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데…
한은혜 2017-03-10 15: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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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생산농가는 최대한 생산비를 적게 투입하고 이익을 얻기 위해 PSY나 MSY, 일당증체량, 사료섭취량, 사료단가, 출하일령 등 주로 생산성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고, 유통업자는 도체율이나 정육률, 원하는 규격과 고른 품질, 안정적인 구입선과 판매처 등 생산성과 품질까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 그리고 식육의 안전성 여부에 관심이 많다.


생산·유통·소비의 공통분모는 안전성과 품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품질에 관심을 가져야 할 생산농가가 오히려 품질에는 가장 관심도가 낮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농가상담이나 컨설팅 과정에서 생산농가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자신이 길러낸 돼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그 농가의 등급판정 성적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별 볼 일 없거나 전혀 아니올시다 수준의 농가들이 많다. 그리고 육가공업체 품질관리담당자의 입을 통해서 부분육 성적까지 듣고 나면 실망감이 클 때가 많다.


여기서 느끼는 우리 농가들의 현실은 돼지를 키우기만 했지 그 도체품질과 부분육 품질 등 최종적인 결과물에 대한 확인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24년 동안 국내 양돈산업을 농장과 도축장 및 가공장에서 지켜봐 왔다. 그 시간 동안 국내 양돈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건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라고 느꼈던 부분들이 있어 당부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축산물등급제 유익? 무익? 생각의 차이

 

1992년 7월 축산물등급판정이 시범 실시되고 1993년 축산물등급판정소가 정식 출범하면서 축산물등급제가 제도화된 지도 26년이 되어간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농가들이 돼지를 사육해서 출하를 하고 정산해서 정산대금이 들어오면 ‘상황 종료’라고 생각하고 있고, 등급판정에 대해서는 ‘있으나 마나 한 것’ 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생체 지급률 정산방식을 택하는 농가의 경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원료돈의 가격정산이 생체기준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등급판정시 1차 및 2차등급 대비 최종등급의 등급하향에 대한 자료나 정보, 도체품질에 대한 정보 등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는 구조다. 이런 무관심은 돈육품질의 하락으로 나타나 곧바로 소비자들로부터 한돈이 외면받게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원료돈정산서를 살펴본다면 곳곳에서 등급판정결과가 가격정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과 등급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농가의 수익과 등급판정결과는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으며, 등급에 무관심한 것보다 등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농장의 경영수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쟁상대는…

 

수년 전에 유행했던 광고 카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의 경쟁상대는…’이라는 공익광고였는데 주 내용은 나의 경쟁상대는 국내의 인재들이 아니라 글로벌 인재들이라는 것이었다.


각국과의 FTA 체결로 인해 이미 국내 돈육시장은 국내산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수입산과의 경쟁체제에 들어선 지 오래다. FTA로 인해 돼지고기의 수입량은 2015년 기준 35만8천여톤(이중 삼겹살 14만8천4백여톤)이 수입되었고, 지난해 8월까지 21만3천여톤(이중 삼겹살 9만3천여톤)에 이르러 2015년 동일기간에 비해서는 감소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균일한 품질과 국내산의 1/2수준의 가격에 따른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산과의 경쟁력을 증가시켜 가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수입돼지고기가 스펙과 가격경쟁력으로만 승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전에 축산신문 등을 통해서도 보도된 내용이지만 칠레산 돼지고기의 홍보자료를 보면 이들은 국내 소비자들의 니즈에 맞는 선도, 질감, 맛에 대한 현지화 작업을 이미 완료한 상태라고 한다.


우리의 생산농가들은 경쟁국가에 비해 생산성에서도, 품질에서도 앞서지 못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이 ‘수입돈육도 괜찮다’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면 더 이상 ‘우리돼지, 우리한돈’이라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홍보전략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국내 양돈농가의 경쟁상대는 이미 내 농장 옆에 있는 농장이 아니라 거대자본이 운영하는 막강한 다국적기업의 농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품질평가사는 적? 동지? 생각하기 나름

 

수년 전에 출하농가로부터 “X도 모르는 놈이 돼지가 어쩌고저쩌고한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살아있는 돼지는 사장님이 훨씬 잘 아시겠지만 사장님이 출하해서 도축된 돼지의 품질상태는 1년에 몇 번이나 확인하십니까? 두세 번? 열 번 정도는 보십니까? 저는 휴일이나 휴가 가는 날 빼고는 날마다 죽은 돼지 엉덩이 쳐다보고 삽니다. 그러면 누가 더 돼지 품질에 대해서 잘 알까요?”라고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품질평가사는 살아있는 돼지보다는 ‘죽은 돼지’를 중점적으로 보고 만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라 살아있는 돼지를 바라보는 생산농가보다 죽어있는 돼지의 품질에 대한 판단노하우는 훨씬 앞서있다.


생체상태에서는 규격돈에 건강하고 비육 좋은 돼지라고 보이는 돼지도 도축해서 도체상태에서 보면 과지방 내지는 떡지방 삼겹살일 수 있고, 연지방이나 PSE육일 수도 있으며, 목심에서 화농이 생겼을 수도 있다. 또한 도축과정에서 결함이 발생하여 등급이 하락될 수도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생체상태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들이다.


필자는 짧지만 양돈현장 실무경험이 있다. 그때의 경험이 품질평가사로서 현장에서 판정할 때나 농가에 대한 컨설팅할 때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품질평가사들에 비해 농가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등급판정현장에서만 22년을 보내면서 몸으로 체득한 노하우와 농가가 원한다면 수년 동안의 농장성적을 종이 한 장에 깔끔하게 정리해 줄 수 있는 데이터와 분석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찾는 사람이 없다. 우리 농가들은 굉장히 보수적이어서 전화라도 해서 상담을 할라치면 “남의 농장 일에 평가사가 왜 관심을 갖느냐?”라는 질문만 되돌아온다.


출하하고 난 뒤 먼저는 등급판정결과와 도체특성, 2차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이나 등급하락요인만 제대로 알고 대응을 해도 소위 ‘13월의 보너스’보다 더 두둑하게 용돈을 챙길 수 있다.


품질평가사를 적이 아닌 동행자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상담하고 활용한다면 ‘적’이라고 생각했던 품질평가사가 내 농장에 큰 도움을 주는 존재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돼지는 당신의 자산

 

돼지고기이력제가 시행되면서 사육단계에서는 매월 5일까지 사육현황신고를 해야 하고, 농장간 이동시 이동신고, 출하시 농장식별번호를 표시해야 한다. 현재 사육현황신고는 98% 정도의 신고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3개월 이상 장기미신고 농가와 계속 동일한 두수를 신고하는 농장들이 있다. 신고과정에서도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의외로 자신의 자산임에도 “그냥 지난달하고 똑같아요”라고 하거나 “나도 잘 모른다”라고 하는 농장주가 있다.


도축장의 계류장에서 가끔 발견되는 일인데 계류돈방의 벽이 상당히 높은데도 그 벽을 타고 넘어 옆 돈방으로 탈출을 하는 슈퍼돼지(?)들이 있다. 이렇게 도축과정에서 돼지가 서로 섞이거나 규제검사, 폐기 등이 발생했을 경우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농장식별번호뿐이다.


하지만 출하과정에서 농장식별번호를 날인해서 출하해야 함에도 운송업자나 수집상에게 알아서 찍어가라는 식의 무책임한 농가가 많다. 게다가 날인기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농장주나 관리자도 있었다. 농장에서 직접 날인을 해주는 경우에도 숫자가 거꾸로 되어있거나 침이 굽어 있어 인식이 어려운 경우, 또 압인기를 몰이봉 대신 사용하여 돼지의 등에 난도질을 해놓는 경우도 있다.


적색이나 청색 등 색소를 사용하여 날인을 하게 되면 선명하게 찍혀 확인도 용이하고 애먹을 일이 없이 상부상조하는 일이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런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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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확인하자!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요,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이라.


이 말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글이다. 돼지를 출하하고 난 후 등급판정결과를 확인하는 것까지는 웬만한 관리자라면 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서 도체품질과 부분육 품질을 분기에 한 번이라도 직접 확인해보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방역문제 때문에 도축장이나 육가공장을 직접 방문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 줄은 잘 안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확인하지 않고 남의 말만 들어서는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분기나 반기에 한 번이라도 농장에 며칠 못 들어갈 작정을 하고(물론 같이 일하는 사람이 무척 힘들어하겠지만) 직접 도축장 예냉실과 육가공장 골발정형과정까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볼 것을 적극 권장한다.


본인이 직접 방문하기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육가공업체의 품질관리담당자에게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면 되고, 그것마저도 어렵다면 안면이 있는 품질평가사에게 부탁을 해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서두에 얘기했던 것처럼 엉뚱한 자부심으로 창피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내 농장 돼지의 품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개량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

 

출하하는 돼지에게 이것만은 지켜주자!

 

건강한 돼지를 출하해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좋은 품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돈육의 품질은 일반적으로 생산단계에서 5%, 나머지 출하, 수송, 도축, 냉장, 가공과정에서 80~90%의 하락요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출하와 수송, 도축과정에서의 부적절한 취급에 의한 스트레스나 결함 때문에 품질저하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그러므로 집 떠나 죽으러 가는 돼지들에게 내 농장을 위해 한 몸 헌신하러 가는 길인데 웬만하면 이런 것들은 좀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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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만하면 씻겨서 출하하자
농장을 방문하거나 도축장에서 계류장을 둘러보게 되면 돼지의 눈동자만 하얗게 보이고 모두 똥을 뒤집어쓴 ‘똥돼지’들을 볼 수 있다. 돈방은 분변으로 가득 차 있고 그 속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분명 백색종인데 흑색종으로 털갈이를 하고 있다.


이렇게 시커먼 돼지를 싣고 도로와 시내를 누비는 운송차량을 생각해보라. 이런 광경을 소비자들이 본다면 돼지고기 먹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날 것이다. 웬만하면 출하 전 세척기로 목욕이라도 시켜서 출하하자.

○ 웬만하면 때리지 말고 전기봉 쓰지 말자
농장에서 ‘출하 → 도축장 계류장 하차 →도축라인 이동’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자행되는 테러가 구타와 전기봉 사용이다. 농장에서도 관리자가 출하과정에서 “퍽퍽퍽…”, 운송하는 기사분도 계류장에서 하차시키면서 “퍽퍽퍽, 지지직…”, 도축장에서 도축라인으로 이동할 때도 “퍽퍽퍽, 지지직….” 죽은 돼지는 말이 없지만 돼지의 도체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구타와 전기봉 사용은 결함발생률도 높이지만, PSE육의 발생빈도를 높여 결국 그 손실을 농가가 떠안게 되는데도 아직도 옛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매질을 하고 전기봉을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 웬만하면 때리지도 전기고문도 하지 말자.

○ 웬만하면 적정수송밀도를 지켜주자
가끔 과밀수송이나 난폭운전으로 인해 수송 중 돼지가 폐사하거나 골절 등이 발생하는 사례를 보게 되는데 이것처럼 안타까울 때가 없다. 적정수송밀도를 준수하고 안전운행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외상이나 골절 등의 결함발생을 줄일 수 있고, 수송스트레스를 경감시켜 PSE육의 발생률을 낮추고 수송 중 폐사를 예방할 수 있다.


운송비 몇 푼 아끼려다가 돼지 한 마리 통째 잃어버리는 우(愚)는 범하지 말자.

 

앞에서 언급했던 몇 가지 얘기들은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다만 그것을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작은 관심이 큰 성과를 가져오듯이 사소한 것일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 나간다면 이전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월간 피그 2017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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