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루키 클래스’라고 불리던 2015년 루키들의 강세가 무섭다. 올 시즌 9개 대회 중 5개 대회를 2015년 루키들이 휩쓸었다. 시작은 김효주(20·롯데)였다. 김효주 2014년 LPGA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2015년 루키로 합류했는데, 김효주가 2016년 개막전부터 ‘퓨어 실크 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진 장하나(23·BC카드)의 활약도 놀라웠다. 2014년 퀄리파잉(Q) 스쿨을 통과해 2015년 풀 시드권을 확보한 장하나는 ‘코츠 골프 챔피언십'과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우승하며 올 시즌 가장 먼저 다승자 반열에 올랐다.
루키 시즌엔 우승이 없었다.
장하나와 마찬가지로 Q 스쿨을 통과한 김세영(23·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15시즌 무려 3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올 시즌에도 ‘JTBC 파운더스 컵’에서 시즌 첫 우승을 달성했는데, 2001년 골프 여제 애니카 소렌스탐이 세운 LPGA 투어 72홀 최소타인 27언더파 261타와 타이기록을 이루는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리고 이민지가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
2014년 Q 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통과해 2015년 루키로 LPGA에 데뷔한 이민지는 선두와 5타 차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했다. 이민지는 대회 마지막 날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6개라는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글 방제일 기자 사진 LPGA 공식 홈페이지
이민지는 지난 4월 17일 하와이 코올리나 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6개로 8타를 줄였다. 선두에 5타 뒤진 8언더파로 출발한 이민지는 최종합계 16언더파로 전인지와 케이티 버넷(미국)을 1타 차로 따돌리고 통산 2승째를 신고했다. 지난해 5월 킹스밀 챔피언십 이후 11개월 만에 승수를 추가했다.
이민지는 올 시즌 상위권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다. 이전 8개 대회에서 톱10 1번에 들었고, 대부분 2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가장 좋지 않았던 성적은 코츠 챔피언십의공동 40위였다. 이민지는 겨울에 시력 교정을 하면서 퍼트에 더 자신감이 생겼다. 눈의 초점이 조금 맞지 않았지만 교정 렌즈 착용 후 시야가 더 깨끗해져 라인을 읽는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이민지는 밝아진 시야로 코올리나 골프장 코스를 잘 요리했다. 2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다 3라운드에서 2타를 잃으며 주춤했지만 다시 ‘버디 트레인’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전반에 2타를 줄여 10언더파가 된 그는 후반에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갔다. 13번 홀 웨지로 친 샷 이글이 결정적이었다. 11번 홀에서 다시 1타를 줄였던 그는 13번 홀에서 35야드 지점에서 친 칩샷을 그대로 이글로 연결시켰다. 단숨에 13언더파로 올라섰고, 선두경쟁에 뛰어 들었다.
쉽게 플레이 되는 파5 14번 홀에서 이민지는 그린 앞 오른쪽에서 시도한 세 번째 샷이 홀컵을 맞고 멀리 튀는 약간의 불운이 닥쳤다. 하지만 2.5m 버디 퍼트를 침착하게 성공시켰다. 기세를 탄 이민지는 15번 홀에서 4m에 가까운 버디 퍼트를 거침없이 집어넣어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비가 오락가락해서 부드러워진 그린은 이민지의 아이언 샷을 잘 받아줬다. 16번 홀에서 파
세이브를 잘 해낸 이민지는 17번 홀에서 다시 버디 찬스를 잡았다. 세컨드 샷을 4m 옆에 잘 붙인 이민지는 또 다시 버디를 낚아내며 16언더파까지 올랐다. 18번 홀에서 타수를 잃지 않은 그는 먼저 경기를 마친 뒤 기다렸다.
16언더파로 공동선두를 달렸던 케이티 버넷은 16번 홀에서 3퍼트 보기로 1타를 잃었다.
17번 홀에서는 1.2m 버디 퍼트를 놓쳤다. 전인지의 마지막 홀 5m 버디 퍼트도 빗나가면서
이민지는 1타 차 우승이 결정됐다.
‘승부사’ 전인지, 올해 모두 ‘톱3’로 활약…시즌상금 5위로 도약
여자골프 세계랭킹 6위인 ‘슈퍼 루키’ 전인지(22·하이트진로)가 올 시즌 또 한 번의 준우승 기록을 추가하며 우승이 머지 않았음을 예고했다. 전인지는 이번 대회에서 최종합계 15언더파 209타로 대회를 마친 전인지는 케이티 버넷(미국)과 공동 2위로 동률을 이뤘다. 준우승 상금은 14만3,765달러(약 1억6,500만원). 이날 경기는 전반까지는 버넷, 전인지, 장수연(22·롯데)의 3파전 양상이었고, 후반에는 치고 올라온 이민지를 비롯해 전인지, 버넷이 우승을 다퉜다.
3라운드 선두 버넷에 3타 차 공동 3위로 최종라운드를 출발한 전인지는 전반 9개 홀에서 버디 3개와 보기 1개로 2타를 줄여 공동 2위로 올라섰다. 후반 들어 14번홀까지 버디 3개를 더 골라내며 우승 경쟁을 이어갔다.
이후 버넷은 16번홀(파3)에서 약 2m 거리의 파 퍼트를 시도했으나 오른쪽으로 살짝 빗나가며 이민지에게 1타 뒤지기 시작했고, 17번홀(파4)에서는 그보다 더 짧은 거리의 버디 퍼트마저 놓치면서 다시 공동 선두가 될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전인지는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공동 선두 기회를 잡기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과감하게 날린 두 번째 샷을 홀 근처 6m 거리에 붙였다. 버디 퍼트가 성공했다면 연장 승부에 들어갈 수 있었으나 퍼트가 약간 짧아 결국 1타 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전인지는 그러나 올해 나선 4개 대회에서 단독 2위, 두 번의 공동 2위, 공동 3위를 기록하며 모두 톱3 내에 입상하는 뛰어난 성적을 거둬 톱10 피니시율 1위(100%)다.
또 시즌 상금 랭킹에서 5위(43만1,828달러)로 올라섰다. 평균 타수 부문에서는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19·뉴질랜드)에 이어 2위(69타), 라운드당 퍼트 수 1위(28.06개)에 자리 잡았다.
대회를 마친 뒤 미국 골프 전문 매체 ‘골프채널’과 인터뷰에서 전인지는 “그린이 매우 까다로웠다”고 말하며 전인지는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세컨드 샷을 핀 4.5미터 거리에 보냈지만 버디 퍼트에 실패와 더불어 9번 홀(파4)과 12번 홀(파3)에서 약 2미터의 짧은 버디를 놓치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전인지는 “내 게임을 즐기려고 노력했고 기쁘다”고 이내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인지는 올 시즌 LPGA 데뷔 후 출전한 네 개 대회에서 공동 3위-2위-공동 2위-공동 2위 등 모두 톱3를 달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민지의 우승을 예상한 리디아 고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19)는 3라운드 이후 이민지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그대로 적중했다. 마지막 라운드 티오프에 앞서 이민지의 어머니(이성민)는 리디아 고로부터 기분 나쁘지 않은 소리를 들었다. 리디아 고가 다가와 “내가 어제밤에 꿈을 꾸었는데 (이)민지 언니가 우승했어요”라고 한 것. 그것을 지나가는 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민지가 선두에 5타 뒤진 공동 6위로 마지막 라운드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전인지의 어머니가 “골프는 장갑을 벗어 봐야 아는 것이니까 모르는 일이지….”라고 거들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결과는 리디아 고의 꿈대로, 전인지 엄마의 덕담대로 되고 말았다.
전반에 2타를 줄인 이민지의 역전 드라마는 후반 13번홀(파5)부터 시작됐다. 11번홀(파4)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기세가 오른 이민지는 13번홀에서 이글로 추격에 불을 지폈다. 32m 지점서 58도 웨지로 친 세 번째샷이 그대로 홀로 빨려 들어간 것.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이민지는 14번홀(파5), 15번홀(파4)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마침내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그리 고 17번홀(파4)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은 천금같은 버디를 잡아 단독 선두로 올라서며 우승을 예약했다. 마지막 18번홀(파4)에서 파로 홀아웃한 이민지는 1타차 단독 선두로 경기를 마친 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장전에 대비한 연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챔피언조에서 1타차 공동 2위에 랭크돼 있던 전인지와 버넷이 나란히 파에 그치면서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이민지는 “매우 기쁘다”며 “나를 가장 사랑하고 아껴주셨던 외할아버지가 1개월전에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하늘에서 할아버지가 도와주셔서 우승한 것 같다”고 울먹였다.
PGA 투어 최근 3개 대회 연속 10대가 우승
이민지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골프에서 ‘코리안 시스터스’를 위협할 경쟁 상대로 확
실히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5월 킹스밀 챔피언십 이후 약 11개월 만에 개인 통산 2승째를 거둔 이민지는 투어 통산 5번째로 만 20세 이전에 2승을 거둔 선수가 됐다. 이민지 이전에는 뉴질랜드 교포인 리디아 고를 비롯해 렉시 톰프슨, 매를린 하그, 샌드라 헤이니(이상 미국) 등 네 명만이 20세 이전 2승을 기록했다. 하그와 헤이니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주로 활약한 선수들이다.
이민지는 1996년 호주 퍼스에서 태어났으며 10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 2013년과 2014년 호주여자아마추어오픈을 연달아 제패하며 4년간 호주 국가대표를 지냈다.
아마추어 시절 세계 랭킹 1위에 올랐고 2014년 LPGA 투어 퀄리파잉스쿨 최종전을 1위로 통과, 일찌감치 가능성을 인정받은 선수다.
이번 우승으로 우승 상금 27만 달러(약 3억원)를 받은 이민지는 투어 통산 상금 100만 달러도 돌파(123만7천560 달러)했다. 또 세계 랭킹 역시 17위에서 12위로 도약하게 됐다. 호주선수 가운데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이민지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9)와 함께 올해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과 금메달 경쟁을 벌일 선수로 평가된다.
LPGA 투어는 최근 3개 대회에서 모두 ‘10대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앞선 2개 대회에서 리디아 고가 정상에 올랐고 이날 우승한 이민지도 5월생이라 아직 만 20세가 되지 않았다.
3라운드까지 선두에 5타 뒤져 있던 이민지는 우승을 차지한 뒤 인터뷰에서 “어제 코치가 ‘4라운드에서 8언더파만 치면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며 “실제로 오늘 8언더파를 쳐 우승했다”고 기뻐했다. 13번 홀(파5)에서 약 35야드 칩샷에 성공해 이글을 잡은 그는 “이후로도 2개 홀 연속 버디에 성공하면서 선두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며 “남은 홀에서도 최선을 다한 결과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민지는 “오늘 우승으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며 “앞으로 남은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효주가 우승 인터뷰를 할 땐 영어에 약한 김효주를 위해 이민지가 대신 통역에 나서고 이번에 이민지가 우승할 때 김세영이 물을 뿌려주며 축하하는 등 루키 동기들끼리 돈독한 사이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지난 시즌은 역대급 루키군이라는 수식어에 비해서 우승 숫자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14년 신인왕인 리디아 고가 당시 3승, 이미림(25·NH투자증권)이 2승을 거두며 2014년 루키들이 5승을 기록했는데, 가장 많은 기대를 받았던 2015년 루키들이 5승에 그쳤기 때문.
하지만 올 시즌 리디아 고의 2승, 렉시 톰슨(21·미국), 노무라 하루(23 한화·일본)의 1승을 빼고 초반 9개 대회에서 벌써 5승을 2015년 루키들이 가져감으로써 이들은 지난 2015년보다 더욱 강력한 2016년이 될 것을 예고했다. 재밌는 점은 현재까지 치러진 9개 대회에서 24세 이상의 챔피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이다. 장하나가 23세10개월로 가장 나이가 많으며 우승자들의 평균 나이는 21세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이민지는 ‘골프채널’에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많은 어린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하는 것을 봐왔다. 어린 선수들 중 강한 선수들이 많다. 리디아 고, 브룩 헨더슨(18·캐나다), 김세영 등등 모두 25세가 안 되는 선수들인데 정말 강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민지는 “서로 라이벌이라는 의식도 하고 있고 이기길 원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월간 골프가이드 2016년 5월호>