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용 기자>
최근 잇따른 재난사고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재난취약계층인 장애인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새누리당 나경원, 박성중, 이종명 의원, 한국장애인연맹(DPI), 법무법인 태평양(대표변호사 김성진)과 재단법인 동천(이사장 차한성)은 공동으로 지난달 1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재난취약계층 장애인 등의 재난 안전관리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장애포괄적 재난관리의 국가의 자주적인 대응체계를 확립하고, 장애인 재난관리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마련됐으며, 관련 전문가와 장애인당사자, 재난안전 관계부처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새누리당 나경원 의원은 “우리사회는 재난·사고 발생으로 인하여 안전에 대한 경각심 증진이 높아짐과 더불어 각종 재난·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과 법률들이 마련됨과 동시에 재난취약계층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장애인의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새누리당 이종명 의원은 “장애인이 안전해야 모두가 안전하다”며 “장애인 보호와 안전을 위한 포괄적 재난방지체계를 점검하고, 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키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안전으로부터 소외되는 이 없는 사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박성중 의원은 “모든 사회적 약자들이 안전하게 살기 위해선 법과 제도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특히 재난 등과 같은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재난취약계층인 장애인 등을 고려하는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관련법 개정을 통하여 화재·재난으로부터 장애인등을 보호하는 기틀을 마련한다”고 말했다.
한국장애인연맹(DPI) 김대성 회장은 “장애를 포괄하여 재난위험 감소(DRR) 계획 및 조치 강화에 힘을 모아야 할 것이며, 재난과 위험에 대한 대비는 우리의 생명에 직결되는 만큼 반드시 재난취약계층인 장애인을 고려한 대비책 마련의 기틀이 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재단법인 동천 차한성 이사장은 “재난 및 화재 발생 시 장애인 등의 피난특성을 고려하여 설치된 소방시설은 효용성에 따라 많은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으므로, 재난 취약계층인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소방시설의 설치 및 유지와 관련한 기술수준이 개선되고 관련 법령이 개정되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차별 없이 모두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간 재난 발생 시 장애인이 신속하고 안전하게 피난하거나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소방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민안전처는 지난 1월 27일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시설법) 개정안을 공포, 법 제9조 제1항에 재난취약계층과 차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소방시설(경보·피난설비)을 설치 또는 유지·관리하도록 의무 명시해 이들이 화재·재난 발생 시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장애계에서는 비장애인의 중심으로 설계된 법은 장애 유형·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한국장애인연맹(DPI) 등 장애계 단체 등은 시행령·시행규칙 안에 장애 유형·특성을 고려한 소방시설 정책과 제도 기틀을 마련하고자 TFT를 구성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날 기조발제에 나선 동원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최규출 교수는 ‘재난취약계층 장애인 등을 고려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 및 소방제도 개선’과 관련한 발표를 통해 △소방시설법 개정에 따른 하위법령 기준 마련 △재난취약계층의 재난안전 확보 △이용자 특성에 따른 피난안전기준 마련 등을 통해 장애인 등이 차별 없이 안전하게 피난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재난취약계층인 장애인 등의 유형 및 특성, 사용적합성 등을 고려해 특정소방대상물에 소방시설 종류·설치기준 규정을 통해 장애인 등이 재난으로 생기는 안전 사각지대가 발생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최 교수는 시행령 제15조 개정안을 보면, ‘장애인 등의 사용 적합성’을 넣어 보다 명확히 했으며, 시행령 제15조의 6을 신설해 장애인 등이 사용하는 소방시설을 구체적으로 기입했다. 소방시설은 노유자시설, 의료시설, 근린생활시설 중 입원실이 있는 의원·산후조리원 등 업무시설 중 공공업무시설 등이다.
특히 ‘피난설비 설치기준 강화’ 부분과 관련해 “현재 지상 2층, 11층 이상에서의 피난시설은 10층 이하와 달리 별도의 피난기구의 설치가 제외됐다”고 지적하며 “이에 지상 2층, 11층 이상의 층에서도 장애인 등이 사용 가능한 피난기구 설치를 통해 안전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시행령 제15조 6관련 별표5의 3 신설을 통해 △대피실 △복합경보기·복합유도등 △피난유도선 △피난기구 신설을 요구했다.
최 교수는 “소방시설법 하위법령에 장애인 등이 차별없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소방시설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을 명시하고 재난취약계층의 특성을 고려한 소방시설 설치 기준 마련을 통해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이 쉽게 현장을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시작으로 건물의 용도나 시설 사용자의 특성을 고려한 피난시설 설치기준 마련이 필요하며 특히 장애인 등을 위한 다양한 피난기준을 마련해 건축물 설계 시 장애인 등이 스스로 피난이 가능한 방법과 시설 설치가 우선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강완식 정책실장은 “그동안 설치 운영되던 경보·피난설비는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대부분 설치되어 장애인이 이용하거나 정보를 얻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시각장애인의 경우 경보 설비와 관련해 현재의 경비 설비로는 화재 정보 및 안전한 피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없으며 오히려 사이렌과 같은 경보음은 피난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 정책실장은 “시각장애인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고 명확히 식별할 수 있는 설비의 설치 및 개발이 이뤄져야 하며, 시각장애인이 화재 및 재난이 발생하는 경우 미리 계획을 세워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기배 한국소방시설관리사협회장은 “국민안전처에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한국장애인연맹의 법 개정 의견에 있던 대피실, 복합경보기, 복합유도등, 피난유도선, 피난기구 등의 거의 많은 내용이 미포함돼 아쉽다”며 “본인이 조금 더 아쉬운 것은 이것이 신설 인허가 되는 노유자 시설에 대해서만 행정적, 재정적 집행을 규정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우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은 “장애인단체들이 많이 입주해 있는 이룸센터에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을 위한 피난도구로 각 층의 계단에 비치되어 있는 KE-체어가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잘 모르며 장애인들도 이런 기구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며 “아무리 좋은 장비도 사용법을 모르고 평상시 훈런이 안 되어 있으면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한 “제대로 된 장비가 없는 것도 문제이고 재난약자를 위한 설비의 보급이나 개발 지원도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라며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첨단의 장비를 개발 및 보급하고, 반복적인 훈련만이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 소방제도과 손정호 과장은 “장애인이 안전해야 모두가 안전해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고, 정부의 노력도 강화하고 있다”며 “오늘 나온 의견들에 대해 필요성과 효용성,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안전처 안전정책실 안전기획과 김광용 과장은 “피난기구 등도 중요하나 특히 장애인 편의기능 등의 보강에 중점을 두고, 또한 장애인 안전 교육교재 개발이 이뤄지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8월쯤 장애인 안전 대책과 관련해 전반적으로 논의해 올해 안에 발표할 계획이므로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온 의견들을 검토해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월간 안전정보 2016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