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적 지혜로 일하는 조직문화 일에 대한 관점 변화에 대해
임진우 2018-09-03 16:11:48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왜 일을 하시나요?” 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일 자체가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등의 멋진 답변을 할 수도 있겠지만, 머릿속 한구석에서 떠오르는 “돈 벌기 위해 일하는 거지”라는 생각은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한 기업에서 이와 유사한 설문을 진행한 적이 있다.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문항에 6가지의 예시 답변을 제시하고 두 가지 답변을 선택하게 하였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이 다른 이유들과 병행하여 공통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를 택했다.

 

 

당신은 왜 일을 하시나요?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시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당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대가를 지불하기로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일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추가적인 노력을 기대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주도성과 창조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회사의 미션이니 핵심가치니 하는 것들은 구성원과는 관계없는 공허한 것에 불과하며, 동시에 그것을 통해 어떠한 행동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더욱 앞뒤가 맞지않는다. 그렇다면, “일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믿음은 정말 사실일까? 또는 우리는 이러한 믿음을 언제부터 어떻게 갖게 된 걸까?
1776년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그 유명한 국부론을 출판하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이 시기 영국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활발했고, 당시 기업 운영에 참고할 수 있는 경제학이나 경영학의 개념들이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국부론은 유일한 대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국부론은 인류에게 처음으로 경제학이라는 개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책이 되었고, 그 후 현재까지 모든 경제와 경영분야에 있어서 구조적 사고의 기틀이 되어왔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인간은 그 본성이 원래부터 게으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오직 개인적 이익만을 추구한다. 어떠한 공익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도 않으며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뿐이다”라고 정의했다.
당시 애덤 스미스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린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것은 지난 200년간의 인류역사를 통해 경제적 측면의 모든 사회 시스템들이 이러한 관점을 기초로 구축되어 왔고, 기업과 조직의 모든 경영 방식들이 이러한 믿음을 전제로 디자인되고 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240년 전 애덤스미스가 정의한 사람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완전히 잘못된 것이거나 틀린 이론, 오류 자체였다고 치부하여도 될 것이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설사 그 당시에는 오류였다고 하더라도 세월 속에서 점점 더 사실이 되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스템 안에서 인간은 멍청이가 되어간다
흥미로운 것은 애덤 스미스도 이미 이것을 예언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러한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인간이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멍청이가 되어간다”고 말했다. 바꾸어 정리하면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은 인간으로서 가능한 사고 능력을 점차적으로 잃어가게 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며칠 전 예비군훈련을 다녀온 신입 컨설턴트와 저녁식사를 하면서 군대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친구 아버님이 군대에 가는 아들에게 해준 조언이 “중간만 하라”였다고 한다. 아버님도, 필자도 군에서는 중간만 했으며, 필자보다 15년쯤 후에 군 생활을 한 그 친구 또한 중간만 했을 것이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사람도, 열정적인 사람도, 창의적인 사람이라도 군에서는 시대를 막론하고 모두 중간만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직장에서도 이러한 유사한 경험들을 하곤 한다. 열정적이고 도전적이었던 신입사원이 불과 몇 년 만에 세상 달관한 대리의 모습이 되어버리는 것이나 전문역량을 갖춘 탁월한 연구원이 출퇴근시간에 연연하는 단순 직장인이 되어가는 것 등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250년 전 한 학자가 가졌던 어쩌면 완벽한 오류 그 자체일 수도 있었던 하나의 이론에 의해 사회와 조직의 시스템들이 점점 더 정교하게 구축되어왔고, 오랜 시간 그러한 시스템 속에서 생존해온 조직 구성원들은 그 학자의 예언과같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탁월한 사고능력은 점점 잃어가고 점점 더 멍청이 같은 행동들만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실용적 지혜(Practical Wisdom)
90년대식 성공을 일구어온 기업들은 경영의 시스템을 더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구축함으로써 구성원들이 멍청이가 되어가던 말던 관계없이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에 갤 브레이스가 주장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개념보다 한 1000배쯤 더 강력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우리 시대에, 이것만으로는 절대로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할수 없다. 인간만이 지닌 탁월한 사고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일할 수 있는 조직적인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시대의 진정한 조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천적 지혜 또는 실용적 지혜 (Practical Wisdom)다. 실용적 지혜는 인간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자신이 경험 하고 있는 특정 상황 속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들을 감지할 수 있고, 가장 올바르고 가장 유익한 최선의 의사결정과 행동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선택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런데 실용적 지혜는 구성원들의 행동이 규범화될수록 점점 약화되는 반면 구성원들의 자기 결정력이 강조될수록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수많은 기업이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하여 오랜 기간 정착되어온 조직의 시스템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탁월한 역량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용적 지혜는 특정 상황에서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찾아내는 기술적 부분인 ‘실용적 지혜의 스킬(Moral Skill)’과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선택적으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동기라고 할 수 있는 ‘실용적 지혜의 의지(Moral Will)’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소 클리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병원 청소부 이야기를 잠시 예로 들어보자. 기존의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병원 청소부가 자신의 일에서 최고의 성과를 위해서는 정교 하고 세부적인 직무 리스트와 청소 매뉴얼을 구축하고, 최신기술의최첨단 청소 기구를 제공하고 청소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을 하면 된다.
그런데 베리 슈워츠의 저서에 등장하는 병원 청소부들을 잠시 살펴보자. 힘든 수술 후에 회복하기 위해서 복도에서 느리게 혼자 열심히 걷기 운동하는 한 환자를 생각하여 하루동안 복도 걸레질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마이크라는 청소부, 위독한 상태의 환자 곁을 지키느라 며칠을 뜬눈으로 보내다가 마침내 잠시 낮잠을 자고 있는 가족들을 위하여 대기실을 청소하라는 매니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셜린이라는 청소부, 코마 상태에 빠진 아들을 지켜보던 보호자 아버지가 청소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었을 때 모른 척 똑같은 방을 두 번청소하였던 루크라는 청소부 등의 이야기들은 특별하거나 탁월한 행동들이라고 할 수 없는 평범한 행동들,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에 불과하다.
이러한 행동들은 병원이라는 비즈니스에서 비중이 있거나 매우 중요한 행동들은 아닐지몰라도, 병원의 다양한 조직 활동과 조직성과에 상당한 수준의 영향을 미치는 매우 필수적인 행동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기존의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절대로 유도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아무리 세심하게 업무 매뉴얼을 만든 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올바른 행동들을 규정할 수는 없다.

 

실용적 지혜의 스킬(Moral Skill)
병원 청소부라는 비교적 단순한 일도 그러할진대, 기업 구성원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사고와 판단을 필요로 하는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특정 상황 속에서 가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찾아내는 기술인 ‘실용적 지혜의 스킬(Moral Skill)’ 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능력이라는 점이다. 단, 구성원들이 올바르고 유익한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와 주변의 사람들의 공감, 일정수준의 업무적 경험을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러한 행동의 목적이 강조되어지는 조직문화여야 할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울프치슨 마을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원자력발전에 의존도가 높은 스위스에서 핵폐기물 시설유치 예정지로 울프치슨을선정한 적이 있다. 선정 이전 몇몇 경제학자들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설 유치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핵폐기물 시설을 유치한다는 것은 전 세계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론조사 결과 51% 찬성으로 유치를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스위스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시설이라면 위험하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스위스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마음에서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용적 지혜의 의지(Moral Will)
같은 시기에 다른 여론조사가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핵폐기물 시설이 마을에 들어오면 모든 마을사람들에게 매년 6주간의 임금을 보상금으로 지불하겠다는 추가적인 조건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반대로 단 25%의 응답자들만이 유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상금이 있고 없고는 폐기물 시설을 유치에서 오는 위험성 자체를 줄여주지는 않는다. 단지 시설유치로 발생될 수 있는 개인적인 손실을 줄여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손실을 줄여주는 조건이기에 찬성률이 높아져야 하는것이 논리적 추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보상금이라는 트리거는 무엇이 가장 올바르고 모두에게 유익한 행동인가에 대한 관점을 무엇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되는 역할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추가적인 행동을 유발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상이다. 그러나 보상은 올바른 행동이나 추가 적이고 창의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 일시적 효과가 있을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많은실증적 연구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인 것은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상황에서 가 장 올바르고 유익한 최선의 행동을 선택적으로결정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동기인 ‘실용적 지혜의 의지(Moral Will)’ 또한 모든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인간적인 능력이라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시대에 조직의 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잘 짜인 전략과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적응력을 갖추고, 조직내부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춘 조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실용적 지혜를 일상의 일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성과를 만들어가는 조직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적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조직역량을 구축한다는 것은 어쩌면240년 전 한사람의 편협한 믿음에서 비롯된 잘못된 집단의 가정에서 과감히 벗어나서 사람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일에 대한 새롭고 올바른 가정들이 우리 조직 안에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리학의 전설적인 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사랑과 일은 인간다움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날마다 일을 하는 이유는 개인 적인 이익추구의 관점에서 돈을 벌기 위함이아니다. 더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함이고, 독립된 인간으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자부심과 행복을 위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치 사랑이 단순히 인류의 종속번식과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일반적인 생각들과는 반대로 오히려 우리가 가장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조직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월간PT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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