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 질병 진단의 현재와 미래
한은혜 2018-05-01 14:46:49

 

학창시절 읽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저자인 유홍준 교수는 안목을 갖추는 비결에 대한 질문에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생명을 다루는 과학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과학은 수많은 가설 속에서 이를 증명하고 미지의 실체를 파악함으로써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고 현재도 기술의 발전은 계속되고 있다. 양돈 질병과 관련하여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미생물의 경우, 17세기 들어 현미경의 발명과 함께 비로소 시각적인 관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자, 미생물학에 대한 확립을 가능케 한 획기적인 발견이었다. 이후 생명체의 유전정보에 대한 분자생물학적 발달은 DNA의 증명과 DNA로부터 RNA를 거쳐 단백질 합성에 이르는 생명의 특이성과 다양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이루게 해 주었다.


이와 같은 생명과학의 발전은 인체뿐 아니라 동물의 생산과 관리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특히 질병의 원인 파악과 병인론적 분석, 질병 제어를 위한 기초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양돈 질병 진단 검사에 대한 현황, 과학적 기술 발전 동향 및 향후 양돈 질병에 대하여 현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이슈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1. 양돈 질병 진단의 현재

 

1) 양돈 질병의 주요 양상

양돈산업의 발전으로 단위면적당 사육밀도가 증가한 집약화된 사육 시스템은 전염성 질병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염성 병원체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농장에 유입되어 질병을 유발하며, 질병의 전파는 생산성 저하로 연결되어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적절한 치료 및 예방 대책은 현장에서 늘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표 1>과 같이 이미 다양한 병원체가 국내 농장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병원체가 더 많다는 것도 잊지 말고 새로운 질병 소식에 늘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2) 상용되는 양돈 질병 검사의 종류 및 특징
  
다양한 질병의 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하여 여러 과학적 이론에 바탕을 둔 검사법이 사용되고 있다. 질병 검사는 검사에 필요한 장비나 전문 인력이 요구되므로 별도의 진단실험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장에서 미처 확인할 수 없는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 면역학적 원리를 이용한 항체검사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아닌 다른 물질에 대한 방어기전을 가지게 되는데 이러한 내부방어기전 중 하나가 바로 면역(immunity)이다. 즉, 자기와는 다른 물질인 항원(antigen)이 들어오면 이를 인식하고 방어수단인 항체(antibody)를 형성한다.


이러한 항원-항체 반응의 원리를 이용하여 돼지 체내 병원체(항원)의 감염 여부를 평가할 수 있으며, 주로 혈액을 이용하여 검사를 진행한다. 농장에서 채취한 혈액은 바로 응고시켜 혈청(serum)을 분리하고, 이 혈청 내 감염이 의심되는 병원체에 대한 항체 수준을 측정함으로써 감염의 시기와 정도를 간접적으로 평가한다(그림 1). 다양한 항체검사법이 개발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효소결합면역흡착법(ELISA)이 널리 이용되고 있다.

 

 

(2) 분자생물학적 기법을 이용한 항원검사


각 생명체의 고유한 유전정보는 세대를 거쳐 전달되고 발현됨으로써 특유의 형태와 기능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유전정보는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이라는 서로 다른 염기들이 순차적으로 배열된 디옥시리보핵산(DNA)을 통해 나타나며, 이러한 DNA 중 특정 부분을 선택적으로 다량 증폭하는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다.


PCR은 병원체의 특정 DNA 부분을 증폭하여 돼지 체내에 감염된 병원체의 존재 여부를 가려내는 항원 검사법이다. PCR의 장점은 반복적인 증폭과정으로 결과를 확인하므로 미량의 DNA만으로도 검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질병에 대한 진단 검사 외에도 과학수사 등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기존이 PCR이 병원체 존재 여부만을 판별하였다면, 실시간으로 증폭되는 PCR 산물의 양을 측정함으로써 감염된 병원체의 양을 가늠할 수 있는 Real-time PCR 또는 정량PCR(quantitative PCR, qPCR)도 개발되어 이용되고 있다.


또한 DNA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에 대한 정보는 각각의 생명체가 지니는 특성과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정보라 할 수 있다. PCR을 통해 증폭된 병원체의 DNA는 염기서열분석(sequencing)을 통해 농장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의 유형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당 바이러스의 변이 여부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그림 2).
 

 

 

(3) 배양검사를 통한 세균의 분리 및 동정


세균배양 검사는 가검물로부터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성 세균을 분리하는 검사법으로 세균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배지와 적합한 배양조건을 선택해야 한다.


배양된 균 중에는 질병과는 관계가 없는 상재균이나 오염균이 섞일 수 있으므로 의심되는 세균 집락을 선별 후, 2차 계대배양을 실시하여 순수한 병원균 집락을 분리한다. 이렇게 분리된 집락은 각 세균이 가지는 고유한 생화학적 대사능력을 측정하여 동정함으로써 어떤 세균인지 확인한다.


항생제감수성 검사는 확인된 세균을 도말하고 다양한 성분의 항생제 성분이 첨가된 디스크를 부착하여 감수성 있는 항생제를 찾아내는 검사로 세균배양 검사의 최종 과정이라 할 수 있다(그림 3). 이러한 항생제감수성 검사는 농장 현장에 문제가 되는 세균에 대한 효과적인 항생제를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항생제 남용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4) 부검 및 병리조직학적 검사


부검 및 병리조직학적 검사는 내부 장기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실제 농장에 문제가 되는 질병의 발생 양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진단 검사이다.


앞에서 열거한 항원 검사법을 통해 검출된 병원체라 하더라도 농장에서 실제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체가 아닐 수도 있으므로 항원검사 단독으로는 질병의 감별 진단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의심되는 질병에 따라 다양한 실험실 검사를 병행함으로써 농장의 질병 발생 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2. 검사 기법의 획기적인 변화

 

기존의 염기서열분석인 Sanger법에 이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Next-generation sequencing, NGS)은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최신 분석 기법이다. 기본 원리는 유전체(genome)를 무수히 작은 단편으로 분해하여 각 단편의 염기서열을 읽어내고 이런 데이터를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 기술을 통해 각 생명체를 구분할 수 있도록 다시 조합함으로써 미지의 방대한 유전체 정보를 한번에 해석한다.


즉, NGS는 과거 Sanger법에서 제기된 분석 시간과 비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맞춤의학의 실현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되었다. 양돈을 비롯한 수의분야에서 NGS는 미생물의 종 식별과 더불어 특정 환경에서 수집한 가검물에 포함된 유전체를 모두 분석함으로써 가검물 내 미생물의 군집을 파악하는 군유전체학(metagenomics)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무수한 장내 미생물의 분포양상 등을 파악하는 데에도 사용될 수 있으며, 그동안 분리가 어려워 규명하지 못한 미지의 미생물에 대한 폭넓은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2015년 양돈 분야에서도 NGS 기법을 이용한 군유전체학적 연구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돼지페스티바이러스와는 다른 atypical porcine pestivirs(APPV)가 확인되었다.


이후 동물 실험을 통하여 이 새로운 바이러스는 선천성진전증(congenital tremor)의 원인체 중 하나로 대두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추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Hause 등 미국 연구진은 돼지의 비강 및 항문 스왑(swab)을 대상으로 군유전체학적 염기서열분석을 수행하였으며, 각 가검물 내 다양한 바이러스 항원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그림 4).
이러한 검사 기법의 획기적인 발전은 우리가 기존에 미처 알지 못했던 병원체의 존재 여부와 이들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3. 국내 양돈 질병에 대한 변화

 

향후 국내 양돈 질병의 흐름에 대한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대책 수립을 위하여 아래와 같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원인들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신흥 전염성 병원체의 등장과 위협

 

미국의 Swine Health Information Center(SHIC)에서는 양돈 질병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자국의 양돈 산업에 대한 유해성 평가를 진행하여 순위를 매긴 ‘Swine Disease Matrix’를 공개하고 있다.


유행성 평가 등급의 산정 기준은 ① 자국 내 유입 가능성, ② 유입 이후 돼지 생산에 대한 경제적 영향, ③ 자국 및 해외 양돈 시장에 대한 영향으로 각 항목마다 1~10점의 점수를 부여하고 평균값으로 순위를 매긴다. 순위에는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이러스도 있지만, 신흥 전염성 질병(emerging infectious disease)의 원인체로 새롭게 주목받는 바이러스도 포함되어 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양돈 선진국의 분석 자료를 접할 때마다 질병 분석 규모에 놀라게 되고, 자국의 양돈 산업 보호를 위해 실로 다양한 병원체들을 고려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최근 2017년 4월 자료를 보면 총 46개 바이러스가 제시되었으며, 참고로 평균값이 높은 상위 10종 바이러스를 보면 <표 2>와 같다.

 

 

2) 교통편의 발달 및 국가간 교류 확대에 따른 외래 질병의 유입 가능성
  

최근 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양돈 질병을 꼽으라면 아마도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이 아닐까 싶다. ASF는 원래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이었지만, 2007년 조지아에서 시작하여 동유럽 국가 및 러시아를 중심으로 재발하고 있다.


조지아의 발생 역학을 살펴보면, 첫 발생은 아프리카 선박이 입항하는 항구 도시로 선박을 통해 유입된 식육 폐기물에 바이러스가 오염되어 전파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돼지와의 접촉에 의해 인접한 동유럽 국가에도 질병이 전파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선박이나 항공에 의한 대륙간 이동 발달 및 국제 교류의 증가는 특정 지역의 풍토병을 전파하는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새로운 전염성 질병의 유입과 관련하여 돼지는 해당 질병에 노출된 적이 없는 만큼 체내 면역력이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감염이 이루어지면 농장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고 빠른 속도로 질병이 전파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이 더욱 활발해질 미래에는 대륙간 질병의 전파도 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검역과 신속한 진단을 통해 질병의 유입을 조기에 차단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3) 기후 변화에 대한 질병 발생 양상의 변화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미 국내에서도 기후와 관련된 다양한 사육 환경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질병과 관련하여 매년 거듭되는 하절기의 이상 고온 현상은 열사병과 같은 사양과 관련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기온 상승은 국내에 서식하는 생물체의 분포를 변화시킬 수 있다.


매개체 관련 질병전파에 대한 기후 요소의 영향을 보면, 기온 증가는 모기나 병원균의 수적 증가를 초래할 수 있고 강수량의 변화 또는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는 모기나 쥐의 서식지 변화와 설치류 배설물의 노출 증가를 초래할 수 있다. 해수면 상승은 해수에 부화하는 알을 낳는 모기의 개체 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표 3).


또한 연평균 기온의 상승으로 인하여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유행하는 풍토성 질병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질병을 매개하는 새로운 운반숙주동물(모기, 진드기 등)의 유입과 토착화는 질병의 제어를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최근 오세아니아 및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모기(게타바이러스)나 박쥐(니파바이러스 및 메난글바이러스)를 매개로 하는 돼지의 전염성 질병이 알려지고 있다. 지속되는 기후 변화는 이러한 질병들로부터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4. 질병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
 
진단 검사 기술의 발전에 따라 양돈 질병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미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질병의 전파는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따라서 변화하는 질병 상황에 뒤처지지 않고 건강한 돼지를 생산하기 위하여 아래와 같이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관련 연구들을 상기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였으면 한다.

 

1) 진보된 질병 진단 검사 개발 및 활용
2) 병원체의 변이 및 병인에 대한 연구
3) 효과적인 농장 혹은 지역 단위 차단 방역의 시스템 연구
4) 치료 및 예방을 위한 약제의 진화


  (1) 약효의 증진과 내성 방지를 위한 항생제의 신중한 사용법 추구
  (2) 다양한 원리를 접목한 예방 백신의 개발 연구
  (3) 항바이러스 치료 물질의 개발
  (4) 미생물을 이용한 병원체 근절 관련 연구: 박테리오파지 등
5) 체내 미생물총과 질병 발생과의 상관관계 연구
6) 최신 형질전환 기법을 이용한 질병 저항성 품종의 개발 연구

 

■ 참고문헌
1) Arruda BL, Arruda PH, Magstadt DR, et al. Identification of a divergent lineage porcine pestivirus in nursing piglets with congenital tremors and reproduction of disease following experimental inoculation. 2016. PLoS One 11: e0150104. doi: 10.1371/journal.pone.0150104.
2) Choi EJ, Lee CH, Hyun BH, et al. A survey of porcine reproductive and respiratory syndrome among wild boar populations in Korea. 2012. J Vet Sci 13: 377-383.
3) Hause BM, Collin EA, Peddireddi L, et al. Discovery of a novel putative atypical porcine pestivirus in pigs in the USA. 2015. J Gen Virol 96: 2994-2998.
4) Hause BM, Duff JW, Scheidt A, et al. Virus detection using metagenomics sequencing of swine nasal and rectal swabs. 2016. J Swine Health Prod 24: 304-308.
5) Kwon SI. 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a key tool to open the personalized medicine era. 2012. Korean J Clin Lab Sci 44: 167-177.
6) 이수민. 최근 차세대염기서열목적(NGS) 기술 발전과 향후 연구 방향. 2014. BRIC View 2014-T05.
7) 김동진. 기후변화에 따른 전염병관리 분야 적응대책. 2009. 보건복지포럼 제 154호(8월), pp. 23-38.

 

<월간 피그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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