 대부분 직원이 사무실에서 업무에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간대에 흡연실, 커피숍, 휴게실 등에서 대화를 나누면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아직 1개월 시행된 상황이라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회사에서는 일에만 몰입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 같다.

 

68시간과 52시간 사이에서 40시간이 아닌 35시간이 보인다
연장근무까지 주 68시간제는 야근을 일상화시킬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생산이나 영업직군을 제외하고 주말근무를 하지 않는 환경 이라 포괄임금제가 적용된 주68시간제는 무한 야근을 시킬 수 있었다. 주 52시간제는 결국 주 40시간을 강제하는 제도가 되어 이전에 비해 엄청난 노동시간 단축을 가져오게 되었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이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업무패턴에 변화를 가져온 긍정적 효과가 크다. 2003년 법제화된 주 40시간 근무제가 15년이 지난 이제야 제 모습을 갖춘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퇴근 후직원들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직원들은 친구를 만나고 취미생활과 자기계발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기혼자들은 가족과 식사를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퇴근 후 직장인이 아닌 다른 삶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은 일간 8시간, 주간 40시간을 온전히 일에 몰입하게 되는것일까? 그렇지 않다. 퇴근 전 1시간은 업무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모드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 52시간제는 주 40시간이 아닌 주35시간 정도 일하는 환경을 만들게 된다. 어쩌면 주 68시간이 주 35시간이 된 것이다. 직원들이 짧아진 업무시간에 얼마나 확실하게 몰입하고 얼마만큼의 생산성을 내게 할 것인지 변화된 환경을 극복할 변화
관리가 정말 중요하다.

Work Transformation 3원칙 – Work Delete, Work Goal, Work Value
세상은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다. 기업은 앞다퉈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준비하고 실행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잘 실행한 기업은 4차 산업혁명에도 잘 대응하고 있다. 이제 달라진 노동시간 단축의 시대에 새로운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하다. 필자는 이것을 ‘워크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표현한다.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라고 해도 좋고 스마트워크라고 해도 상관없다.
요즘 기업이 가장 많이 시도하는 워크 트랜스포메이션은 ‘불필요한 업무를 제거하는 것’이다. 워크 다이어트(Work Diet)라고도 하고 워크 딜리트(Work Delete)라고도 부른다. 불필요한 업무를 제거하는 활동은 회의가 출발점이다. 회의만 잡아도 불필요한 업무 제거의50%는 해결된다고 말할 정도다. 이외에 업무지시, 문서작성, 보고 결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불필요한 업무 줄이기가 진행되고 성과도 크다. 다만, 불필요한 업무제거가 전부가 아
니다. 성과창출을 위해서는 회사와 직원, 상사와 부하 간에 공동의 목표 인식이 필요하다.
끝그림을 일치시키는 노력과 장치가 필요하다(Work Goal). 그리고 세대차이 등 가치관이 다른 구성원들이 갈등 없이 업무에 몰입하기 위한 일하는 원칙과 기준이 되는 그라운드룰을 정하고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Work Value).

 

 

주 52시간제 몇 가지 이슈 : 저성과자, 시스템 지원, 중소기업 직원 불만
고성과자와 저성과자 문제가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이제 고성과자도 저성과 자도 정규근무시간 내에서 일해야 한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퍼포먼스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리더는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의 퍼포먼스를 내야 한다. 고성과자에게 업무를 많이 맡기게 된다.
노동시간 단축에 의해 저성과자는 여유가 생기고 고성과자는 심각한 업무압박을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어떻게 역량을 높이고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장시간 노동은 사람의 손발과 기억에 의존도가 컸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는 상황과 한정된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다르다.
사람의 일을 줄이고 IT시스템이 일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 주 52시간제 시행과 함께 IT시스템의 활용도는 더욱 커졌다. 근태관리시스템, PC셧다운, 업무지시관리시스템, 협업시스템 등 많은 IT시스템이 줄어든 노동시간을 대체보완하게 해야 한다. IT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주 52시간제 시행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은 중소기업은 직원들의 불평, 불만을 관리해야 한다. 50인 이상 2020년 1월, 5인 이상 2021년 7월 시행으로 1년 6개월에서 3년이 남았다. 절대로 이때까지 기다리면 안 된다. 지금부터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서 불필요한 업무를 제거하고 리더십을 바로 세워 선제적으로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미리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으니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처럼 급여를 많이 올려주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좋은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조직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장시간 노동으로 성과를 창출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워라밸은 직원들이 갖고 회사는 성과만 가져오면 된다.

 

 

 

<월간PT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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