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또 다른 무기, 야디지 북 제이 윤 칼럼
골프가이드 2016-05-12 09:53:26

TV를 통해서나 대회 현장에서 골프 경기를 유심히 지켜본 골퍼라면 선수들이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보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일명 ‘야디지 북’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거기에 무엇이 적혀 있길래 선수들이 뚫어져라 보곤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그것이 필요한 것일까?

일본에서 투어 코치 생활을 하던 몇 년 전, 지인의 부탁으로 잠시 한국에 들어 와 2부 투어선수를 도와 준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그 ‘야디지 북’이 얼마나 필요한 지 절감했었다. 당시 경기 전 마지막 점검으로 연습라운드를 함께 했는데 이 선수가 작은 수첩을 꺼내 들고 거리를 측정해 적거나 그린에 대해 뭔가 표시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을 봤다.

연습 라운드는 각 홀마다 도사린 위험 요소를 체크하고, 특별한 샷이 필요할 경우 그 샷을 가다듬으며 홀 공략 작전을 세우는 일종의 리허설 같은 것인데 그 선수는 리허설은 커녕 무대의상을 챙기는데 급급했다. 코스 공략은 뒷전인 채 홀 특징을 메모하는데 몰두하며 18홀을 마친 것이다.

홀 공략에 필요한 각종 정보가 담긴 ‘야디지 북’이 일반화된 미국과 일본 투어에 적응돼 있던 나로서는 의아하기도 하고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 귀중한 시간에 공략법을 세워 연습하지 못하고 홀 상황을 메모하는 한국 선수들의 열악한 환경이 안쓰럽기도 했다.

선수들을 위한 야디지 북을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때부터다. 불과 4, 5년 전만 해도 한국은 야디지 북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골프장 측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고 직접

그린피를 내고 동반자와 플레이를 하면서 홀 상황을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비용도, 시간도무척 많이 들었다.

다행히 최근 2, 3년 사이에 프로 투어가 발전하고, 프로 캐디가 늘어나면서 야디지 북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이에 따라 그 제작 과정도 발전하게 되었다.

야디지 북은 골프 코스라는 교과서를 더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참고서다.

티잉 그라운드부터 홀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보면 페어웨이나 벙커 그리고 해저드 등 여러 가지 구조물이 있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시작해 그 구조물들을 피하거나 거쳐가며 홀에 공을 넣는 게임이 바로 골프다. 코스는 골퍼에게 ‘홀인’이라는 학습목표와 ‘최소 타기록’이라는 과제를 제시한다.

즉, ‘교과서는 학생에게 학습내용을 구조화시키기도 하며 학습과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야디지 북이라는 참고서는 그 학습목표와 과제를 수행할 때 어떻게 하면 쉽게 할 수 있는지 팁을 제공한다. 홀을 공략할 때 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오르막 내리막이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려 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티잉 그라운드에서 어느 방향으로 샷을 하면 좋은지, 세컨 샷을 할 때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오르막과 내리막은 어느 정도 참고를 해야 하는지, 그린의 경사는 어떻게 되는지 홀 인하려면 어느 쪽으로 공략 하면 좋은지, 해저드 등 위험 지역이 어디인지 등등 샷을 하기 전에 미리 참고를 하면 좋은 사항들을 가장 간단하고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이다.

야디지 북에는 종류도 많다. 전체적인 홀 모양을 알려주는 야디지 북이 있는가 하면 선수들 시합용으로 나온 야디지 북이 있고, 아마추어용 야디지 북도 있다. 또 그 골프장에서 일하는 종업원 용도 있다. 이렇게 종류가 많은 이유는 사용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록된 내용도 약간씩 다르다. 여러 종류의 야디지 북은 우선 거리 표기에서 차이가 난다.

TV에서 보는 KLPGA나 KPGA 1부 투어 경기에서 프로골퍼들은 캐디와 함께 걷는다. 이런 경우 스프링클러나 배수구 등 거리 기준 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2부 투어나 3부 투어, 그리고 학생들이 참가하는 아마추어 대회에서는 카트로 이동하기 때문에 작은 스프링클러를 짧은 시간 안에 찾는 것이 어려워 거리 계산도 쉽지 않다.

새로 생긴 골프장들은 배수구나 스프링쿨러가 크고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난 골프장들은 그것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걸어서 플레이하는 선수들을 위한 야디지 북과 카트로 이동하는 선수들을 위한 것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선수용 야디지 북은 그린까지의 거리 표시는 모두 그린 앞 에지까지를 기준으로 한다. 대회 때는 매일 홀의 위치가 변경되며 그린 앞에서 홀까지의 거리가 표시된 메모를 나눠주기 때문에 야디지 북과 이 홀 위치도를 함께 보면 된다. 시합에 따라 티잉 그라운드가 정해져 있는 경우 페어웨이의 벙커나 구조물까지의 거리도 표기되어 있다.

아마추어나 캐디용 야디지 북은 매 홀 컵의 정확한 위치가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그린 앞까지의 거리와 그린 중앙까지의 거리를 둘 다 표기해 거리 계산에 도움을 준다.

이처럼 기본적인 야디지 북은 경기를 하는 선수에게 전반적으로 도움을 준다. 모든 선수들에게 일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일반적인 야디지 북에 자신만의 메모를 더하면 ‘특별한 야디지 북’이 된다. 연습 라운드를 하면서 자신에 맞는 자세한 정보를 따로 메모해 두는 것이다. 세컨 샷을 할 때 오르막을 계산해서 한 두 클럽 길게 잡아야 하는 경우 선수에 따라서 한 클럽이 될 수도 있고 두 클럽이 될 수도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것을 선택해 적는 식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참고서를 잘 이용하고 참고서에 나와 있지 않는 내용을 자신에게 맞도록 정리해 메모한다.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은 메모의 달인이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최소 48가지 이상의 체크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한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의 주의할 점을 세밀히 기록하고 문제점을 꼼꼼히 메모한 것이다. 그리고 사업에서의 목표달성 기간과 미래 현금 흐름까지를 세밀히 분석해 자금의 투자규모와 수익시점까지의 시간을 기록해서 보관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메모 아래 해결점에 대해 명시하곤 하였다.

그것이 현재 삼성 매뉴얼이라는 방식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다고 한다.

메모를 하는 경우 일반적인 정보 외에 착시 현상을 적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주도 코스인 경우 한라산 브레이크라고 하여 한라산에서 바다 쪽으로 그린이 빠른데 반대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을 매 홀 꼼꼼하게 기록하면 쉽게 게임을 풀어갈 수 있게 된다. 이런 메모는 2, 3타를 쉽게 좌우할 수 있다.

예전에 타이거 우즈가 슬럼프에 빠진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에게 야디지 북을 선물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 노트가 스포츠 기자 손에 들어가면서 세간에 알려졌는데 거기에는 코스의 일반적인 특성과 샷의 목표로 삼아야 할 지점, 그린의 경사도와 빠르기 등이 세세히 기록돼 있어서 타이거의 꼼꼼한 메모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렇게 야디지 북은 골퍼들에게 부여된 코스 공략이라는 과제를 보다 쉽게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훌륭한 참고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단골 멘트처럼 ‘교과서를 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훌륭한 참고서의 도움을 받아 교과서를 완전 정복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다음 호에서는 야디지 북의 사용법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겠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6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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