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회장(군산대 교수)이 ‘전문가를 위한 건설안전혁신론’(이하 건설안전혁신론)을 펴냈다. 안홍섭 회장은 이 책에서 건설안전 발전을 위한 처방과 최근 안전분야 핵심 명제인 ‘중대재해처벌법’과 ‘발주자안전관리’에 관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안홍섭 회장으로부터 출판 배경 및 주요 내용, 향후 출판계획 등을 들어봤다.
최근 ‘전문가를 위한 건설안전혁신론’(이하 건설안전혁신론)을 발간했는데, 집필 취지나 배경은?
건설노동자와 건설기술자의 희생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건설업에서는 지난 30년동안 2만명이 이상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으며, 최근에 약간 감소했지만 여전히 450여 명이 희생되고 있다. 건설노동자가 일반산업보다 열 배 이상 높은 비율로 생명을 잃고 있으며, 이들을 지켜야 할 일선 건설기술자들도 사고를 직접 당하지 않고 있지만 업무 수행 상황이 마찬가지로 열악하다는 것이다.
올바르고 효과적인 건설사고방지 노하우를 나누고 싶었다. 국가와 산업, 실무자 누구를 막론하고 건설사업에 맞지 않는 제도, 정책, 안전관리활동으로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이러한 차원에서 건설사고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개선’을 넘어 기존의 틀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을 ‘건설
안전혁신론’으로 정한 이유이다.
건설안전분야에 관한 도서가 건설안전기사나 기술사 준비를 위한 수험서가 대부분이며, 일반도서도 안전기술에 관한 책이 많은 것 같아 아쉬움이 컸다. 실무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건설안전분야를 종합한 더 실용적인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기존의 도서가 단편적 지식 중심으로 안전의 원리나 원칙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지난 해 대학에서 쓸 수 있도록 ‘원리기반 건설안전관리론’을 출간했는데 여전히 실무자들에게는 부족하다고 여겨 이번에 다시 책을 내게 됐다.
건설안전혁신론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주요 내용은?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열악한 건설산업의 현실과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안전의 가치와 필요성을 공유하고자 했다.
2부에서는 건설사고의 원인이 현장의 불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류 발주단계부터 비롯되는데, 제조업 방식의 안전관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근본적 한계가 있어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영국의 CDM과 같은 사례를 들어 소개했다. 저는 일시적으로 건설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보다 오래 동안 관련 제도를 연구해왔다. 책에도 건설안전제도의 변화 과정을 기술했지만, 안타까운 일은 20여 년 전부터 개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관련 부처의 소극적 대응으로 번번히 무산되었다는 것이다.
3부에서는 국가를 포함해 건설사업의 안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참여자들의 역할과 책임을 정리했다. 특히 건설사업의 소유주로서 절대 권한을 행사함에도 기존 제도에서 배제됐던 발주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발주자의 안전책무를 보좌해야 할 건설안전전문가의 역할, 명칭, 위상, 선임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국가의 책무로서 정책담당자를 위해 건설안전제도가 핵심을 비켜간 이유를 법령의 제·개정 과정을 통해 구체적
으로 설명했다. 또 근원적인 건설사고 원인에 대한 이해를 통해 건설안전 관련 제도와 정책이 효과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고려했다.
4부에서는 산재통계, 해체공사 안전 등 당면한 과제에 대해 원칙 중심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지막 장에서는 건설기술인과 건설안전전문가의 역할과 조직인으로서의 제약과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도록 제안하고, 진정한 건설산업의 진흥을 통한 건설인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안전의 가치를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건설안전 전문가와 건설기술인의 인식을 새로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안전관리의 실질적 주체인 건설기술인과 이들을 지원하는 건설안전 전문가의 인식과 역할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건설기술자라면 누구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 건설산업을 혁신할 절호의 기회이며, 건설산업의 혁신은 안전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안전을 제대로 혁신한다면 건설산업도 함께 혁신이 된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ESG 등 투명하고 공정한 생산활동이 요구되고 있음에도 건설업은 아직 사고, 비리 등 부정적 이미지로 가득 차있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국가차원의 안전책무 강화와 높은 사회적 요구는 부정적 이미지의 건설산업에도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건설산업의 혁신은 건설안전의 혁신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건설사업의 주체인 건설기술자가 이러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및 발주자안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건설사고방지와 건설산업 혁신의 관건은 발주자가 쥐고 있으며, 도급, 위탁, 용역을 포함해 최고경영자의 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건 설안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책에서 밝혔듯이 발주자는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기술진흥법에서 모두 배제된 채 제도와 정책이 시행되어 왔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이제까
지 소외되어왔던 발주자, 특히 최고경영자를 책임의 정점에 세움으로써 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높였다.
커다란 성과로 생각한다. 이제까지 이윤에만 매몰되었던 사회 전반에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고취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본다. 경영진들에게는 불편하겠지만 우리 시회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 가야될 길로 여겨야 된다고 본다. 더이상 인명을 담보로 한 생산활동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약속해야 할 때이다.
건설사업에 관한 한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는데 건설안전특별법이 이 사각지대를 메워줄 것이다.
책 제호에 ‘전문가를 위한’이 들어가 있는데…
안전수준 향상의 마지막 요소는 건설안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본서의 내용을 전개할 때 염두에 둔 것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건설안전의 제도, 정책, 활동 등은 사고예방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건설산업의 생리에 작용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제도나 정책이 취지는 그럴듯 하지만 제조업 방식으로 실효성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중요한 원칙들이 미묘한 차이로 간과되어 왔기 때문이다.
원칙 중심의 건설안전관리가 되어야 한다. 우선 정책 담당자와 건설안전 전문가들이 이렇게 간과된 요인들의 중요성을 바로 살필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전문가를 위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되었다. 우선전문가들의 시각이 넓어져야 정책이나 실무도 바로 세울 수 있을 테니까….
나아가 ‘전문가를 위한’에서 ‘전문가’는 건설기술인도 포함된다. 이제 안전은 건설기술자 모두의 기본 책무로서 누구나 알아야 할 기본역량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자 등 잘못된 용어의 선택으로 산안법의 초기부터 생산라인의 업무인 ‘안전관리’가 참모역할인 ‘안전관리자’의 업무로 오인되어 왔으며 지금도 그 폐해가 매우 크다고 본다. ‘안전관리자’나 ‘건설안전 전문가’는 참모로서 ‘제3자 감시’ 역할이므로 이들의 역할은 감리, 자문, 감독, 지도, 보좌, 조정 등으로, ‘안전관리’ 활동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안전전문가의 역할은 건설사업관리에서‘감리’ 역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출판사가 아닌 안전 전문의 ‘안전정보’를 선정한 이유는…
여러 번 책을 발간하면서 집필도 중요하지만 보급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전에 삼풍백화전 붕괴 사고 10주기 연구보고서인 ‘삼풍사고 10년 교훈과 과제’는 문공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지만 많이 보급되지 못했다. 20주기 보고서인 ‘안전사회로 가는 길’도 찾는사람이 거의 없었다. 직전에 집필한 ‘원리기반 건설안전관리론’도 마찬가지였다. 연구보고서의 경우도 많은 보고서를 냈지만 일반인들은 거의 보지 않는 것 같다. ‘혁신론’ 만큼은 안전정보에서 필요한 분들에게 보급을 잘 해주실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또는 당위성은?
건설안전 전문가와 실무자 입장에서는 우선 제도나 정책을 무작정 따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것인지를 먼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0년 건설사고사망만인율은 2016년 1.58에서 2.00으로 무려 26.6%가 상승했는데, 그 이유를 냉정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지금 이행하고 있는 제도는 잘못 설계되거나 잘못 이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러한 오류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매우 부족한 것 같다. 기존의 제도나 안전활동들이 원칙에 부합하며 실효성은 있는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안전은 건설안전 전문가의 일이기 전에 건설기술인 모두의 일이며,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형사, 민사, 행정 등 다방면의 처벌을 감수해야 함에도 안전을 안전관리자의 일로 오해하고 있는 건설기술자가 많다. 건설사업을 관리하려면 사업보다 먼저 자신의 법정 안전책무에 대해 충분한 학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출판 계획은? 중장기 출판 계획이나 향후 구상은?
우선 이 책자를 더 다듬고 정비할 예정이다.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으며 이미 기술한 내용도 원했던만큼 충분히 설명하거나 요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건설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건설안전특별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데 이 특별법이 제정되면 건설산업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다음 목표는 실무자를 위해 건설안전기술을 집대성한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건설안전분야 지식을 관리적 지식(management)과 기술적 지식(engineering)으로 대별할 때, 이번 ‘혁신론’은 관리적 지식에 속한다. 건설안전분야의 기술적 지식 또한 단편적으로 산재되어 있어 체계적으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덧붙이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30여 년 이상 건설안전분야에 종사하면서 목표로 했던 것이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실효성이 부족했던 제조업 방식의 안전제도를 탈피하는 것이었다. 이는 건설안전특별법의 제정되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는 건설안전지식을 집대성한 책을 집필하는 것인데 이번 ‘혁신론’으로 그 절반을 달성한 셈이다. 세 번째는 산업안전의 틀을 벗어나 건설안전분야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연구단체의 설립이었는데 이미 2018년에 ‘한국건설안전학회’를 출범시켰다. 이로서 세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한 셈이다. 안전은 건설산업의 행복지수를 높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다. 그래서 저의 종교는 안전교(安全敎)이다.
이제 건설안전분야도 노력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본다. 이제까지 이러한 목표 달성에 참여하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안전정보’의 각별한 격려와 지원에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김병용 기자>
<월간 안전정보 2021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